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일] 반석 위에 내 교회 (마태오 16,13-20)

2017. 8. 26. 오후 6: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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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1주일] 반석 위에 내 교회 (마태오 16,13-20)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궁궐의 시종장 세브나를 내쫓으시고 힐키야의 아들 엘야킴에게 그의 권력을 넘겨주시리라고 한다. (이사야 22,19-23)
주님께서 궁궐의 시종장 세브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나는 너를 네 자리에서 내쫓고, 너를 네 관직에서 끌어내리리라.
2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나는 힐키야의 아들인 나의 종 엘야킴을 불러, 21 그에게 너의 관복을 입히고, 그에게 너의 띠를 매어 주며, 그의 손에 너의 권력을 넘겨주리라. 그러면 그는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집안의 아버지가 되리라.
22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23 나는 그를 말뚝처럼 단단한 곳에 박으리니, 그는 자기 집안에 영광의 왕좌가 되리라.”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다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간다고 한다. (로마 11,33-36)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고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신다. (마태오 16,13-20)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연중 제21주일 제1독서(이사22,19~23)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22)

주님께서 엘야킴에게 히즈키야 왕실의 궁내 대신이라는 최고 관직을 주시되, 그 권력이 막강하여 아무도 거기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실 거라는 예언이다.  

여기서 '다윗 집안'에 해당하는 '뻬트 다위드'(beth Dawid)는 히즈키야 왕실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히즈키야 왕실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다윗의 정통성은 정치적 의미를 뛰어넘어 공동체의 신앙적 정체성에까지 연루된 것이었다. 

다윗은 주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 사회를 일으킨 임금이었으며, 당시 모든 임금들이 따라야 할 임금들의 표준이었다(1열왕15,11; 2열왕14,3; 18,3;22,2). 

그리고 '열쇠'에 해당하는 '마프테아흐'(maphtheah; the key of)창고 맡은 장관직의 특별 표시와 신뢰도 모두를 함축하는 표현이다. 이 열쇠는 온 국민이 인정하고 신뢰할 만한 정통성있는 권력을 상징한다.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지만, 문자적인 의미에서 관직 수여 형식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님께서 엘야킴에게 다윗 집안의 열쇠를 주시겠다는 것은  유다의 온 백성들이 그를 믿고 따를 수 있는 정치 지도자로 세움을 받게 하시겠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한편, 이사야서 22장 22절의 후반부는 묵시록 3장 7절에서 그리스도께 적용된 구절이다.  여기서 이 예언은 엘야킴의 권세를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그 막강한 권력을 그가 주님의 뜻에 합당한 한도 내에서 행사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포한다. 

이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궁극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권력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사할 것이라는 사실묵시록 3장 7절과의 연관성을 고려해 볼 때, 이 구절의 엘야킴은 궁극적으로 메시아를 예표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엘야킴이 받은 다윗 집안의 열쇠는 본래 궁궐의 시종장 세브나의 손에 쥐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엘야킴이 이를 수여받은 것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 그가 하느님 대전에 신실한 자였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할 만큼 진실하고 신실한 자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하느님께서 스스로를 높이는 자를 물리치시고 당신의 뜻을 받들며 겸손히 섬기는 자를 들어서 높은 자리에 세우시는 분임을 나타낸 것이다.


 연중 제21주일 복음(마태16,13~20)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7~19) 

'시몬'베드로의 히브리식 이름이다. '시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쉬므온'(shimon)듣다'(신명5,23)라는 뜻을 가진 '샤마'(shama)에서 유래하여 '들음'이라는 뜻을 가진다.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빠르'(bar)'요나'(yonah)란 이름이 결합된 형태인 '바르요나', '즉 '요나의 아들'이나 '시몬'이라는 호칭은 모두 히브리적 어원을 가지며, 친밀성과 더불어 베드로의 유대인으로서의 혈통적 신분을 강조한 호칭이다(요한21,15). 

