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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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감사하게 될 때에, 내 스스로 수고 하거나, 꼭 받을 것을 받았을 때에 감사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수고와 노력을 했어도 나의 노력의 범위가 넘고 내 능려과 한도를 넘었을 때에 누군가가 나와 공동체의 일과 과제들 도와주고, 끝이나 결과가 좋았을 때에 감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봉급은 보너스보다 액수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기쁨의 강도에서 보너스를 받을 때에 더 높다. 봉급이야 당연히 정해진 거고, 노력해서 얻는 것이어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 그러나 보너스는 노력을 넘어서 기분과 사기 진작을 위한, 덤으로 얻는 것이기에 더 즐거움이 강도가 높다.
그렇다. 감사는 거저주어진다는 마음에서 얻어진다. 실제로 감사는 거져 받는 것에 대한 고마음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가 거저받지 않은 것이 어디있나? 모든 것을 거져 받았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받았다. 감사한다.
그런데 감사하지 못하고, 인색한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목숨부터 시작하여,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조건들이 거저받았다. 오늘 아침식사를 하면서 먹은 것. 그 도구 등 먹는 것이나 쓰고 있는 모든것,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거저 받은 것 일색이다. 어디 내가 만들었는가? 내가 재배했나? 생산했는가? 그것이 소유인가?
아니다.
그러니, 거저받은 것이니 정말 감사해야 한다.
한편 그리스도 신자들은 특별히 감사할 일이 있다. 거저받은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구원의 길, 그 복음을 거저 받았다. 곧 영원한 생명과 그리스도의 말씀의 양식을 거저 받았다.
누군가에게 거저받은 것을 고마워서, 감사하면서도 정작 영원한 생명과 주님이 주시는, 우리가 받은 구원 기쁨과 그 양식에 감사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받으셨다. 그것을 받으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얼마나 감사하셨을까?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그 진리의 말씀의 기쁨 때문에 죽기까지 그 일에 헌신하시고 자신을 십자가에 바치셨다.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거나, 중단했다면 어찌 우리가 영원한 진리의 말씀과 양식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말씀을 받은 예수님의 기쁨과 감사가 우리에게 구원의 양식이 되고, 생명이 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도 쓰라닌 고통이었지만, 종국에 기쁨었고, 감사였다.
예수님은 자신의 기쁨과 감사를 단지 당신 자신에게만 국한시키지 않으셨다. 제자들에게고 그 십자가가 기쁨이요, 감사임을 알여주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르 8,34
예수님의 기쁨과 감사를 얻으려면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목숨을 구하고 생명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마르 8,35
복음적 가치에, 그 십자가의 길에도 감사하는 제자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세상 다른 사람들은 주님을 알지도 못하고, 주님의 말씀도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는 구원자 주님을 알고 있고, 주님의 진리의 말씀 '복음'을 알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가 감사한 것은 세상사람들의 거저 받은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감사하겠지만, 그 뿐 만 아니라, 주님과 주님의 말씀과 복음을 받음을 감사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제자로 사도로서,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에 감사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즐거움이라고 하였다. 복음선포가 위협당하고, 죽음을 강요당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주님을 알고, 그 권한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감사하며, 찬양하였다.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와 희망과 복에 대해서 기도한다.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들어주실 때에 감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앙인은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세속적인 필요와 바람도 청해서 그 기쁨을 얻고, 감사를 누려야 한다. 나아가 복음적인 감사가 필요하다. 복음적 감사는 모든 이들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모든 이가 구원받게 하는 데 따른 노력에 대한 감사다.
이 세상속에, 이 사회속에 갖가지의 소외와 고통과 가난을 겪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세상의 필요와 소원을 바치지만, 영육간에, 가정과 공동체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이들을 위해서 복음적 감사가 되기 위해서 복음을 위한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복음적 감사는 늘 '십자가의 길'이 동반된다. 세상의 가치와 필요는 십자가와 거리가 있고, 자기 자신과 가족들, 특히 자기나 주위 사람들에게 집중되지만,
복음적 감사는 모든 들의 생명과 구원을 위한 것이고, 그들을 살리는 것이어서, 십자가의 길이 아니며 그 감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복음적 감사'를 위해서 예수님을 자신을 따르라 하고, 사람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루카 9,23)
복음적 감사는 세속적 필요의 감사와 질적으로 다르다. 복음적 감사는 '십자가 짊'을 동반한다. 그러나 복음적 감사는 십자가를 지는 것과 함께 하느님께서 몸소 주신는 기쁨의 감사를 경험하게 된다.
오늘은 감사의 날.
우리 자신을 위해서, 세속적 필요와 이익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그것을 주실 때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복음의 삶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복음의 기쁨에도 감사해야 한다. 세속의 필요에 대한 감사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에게 기쁨을 주고 감사하에 되지만, 복음의 감사는 나 자신의 기쁨과 감사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기쁨이고 감사이다. 그 기쁨의 질적차원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감사는 개인의 감사와 함께 복음의 감사를 말한다.
"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