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주님을 보네

2004. 10. 12. 오후 12: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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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광야는 우리에게 어떤 계시인가?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주님이 베푸시는 가나안땅, 즉 구원의 땅이요 에덴의 땅이며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정화의 과정이다.


이 광야를 통해서 과거의 세상살이의 종으로서 살아온 지난 날의 모든 떼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의례로서 반드시 거처야만 하는 죽음의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이다.


이 광야는 세상의 모든 영화와 재물 재밋거리 다툼과 욕심을 다 버리도록 요구한다. 광야에는 세찬 바람소라 뿐이요, 뜨거운 태양과 갈증의 목마름 뿐이며, 한낮의 뜨거움과 밤의 찬공기 속에서 우리를 힘들게 한다.


광야의 혹독한 시련은 나약한 우리에게 과거의 미련속에서 우리를 유혹에 다시 빠지도록 시험한다.

따뜻한 음식과 안락함, 세상것의 오락거리를 그리워하게 만들고, 나무그늘의 안락함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왜, 네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느냐? 돌아오라. 즐거움과 안락함과 풍요로움이 있던 전에 살던 이집트로! 이집트의 종살이면 어떤가? 인생은 한번 살면 그뿐인 것을. 살아있는 동안 즐기며 사는게 최고다. 네가 어디서 왔든, 네가 어디로 가야 하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드란 말이냐? 괜히 헛고생하지 말고 돌아오라!"
끝없이 광야에 선 우리에게 유혹한다.


이러한 유혹에서 견딜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믿음 뿐이다.


"주님이 약속하신 땅이 저 너머에 있다. 비록 지금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지라도 주님이 오라 초대하셨으니 나를 이 험한 광야에서 버리시지 않을 것이다. 내 하느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를 단련하시는 것이다. 비록 내 배가 고프고, 뜨거운 태양이 나를 지치게 하여도, 밤공기의 차거운 한기가 내 뼈속 깊이 휘몰아쳐도 다시 저 죄악의 종살이로 돌아가지 않으리. 주님이 날 부르셨으니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기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걷자. 이것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고, 내 본향으로 가는 길이다"라는 믿음만이 이광야에서 사는 길임을 깨닫고 순명의 길을 갈 때, 우리는 가나안 땅을 볼 것이다. 구원의 나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고통속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내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의 모습을 보이시어 인간이 어떻게 해야 구원될 수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구원의 통과의례를 몸소 보여주셨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의 40일간 광야에서의 단식과 기도의 보내심이다. 전지전능하시고 전선하시며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애초부터 악마의 유혹을 받으실 필요가 없으시고 광야에서 정화의 과정이 필요하시지 않으셨지만, 우리 인간에게 길을 직접 보여주시려고 그 크신 사랑으로 단식과 고행과 기도생활을 보여주시고 우리가 겪어야할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을 보여주시기 위해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다. 유혹에 대한 단호한 태도는 우리의 믿음이 어떤 것이어야만 하는지를 가르쳐주신다.

 

"너희도 내가 행한 것과같이 행하라. 내가 보여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을 보여라. 그래야 너희는 나와함께 나의 나라에서 구원을 얻으리라!"

 

광야에 서서

모래바람 속에서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듣네.
주님. 이 음성을 제가 잊지않게 저에게 자비를 내리소서.
주님이 주신 이 귀한 광야생활을 감사하나이다.
저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소서.
그 때는 오직 주님만이 아시오나
제가 온전히 광야생활을 마칠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당신은 영원한 저의 주님이시옵니다.
마라나타! 아멘.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겠고, 버리지도 않겠다"(히브13;5)

 

댓글 1

  • 2004년 10월 12일 오후 7:16

    청년때는 광야에 서서 깃발을 부여잡고 있었네..지금은 광야에 서서 기도하고 있네...주님! 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