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마태 13,1-23)

2017. 7. 16. 오후 5: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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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마태 13,1-23)


이사야 예언자는, 비나 눈이 땅을 적시어 싹이 돋아나게 하듯, 주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뜻하는 바를 이룬다고 한다. (이사야 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바오로 사도는,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고, 우리 자신도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탄식하고 있다고 한다. ( 로마 8,18-23)
형제 여러분,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풀이해 주신다. (마태 13,1-23)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18 그러니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주간 성경공부 / 이사야 19-27장


 연중 제15주일 제1독서(이사55,10~11)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10~11)  

오늘 독서 이사야서 55장 10~11절의 말씀은 이사야서 55장 6~7절의 말씀이 천지가 개벽해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하느님께서 정하신 자연법칙을 예로 들면서 강조하고 있다.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 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6~7)

이사야서 55장 6~7절은 하느님을 만날 기회가 영원무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질 바로 그 때에 회개하여 주님을 찾으라고 촉구하는 내용인데, 이 말씀에 따라 죄인이 돌아올 때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시겠다고 하시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는 땅에서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않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 이러한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한 번 주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은 반드시 그 목적한 바를 성취하고야 만다.  

하느님께서는 한 번 뱉은 말씀이 성취되기도 전에 그것을 다시 주워 담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민수기 23장 19절에서 발라암의 신탁을 통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어서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아니어서 생각을 바꾸지 않으신다. 그러니 말씀만 하시고 실천하지 않으실리 있으랴? 이야기만 하시고 실행하지 않으실리 있으랴?" 

비가 내리면 그중에서 수증기로 증발해 버리는 양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한 번 내린 비는 반드시 땅을 적시게 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땅은 생산력을 갖게 되어 있다. 

본문의 진정한 의도는 하느님께서 목적하시는 바는 결코 헛되이 끝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데 있으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루어낸다는 것을 자연 법칙을 통해 비유하는 데 있다. 

적절한 시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은 땅을 촉촉히 적셔서 싹이 돋게 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며 인간에게 양식을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인간 영혼을 살리며 삶을 풍성하게하는 영적 양식이 된다.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인간 영혼을 살리며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의 삶은 풍성해지게 마련이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하느님께서는 완벽한 판단력과 완전한 지식과 총체적 계획과 영원한 경륜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이 헛되이 사라지거나 허망한 것으로 끝맺는 일은 결코 없다.  하느님의 말씀은 한 번 입에서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계획한 목적을 달성하고야 마는것이다.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하느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씀이 헛되이 그냥 돌아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것은 그 말씀이 하느님의 기뻐하시는 뜻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내가 뜻하는 바' 해당하는 '아셰르 하파츠티'(asher hapatsthi)는 문자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 혹은 '내가 기뻐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은 다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며 생명을 구원하는 일과 관련된다는 사실인데, 이것은 당신의 의롭고 선하시고 진실하신 속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분의 전지 전능하심, 절대 주권에 근거해서 반드시 성취되며, 궁극적으로 그 모든 일들은 그분의 성품에 부합된 것으로서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축복이 되고 아름다운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은 그의 마음 속에서 계획하신 뜻을 표현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자 이시기 때문에 그 말씀이 그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고 운동력과 생명력이 있으며 재창조의 능력이요 치유하는 광선이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다. 

제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영육의 구원을 위해 절대적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매일 말씀을 읽고 곱씹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살아서 참으로 말씀이 주는 기쁨과 평화, 행복과 자유를 누리자. 

그럴때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의미가 있게 되고, 가치롭게 된다.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4장 4절, 8절, 12절에 '성경에 기독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시며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세번 다 구약 성경의 말씀으로 물리치신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번역된 '게그라프타이'(gegraptai; It is written)는 원형 '그라포'(grapho)의 완료 수동태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에 이루어진 동작이 현재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능을 가진다. 

