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 주간)( 루카 23,35ㄴ-43)

2016. 11. 20. 오전 7:55:23

글자

[그리스도 왕 대축일 (성서 주간)] ( 루카 23,35ㄴ-43)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헤브론으로 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운다. (사무엘하 5,1-3)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다며 아버지께 감사드리라고 한다. (콜로새 1,12-20)
형제 여러분,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기를 빕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 루카 23,35ㄴ-43)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35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11월 25일 (이동축일)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 주간)

<회개, 구원> 송영진 모세 신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 23,35).”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루카 23,37).”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39).”


이 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지도자들과 군사들과 십자가에 함께 매달린 죄수가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독하면서 했던 말들인데,
십자가 사건이 믿음을 막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1코린 1,23).”
이 말의 뜻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그리스도로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겠지만,
또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은 일로 보이겠지만...”입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비참하게 처형당한 사람을
메시아(그리스도, 구세주)로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류를 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믿었다가
그 일 때문에 믿음을 버린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메시아로 믿고 있는가?”
답은 간단합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네가 정말 메시아라면(임금이라면) 너 자신부터 구해 보아라.”
라고 말하면서 빈정거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말들에 대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써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또 하느님께서 보내신 ‘온 세상의 임금’이라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면 빈정거렸던 사람들은(지도자들과 군사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던 그자들은 부활도 안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가는 것을 막으려고 경비병들을 시켜서 무덤을 지키게 했고(마태 27,66),
예수님 부활 후에는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갔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습니다(마태 28,11-15).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십자가에 함께 매달린 상태에서 예수님을 모독했던 그 죄수는 믿지 않는 채로 그냥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부활도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시신만 보면서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어리석은 일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가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라면, 또 온 세상의 임금이라면, 신앙인들이 겪는 박해와 시련과 고난들을 왜 막아주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하느님이 정말 계신다면,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고통들과 불행들이 많은가?” 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또는 “하느님께서 정말로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면
왜 이 세상의 고통들과 불행들을 내버려 두시는가?”
이런 질문들은 “예수가 정말로 메시아라면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었는가?” 라는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들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이 온 세상의 임금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신앙인들도 자주 하게 되는 질문들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사도 3,18-20).”
이 세상의 고통들과 불행들의 원인은 인간들의 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그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려면 우리 모두가 회개해야 합니다.


죄는 병이고, 회개는 치유를 위한 노력이고,
구원은 완전히 건강을 되찾는 일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의 범죄 때문에
죄 없는 의인들이 억울하게 고통을 겪는 경우에 대해서는
인류 전체를 한 몸으로 생각해서,
한 지체가 병들었을 때 다른 지체가, 사실상 몸 전체가
함께 고통을 겪게 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마무리하고 완성하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종말, 재림, 심판 때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온 세상의 임금이신 예수님의 왕정에 참여하겠지만,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그분의 나라의 바깥으로 쫓겨날 것입니다.
치유를 거부하는 사람은 병든 채로 멸망하게 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자기 스스로 치료를 하겠다고 고집 부리는 경우도
사실상 예수님의 치유를(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일에 속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요한 15,5-6).”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 주간)

 

그리스도. 6세기경.가장 오래된 이콘. 시나이 성 카타리나 수도원

 

현존하는 6세기의 비잔틴 이콘(목판성화상)은 가장 오래된 것이며,

복음서를 왼손에 받들고 오른손의 중지와 약지를 구부려서

엄지 손가락에 붙여 축복의 형태를 나타내고 계신다.

 

둥근 후광에 십자가가 장식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후대의 것에 반드시 첨가되는

OΩN(존재하는자) IC,XC(예수그리스도)와 같은

신성을 나타내는 네개의 문자는 없고 대신에 건축물이 그려 넣어져 있다.

 

엷은 오랜지 색과 백색으로 완성한 얼굴은

고귀하고 위대하지만 대단히 사실적이다.(이콘.신비의 미에서)

 

주여,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주의 후사에 강복하시고

믿는 자에게

원수에 대한 승리를 주시고

십자가로 보호하소서.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 주간)
Cristo Re dell'universo
Christ the King

 

하느님 나라를 이루고자 온 힘을 다하는 신앙인들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왕으로 받들어 모신다.

