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일] 내 이름으로 모인 곳 (마태 18,15-20)

2017. 9. 10. 오전 5: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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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내 이름으로 모인 곳 (마태 18,15-20)


에제키엘 예언자는,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에제 33,7-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7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할 때,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9 그러나 네가 그에게 자기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였는데도, 그가 자기 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고, 너는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으므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한다. (로마 13,8-10)
형제 여러분,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9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그를 타이르라고 하시며,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신다. (마태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연중 제23주일 제1독서 (에제33,7~9)

"그러나 네가 그에게 자기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였는데도,

 그가 자기 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고,

 너는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9)

 

에제키엘서 33장 8절에서는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 경우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제시되었다.

 

반면에 33장 9절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악인이

이것을 듣지 않았을 경우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제시한다.

 

예언자가 악인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는데,

악인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생명을 건질 수도 있고, 회개하지 아니하여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바로 여기에 예언자가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목숨을 걸고

악인들을 향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앞선 33장 8절과 9절의 결론예언자가 메시지를 선포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아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선포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죽지 않을 것인가에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33장 7~9절에서 파수꾼의 비유에 대한 해석

에제키엘에게 주시면서 예언자의 악인에 대한 회개의 메시지 선포 사명에 대해

강조하시는 것은, 다만 메시지를 전하지 않으면 예언자의 목숨을 취하시겠다는

위협을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없으면, 악인은 회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므로, 예언자는 반드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전해서

악인이라도 회개할 기회를 갖게 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이라도 그가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시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그 사명을  다하는 것이 이 악한 세상에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23주일 복음(마태18,15~20)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19~20)

 

마태오 복음 18장 19절에 대해서 한글 새 성경은 번역하지 않았지만,

원문에는 '만일'로 번역될 수 있는 '에안'(ean; if)이 문장 서두에 기록되어 있어서

마음을 모아 합심하여 청하는 상황이 충족되기만 하면, 청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무엇이든'에 해당하는 '페리 판토스 프라그마토스'(peri pantos pragmatos;

about anything)에서 '프라그마토스'(pragmatos)의 원형 '프라그마'(pragma)

'일', '사건', '과업'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소송', '논쟁'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음을 모아'에 해당하는 '쉼포네소신'(symphonesosin; agree)

원형 '쉼포네오'(symphoneo)는 영어에서 '교향곡'이라는 뜻을 지니는

'심포니'(symphony)의 어원을 이루는 말로서, 서로 뜻을 같이 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18장 19절'프라그마토스'(pragmatos)는 본 단락이 교회의 징계 권한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징계 권한'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쉼포네오'(symphoneo)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징계 권한이 개인적이거나 주관적이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두 사람 이상의 합치된 의견과

한 마음으로 청하는 기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전제될 때, 비로소 교회의 징계 권한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권위있게 시행될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0)

 

본절은 교회의 구심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야 함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구절이다.

 

여기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에 해당하는 '뒤오 에 트레이스'(dyo e treis;

two or three)소수의 사람을 가리키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모이다'는 의미로 번역된 '쉬네그메노이'(synegmenoi; come together;

gather together)의 원형 '쉬나고'(synago)'~와 함께'라는 뜻의

전치사 '쉰'(syn)'오다', '가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아고'(ago)가

결합된 합성어로서 '함께 모이다'는 의미가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배우고 하느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이는 집회소

'회당'을 가리키는 '쉬나고게'(synagoge)가 바로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니까 '쉬나고'(synago)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모이는 지향점은 바로 '예수의 이름'이다.

 

'내 이름으로'로 번역된 '에이스 토 에몬 오노마'(eis to emon onoma;

in my name)에서 '~안으로'(into)라는 뜻의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

'에이스'(eis)가 쓰였는데, 이 '에이스'(eis)가 때로는 위치를 나타내는

전치사 '엔'(en; in)의 대용어로도 쓰이는데, 여기서는 방향과 위치의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믿는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 안으로 함께 나아가야 하고,

예수님의 이름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 18장 20절교회의 지향점과 구심점이

예수님의 이름임을 잘 보여준다.

 

한편,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에서 '나도 ~있다'에 해당하는

'에이미'(eimi; I am)는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희랍어의 현재형이다.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예수님께서도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 일반적인 진리나 습관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쓰인 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겠다는 뜻이다.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주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의 말씀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마태28,20).

 

예수님께서는 이 약속에 따라 오늘날에도 믿는 이들 가운데

영으로 현존하셔서 그들과 더불어 인격적으로 친교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 구절이 교회가 시행하는 '징계 권한'의 문맥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믿는 이들의 일치된 뜻에 의한 교회의 '징계 권한'이

하느님의 인준을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오늘의 묵상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은 내 것을 다 주고도 못 준 것이 없는지 둘러보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율법이 내가 지닌 소유와 집착, 이기심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야 하는 의무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라면,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율법의 정신을 완성한 것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가르칩니다.
사랑은 자비와 선의로 채워지지만, 그렇다고 악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불의와 거짓 앞에서 사랑은 침묵하고 인내하기에 앞서 올바른 관계를 세우기 위한 정의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웃과의 사랑을 관계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가르치십니다. 죄란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기에 그를 꾸짖는 행위도 사랑에 속합니다. 혹시라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상대의 진의를 왜곡할 수 있기에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은 다른 두세 사람의 증인 앞에서 진실을 고백하도록 가르치십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기기만과 편견에 빠진 사람까지 끌어안으라고 예수님께서는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행위가 자칫 불의를 용인하고, 거짓을 인내하는 위선적인 사랑으로 변질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편 저자는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고 강조합니다. 무뎌진 마음으로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용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악에 맞서 선의 승리를 선포하고, 거짓과 위선에 맞서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사회적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세상의 악의 연대가 강해 보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신앙 공동체의 영의 연대가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우리의 예언자 직무를 잊지 맙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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