따라서 과거에 기록되어 이미 완성된 구약 성경이 그 말씀이 기록된 그 시대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계속하여 효력을 지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수동태가 된 것은 그 말씀이 사람이 쓴 문자로 남겨져 있음을 나타낸다. 

성경은 비록 외형적으로 인간 저자나 필사자에 의해 기록된 것이지만, 그 배후에 특별 계시의 주체가 되시는 하느님의 계시이므로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이 되는 것이다.




오늘 독서 이사야서 55장 10~11절의 말씀은 55장 6~7절의 말씀이 천지가 개벽해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하느님께서 정하신 자연법칙을 예로 들면서 강조하고 있다.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 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6~7) 

이사야서 55장 6~7절은 하느님을 만날 기회가 영원무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질 바로 그 때에 회개하여 주님을 찾으라고 촉구하는 내용이며, 이 말씀에 따라 죄인이 돌아올 때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시겠다고 하시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는 땅에서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않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

이러한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한 번 주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은 반드시 그 목적한 바를 성취하고야 만다. 하느님께서는 한 번 뱉은 말씀이 성취되기도 전에 그것을 다시 주워 담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민수기 23장 19절에서 발라암의 신탁을 통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어서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아니어서 생각을 바꾸지 않으신다.  그러니 말씀만 하시고 실천하지 않으실리 있으랴?  이야기만 하시고 실행하지 않으실리 있으랴?" 

비가 내리면 그 중에서 수증기로 증발해 버리는 양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한 번 내린 비는 반드시 땅을 적시게 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땅은 생산력을 갖게 되어 있다. 

본문의 진정한 의도는 하느님께서 목적하시는 바는 결코 헛되이 끝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데 있으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루어낸다는 것을 자연 법칙을 통해 비유하는 데 있다. 

적절한 시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은 땅을 촉촉히 적셔서 싹이 돋게 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며 인간에게 양식을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인간 영혼을 살리며 삶을 풍성하게하는 영적 양식이 된다.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인간 영혼을 살리며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의 삶은 풍성해지게 마련이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하느님께서는 완벽한 판단력과 완전한 지식과 총체적 계획과 영원한 경륜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이 헛되이 사라지거나 허망한 것으로 끝맺는 일은 결코 없다. 하느님의 말씀은 한 번 입에서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계획한 목적을 달성하고야 마는것이다.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하느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씀이 헛되이 그냥 돌아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것은 그 말씀이 하느님의 기뻐하시는 뜻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내가 뜻하는 바' 해당하는 '아셰르 하파츠티'(asher hapatsthi)문자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 혹은 '내가 기뻐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은 다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며 생명을 구원하는 일과 관련된다는 사실인데, 이것은 당신의 의롭고 선하시고 진실하신 속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분의 전지 전능하심, 절대 주권에 근거해서 반드시 성취되며, 궁극적으로 그 모든 일들은 그분의 성품에 부합된 것으로서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축복이 되고 아름다운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은 그의 마음 속에서 계획하신 뜻을 표현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그 말씀이 그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고 운동력과 생명력이 있으며 재창조의 능력이요 치유하는 광선이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다. 

제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영육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절대적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매일 말씀을 읽고 곱씹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살아서 참으로 말씀이 주는 기쁨과 평화, 행복과 자유를 누리자. 

그럴때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의미가 있게 되고 가치롭게 된다.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4장 4절, 8절, 12절에 "성경에 기독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시며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세번 다 구약 성경의 말씀으로 물리치신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번역된 '게그라프타이'(gegraptai; It is written)는 원형 '그라포'(grapho)의 완료 수동태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에 이루어진 동작이 현재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능을 가진다.

따라서 과거에 기록되어 이미 완성된 구약 성경의 그 말씀이 기록된 그 시대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계속하여 효력을 지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수동태가 된 것은 그 말씀이 사람이 쓴 문자로 남겨져 있음을 나타낸다. 

성경은 비록 외형적으로 인간 저자나 필사자에 의해 기록된 것이지만, 그 배후에 특별 계시의 주체가 되시는 하느님의 계시이므로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이 되는 것이다.


