진화론인가 창조론인가 - 최창무 대주교님 강의(요약)

2004. 10. 9. 오후 7: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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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배경음악: 너 나를 사랑하느냐 - 권성일미카엘 곡/노래)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진화론과 창조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비신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퍼온 글 - 평화신문 2004년10월10일, 광주대교구장이신 최창무대주교님 9월21일 하상신학대학 강의>

 

  진화론과 창조론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명제도 아니다. 진화론은 자연과학을 통해 지구의 생성과 생명의 출현, 그 변화와 발전 및 소멸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용어인데 반해 창조론은 세상과 인류의 시원을 종말 혹은 완성으로 내다보며 믿음의 내용을 설명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진화론과 창조론 중 어느 게 옳으냐를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과 창조론의 실상을 알아보고, 두 이론의 특성과 차이, 상호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진화론은 자연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당시 시대적 상식을 뛰어넘는 연구결과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진화론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46억년 전 태양계의 한 별로 태어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생명체는 물질의 변이를 통해 등장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화석을 통해 생명체 탄생 시기를 밝혀냈다. 유기물을 만들어 내는 조류(藻類)는 약 35억년 전, 생물이라 할 수 있는 유성 생식물은 20~15억년 전, 포유류는 2억1천만년 전에 나타났다. 인류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원시인은 약 50만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으며 머리를 쓸 줄 아는 원시인이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 인류에까지 이르렀다.

 반면 창조론은 성서에 쓰여진 창조신앙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창조신앙은 인간의 구원과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과 함께 이루어진다고 믿는 신앙의 이론으로, 자연과학이 아니다. "그분(그리스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골로 1,15-17).

 교부시대에는 단순히 성서 말씀을 해설하는 수준이었으나 철학ㆍ자연과학과 함께 성서 고고학ㆍ인류학ㆍ언어학ㆍ종교학 등이 발전하면서 18세기부터는 성서 원문비판ㆍ역사비판ㆍ성서주석ㆍ성서신학 등이 크게 발전하였다. 이에 따라 성서를 좀더 폭넓게 이해하게 됐으며, 더불어 창조론도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됐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충돌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다. 일부 학자들은 진화론이라는 가설을 토대로 당시 그리스도교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던 신앙ㆍ윤리ㆍ도덕까지 비판하고 나섰다. 이는 그릇된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물론과 무신론이 그 기준이었다. 당시 서양사회는 하느님이 세상과 인간을 무(無)에서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생명은 자연발생적이며 또한 진화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자들은 사람이 유인원에서 진화하여 사람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서적 세계관과 자연과학의 가설이 정면 충돌한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진화의 기본 성격을 적자생존ㆍ도태ㆍ변이 등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 법칙을 사회ㆍ문화ㆍ도덕에까지 적용함으로써 투쟁ㆍ경쟁ㆍ생존ㆍ사멸 등은 필연이며 이 원리에 따라 가치가 창출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객관적 지식만이 위대하므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었다는 창조론에 현혹되지 말라고 했다. 불변적 가치나 초월적 의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과학과 신앙은 양립할 수 없으며, 자연과학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과학 제일주의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창조론자(신학자)들은 과학이 말하는 변화와 발전을 인정하면서도 변화와 발전 속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설명하며 창조신앙을 강조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음을 믿으며, 만드신 목적대로 인간을 완성시키려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시는(에페 4,6) 분이시다. 그러므로 창조된 모든 것은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수렴되고 완성된다. 또한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서 그 의미가 있고, 만물 속에 있으면서 만물 위에 있기에 세상을 가꾸고 다스리며 하느님께서 세우신 목적을 향해 세상을 이끌어야 한다.

 자연과학 발전을 통해 우리는 지구의 변화와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게 됐다. 지구를 떠나 우주여행도 할 수 있고, 생명체의 기본 구성요소인 DNA를 알아내 생명지도까지 작성했다. 인간은 변화에 순응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촉진한다. 그러나 과연 인간의 가치는 무엇이고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과 기쁨의 삶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누가 가르쳐 주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할 것이다.

 생명진화와 창조신앙을 상대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조화롭게 설명하려는 노력도 적지 않았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1881∼1955년, 예수회)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세상변화와 진화과정을 물질계(Geogene)로 출발해 생명이 출현하고 진화하는 생명계(Biogene), 마지막 정상과 영성의 단계로 도약하는 정신계(Nouogene) 등 3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의 시작(Alpha)이며 완성(Omega)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한다는 것이 샤르댕 신부의 신학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가르침의 오류에 대한 경고」(Humani Generis)를 통해 생명의 진화와 발전 등에 관한 과학적 발견이 창조신앙과 배치되지 않음을, 요한 바오로 2세는 1996년 과학자들과 만남에서 진화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유물사관에 의한 진화론을 배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진화론인가 창조론인가'라는 주제는 학문적으로 세상과 인간의 시원론 및 완성론에 대한 설명으로, 상호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며 또 그래야 한다. 그러나 사상적으로 유물론에 입각해 신앙과 도덕을 설명하는 것은 종교인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결국 인간의 존엄구원, 현세 삶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설명에서 그 성격이 좌우되고 평가받는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서로 대비해 볼 이론이 아니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객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믿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선입견으로 타학문과 이웃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형이상학적 지혜나 진리를 무시하고 종교와 신앙을 무지의 소치로 보며 조소하고 거부한다면 이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에 사로잡혀 현대 과학의 성과를 백안시한다면 믿음의 진리를 잘못 알아들을 수 있고 또 현대인들에게 적합하게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신앙인이라면 창조론의 참된 인간이론과 진화론의 객관성을 조화롭게 받아들여 자기 신앙을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과학자는 과학만을 맹신하는 지식의 절름발이가 되지 않도록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댓글 2

  • 2004년 10월 10일 오후 8:54

    누구인가 이야기 하기를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은 진화하도록 창조 되었다고 하더군요. 항상 머리속이 복잡한 이야기 입니다.

  • 2004년 10월 11일 오후 4:50

    신앙은 과학 넘어에 있으며 과학을 포함하는 더 큰 영역이며 과학은 속성상 변화할 수 밖에 없으며,신앙은 변하지않는 절대진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