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마 종 기(로렌조)
아내는 맛있게 끓는 국물에서 며루치를
하나씩 집어내 버렸다. 국물을 다 낸 며루치는
버려야지요. 볼썽도 없고 맛도 없으니까요.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뜨겁게 끓던 그 어려운 시대에도
며루치는 곳곳에서 온몸을 던졌다.
며루치는 비명을 쳤겠지. 뜨겁다고,
숨차다고, 아프다고, 어둡다고. 떼거리로
잡혀 생으로 말려서 온몸이 여위고
비틀어진 며루치떼의 비명을 들으면.
시원하고 맛있는 국물을 마시면서
이제는 쓸려나간 며루치를 기억하자.
남해의 연한 물살, 싱싱하게 헤엄치던
은빛 비늘의 젊은 며루치떼를 생각하자.
드디어 그 긴 겨울도 지나고 있다.
‘며루치’는 우리들의 식생활에서 빠지지 않는 생선입니다만, 멸치를 생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다른 재료와 혼합하여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물’을 우려낸 다음에는 아낌없이 건져내어 버려버리기 때문이겠지요. 위에 인용된 시에서는 멸치의 이와 같은 점을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가장(家長)의 역할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국물을 다 낸 며루치는/ 버려야지요. 볼썽도 없고 맛도 없으니까요.”라며 국물을 우려낸 멸치를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펄펄 끓는 국물에서 하나하나 건져내 버리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문득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산업의 현장에서 온 몸을 던져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경제발전을 위해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는 하던 우리나라 가장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뜨겁게 끓던 그 어려운 시대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과감하게 세상의 모든 곳에서 그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던 사람들, ‘며루치’로 비유된 이들의 말없는 함성과 절규를 시인은 “비명을 쳤겠지. 뜨겁다고,/ 숨차다고, 아프다고, 어둡다고.”라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IMF라든가, 조기퇴직이라든가, 명예퇴직이라든가 하는 말들처럼 우리들의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것은 없지요. 그 모든 난관과 어려움을 딛고 가정의 행복과 평화, 자식들의 성장과 교육 등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대부분의 가장들은 그 모든 것들이 성취되고 난 후에는 ‘국물만 내면 끝장’인 멸치처럼, ‘볼썽도 없고 맛도 없는’ 멸치처럼, 집안에서도 사회에서도 구석으로 내몰리게 되지요. “이제는 쓸려나간 며루치를 기억하자./ 남해의 연한 물살, 싱싱하게 헤엄치던 은빛 비늘의 젊은 며루치떼를 생각하자.”라는 마지막 구절을 되짚어 보면서 이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랍니다.(윤호병 빈첸시오. 문학평론가.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