 7월 13일 연중 제15주일 (마태13,1-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연중 제15주일 복음(마태13,1~9)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았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3ㄴ~8)  

마태오 복음 13장 1~52절'하느님 나라에 관한 7가지 비유'의 말씀이며, 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스런 성격을 매우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등을 말씀하신 이유 중에 하나는, 말씀의 씨를 뿌려도 바리사인들과 같이 완고하고 사악한 무리들의 마음말씀을 거부함으로인해 결실을 하지 못하는 밭인 반면에, 말씀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듣는 제자들과 같은 무리들의 마음결실을 맺는 밭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비유'로 번역된 '파라볼라이스'(parabolais)의 원형 '파라볼레'(parabole)원래 어떤 것을 다른 것의 곁에 놓음으로써 비교한다는 뜻을 지닌 명사이다. 

'파라볼레'심오한 사상이나 어려운 이야기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실례에 빗대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야기 진행 방법이다. 

'씨뿌리는 사람'에 해당하는 '호 스페이론'(ho speiron; a sower)에서 '씨뿌리는'으로 번역된 '스페이론'(speiron)'씨를 뿌리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페이로'(speiro)의 현재분사로서, 앞에 있는 관사 '호'(ho)와 함께 분사의 독립적 용법으로 쓰였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자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씨뿌리는 사람' (파종하는 자) 즉 농부(a farmer)를 가리킨다. 

농경사회에서 밭에 파종하는 자의 모습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인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농경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복음 전파와 그것의 결실에 관한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농부복음을 전하는 자를 가리키고, 씨 뿌리는 네가지 밭복음을 전해 받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장하는 네가지 밭은 별개의 각각의 밭이 아니라 한 밭에 있는 다양한 땅의 상태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원래 팔레스티나에서는 밭을 경작하기 전에 씨 뿌리는 풍습이 있었으며, 씨가 떨어지는 밭은 대부분 돌이나 가시도 섞여 있었고, 잡초도 어느 정도 나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자신이 뿌리는 씨가 어떤 땅에 떨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씨앗을 이곳 저곳에 뿌린다. 그러던 중 씨앗의 일부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길에'에 해당하는 '파라 텐 호돈'(para ten hodon; along the path)인데, 씨앗의 일부가 밭 사이의 길 내지는 밭을 가로지르는 딱딱한 길을 따라 뿌려진다. 

말하자면, 여기서 '길'이란 밭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이나 농부들이 밭일을 하기 위해 자주 걸으면서 다져져 길과 같이 된 땅을 말한다. 그래서 밭 사이에 나 있는 다소 딱딱한 좁은 길에 떨어진 씨앗땅을 뚫고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의 기대와는 달리 결실은 커녕, 뿌리 한 번 제대로 내려보지 못하고, 그 주위에 날아다니고 있는 '새들'('타 페테이나'; ta peteina; the birds) 눈에 띄게 되고, 결국 그들의 먹이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이 새들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버리는 악한 자를 상징한다(마태13,19). 또한 '흙이 많지 않은 돌밭''흙으로 얇게 덮인 바위가 많은 밭'이라는 말인데, 밖으로 싹이 돋지만, 곧바로 무섭게 뜨거운 태양이 솟아올라 그 열기와 빛으로 말미암아 메말라 죽게 된다.이 비유에서 '솟아오르는 해''환난이나 박해'로 상징되고 있다(마태13,21). 

