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 (마태오 11,2-11)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시리니,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고 예언한다. (이사야 35,1-6ㄴ.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10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야고보 사도는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며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신다고 한다. (야고보 5,7-10)
7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요한이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시냐고 묻게 하자,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고 전하라고 이르신다. (마태오 11,2-11)
그때에 2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메시아 시대의 신앙인> 송영진 모세 신부
“그런데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마태 11,2-3).”
여기서 세례자 요한이 했다는 말만 보면,
그가 예수님을 의심한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직접 물어보라고,
또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직접 보고 믿으라고 시킨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요한 1,6-7).”
또 세례자 요한이 이렇게 증언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3-34).”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한 세례자 요한 자신이
예수님을 의심했다고(안 믿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고,
요한의 제자들이 그의 증언을 믿지 않아서
예수님을 의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4-6).”
이 말씀의 뜻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너희 눈으로 직접 보아라.
그리고 나를 믿어라.”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는 것을 보았다면, 또는 체험했다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장애자들과 병자들이 치유되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는 말씀은 ‘메시아의 구원’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라는 말씀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여기서 ‘행복하다.’를 ‘구원을 받는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요한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마태 11,7-9).”
사람들이 광야에 간 것은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들은 ‘회개의 세례’를 받으려고 회개를 선포한 예언자 요한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단순히 회개를 선포하기만 한 예언자가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에게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안내자였기 때문에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입니다.
(요한을 만났다면 그 다음에는 메시아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성당에 가는 것은 성전을 구경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귀영화나 출세나 재물 같은 것을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단순히 성전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서나,
또는 부귀영화 같은 세속적인 복을 빌기 위해서 성당에 간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성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마태 11,11).”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을 칭찬하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암시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이라는 말은 그냥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구약시대 예언자들을 가리킵니다.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라는 말씀은,
“요한은 구약시대 예언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가 그렇게 위대한 것은
하늘나라를, 또는 메시아 시대를(신약시대를) 미리 준비한 예언자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시대는 구약시대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라는 말씀은,
신약시대 신앙인들은 구약시대 신앙인들보다 더 큰 은총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을 깎아내리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메시아 구원의 위대함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는 율법의 시대였고, 아직 메시아께서 오시기 전이었고,
메시아의 구원을 기다렸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메시아께서 오셔서 새로 시작된 새 시대이고,
본격적으로 구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은총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는(메시아 시대는) 구약시대보다 더 위대합니다.
이 말을 지금의 각 개인의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저 심판이 두려워서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만 신경 쓰는 사람은
구약시대 수준의 초보적인 신앙생활만 하는 신앙인이고,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능동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참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신앙인이
제대로 메시아 시대의 신앙인답게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이다.”
오늘 복음을 보면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 질문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아마도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요한은 자신이 기대하던 메시아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요한은 왜 이런 의문을 품은 것입니까?
요한은 광야에서 주님의 심판이 임박했으니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정의만을 외치다 보니, 하느님을 벌을 내리고 심판하시는 무서운 분으로 만들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시며 어느 누구와도 친교를 나누셨습니다. 죄인들과도 어울리다 보니 이런 비난마저 받으셨지요.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루카 5,33).
이처럼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무서워하거나, 죄를 지은 나머지 스스로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절망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을 되돌려 주십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이 말씀대로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