마태오 복음 16장 17절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깨달음이 혈육이 아닌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하신 것과 관련지어 생각할 때, 베드로를 향해 이런 호칭을 사용한 것은 연약한 인간 스스로 이러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너는 행복하다'에 해당하는 '마카리오스 에이'(Makarios ei; Blessed are you)에서 '행복'('마카리오스'; Makarios)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함을 통해 오는 커다란 기쁨과 즐거움을 나타낸다(마태5,3).

또한 '너는 ~있도다'에 해당하는 '에이'(ei; you are)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에이미'(eimi)동사의 현재 능동태 직설법으로서, 이것은 그 말하는 동작과 시간적으로 일치하는 동작 혹은 사건을 나타낸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 16장 17절은 베드로가 내세의 영광스러운 약속인 종말론적인 축복을 획득하게 되었음을 뜻하기 보다는, 오히려 베드로의 현재의 상태, 즉 예수님에 대해 신앙을 고백한 그 순간에 하늘로부터 오는 말할 수 없는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17절은 예수님께서 16절에서의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사실로 받아들이신 간접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대해서 칭찬을 넘어선 최고의 축복을 선언하시며, 이것을 인정하심으로써 당신 자신이 메시야이시며,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엄숙하게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려 주셨기'에 해당하는 '아페킬륍센'(apekalypsen; has revealed it)의 원형 '아포칼륍토'(apokalypto)'~로 부터'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아포'(apo)'가리우다'(2코린4,3)라는 뜻을 가진 '칼륍토'(kalypto) 결합된 단어로 '드러나다'(루카12,2), '계시되다'(갈라3,23)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알려지지 않은 것을 인간에게 밝히 나타내시는 하느님의 계시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것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에 대해 베드로에게 밝히 알도록 계시해 주셨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비록 베드로가 뛰어난 신앙고백을 했지만, 이것 또한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으로 가능하다는 말인 것이다(에페2,8). 

'살과 피'에 해당하는 '사륵스 카이 하이마'(sarks kai haima; flesh and blood)는 유대인들이 '죽어야만 하는 존재인 인간'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관용적 용어이다(코린15,50; 갈라1,16; 에페6,12). 

따라서 이것은 타락한 본성을 지닌 죄스런 인간 자체의 지식과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으며, 오로지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실 때만이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인간의 통찰이나 이성으로는 예수님을 위대한 예언자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 그분께서 거룩한 하느님의 아드님되시는 신성(神性; 천주성)까지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는 베드로이다'(18) 

'너는 베드로이다'에 해당하는 '쉬 에이 페트로스'(sy ei Petros; you are Peter)에서 '~이다'에 해당하는 '에이'(ei; are)'에이미'(eimi) 동사의 2인칭 단수로써 그 자체로서 '너는 ~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너'에 해당하는 단수 2인칭 대명사 '쉬'(sy)를 추가함으로써 '너는'을 강조하고 있는데, 다시 번역하면 '바로 너는! 베드로이다'이다가 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예언하셨던 말씀이(마르코3,16; 요한1,42)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예수님께서 이전에 시몬을 만나신 후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you shall be called Cephas)라고 예언하신 사실이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통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케파'(kephas)아람어의 희랍어 음역이다. 아람어 '케파'(kepha)'바위'(rock)를 뜻하며, 이것은 희랍어로는  바로 이어 나오는 '페트라'(petra)인데, 베드로의 이름 '페트로스' (Petros)와 어원 및 뜻이 동일하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18)

 '교회'에 해당하는 '엑클레시아'(ekklesia)라는 단어는 4복음서 중에서 마태오 복음만이 이 구절을 포함해서 유일하게 3회를 기록하고 있다(마태18,17에 2회).  