우리의 내면이 마치 돌밭과 같이 깨어지지 않는 완고한 자아로 가득 차 있으면, '환난이나 박해'가 신앙을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 자체를 소멸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번째로 '가시덤불'로 번역된 '아칸타스'(akanthas; thorns) '가시''가시덤불'을 뜻하는 명사 '아칸타'(akantha)의 목적격 복수형으로서 '가시들' 내지 '가시덤불'을 의미한다. 이 '가시덤불'위에 떨어진 씨앗은 그보다 먼저 높이 자라버린 가시에 찔리고, 그 그늘에 막혀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고사(枯死)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의 내면을 기도와 말씀과 성체로 일구고 돌보지 않으면, 우리 마음의 내면은 이미 선점하고 있는 가시와 같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으로 무성해질 것이다(마태13,22). 그래서 그 마음에서 복음의 씨앗은 자라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말게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좋은 땅'에 해당하는 '에피 텐 겐 텐 칼렌'(epi ten gen ten kalen; on good soil; into good ground)에서, '좋은'으로 번역된 '칼렌'(kelen) 원형 '칼로스'(kalos)는 기타 다른 것보다 더 우수하고 좋은 모든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이다. 

이것은 씨앗이 자라기에 '적합하고'(suitable),'쓸모있는'(useful) 땅을 말한다. 이 땅은 위의 세 가지 종류의 땅보다 훨씬 우수하고 좋은 땅으로서, 씨앗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식물 경작에 매우 적합한 땅'을 말한다. 

여기서 '어떤 것'에 해당하는 '호'(ho; some)지시 대명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호스'(hos)의 주격 중성 단수로서, '어떤 것 하나'라는 뜻이다. 

이것은 각각의 씨앗들이 좋은 땅에서 나름대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보여 주며, 또한 씨앗들의 조건이 동일한 땅에 떨어져도, 그 결실의 양 씨앗의 '질'(質)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종합하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씨앗이 아무리 부실해도 열매맺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과 결실의 양은 씨앗의 질에 따라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좋은 땅 만들기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짓는 분들의 정성을 보자.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부지런한 농부는 늦가을부터 다음 해 봄에 쓸 양질의 퇴비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른 봄 그 퇴비를 밭 여기저기에 골고루 던지고 땅을 갈아엎는다.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기름진 토양을 만들어야 병충해에도 강하고 풍성한 결실을 맺을 땅이 될 수 있다. 자연의 땅은 가꾸지 않으면 버려진 땅이 되고 만다. 아무리 좋은 땅도 계속 가꾸고 돌보지 않으면 돌밭이 되고 잡초 우거진 가시덤불 밭도 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의 좋은 씨를 뿌려도 우리가 그 씨를 잘 받아들이지 않고 잘 가꾸지 않으면, 내 마음이 돌밭이나 가시덤불과 같아 풍부한 결실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나쁜 땅도 가꾸고 거름을 주면 비옥한 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잎만 무성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그런 땅이 아니라 온갖 영양소가 풍부해,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비옥한 땅이 되도록 내 마음의 땅을 가꾸어야 한다.

열매를 맺고 안 맺는 것은 그 씨를 가꾸는 자의 자세에 달려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신앙 안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고 싶다면 각자에게 주어진 신앙의 밭을 잘 가꾸어야 하리라. 좋은 땅, 비옥한 땅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매일 신앙의 밭에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내야 한다.

정성을 다해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이기심, 교만한 마음은 갈아엎고, 완고함과 독불장군의 잡초, 세상적인 것에 의지하는 모든 것을 불에 태워버려야 한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우리 각자에게는 좋은 땅이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그래서 백배의 결실을 맺게 되고, 하느님께는 영광을, 이웃에게는 기쁨을 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자랑이 아니라 창피해서 말한다. 요즈음 발에 물집이 생긴다. 군대에서 행군 때 생긴 물집 외에 생긴 적이 없었는데……. 병원에서 환우들을 찾아 발품을 팔아 이리저리 찾아다니다 보니 생긴 것이다. 창피하지만 언제 이렇게 남을 위해 걸어봤을까…….

형식적 삶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말없이 최선을 다해 좋은 땅을 가꾸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자. 그래서 풍부한 결실을 맺고, 서로가 힘이 되고 기쁨을 주는, 좋은 땅이 넘쳐나는 세상을 건설하면 좋겠다. 서로에게 풍성한 좋은 먹거리를 내어 놓을 수 있는 좋은 땅을 만들도록 노력하자.

