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일] 가나안 여인의 믿음 (마태오 15,21-28)

2017. 8. 19. 오후 7: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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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일]  가나안 여인의 믿음  (마태오 15,21-28)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주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니,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 이사야 56,1.6-7)
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라.
6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나의 계약을 준수하는 모든 이들. 7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그들의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은 나의 제단 위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지리니,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았지만 자비를 입게 될 것이라고 한다. (로마 11,13-15.29-32)
형제 여러분, 13 나는 다른 민족 출신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민족들의 사도이기도 한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14 그것은 내가 내 살붙이들을 시기하게 만들어 그들 가운데에서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할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15 그들이 배척을 받아 세상이 화해를 얻었다면, 그들이 받아들여질 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0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는다는 가나안 부인의 믿음을 보시고 딸을 낫게 해 주신다. (마태오 15,21-28)
그때에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연중 제20주일 제1독서(이사56,1.6~7)

이사야 예언서는 바빌론 유배 훨씬 이전에 활동했던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과 신탁을 반영하는 제 1 이사야서(1~39장), 유배 시대의 예언을 담은 제 2 이사야서(40~55장), 유배후 시대의 예언을 포함하는 제 3 이사야서(56~66장)로 나눈다. 

오늘 독서는 제 3 이사야서로 불리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이다. 여기서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의 상황을 겨냥한다. 

이 대목도 저자 한 사람이 쓴 것 보다는 다양한 역사적 삶의 배경에서 나온 여러 신탁을 한데 모아 놓은 것이다.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몇 가지 공통된 주제가 있는데, 이사야 전체의 중심 주제인 <구원의 보편주의>를 재천명한다고 볼 수 있다. 

1)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당신께 충실한 남은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2)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하느님의 도성인 시온 또는 예루살렘은 참다운 예배의 중심이 될 것이다.

3) 하느님의 심판은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경계를 넘어서 모든 민족에게 미칠 것이다.

4) 주님의 구원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확장된다. 

특히 이사야서 58장 6~7절과 이사야서 61장 1~2절은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님 공생활의 청사진을 그려내는데 결정적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주님의 구원이 하느님의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다 미친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민 이스라엘이 거부하면 이방인에게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방인들도 하느님을 알아 모시며 안식일 규정을 지키리라는 오늘 제1독서의 말씀, 사도 바오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거절하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제2독서 로마서 말씀, 악령들린 딸의 치유를 예수님께로부터 끌어내는 이방인 가나안 여인의 겸손한 믿음을 다루는 마태오 복음은 오늘 주일 말씀의 공통된 주제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묵상할 것인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신 은총과 선물, 특혜와 소명을 소중하고 감사로운 마음과 성실함으로  잘 관리하지 못하면, 그것을 잃어버리게 되며, 은혜를 은혜로 알며 그것을 잘 관리하고 성실하게 보존할, 다른 겸손한 사람에게로 떠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되고 그리스도께서 피로써 구속한 모든 사람들을 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의식이나 열등감과 패배의식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폄하하거나 평가절하해서 구원과 축복에서 자신은 제외된 존재라고 여기며 절망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사야가 선포하는 하느님의 구원의 보편주의와 보편성은 '저 사람은 구원에서 제외된 사람으로 예정되었다'는 그릇된 예정론과 자신만이 구원의 특혜를 받고 있다는 오만한 선민의식을 둘 다 배제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마태오 복음 3장 9절에서 말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마태오복음 11장 12절에서는 하느님 나라는 그것을 차지하고자 힘쓰고 애쓰는 사람의 것임을 선포한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연중 제20주일 복음(마태15,21~28)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3~24)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26~28) 

마귀가 들린 딸을 둔 부인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제는 제자들이 다가와 예수님께 호소한다. 

여기서 '돌려 보내십시오'에 해당하는 '아폴뤼손'(apolyson; send ~away)고쳐주지 않고 쫓아내라는 뜻이 아니라, 빨리 고쳐서 보내 버리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제야' 혹은 '그러나'라는 접속사 '데'(de)로 시작되는 24절에서, 제자들이 고쳐달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거부하시는 예수님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소리지르다'에 해당하는 '크라제이'(krazei; she keeps crying out)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어서 그 여자가 계속해서 소리질렀음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러한 요청을 한 것은 가나안 여자가 불쌍해서가 아니고,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듣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며, 당시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반발로 인해 많이 위축되어서 잠시라도 휴식을 하고 싶은데 방해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24절에서 '집'으로 번역된 '오이쿠'(oiku; of the house) 원형 '오이코스'(oikos)는 일차적으로 '건물'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배타적 의미를 지니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집밖에 있는 자와 집안에 있는 자라는 상징적 의미로 구별하기 위해 '오이코스'(oikos)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잃은'으로 번역된 '아폴롤로타'(apololota; lost)'~로 부터'라는 의미를 지니는 전치사 '아포'(apo)'파괴하다'는 뜻을 지닌 '올뤼미'(ollymi)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파괴하다', '죽이다', '멸망하다'는  뜻이 있는 '아폴뤼미'(apollymi)의 완료 분사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과거에 이미 완료된 동작의 결과가 현재에도 남아 있는 것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로부터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잃은 양이었고, 지금도 영적으로 죽어서 잃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잃은 양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밝히신 것이다. 

