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받을 수 있는 특권은 세 가지다.
먼저, 믿음의 특권이 있다.
우리는 믿음의 특권을 통해 구원을 받고 아픈 상처가 치유된다.
그런데 이 믿음의 특권을 넘어서는 것이 바로 고난의 특권이다.
고통이 오면 더 큰 고통을 달라고 기도하고 더 큰 고통이 오면 아주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고통을 싫어하지만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고통을 청하고 십자가를 힘껏 끌어 안는다.
이러한 고난의 특권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이러한 고난의 특권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하느님의 축복이 쏟아진다.
하느님에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에는 영적, 인적, 물적 축복이 있다.
영적 축복은 하느님께 순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인적 축복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받을 수 있다.
물적 축복은 재물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관리의 개념으로 생각할 때 얻어진다.
나는 꽃동네를 맡은 후 내 개인 이름으로 통장을 만든 적이 한 번도 없다.
연수원, 수도원 등의 명목으로 통장을 만든 뒤
철야 기도 봉헌금은 연수원 계좌로, 모든 주일 미사 봉헌금은 수도원 계좌로 넣기
이런 방식으로 정해 두고 관리만 잘 했을 뿐이다.
그렇게 성실하게 관리하다 보니 어느 날 통장에 돈이 쌓여 이처럼 많은 건물을 지을 수 있었고
꽃동네가 미국, 인도에까지 가고 곧이어 아프리카까지 가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깊이 간직하고,
그 사랑에 힘입어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가 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그 힘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
즉 그 큰 사랑의 비결을 배우는 것이다.
"나도 이 세상의 고통을, 죽음을 대신하겠다" 라고 기도한 적이 있는가?
십자가, 즉 고난의 특권이 있기에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
신앙인들의 그런 자세 덕분에 이 땅에 평화가 있을 수 있다.
"니가 죄가 있든 없든 나는 너만을 사랑한다" 라고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믿음의 특권만이 아닌 고난의 특권을 받으면 나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
정의로운 세상은 참 좋은 것이다.
그러나 정의를 뛰어 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고난은 끝이 있다.
죽으면 끝난다.
죽을 때까지만 고난의 특권을 누려라.
고난의 특권이 끝나면 영광의 특권이 온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필리 1,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