 인천교구 정장근 레미지오 신부


행함으로써 열매를 맺어야

 -반영억라파엘 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말씀으로 늘 풍요롭게 해 주십니다. 이 시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뿌린 씨가 어떤 것은 길에, 어떤 것은 돌밭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그리고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 농사법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갈릴래아 농부들이 일상적으로 체험하던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밭을 갈고 나서 씨를 뿌리지만 팔레스티나에서는 먼저 씨를 뿌리고 밭을 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 이해를 가지고 보면 알아듣기가 쉬울 것입니다. 비유에서 나오는 씨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밭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네 부류의 다른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사람 중에는 길바닥 같은 딱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는 배움이 많거나 자기의 가치관이 뚜렷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좋은 사람이나 믿으면 되지. 나에게는 얘지 마라’ 하고 무관심하고 외면하는 아주 완고한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딱딱한 흙덩어리로는 도자기를 빚을 수 없습니다. 물렁하게 반죽을 해야만 도자기를 빚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딱딱한 생각을 가지고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부드러운 생각을 가져야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단은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혹 들어도 진지함이 없이 건성으로 듣고 맙니다.

 창세기2장16-17절에 보면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진지함이 없이 건성으로 들었습니다.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일만 생각했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오늘 복음은 길에 떨어진 씨앗을‘새가 와서 먹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13장 19절에는 길에 뿌려진 씨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부려진 것을 빼앗아간다고 했습니다. 악한 자는 누구입니까? 베드로가 예수님께 야단을 맞은 적 있잖아요.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렇다면 언제 악한 사람이 되느냐? 그야말로 사탄이 되느냐?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길바닥 같은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두 번째의 사람은 돌밭과 같은 딱딱한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그 마음에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여 신앙이 오래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이나 시련, 갈등이 있으면 성당을 나오지 않는 사람입니다.‘성당 다니는 사람이 왜 저 모양이야?’하며 상처 받고 쉽게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의지가 약해서 결심을 하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했다가도 자신이 손해를 보고나 고통을 겪게 될 것을 두려워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죠. 신앙생활은 때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돼. 생색도 안 나는 일을! 굿은 일을 ….서운한 소리 들으면 금방 성당 안 나와요, 내가 왜 저런 미운 사람을 바라봐야 하냐고…..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을 바꿔놓죠. 앙갚음을 하는데 얄미울 정도로 사랑으로 앙갚음을 해요.‘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고 더 잘해요.

 세 번째는 가시덤불이 가득한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은 들은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재물이나 세상 것들에 대한 유혹 때문에 신앙의 정신대로 나누지 못하고 쌓아두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주일은 꼬박 꼬박 지키고 자기의 건강이나 취미생활에는 충실하지만 단체활동이나 봉사활동 할 시간을 내지 못합니다. 아직까지는 세상이 중심이 되어서 매사를 자기 위주로 계획하고 시행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맺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걱정이 많아요, 왜?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지배하려니까 쓸데 없는 데 머리를 많이 써야 합니다. 가시덤불의 특징은 금방 자라나는 겁니다. 뽑아도 뽑아도 금방 큽니다. 그래서 정말 정신 차려야 합니다. 소유, 지배, 권력, 명예욕은 뽑아도 뽑아도 쑥쑥자라요.

 네 번째의 부류의 사람은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을 실천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자 여러분은 어느 땅에 속하는 것 같습니까?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예, 좋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좋은 땅 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대로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영, 숨을 불어 넣어주셨는데 나쁜 땅이 어디 있어요, 다 좋은 땅인데 가꾸지 않는 것이 문제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씨앗을 주시는 겁니다. 열매를 직접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는 우리가 가꾸어야 하는 거죠.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이 어우러져서 수확하게 되는 겁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열매는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말씀을 듣고도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4,12) 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비와 눈이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하고 싹이 돋게 하듯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이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55,10-11) 반드시 뜻하는 바를 이뤄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라.” 손이 오그라든 이에게 “네 손을 펴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시며 죄 많은 여인에게 ‘네 죄를 묻지 않겠다.’하시며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하자 제자들이 따랐습니다. 그야말로 주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요, 치유의 말씀이고 창조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농부는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긴 여름동안 여러 번 김을 매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서 가을의 추수를 기대합니다. 열매를 거둘 때에는 한 없는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인생이라는 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두게 됩니다. 많이 심고 잘 가꾸는 이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고 가꾸지 않는 사람은 적게 거두며 아무 것도 심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거두지 못하게 되는 법입니다.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였습니다.