이것은 '~로부터'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에크'(ek)'부르다'(마태2,7)라는 뜻을 가진 '칼레오'(kaleo)가 결합된 단어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 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렇게 어원적 의미로 볼 때는 교회 일차적으로 세상으로부터 하느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 

'엑클레시아'(ekklesia)구약에서 '모임', '집회'(창세49,6), '총회', '공동체'(민수16,33)라는 뜻을 가진 '카할'(qahal)의 70인역(LXX)의 번역이다. 히브리어 '카할'(kahal)은 본래 여러 종류의 '집회들'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가 점차 하느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이와 같은 구약의 히브리어와의 상관성을 고려해 볼 때, 여기서 사용된 '엑클레시아'(ekklesia)는 제도, 조직, 예배 형태 또는 예배의 장소로서의 회당('쉬나고게'; synagoge)에 대한 강조적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것은 예수님에 의해 확립된 공동체가 구약의 이스라엘과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 긴밀하게 연결되다는 것을, 즉 하느님의 공동체가 곧 예수님의 공동체임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 마태오 복음 16장 18절베드로가 예수님의 기대에 부합하는 신앙 고백을 하자, 드디어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의 신분을 밝히시며, 그에 부합되는 그리스도 공동체, 즉 당신 자신의 백성 곧 당신의 교회를 세울 것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반석위에'에 해당하는 '카이 에피 타우테 테 페트라' (kai epi taute te petra; and on this rock)에서 '그리고'(and)라는  말을 가진 등위 접속사 '카이'(kai)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너는 베드로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본문이 상호 긴밀하게 연관된 말씀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개신교는 본절의 '페드로'('페트로스'; Peteos)'반석'('페트라'; petra)완전히 구분하고, '베드로'라는 이름을 가진 '페트라'(petra; '반석')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베드로는 아니지만 베드로와 아주 관계 깊은 그 무엇인, 바로 마태오 복음 16장 16절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는 교회 출발을 이루는 중요한 고백이며, 또한 그의 고백이 만세대에 계속 이어질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가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아 들어야 한다. 이러한 신앙고백도 베드로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마태오 복음 16장 17절에서 예수님게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복음서 전체를 통해서 볼 때에도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라는 것은 보잘 것 없었다. 

사실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물위를 제대로 걷지 못하고 파도에 겁먹고 물에 빠졌으며, 예수님 앞에서 다른 이들은 다 도망가고 배반해도 자신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주님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서  닭기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했다. 

그 이후 성령의 시간인 초대 교회 시기의 박해 때에도 교황직을 지키기 위해 로마를 피했던 장본인이었으니, 그의 신앙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로마를 떠나기 위해 압비아 가도를 가다가 십자가를 지고 다시 로마로 들어오시는 주님을 뵙고는, 자신은 아직도 주님의 뜻을 못알아 듣는 자여서 십자가에 바로 못박혀 죽을 자격도 없으니 거꾸로 못박혀 순교했고, 그의 무덤위에 지금의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지만 말이다. 

사실 희랍어 원문을 보면,  이 구절의 '베드로'(petros)'반석'(petra)은 등위접속사 '그리고'(kai; and)로 이어지는 같은 의미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한 성경에서 사도들을 반석으로 지칭한 사례가 있기에(갈라2,9; 에페2,24; 묵시21,14). 교회가 베드로라는 약한 자의 인격(persona)위에 세워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그를 은총으로 채워 주면서 주님께서 당신의 구원 사업을 계승해 가도록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첫 교황인 베드로로부터, 법적 후계자이며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의 교황께서 교회의 사목권, 교도권, 사제권을 가지고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반석'으로 번역된 '페트라'(petra)가 여성 단수형으로서 남성 단수형인 '베드로'와는 성(性)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에 해당하는 지시 대명사 '타우테'(taute)또한 여성 단수형이라고 주장하고 '이'라는 지시 대명사가 '베드로'가 아닌 '바위'를 뜻하는 '페트라'를 가리키고 있어서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하여, 1517년에 마르틴 루터에 의해 개신교가 생기기 전에는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대해 물어 보고 싶다. 이것은 모(母)교회인 가톨릭을 뛰쳐나온 개신교를 정당화, 합리화 하기 위한 잘못된 해석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교회의 구성원이 타락하고 부패하면, 구성원들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회개하고 성화되면 되는 것이지, 그동안 믿어 온 교리에 칼을 대면 안되는 것이다.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저승'으로 번역된 '하두'(hadu; of Hades; of hell)의 원형 '하데스'(hades)'보다'(요한1,39)라는 뜻을 가진 '에이도'(eido)부정의 뜻을 가진 접두어 '알파'(a)가 결합된 형태로, 문자적으로는 '불가시적인 것'을 말한다. 

