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일] 약은 집사의 비유 (루카 16,1-13)
아모스 예언자는 빈곤한 이를 짓밟고 가난한 이를 망하게 하는 자들의 행동을 주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신다고 말한다.(아모스 8,4-7)
4 빈곤한 이를 짓밟고, 이 땅의 가난한 이를 망하게 하는 자들아, 이 말을 들어라! 5 너희는 말한다. “언제면 초하룻날이 지나서 곡식을 내다 팔지?
언제면 안식일이 지나서 밀을 내놓지? 에파는 작게, 세켈은 크게 하고 가짜 저울로 속이자. 6 힘없는 자를 돈으로 사들이고, 빈곤한 자를 신 한 켤레 값으로 사들이자. 지스러기 밀도 내다 팔자.”
7 주님께서 야곱의 자만을 두고 맹세하셨다. “나는 그들의 모든 행동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좋아하신다고 말한다.(1티모 2,1-8)
사랑하는 그대여, 1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3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입니다. 4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5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6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제때에 드러난 증거입니다. 7 나는 이 증거의 선포자와 사도로,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과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할 뿐,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8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 없이, 어디에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은 집사의 비유를 드시며,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고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하신다.(루카 16,1-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3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4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5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6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불의한 집사’는 비윤리적이면서도 영리한 사람입니다.
집사의 주인은 재산을 제멋대로 낭비한 그를 해고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의 살길을 찾으려고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빚을 탕감해 줍니다.
주인은 매우 너그러운 사람이어서 집사의 이 그릇된 행동을 나무라지 않고 칭찬합니다.
실직의 위기에 있는 집사가 살아남으려고 애쓴 처사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치열한 생존 방식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우리가 천상의 것을 추구하지만, 이 지상의 재물을 관리하는 데에도 성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하지만 재물로 사귄 친구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로서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는 한 재물을 관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섭리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게으르고 무질서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재물을 성실하게 관리하는 이유는 재물 자체가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실한 삶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하면서 이 세상에서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을 훈계하였습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2).
(류한영 베드로 신부)
약은 집사의 비유 (루카 16,1-8) 장재봉신부
예수님께서는 주로 비유로 말씀하시곤 했는데
특히 '약은 집사의 비유'는 이해하기 어려워서 본문을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깁니다.
집사가 빚을 마음대로 탕감해 줄 수 있는가?
주인은 화를 내기는 커녕 왜 그를 칭찬했는가?
믿고 맡긴 집사가 문서위조, 사기, 횡령, 매수를 저질렀는데도 말입니다..
.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 당시 집사의 보수는 주인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들에게서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 갖게 되는데 집사가 임의로 금액을 정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주인이 들었던 나쁜 소문은 아마도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수수료에 불만을 토로한 채무자들로 인한 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를 알게 된 주인이 집사를 해고하려 하자
집사는 자신의 몫으로 챙기려 했던 수수료를 과감하게 모조리 탕감해 줌으로써
채무자들의 원망을 사그러뜨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문제는 주인과의 관계인데
주인이 집사를 "영리하다고" 칭찬했다는 본문은 집사가 해고되지 않았음을 암시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주인이 영리하다고 한 까닭은
집사가 그동안 모아 놓은 재산을 가지고 도피를 시도하거나
수수료를 올려 더 많은 재산을 모으는 방법으로 후일을 대비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즉시 수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빛의 자녀들이 설마... 하면서 근거없는 믿음을 내세웠던
아둔함이 생각나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예수님께서는 왜 불의한 집사와 같이 철저하게 계산된 별로 유쾌하지 않은 비유를 들었을까? 입니다.
집사의 나쁜 행실이 타당해서가 아니라 그가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이 핵심이었기 때문이라 묵상합니다.
그가 저지른 죄목이 아무리 파렴치하다 하더라도 마음을 돌려 돌아온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요!
인간의 시선은 그가 저지를 죄를 보지만
하느님의 시선은 본질을 보신다는 것을.....
비록 그의 생각이 얄팍하고 계산적일지라도 살 길을 찾으려 했다면
'선'으로 품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신 사랑을....
후회하고 회개해도, 없어지지 않는 내면의 악을 발견할 때마다 얄팍한 회개를 자책했던 저에게 '약은 집사의 비유'는 불완전한 회개일지라도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축복이라 일러줍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으라 용기를 줍니다.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사야 1,18)
연중 제25주일 제2독서 (1티모2,1-8)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 없이, 어디에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8)
티모테오 전서 2장 1-7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만인과 위정자를 위하여 중재 기도를 명령하며, 중재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어지는 티모테오 전서 2장 8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공적 예배때 남녀 성도의 품행 및 창조원리에 근거한 남여 상호간의 기본 질서에 대해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그러므로'로 번역된 '운'(un; therefore)은 새로운 문장으로 내용을 전환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문장 전환 접속사이다.
그리고 '바랍니다'로 번역된 '불로마이'(bullomai; I will; I want)는 '원하다', '소원하다', '열망하다' 라는 뜻을 지닌 단어인데, 여기서는 사도 바오로의 복음 선도자요 사도이며, 이방인의 스승으로서의 권위가 포함된 다소 권위적인 명령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권고하는 대상을 '남자'로 국한시키고 있다. 이것은 여자가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본절이 남자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단지 회당에서 남자들이 기도를 인도했던 관례에 비추어 볼 경우에 그렇게 생소한 것은 아니다. 공적 예배때 원로(장로)들이 자연스럽게 기도 순서를 맡았던 교회의 역사적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 전서 2장 8절 이하에서부터 교회의 질서를 염두에 두고 공적 예배 때 준수해야 할 규범에 대해 계속 권고하고 있다.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 없이, 어디에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사도 바오로는 당시 그리스도인 회중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남자들이 대표로 기도하는 것을 전제하고 본문의 권고를 주고 있다. 이들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기도의 태도를 특별히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성을 내거나 말다툼이 없어야 한다.
