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이 아니라, 내 맡김은 적극적 행위이다

2011. 9. 12. 오후 2: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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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이 아니라, 내 맡김은 적극적 행위이다.

그리스도교적 내맡김은
소극적 인내도, 맹목적 복종도 아니다.

그것은 고통에 대한 적극적 수용으로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두 손으로 받아들여 주시리라는
희망으로 지탱되는 능동적 자세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적 귀의는 맥없는 체념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

곧 당신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하느님 뜻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오직 기도하는 마음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고통의 철저한 수용과
하느님의 일치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그 고통까지 바꿀 수 있다.

그는 정복당하지만 그럼으로써 더욱 강해진다.
마치 사랑이 늘 지게하나 더 강하게 만들어 주듯.

물론 고통을 변화시키는 수용 자세는
그리스도인에게 날 때부터 저절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 자세를 지니기 위한 처절한 싸움과 비탄과
탄원을 통해 비로소 주어진다.

이 그리스도교적 위탁은 기도의 열매이지만
멀고먼 길의 마지막에 가서야 주어진다.

고통의 막장에 다다른 그리스도인,
그 또한 눈물을 흘리고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비탄 속에서 하느님께 반항할지도 모르나
이러한 가운데에서 기도는 우러나오고,
이 기도는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것이 된다.

무릇 인간은 기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느끼고 감지하는지 알게 되고,
이 모두를 통해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다.

고통을 부끄럽게 여겨 감추고 도망치며
고통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일차원 능력 위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기도는 무언가를 부숴버리는 힘 있는 행위다.

참으로 힘 있는 기도는
현실에 안주할 수없는 이가 “생명을 사랑하시는”(지혜11,26)
하느님께 비탄과 눈물로 다가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이라는 걸림돌”, 요하네스 브란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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