이것은 히브리어 '스올'('셰올'; sheol)에 대응되는 단어이다(요나2,3). 히브리어 '스올' '저승', '음부'(陰府)(창세37,35)뿐 아니라 '죽음'(시편89,49) 으로도 번역되었다. 또한 '세력도'에 해당하는 '퓔라이'(pylai; the gates)'문'(루카13,24)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퓔레'(pyle)의 복수형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리고 저승의 문들이 그것에 대항하여 이기지 못하리라'이다. 

여기서 '저승의 문들'사탄과 그 졸개들의 세력을 나타내는 말로 간주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퓔레'(pyle)'성문'(루카7,12), '성전의 아름다운 문'(사도3,10),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사도12,10) 등 특별한 권세가 없는 사람이라면 열고 닫을 수 없는 특별한 문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세우신 것이기에 인간에 비해 큰 힘을 가졌고, 피조물에 불과한 사탄의 권세로서는 도저히 이것을 무너뜨릴 수가 없는 것이다.


연중 제21주일(가해) - 열쇠와 권력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마태 16,15-16).”

 

여기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 라는 뜻입니다.

(또는 “너희는 왜 나의 제자가 되었느냐?”,

또는 “너희는 왜 나를 따르느냐?”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디 말씀으로 바람과 호수를 고요하게 만드셨을 때,

제자들은 놀라면서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태 8,27)” 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때에는 아직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랬는데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태 14,33).” 라고 고백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가지 기적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또 예수님의 말씀들을 들으면서 차츰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깨닫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말은,

예수님을 하느님과 같은 분으로,

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로 믿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아직은 완전한 신앙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삶’으로 실천하는 일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신앙고백을 한 직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말리다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라고 크게 혼났습니다.

야고보 사도와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청했다가(마르 10,37),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마르 10,38)” 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머리로 깨닫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다고 해도 아직은 부족합니다.

‘온 삶으로’ 실천해야 하고, 믿음과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은 그 자신의 능력으로 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믿음도 은총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도 은총에 응답하려고 노력했고, 믿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교회의 반석이 된 일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직접 하신 일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8-19).”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에게

전체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과 임무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반석’은 주춧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전체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을 주시면서도

그의 자리를 ‘가장 높은 자리’가 아니라 주춧돌로 표현하신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스리는 일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서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일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일이라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마태 20,25-28).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항상 교회를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는 베드로 사도의 권한과 임무를 동시에 뜻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해서,

가르치고, 다스리고, 훈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라는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하늘이 베드로 사도의 결정에 종속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뜻은 아니고, 베드로 사도의 권한 행사는

하늘의 일을(예수님의 가르침을) 대행하는(대리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권한을 완전히 넘겨받은 것이 아니라 위임받았습니다.

따라서 결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마태 16,20).”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는(구세주는)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시켜 줄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에 대해서 침묵을 지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수난, 죽음, 부활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믿음과 삶이 완전히 일치되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할 자격이 없다.”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났을 때 흔들리고 넘어지거나(마태 13,21),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 때문에 숨이 막혀서

제대로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생활을 하면서도(마태 13,22),

선교 활동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비웃을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연중제21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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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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