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후 조선조정이 중국(청) 황제에 보고한 토사주문

2004. 10. 7. 오후 10: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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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배경음악: 내 안의 사는 이)

 

 

한국 교회 초기 선조들이 어떻게 신앙을 갖고 지켜왔는지와 당시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배경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문서로서, 우리 선조들의 신앙이 얼마나 굳건했는지 놀라움을 갖게 됩니다. 

 

본 문서는 신유박해(1801년)   때 주문모 신부를 처형한 후 그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외교적 문제가 될것을 우려하여, 처형한 경위 등을 설명하여 중국황제를 납득시키려는 내용으로 1801년말(순조1년) 작성하여 사신이 중국(청나라)에 가 전달한 것입니다.  <한국 초기 교회에 관한 교황청자료 모음집-윤민구신부 역>에서 퍼 옴.

 

토사주문(討邪奏文) - "사악한 무리들을 다스린 다음 황제 폐하께 올리는 글"

 

  저희 나라에 불행한 일이 있었기에 황제 폐하께 삼가 아뢰옵니다.  사악한 무리들이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낱낱이 물어 처형하였으니, 그 사건의 전말을 황제 폐하께 보고해 드리고자 하옵니다.

 

생각해 보면, 저희 나라는 은(殷)나라의 태사께서 저희 나라에 오신 때부터 예절과 의리가 있고 충성스러우며 온순한 나라라고 그 소문이 중국까지 널리 펴졌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나라의 풍속은 오로지 유학만을 소중히 여기고 숭상하기 때문에, 벼슬하는 사람들과 선비들은 정통 유학의 가르침이 아니면 전하지도 믿지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골의 부너자나 아이들일지라도 모두 삼강오륜을 매일의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하는 도리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나라의 그 누구도 사악한 이단에 대해서는 들어보지를 못하였더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최근 10년 동안 한패의 흉악한 무리들이 서양학을 공부한답시고 하늘을 모독하고, 성현들을 업신여기는가 하면, 임금을 배반하고, 아비를 업신여기고, 제사를 없애버리고, 사당과 신주를 치워 없애고는, 천당이다 지옥이다 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을 속이고 얼을 빼어 판단력을 흐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세례라는 법을 통해 흉악한 무리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책들을 몰래 숨기고 다니며 부적이나 참어(讖語)처럼 믿었으며, 널리 여자들을 끌어 모아 짐승같은 짓을 하였습니다 (주: 남녀가 어울려 신앙활동하는 것을 보고 짐승같다고 평함).  뿐만 아니라 어떤 자는 신부라고 부르고, 어떤자는 교우라고 부르는가 하면, 이름을 바꾸고, 각 사람에게 세례명이라는 것을 준 다음 마치 홍건적이나 백련적처럼 몰래 서로를 찾아다니며 때로는 공공연하게 때로는 비밀리에 선동하고 다녔습니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이 나라의 수도인 한양과 밖으로는 충청도와 전라도를 비롯한 여러 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가르침이 전파되어 그것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선왕(주:정조)인 공선왕께서는 그러한 기미를 꿰뚫어 보시고는 이를 엄하게 금하고 막았습니다.  그리하여 건륭 신해년에는 윤지충과 권상연 등이 사당을 헐고 제사를 철폐하였다가 일이 발각되어 즉시 사형에 처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국상을 당하여 제가 어린 나이로(주: 순조나이 11세) 왕위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아직 모든 일이 초기 단계인 틈을 타서 사악한 무리들이 한양과 시골에서 서로 맞장구치며 굳게 손을 잡고는 마치 물이 불어나듯, 불길이 번져가듯 크게 번져나갔습니다.