 밥을 먹지 않는데 배부를 수 있습니까? 공부를 안 하는데 성적이 좋아집니까? 우리는 심지도 않고 가꾸지도 않고 거두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노력하지 않고 열매를 기다리고, 노력하지 않고 행복해 지려 한다면 뻔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 내 마음의 밭을 제대로 가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돌밭, 가시덤불의 상태에서 듣기 때문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부드럽고 우리의 마음은 단단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자주 듣게 되면, 마음이 열려 하느님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교부 푀멘)

 주님께서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13,9)고 하셨습니다. 귀 있는 사람이란 ‘말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 경청하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모두가 귀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숙달된 자동차 정비사는 차의 소리만 들어도 어디에 고장이 있는가를 알아냅니다. 훌륭한 지휘자는 수많은 악기 소리 중에서도 잘못된 음을 금방 잡아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이 있었을까 미루어 짐작합니다.

  우리의 귀는 어디에 훈련되어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영어, 수학, 과학에 관한 말은 잘 알아듣는데 하느님께 관한 말씀에는 문맹인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눈이 밝으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에는 어두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듣지 않아도 될 것들은 얼마나 잘 듣고 또 많이 아는 줄 몰라요, 연예인 이름을 줄줄 외우고 그의 경력, 활동..등등, 언제 무엇을 했는지 까지스포츠 신문, 잡지는 꿰차고 앉아 있으면서도 성경말씀에는 아주 강통인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배움이 많지 않은 분인데도 성경 말씀을 장, 절까지 외우고 그 뜻을 잘 알아듣는 분도 계십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 귀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느님 말씀을 듣고 또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신부는 부제 서품식에서 복음서를 수여 받는데 그때 주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고, 읽는 바를 믿으며, 믿는 바를 가르치고,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말씀의 씨앗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고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믿고 가르치고 실행함으로써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러분이 귀 있는 사람이 되어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시길 바랍니다.

 아시죠?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가끔 익사하는 오리가 있답니다. 오리는 날개 바로 밑에서 특별한 방수기름이 분비되는데 이것을 온 몸에 발라야 물에 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오리는 게을러서 이 일을 하지 않아 물속에 들어갔다가 깃털이 물에 빨려 들어가 가라앉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은혜가 주어져도 받아들이고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이지요. 예수님 당시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대체로 두 가지 방법으로 씨를 뿌렸다고 합니다.
첫째는 농부가 직접 밭에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또한, 노새를 이용해 씨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씨앗이 담긴 자루를 노새의 등에 얹고, 그 자루 한 귀퉁이를 조금 찢어 구멍을 냅니다. 그러면 노새가 밭을 걸어가는 동안 씨가 저절로 자루 속에서 흘러나와, 밭에 뿌려지게 되지요.
따라서 씨앗이 떨어진 곳에 따라 결실이 다르듯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따라 말씀이 맺는 열매는 천차만별이라 하겠습니다.
먼저 길에 떨어진 씨앗은 뿌리를 내릴 수 없지요. 따라서 길과 같은 마음은 편견이나 선입관을 갖고 남을 대하는 이들이라 하겠습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은 쉽게 달궈졌다가 쉽게 식는 마음입니다.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엇을 계획한 뒤, 어떤 위기가 찾아오면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열정을 다해 하느님의 길을 걷다가도 시련이 닥치면 이내 하느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은 세상 여러 일에 너무 많은 관심을 두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실천하는 신앙인을 뜻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늘 마음을 여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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