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2016. 9. 18. 오전 8: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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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이벽을 중심으로 한 몇몇 학자들의 연구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베드로’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선교사의 선교로 시작된 다른 나라들의 교회에 비하면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사회는 전통을 중시하던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리스도교와 크게 충돌하였다. 결국 조상 제사에 대한 교회의 반대 등으로 천주교는 박해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신해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이들 순교자들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한 103명을 시성하였다. 이에 따라 9월 26일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9월 20일로 옮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아직 시성되지 못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은 모든 교우가 함께 모여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리며 순교 정신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목숨까지 바친 우리 신앙 선조들을 번제물처럼 받아들이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성인들을 본받아 우리도 제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바쳐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시기를 청합시다.


지혜서의 저자는,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라며,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받아들이셨다고 한다.(지혜 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냐며, 그 무엇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로마 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며,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 하신다.(루카 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신앙생활, 순교> 송영진 모세 신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여기서 ‘누구든지’ 라는 말은,
지금 하시는 이 말씀은 모든 신앙인에게 하시는 말씀이고,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신앙생활에는 예외적인 특혜나 특권 같은 것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목적지는 하나뿐이고, 그곳까지 가는 길도 하나뿐이고,
그 길을 걸어가는 방법도 하나뿐입니다.


“내 뒤를 따라오려면”이라는 말씀은,
“내가 주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이라는 뜻입니다.
신앙인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신앙 여정의 목적지는 십자가도 아니고, 순교도 아닙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하느님 나라가 목적지입니다.
십자가와 순교는 그곳까지 가는 과정이고 방법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라는 말씀은,
신앙인의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과 중심은 예수님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공동번역).”
신앙인은 자신의 현세적이고 세속적인 욕망과 욕심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만 살다가 죽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라는 말은,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하는 것은
매 순간 순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신앙생활에는 방학도 없고, 휴가도 없습니다.
또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도 없습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충실한 신앙인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순교자들은 날마다 ‘순교의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로써 인생을 마무리한 분들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순교자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라는 말씀은,
“모든 고난과 시련을 참고 견디고, 죽음까지도 각오하면서” 라는 뜻입니다.
물론 신앙 여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십자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힘들 때도 있고, 편안할 때도 있는데,
편안할 때에만 신앙생활을 하고 힘들 때에는 피한다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죽을 만큼 힘든 일이 닥쳐도 흔들림 없이 신앙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과 시련을 참고 견디는 것은, 또 죽음도 각오하는 것은,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구원과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끝에는 부활과 승리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십자가도 부활, 생명, 승리로 이어집니다.
그 믿음과 희망이 없다면 십자가를 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만일에 구원과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이 아니라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은, “나만 따라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한눈팔지도 말고, 다른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말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면서
예수님의 뒤만 따라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날마다 유혹과 싸워야 하는 생활입니다.
(박해도 일종의 유혹입니다.
또는 유혹도 일종의 박해입니다.)
사탄은, 또는 안 믿는 사람들은, 또는 박해자들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된다. 왜 그렇게 목숨 걸고 하나?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데, 좀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라.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살지 말고 남들과 어울리면서 살아라.
너무 고지식하게 살지 마라. 신앙생활에도 융통성이 필요하다.”


이런 유혹이 교회 내부에서 올 때도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박해자들의 압박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동료의 충고가 더 위험한 유혹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겪으셨던 일입니다.
아끼는 제자인 베드로 사도가,
더욱이 교회의 반석으로 임명되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은 제자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을 말린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정말로 예수님이 걱정되어서 사심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예수님 입장에서는 심각한 유혹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라고
단호하게 그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마태 16,23).
(제자를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그 제자의 ‘말’을 통해서 오는 유혹을 물리치신 일입니다.)


순교자들 가운데에는
아무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순교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편안한 순교’ 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지만...)
모든 순교자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순교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유혹과 압박들을 물리쳐야만 했습니다.
가족이 눈물로 하소연하기도 하고, 친구들이 찾아와서 설득하기도 하고...
그리고 내적으로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어야 했고...


그런 유혹과 충고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도,
또 내적인 욕망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일도
십자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신앙생활 자체가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신앙인은 세속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사람이고,
다르게 산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외롭고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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