그런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우선적으로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때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에게 요청에 대한 거부의 뜻이 있는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 여자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한 것이다. 

한편, 26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각각 '자녀들'과 '강아지들'에 비유되고 있다. '자녀들'에 해당하는 '테크논'(teknon; children's)'해산하다'(루카2,6)라는 뜻이 있는 '틱토'(tikto)에서 유래하여,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혈육'을 가리키는 매우 친밀감이 느껴지는 용어이다. 

반면에 '강아지들'에 해당하는 '퀴나리오이스'(kynariois; to dogs)의 원형 '퀴나리온'(kynarion)은 일반적인 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퀴온'(kyon)작은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개 가운데 작은 개강아지를 뜻하며, 여기서는 집에서 기르는 개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런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나라에 거주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집안에서 기르는 개라고 할지라도, 자녀들과 동일하게 대우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굳이 '자녀'와 '강아지'를 대비시킨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복음에 대한 우선권이 유대인에게 있다는 뜻이지, 이방인이 복음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27절가나안 여자는 '그렇습니다'로 번역된 긍정동의를 나타내는 '나이'(nai; yes; truth)라는 말로써,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은 이어지는 또 다른 자신의 논리를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가나안 여자는 겸손하게 집안에서 기르는 개가 누리는 혜택을 자신도 누릴 수 있다는 새로운 논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그러나'로 번역된 '카이 가르'(kai gar; but even)앞선 문맥을 보충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관용적인 표현인데, 뒤이어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는 말로서, 이방인들 역시 유대인에 이어 하느님의 은총에 동참할 수 있다는 소신을 밝힌다.

당시 유대인이 이방인에 대해 심한 배타적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사도10,28), 하느님의 은총의 보편성에 대한 가나안 여자의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영적 지각을 지니고 있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2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고 말씀하신다. 

'오 퀴나이, 메갈레 수 헤 피스티스'(O gynai, megale su he pistis; O woman, you have great faith!)가 바로 원문의 내용이다.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대해 너무나 감격한  예수님의 감정'오'(O)라는 감탄사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크구나'로 번역된 '메갈레'(megale)의 원형 '메가스'(megas)영어에서 '큰' 혹은 '백만 배'를 나타내는  접두사 '메가'(mega)의 어원으로서 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높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의 위대한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다. 끝으로, 이어서 예수님께서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이것은 '네가 바라는 만큼 네게 이루어질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고, 이것은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비례하는 큰 결실을 맺게 되리라는 뜻이 된다. 

특히 여기서 '될 것이다'에 해당하는 '게네테토'(genetheto; be it; is granted)부정(不定) 과거 명령법으로서 단번에 이루어지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에 따라 가나안 여자의 딸은 바로 그 시간에 단번에 고침을 받는다.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연중 제20주일(마태오 15,21-28)

한 여인의 바람은 마귀 들린 딸이 낫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만나줄지 어떨지도 모르는 유다인 남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멀찍이서 불러봅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제 딸을 낫게 해 주세요.” 가까이 다가가서 엎드려 절을 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여인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엄마로서 자기 딸을 낫게 하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어머님들이 자녀들을 키우고 지켜오신 바로 그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좀 의외입니다. 다급한 마음, 애끓는 마음, 간절한 마음을 보이는 여인에 대해 예수님의 반응은 데면데면하십니다.

너그럽고 인자하고 자상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당신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십니다. ‘그건 내 일이 아니라, 나는 모르겠다’ 라는 표정이십니다. 피곤하신 것인지, 귀찮은 것인지? 아니면, 여인의 마음을 확인하시려는 것이었을까요?

예수님과 제자들의 냉랭한 반응에도 여인은 줄기차게 매달립니다. 결국 여인은 하느님의 구원은 자녀들뿐만 아니라 강아지들도 포함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돌아서십니다.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세상사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삽니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대체로 우리는 내 맘대로 세상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란 말씀을 듣습니다. 이 말씀은 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인의 믿음이 큰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상으로 내려주신 것입니까? 나는 믿음이 약해서 예수님께 그런 상을 받을 수 없습니까? 내 믿음이 언제 가나안 여인처럼 커질까요? 우리가 내 믿음은 약해서 안 된다고 마음먹으면 매일 안 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여인의 믿음이 커진 것은 간절함 때문입니다. 딸 아이를 낫게 하고 싶은 엄마의 간절함! 그리고 고단함. 마귀 들린 딸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낫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겠습니까? 가나안 여인이기 때문에 배척받을 것이 뻔한데도 딸을 위해 모욕과 업신여김을 무릅쓰고 유다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이 여인의 믿음은 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간절함은 더 커지고, 믿음도 따라서 커집니다. 딸을 구해야 하니까요.

우리는 지금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그것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습니까? 부족하다고만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나름 고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간절함에 눈물을 흘린 적도 많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여기까지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내가 구하는 그것. 그것이 내 개인의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구하는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폭을 넓히세요. 가족에서 이웃, 본당, 사회, 세상, 우주. 하느님께 닿아보세요. 우리의 간절함과 고단함을 하느님께서 보시고, 이 세상을 우리 마음대로 되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하느님이기를 기도합니다.

- 김동일 신부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



가해 - 연중 제20주일 복음 (마태오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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