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일] 가라지 비유 (마태 13,24-43)

2017. 7. 23. 오전 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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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일] 가라지 비유 (마태 13,24-43)


지혜서의 저자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신다고 고백한다. (지혜 12,13.16-19)
13 만물을 돌보시는 당신 말고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는 불의하게 심판하지 않으셨음을 증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16 당신의 힘이 정의의 원천입니다. 당신께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을 지니고 계시므로 만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17 정녕 당신의 완전한 권능이 불신을 받을 때에만 당신께서는 힘을 드러내시고, 그것을 아는 이들에게는 오만한 자세를 질책하십니다.
18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당신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19 당신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의인은 인자해야 함을 당신 백성에게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께서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신다고 한다. ( 로마 8,26-27)
형제 여러분, 26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27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씨를 뿌리는 사람, 겨자씨, 누룩과 같다며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는 밭의 가라지 비유를 설명해 주신다. (마태 13,24-43)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24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31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33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34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35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36 그 뒤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opus dei[7,23] 연중 제16주일


 연중 제16주일 제1독서(지혜12,13.16-19)

오늘 지혜서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연중 제16주일 복음 말씀이 밀과 가라지의 비유, 겨자시의 비유, 누룩의 비유이기 때문인 것 같다. 

겨자씨나 누룩이 처음에는 작지만 나중에는 크게 성장되는 것처럼, 하늘 나라도 반드시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렇게 자라나게 된다는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작은 것이 크게 되는 이런 비유를  <대조의 비유>라 한다. 

그리고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처럼, 처음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시고 심판하지 않으시지만, 추수때 열매를 맺은 밀과 아무 열매도 없이 하늘로 치솟는 가라지처럼, 확연히 구분될 때는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시고 의인을 구원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1독서에서 <만물을 돌보시는 당신; 당신의 힘; 정의의 원천;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 당신의 완전한 권능; 힘; 하느님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 당신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하실 능력>처럼 <힘>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지혜서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고 칠십인역(lxx; septuaginta; 희랍어로 쓰여진 구약 성경)에만 나오므로, 제2경전(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분류한다. 제 2경전에서 처음으로 그리스어(희랍어; 헬라어)로 저작된 책은 지혜서와 마카베오 하권뿐이다. 

지혜서의 저작 연대는 b.c. 50~3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다인이 쓴 것으로 보인다. 

유다교 사상가 필론에 의하면, a.d.1세기 초에 이집트에는 100만명이 넘는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좀 과장된 숫자이겠지만, 이집트의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유다 백성들; 각 나라에 흩어져 사는 유다 교포들이 사는 곳을 말함)유다인들이 상당히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지혜서는 철학, 윤리, 신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기된 갖가지 주제들을 다룬 소품 모음집이다. 저자의 집필 목적은 이집트의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이 헬레니즘 문화가 압도하는 대도시 알렉산드리아와 그 부근에 살면서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유다교의 정통교리를 다른 문화에 어떻게 적용하고 발전시킬 것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토착화(inculturation)작업을 한다.   

지혜서 저자는 유다교 전통을 거의 모르는 그리스인들 저자 자신처럼 히브리어를  제대로 알지 못한채 헬레니즘에 익숙한 유다인들에게 그리스 문화와 사상과 비교하여 유다교 관습과 사상이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헬레니즘에서 기원한 우상 숭배와 물질주의적 인생관에 맞서 유다교의 전통적 믿음과 교리를 수호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깨워 준다.  

 지혜서는 크게 세 부분, 종말의 숙고(1~5장), 지혜의 찬가(6~9장), 역사의 숙고(10~19장)로 나눈다.  첫째, 종말의 숙고(1~5장)에서 저자는 하느님의 전지하심을 강조한다. 둘째, 지혜의 찬가(6~9장)에서 임금과 권력자들에게 하는 권고, 7장 22~23절에 나오는  지혜의 정신에 담긴 정신의 특성 21가지(완전을 뜻하는 7의 3배수=매우 완전한 숫자), 지혜를 청하는 기도(9장)등이 나온다.

마지막 세째 부분(10~19장)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반성이다. 10장에서는 원조들과 성조들의 이야기, 10장 15절~11장 20절에는 이집트 탈출 사건,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높이 기리는 찬미가(11,26; 구원의 보편주의), 가나안 정복(12장), 자연.우상.동물숭배의 어리석음(13~15장),  이집트 탈출 사건과 광야에서의 시련(16~19장)을 두서없이 열거한다. 

오늘 1독서는 마지막 세째부분의 <가나안 정복>에 관한 말씀이다. 하느님은 가나안 민족들을 천천히 징벌하시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저들은 끝내 그 뜻을 저버리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가나안 민족들이 벌을 받아 멸망한 이유는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생명을 거슬러 온갖 불경한 짓들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자애로운 분이시지만, 잘못을 그냥 보아 넘기지는 않으시는 공정한 분이시다는 것이다.

가나안인들이 벌을 받는 것은 그들이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지혜서 12장 3~6절에서 섬뜩하리만큼 상세히 묘사된다. 

가나안 땅에 "하느님의 자녀들인 훌륭한 이주민을 받게 하신 것"은 하느님의 계획이었다(지혜12,7). 그러나 하느님은 가나안인들을 한꺼번에 모두 파멸하시는 대신,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먼저 말벌들을 보내셨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런 벌로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느님이 가나안인들에게 보내신 경고는 하느님의 주권과 자비를 드러낸다(지혜12,12~18). 하느님이 이 민족들을 창조하셨고 온 백성을 돌보시기 때문에 아무도 하느님을 비난할 수 없다. 자기들의 힘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달리(지혜2,11) 하느님의 힘은 '정의의 원천'(지혜12,16)이다. 하느님은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신다(지혜12,18). 