 

  그러다 금년 3월에 한성부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주고받은 편지들과 책들을 찾아내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증거로 해서 비로서 (그 사악한 무리들을) 국문을 하며 사건의 진상을 조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의정 대신이 의금부와 사현부와 사간원의 여러 신하와 함께 모여 그들을 심하게 꾸짖고 책망하면서 사실을 꼬치꼬치 깨어물으니, 사실은 그 책들이 사악한 무리 중에 한 사람인 정약종이란 자가 저술하고 모은 책들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정약종이 한 진술에 의하면, 처음에 이 벽이란 자가 서양학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이승훈을 준비시켜 (북경으로) 보냈는데 이승훈은 자기 아버지인 이동욱이 가는 조공 사신 일행에 끼어서 (북경으로)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경에 가서는 서양 사람들이 사는 집에 가서 서양 사람들과 사귄 다음, 서양 책들을 얻어 가지고 와서는 이벽과 그의 형제인 정약전과 정약용 그리고 이가환 등과 함께 그 책들을 읽고 토론하면서 공부하였으며, 그 내용들을 그들 삶의 지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마침내 부모를 버리고 못된 무리들과 손을 잡았으며, 자기들이 배운 술책으로 이 나라의 풍속을 바꾸려고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라의 금지령이 더욱 엄하게 되자 그들은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으며 반역을 꾀하였던 것이라고 합니다. (중략)

 

  그 사악한 무리들을 조사해서 맨 마지막으로 얻어낸 것은 소위 신부라고 부르는 주문모라고 하는 자에 대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주문모를 강완숙의 집에 숨겨 놓고는 (사람들이) 주문모의 이름과 거처하는 곳을 물을 때마다 온갖 속임수와 간교함을 동원하여 그때그때 대답을 달리하였습니다.  (그 사악한 무리들을) 수차례 고문하여도, 그들은 죽기로 저항하면서 주문모에 대하여 결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온갖 머리를 짜내어 서로 입과 마음을 맞추었으니, 그 모두가 결국은 주문모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주문모를 위하여 한목숨 바치기를 원하였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그때의 상황은 정말이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나라의 존망이 걱정스러운 상태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악의 뿌리를 제거하고 물리치기 위해서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역적 이 인과 홍낙임 그리고 윤행임에게 사약을 내려 죽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문모와 정약종, 이승훈과 홍낙민, 김건순과 김백순, 최창현과 이희영, 강완숙과 홍필주 최필공과 이존창은 사형에 처하고(주: 참수형), 이가환은 때려 죽였으며, 정약전과 정약용 및 그 밖에 관련있는 자들은 죄를 지은 정도에 따라 판결하여 처벌하였습니다. (중략)

 

  주문모와 같은 자는 처음 체포해서 문초를 할 때 그 자의 옷과 말, 그리고 얼굴과 행동이 저희 나라 사람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지 그 자가 사악한 무리들의 괴수로 확인되었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처형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저는 황사영의 진술을 믿어야 할지 의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결정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주문모가 상국(上國)의 사람이란 이야기가 지난번에 사악한 무리들이 진술한 내용 가운데 나왔기 때문에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저희 나라로서는 제후국의 도리를 지켜야 하겠기에 즉시 황제 폐하께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비록 두서없고 어지럽기도 하지만, 저는 지금 북쪽을 향하여 구름 덮인 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저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오니, 부디 이 몸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는 그저 저희 나라가 복이 없어서 사악한 무리들이 소란을 피웠기에, 그들을 벌주고 다스린 그 전말을 낱낱이 보고 드리는 것이오니, 부디 황제 폐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두루 살펴보시옵소서.  삼가 황제 폐하께 아뢰는 바입니다.

 

  이제 관례대로 판중추부사인 조윤대라는 고위 대신을 황제 폐하께 보내 드리는 바입니다.  부사는 이조판서 서미수입니다. 이들은 황제 폐하께 올리는 이 글을 가지고 북경에 가서 조정에 전달한 다음, 모쪼록 황제 폐하께 올려 달라고 부탁할 것입니다.

가경6년 음력 10월 20일 (주: 1801년 11월 25일)

예부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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