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천국은

2004. 11. 4. 오전 10:25:16

글자

 

 

영혼의 속삭임

 

나의 천국은

유안진(글라라)

나의 천국은

밤하늘일 게다. 바윗돌 속일 게다. 블랙홀일 게다

까마득한 도착지는 깜깜함뿐일 게다

나의 천국은

너무너무 외로워서 귀신도 못 사는 태평양 한복판, 두발로 용납 못할 방울섬일 게다, 있어

본 적 없어 없는 섬일 게다, 호이야 호이야~목소리만 살면서 울리다가 꾀이다가 나꿔채는

바람의 손일게다, 몇억 광년을 달려오고 있을 어느 별의 조각일 게다, 북극의 극점(極點),

녹아서 사라지고 있는 빙산일 게다

바보 멍청이로 살아온, 나의 빛과 어둠과 추위와 더위와 갈증과 포만과 갈망과 변덕......의,

아흔아홉 가지 모양과 색깔에 안성맞춤인 나의 천국은, 세상의 지식이 못 닿는, 세상에는

한번도 있어본 적 없는 나라, 있는 곳엔 없고 없는 곳에만 있을 게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천국’은 어디라고 생각하는지요? 아마도 하느님과 주님과 성모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있고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고 음악이 흐르는 영원한 생명의 안식처가 바로 천국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러한 천국은「요한묵시록」마지막 부분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 인용된 시에서는 그러한 천국, 우리 모두가 바라는 천국이 아니라 그 반대의 천국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천국이라기보다는 고통과 외로움과 고난으로 일관되는 곳을 시인은 자신이 가야만 할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1연에서는 ‘밤하늘,’ ‘바윗돌 속,’ ‘블랙홀’을 거쳐 최종적으로 도착하게 될 곳은 다름 아닌 ‘깜깜함뿐’이 될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제2연에서 시인은 외로움과 고독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것은 두발을 딛고 설 수도 없는 태평양 한 복판의 ‘방울섬,’ ‘바람의 손,’ ‘별 조각,’ ‘북극점’과 ‘빙산’ 등 위험천만한 곳으로 집약되어 있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호이야 호이야~’ 아무리 소리쳐도 자신의 목소리만 되돌아 올 뿐인 아주 멀고 후미지고 외딴 곳?그런 곳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시인은 자기 자신이 아마도 그런 곳에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왜 그렇게 생각해야만 할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마지막 연에 있습니다. ‘나의 천국’이 ‘아흔아홉 가지 모양과 색깔에 안성맞춤’인 까닭은 바로 ‘바보 멍청이로 살아온, 나의 빛과 어둠과 추위와 더위와 갈증과 포만과 갈망과 변덕’ 때문입니다. 시인이 자신을 ‘바보 멍청이’라고 비하시켜 말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마태복음 6장 21절)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그동안 만족할 줄 모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추구했던 까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갈망과 변덕’은 대부분의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지요. 더 좋은 삶,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집 등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더 좋은 것’을 마다않지만, 정작 우리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마음이지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우리들이 생각하는 ‘천국’이 ‘세상에는 한번도 있어본 적 없는 나라, 있는 곳엔 없고 없는 곳에는 있는’ 그런 나라가 될 것이라고 절규하기 전에,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가야할 ‘천국’이 어디였으면 좋을지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들은 “모든 왕의 왕, 모든 군주의 군주”(요한묵시록 19장 16절)이신 하느님께서 계신 진정한 의미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을 다하여라.”(누가복음 13장 24절)는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이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본다면 조금은 쓸쓸한 늦가을의 정경들이 그렇게 스산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호병 빈첸시오, 문학평론가,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영혼의 속삭임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