성 요한 금구는 "당신은 당신의 형제에게 불리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그러나 당신의 기도는 그에게 불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 불리하게 된다. '그에게도 꼭 같은 벌을 내려주십시오. 그에게도 그와 같은 일이 있게 해 주십시오. 그를 쳐주십시오. 그에게 보복하여 주십시오'라고 경건하지 않은 말로 기도를 드리면, 당신은 하느님의 분노를 일으키도록 만드는 것이다" 라고 말해 여기서 말하는 분노의 기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말해 준다.
'말다툼'으로 번역된 '디알로기스무'(diallogismu; doubting; disputing)는 본래 '대화하다'라는 뜻을 지닌 '디알로기조마이'(diallogizomai)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의논', '의아하게 생각'(루카5,22), '변론', '논쟁'(루카9,46)등의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며, '시비', '따지기'(필리2,14)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말하자면, '트집잡기 좋아하는 이들의 공연한 시비'를 말한다.
둘째, 이들은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에는 고개를 숙이고 하는 기도, 하늘을 향해 눈을 들고서 하는 기도, 무릎을 꿇고 하는 기도,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하는 기도 등 많은 자세가 있지만, 여기서는 보다 보편적인 기도 자세로서 일어나서 손을 들고 하는 기도를 말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가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손을 들고 하는 기도, 즉 기도의 외적 자세로서의 손의 위치가 아니라 '거룩한' 손을 들고 하는 기도, 즉 기도의 영적 태도에 관한 것이다.
'거룩한 손을 들어'로 번역된 '에파이론타스 호시우스 케이라스'(epairontas hosius cheiras; to lift up holy hands; lifting up holy hands)는 흠이 없고 정결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기도하라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거룩한'으로 번역된 '호시우스'(hosius; holy)는 일반적으로 '부정한 것과 단절된 상태'를 뜻하는데, 단적으로 말해 살인이나 간음, 도둑질 등과 같은 추악한 범죄에서 분리된 상태, 즉 '부당한 행위로 말미암아 더럽혀지지 않은 상태'를 지칭한다.
따라서 티모테오 전서 2장 8절은 만일 기도하는 자가 이러한 부정한 범죄로 자신을 더렵혔다면, 결코 공적 예배때에 대표로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시편24,3-4; 마태5,23-24).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옳지 않은 것에 정신을 쏟지 않는 이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이라네." (시편24,3-4)
연중 제25주일복음 (루카16,1-13)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8ㄱㄴ)
집사는 여전히 불의한 상태로 남아 있었으며, 오히려 더 큰 불의를 저질렀지만, 주인은 이 집사를 칭찬하였다. 여기서 주인이 칭찬한 것은 집사의 도덕적인 부분이 아니라, 앞날을 대비하고 지혜롭게 처신한 행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불의한 집사가 자신의 앞날을 위해,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고 있는 데 비해,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받은 하느님의 백성들은 영원한 거처를 준비하는 일에 인색하고 무지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들어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 땅에서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외에는 관심이 없는 '세상의' 집사들도 이렇게 교활할 정도로 민첩하고 영리하게 미래의 상황을 대처하는데, 하물며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하느님의 집사들도 적어도 이 정도의 지혜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책망과 더불어 교훈이 이 구절에 담겨져 있다.
여기서 '영리하게'로 번역된 '프로니모스'(phronimos; wisely; shrewdly)는 '신중하게', '사려깊게'라는 뜻인데, 어떤 이익 등을 위해 약삭빠르고 신중하게 신경을 쓴다는 의미로 복음서에서 사용된다.
불의한 집사는 위기에 직면하여 신속하게 대처함으로써, 미래의 호구지책을 마련하는 지혜를 보였다.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에 대해 하느님의 임박한 종말 심판을 앞둔 그리스도인들이 심판 이후에 거처하게 될 복된 처소를 확보하기 위해, 현재 주어진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반드시 신속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한편, 지금까지는 집사를 수식하는 말이 언급되지 않았는데, 본절에 이르러 '불의한' 이라고 번역된 '아디키아스'(adikias; unjust; dishonest)라는 단어를 쓴 것은 오히려 집사의 지혜를 더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원형인 '아디키아'(adikia)는 주로 하느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것 (로마1,18)과 하느님을 거부하고 적대하는 죄(1요한1,9; 5,17)를 가리킨다. 하지만 여기서의 이 집사의 불의는 그의 직책과 관련하여 나온 것으로서, 즉 마땅히 해야 할 집사직을 소홀히 함으로써, 주인의 뜻에 불순종한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도 빚을 탕감받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기쁜 일이지만, 주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재물이 예전처럼 낭비되고 있기에 주인에게 집사는 여전히 불의한 사람이다. 하지만 집사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앞날을 대비하여 민첩하게 처신하고 있는 그 모습만큼은 영리한 대처이기에, 칭찬받을 만한 것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