오늘은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의 왕직(봉사직)에 참여하게 됨을 기념하고,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따라 새롭게 되도록 온 힘을 기울이며, 이를 위해 기도하는 축일이다.

교황 비오 11세는 1925년에 연중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제정하였다.

 

또한 한국 교회는 1985년부터 연중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성서 읽기 운동과 함께 성서 보급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성서 주간을 맞아 모든 신자는

성서를 늘 가까이하고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더욱 힘써야 한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하늘과 땅의 주재자이신 주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삶을 셈하여 바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 마지막 날의 운명은 오늘의 자그마한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은 절대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바로 이웃을 섬기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사람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바로 주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오늘부터 한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나날의 삶에서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도록 격려합니다.

(가톨릭홈에서)

 

 

[Russian Icon] The Savior

XIV c., Cathedral of the entombment, Cremlin, Moscow

 

1. 그리스도왕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므로 성부께 들어 높임을 받으시고 당신 왕국의 영광을 차지하셨다.

그리스도왕께서는 그 왕국을 확장하시고 모든 것을 당신께 복종시킬 것이며,

마침내 당신 자신과 이 모든 피조물을 성부께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을 모든 것에 있어서 모든 것이 되게 하실 것이다(1고린 15,27-28).

 

그리스도왕은 구약에서 예언되고 준비되었다.

가나안 정착시기에 왕정의 필요를 느낀 이스라엘은

야훼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탄생시켰고 왕조의 존속을 약속 받았다(2사무 7장).

그러나 다윗 왕조가 무너지자 종말의 왕인 메시아의 약속이 있었다(에제 34장).

 

왕이신 메시아에 대한 백성들의 기대는 인간적인 희망과 현세적인 왕권 관념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예수는 지상 생활 동안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예수는 헤로데의 권위도, 로마황제의 권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예루살렘 입성 때 당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찬양하는 백성을 묵인하고

빌라도 앞에서 당신이 이스라엘 왕임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당신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였다(요한 18, 36-37).

그 왕국의 성격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 군사들이 조롱한 행위에서 드러난다.

예수의 왕위는 십자가에서 빛나고 있으며, 왕의 영광은 부활 후에, 그리고 재림 때 나타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왕 대축일

비오 11세는 1925년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제정하면서 모든 성인의 대축일 전 주일에 지내도록 정하였다.

교회는 이 축일 이전에도 그리스도의 왕권을 기념하였었다.

공현, 빠스카, 승천이 바로 그리스도왕 축일인 것이다.

비오 11세가 이 축일을 제정한 것은, 그 자신 교서"Quas primas"에서 명백히 말하고 있듯이

영적 교육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신론과 사회의 세속화가 널리 퍼지던 상황 아래에서 그는

인간과 제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을 확언하고 싶었던 것이다.

 

1970년 교회는 그리스도 왕권의 우주적, 종말론적 특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이 축일을 "우주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축일로 만들면서 마지막 연중 주일에 지내도록 하였다.

이렇게 됨으로써 대림절은 주님의 영광 중에 오시는 시기로 드러나게 되었다.

 

고쳐진 본기도의 두 번째 부분이 이 축일의 주제가 바뀌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죄로 인하여 상처를 입어 갈려진 모든 인간 가족이 예수의 어진 통치권에 복종하게 하소서"(1925년 본기도).

개정된 본기도는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청한다.

"온갖 창조물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어 당신을 섬기며 끝없이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Christ-GRECO, El

1606, Oil on canvas. 97 x 77 cm.Museo del Greco, Toledo

 

전례는 교회의 의식(儀式)이다.

 

교회가 성서나 성전(聖傳)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인한 의식으로 개인의 신앙생활과는 구별된다.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교회 안에서 그 전례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미사(Missa)이며,

그밖에 성사 및 준성사, 성무일도, 성스런 행렬, 성체 강복식 등이 전례 속에 포함된다.

 

이 말의 원어(原語)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10:11에 나오는 그리스어의 `liturgia’이며,

민중(laos)에 대한 봉사(ergon)를 의미하였다.

또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교회의 구빈사업(救貧事業)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였다(2고린 9:12).

