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고통에 대한 이해
1) 금붕어는 자연상태에서는 보통 약 만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항 속에 있는 금붕어는 어떤 위험도 없이 적당한 온도와 충분한 먹이를 공급받는데도 3천 개 또는 4천 개의 알밖에 낳지 못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 ’고통’은 모든 삶에 있어서 자연법칙과도 같다. 어찌보면 필요악이다. 어항 속의 금붕어는 바로 삶의 실재를 잃어버린 것이다. 자연 속에는 위험과 불안이 있으므로 생존하기 위한 본능도 치열한 반면, 어항 속에서는 모든 것이 보장되기에 생존키 위한 본능적 활력 또한 감소되는 것이다.
2) 대양(大洋)에서 관상용 열대어를 잡아 전세계에 공급하던 한 회사는 열대어 수송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수조 속에 열대어를 보관해도 수송 도중 절반이 넘게 죽는데다 그나마 수송에서 살아 남은 열대어들도 비실 비실해 상품 가치에 문제가 생긴 때문이었다. 그 회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심지어 열대어들이 살던 곳의 수초들과 모래와 암석을 수조 속에 집어 넣어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이 회사의 고민을 전해 들은 한 생태학자가 해결책을 냈다. 즉 수조에다 사나운 문어 한 마리를 넣고 바람을 일으켜 물살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열대어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생태학자 말대로 하였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장시간의 수송을 끝내고 육지에 도착하여 수조를 여니, 사나운 문어는 물론이고 대다수의 열대어가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결과를 생태학자에게 보고하니 그 생태학자의 반응은 아주 간단했다. "물고기는 거센 물살을 거슬러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 자기를 해칠지 모르는 무리 속에서 긴장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생태학자의 대답은 계속되었다. "생명체는 너무 편하면 죽습니다. 항상 긴장 속에 살아야 생명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 인간도 너무 편하면 생의 활력을 잃고 서서이 죽어간다. 성장할 수 없고, 충만된 삶을 살아가기가 어려워진다. 잘사는 나라, 복지정책이 잘된 나라일수록 자살률이 높다. 보장된 사회 조건으로 곹이 제거되어 생존키 위한 본능도 없어지고, 삶의 활력도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 또 잘사는 집 아이들일수록 마약도 하고, 건전치 못한 행위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3) 찰스 코우만이란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 고치 구멍을 뚫고 나오는 광경을 긴 시간 관찰하였다. 나비는 작은 고치 구멍을 뚫고 나오려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코우만은 긴 시간 애를 쓰고 있는 나비가 안쓰러워서 가위를 가져다가 고치 구멍을 조금 뚫어 주었다. 나비는 고치에서 쉽게 빠져 나왔다. 그는 이제 나비가 화려한 날개를 펼치면서 창공을 날아 다니겠지 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나비는 날개를 질질 끌며 바닥을 왔다갔다하다가 죽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 나비는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날아갈 만한 힘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나비는 작은 고치 구멍을 빠져 나오려 애쓰는 가운데 날개 힘을 키우게 되어 있는데, 코우만이 값싼 동정으로 그 기회를 제거해 버린 것이다.
- 우리 인간사를 보자면 온실 속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사회생화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들은 쉽게 상처를 받으며, 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한편 어렵게 살아온 사람들은 온실 속에서 자란 사람들과 다르다. 이들은 고통스런 문제가 생기면 도망가지 않고 맞서며, 그 고통의 실재를 만져보며, 최선을 다해 문제를 처리한다. 이들은 고통을 통하여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다.
* 우리는 고통에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가? 인간의 삶은 고통이다. 이것을 삶의 실재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하겠다. 고통을 거부하고 피하고자 하며, 한탄할 것이 아니라, 기꺼이 대면하고 수용하고 소화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통을 통해 인간은 성장하고 발전한다. 영혼이 튼튼하게 단련을 받는다. 아픈만큼 성숙해지는 것이다. 어찌보면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다. 십자가 없는 구원이 없듯이, 고통없는 하느님과의 만남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고통을 받아들이자. 적극적으로 수용하자. 이제까지 나에게 다가온 모든 고통과 현재 내가 맞고 있는 고통들과 앞으로 내가 만나야 할 모든 고통들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나에게 고통을 허락하신 주님, 찬미 받으소서. 고통과 기꺼이 대면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또한 고통을 품어 안을 수 있는 인내와 힘을 주소서. 그로 인해 나 성장하고, 하느님 당신을 뵙게 되리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