하느님의 행위 방식은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지혜12,19-22). 하느님의 행위 방식은 의인이 인자해야 한다는 것과 하느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우리는 하느님의 선함과 자비를 기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동시에 하느님의 행위 방식은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들을 설명해 준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일시적으로 가르치거나 단련시키지만, 이스라엘의 원수들에게는 훨씬 더 엄한 벌을 내리신다(지혜12,22). 

바로 이러한 내용이 오늘 복음의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 나오는 세상 종말의 심판 때 의인과 악인이 달라지는 운명의 말씀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른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이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마태 13,40-43)  

지혜서에는 특히 두 가지 신학적 주제가 돋보이는데, <의인들의 불사불멸>과 <지혜의 의인화>이다. 지혜서의 저자는 전통적 인과응보와 상선벌악의 원리를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의롭게 살고도 현세에서 보상을 받지 못한 의인들은 비록 장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더라도, 하느님 마음에 들어 죽은 다음에 하느님 곁에서 평화를 누리며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다. 지혜서 저자가 희망하는 것은 죽은 의인의 부활이 아니라 의로운 영혼의 불사불멸이다.

한편, 지혜서에 묘사된 <인격적 지혜>는 사람 안에 들어와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느님과 일치하게 만드는 그리스도교의 <은총>개념과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가운데 오신 요한 복음의 <육화된 말씀>과도 상통한다.

<인격적 지혜>를 성령이나 성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성급한 시도이지만, 어쨌든 신약성경의 삼위일체 신학을 준비하고 있다. 


2014년 7월 20일 가해 연중 제16주일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 종들이 ‘...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24-30)”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를 직접 설명해 주셨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마태 13,37-39).”

여기서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라는 말씀에는, ‘죄’, 또는 ‘죄인들’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는

암시가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모두 ‘좋은 씨’로, 즉 착한 사람들로 만드셨습니다.

그랬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죄를 지어서 죄인들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죄가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5,19-20).

악마가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경우에도,

죄에 대한 책임은 죄를 지은 사람 자신에게 있습니다.

(물론 악마에게는 사람을 유혹한 일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밭에 뿌려진 ‘가라지’는 악마의 유혹을 받아서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처음부터 죄인들로(악인들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라,

원래는 착한 사람들이었는데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악마도 하느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니까,

죄의 근원인 악이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라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악마도 처음부터 악마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원래는 천사였는데, 스스로 타락해서 악마가 된 존재들입니다.)

 

종들이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자고 주인에게 건의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정을 나타냅니다.

악에 물들어 있는 이 세상을 하느님께서 심판해 주시기를 바라는 심정,

또는 이 세상에서 모든 악과 악인들을 제거해버리고 싶은 심정...

그러나 주인은 종말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라는 말에는,

심판은 하느님만의 권한이라는 뜻과

죄인이 회개해서 의인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은 의인이어도 타락해서 죄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함부로 다른 사람을 가라지라고, 즉 죄인이라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자신이 가라지일 수도 있음을 늘 반성해야 합니다.

베드로 2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9).”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2베드 3,15).”

 

그런데 내버려 두라는 말은, 이 세상의 악을 내버려 두라는 뜻은 아닙니다.

악과 죄를 막고, 선과 정의를 실현시켜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모든 신앙인의 임무입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마태 13,31-32).”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마태 13,33).”

 

‘겨자씨의 비유’는 하늘나라의 ‘외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비유이고,

‘누룩의 비유’는 ‘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 비유입니다.

겨자씨의 아주 작은 모습만 보고, 그것을 밭에 뿌리기를 포기하는 것은,

세속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입니다.

반대로, 겨자씨가 크게 자라게 될 것을 믿고 밭에 뿌리는 것은,

신앙인의 믿음과 실천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작은 선행 한 번이, 또 짧은 기도 한 번이

겨자씨처럼 언젠가는 큰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큰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간에 우리의 실천과 노력들은

누룩이 밀가루를 부풀게 하듯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작은 겨자씨가 나중에 큰 나무로 자란다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는,

또 누룩이 밀가루를 부풀게 한다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믿는다면 그 씨를 밭에 심어야 하고, 누룩을 밀가루에 넣어야 합니다.

행동으로(삶으로) 실천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4-47).”

여기서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는 말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변화된 신앙인들의 삶이

누룩처럼 이스라엘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는 뜻입니다.)

그 호감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입교 영세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말로 하는 복음 선포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이처럼 ‘온 삶으로’ 증언하는 복음 선포가 더욱 중요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비유를 보면 종들은 밀밭에 난 가라지를 뽑아 버리겠다고 하고,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을지 모르니 수확 때까지 두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에서 종과 주인의 시각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종들은 가라지가 밀을 해칠까 걱정되어 가라지를 뽑으려 하였지요. 반면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 밀이 상할까 걱정되어 뽑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듯이 우리 사회도 선인과 악인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가라지는 어느 특정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 누구에게나 밀과 같은 요소가 있듯이, 가라지 같은 요소도 있지 않습니까? 가라지는 자신의 단점이나 부정적인 모습을 뜻합니다. 그런 가라지를 예수님께서는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결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라지가 마치 가시처럼 되어 자신을 찌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비난할 대상을 찾게 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점이 있을수록 자신과 화해해야 합니다. 단점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숨어 있는 자신의 가라지를 찾아내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나의 부족한 점을 인정함으로써 주님의 도움을 더욱 청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내 안에 심어진 가라지를 모두 뽑아 주실 것입니다. 가라지를 인정하고, 치유해 나가며, 더불어 선하고 좋은 면을 발견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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