그런데 민중에 대한 봉사나 구빈사업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뒷날에는 교회의 의식이 전례라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를 통해서 우리 속죄의 구원사업이 수행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된 교회의 본질을

다른 이에게 드러내 보이고 명시하는 데 가장 큰 도움"(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이 되는 것이

전례라고 말한다.

 

전례는 하느님과 구원되어야 할 인간들과의 결합이며, 끊임없는 만남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곧 교회는 전례를 통해 하느님을 세계의 창조주로,

또한 주재자(主宰者)로 공경하고, 그에게 감사하며, 속죄를 드리며 기원한다.

 

전례의 주체는 교회다.

교회 안에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현존(現存)한다.

미사에도, 성체형상에도, 사제의 인격 속에도, 말씀 속에도 존재할 뿐 아니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나의 이름을 위하여 모인 곳에는 나는 그 가운데 있다"(마태 18:20)는

복음과 같이 교회에는 하느님이 현존한다.

 

비록 전례가 성직자에 의해 거행되더라도, 그것은 그 속에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전례는 교회의 위임에 따라 지정된 성직자가 거행하는 의식적 행위 전체라고도 정의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교회의 사제직이 지진 독특한 성격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사제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뿐이다. 그는 대사제이며, 다른 모든 사제는 그의 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제가 수행하는 모든 전례에 있어서 그 권능(權能)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사항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아 거룩하게 된 사제는 독특한 위치를 지닌다.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들의 대변자다.

 

그리스도교의 전례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다른 종교의 의식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민중이 참여하고,

같이 기도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래서 성당의 설계도 다른 종교의 사원 (寺院)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보통 사원은 신상(神像)을 안치하는 하나의 작은 방인데 비하여,

성당(ecclesia)은 신자들의 집회소(集會所)이다.

때문에 사원이 와양(外樣)을 위주로 한 건축인데 비해, 내부를 위주로 한 건물이 성당이다.

 

여기서 전례가 바로 신자 공동체를 위한 의식이고, 공동체를 위한 기도라는 점이 나타난다.

신자는 이 공동체에의 참여를 통하여 비로소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주일미사와 부활절 및 지켜야 할 축일에는 반드시 전례에 참여해야 한다.

전례는 외적인 형식을 존중하고, 기도와 성가도 큰소리로 불러야 하며, 일정한 장소와 때를 지킨다.

왜냐하면 모든 공동체적인 행동은 사람들이 모일 공간적 시간적으로 확정된 중심과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는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가톨릭대사전 참조)

 

교회는 거룩한 전례로 하느님께 예배드리고 인간을 성화하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며 구원 업적을 재현한다

(교회법 제834조; 전례헌장, 7항; 사목회의 전례 의안, 1항 참조).

 

구원사업을 완수하신 그리스도께서 전례행위 안에 항상 현존하시며 활동하시기 때문에

전례행위 교회의 다른 어떤 행위와도 비교할 수 없는 효과를 내는 거룩한 행위이다.

(교회법 제836조; 전례헌장, 7.10항 참조).

 

 

 

Christ the King

 

◎ 주님께서는 임금님, 위엄을 차리셨도다.

○ 주님께서는 임금님, 위엄을 차리시니, 주님께서 차리시어 권능을 띠 띠시니. ◎

○ 누리가 굳건하여 흔들림이 없나이다.

당신의 어좌는 예로부터 견고하니, 영원부터 당신께서는 계시나이다. ◎

○ 당신의 증거는 너무나도 미더운 것,

당신의 집안에는 거룩함이 제 것이니, 길이길이 주님, 그러하리이다. ◎

 

 

 

주 하느님 말씀을 내 듣고 싶사오니

정녕 평화를 말씀하시나이다,

당신의 백성과 성도들에게,

그 마음 당신께 돌아오는 이들에게.

당신을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정녕 가까우니

당신의 영광이 우리 땅에 계시게 되리라.

자비와 충성이 마주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함께 입맞추리라.

땅에서 충성이 움터 나오면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주께서 행복을 내려주시면

우리 땅은 열매를 맺어주리라.

정의가 당신 앞을 걸어나가면

구원은 그 걸음을 따라가리라."

시편 84(85),9 이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사회 교리 주간)](마태 3,1-12)16.12.04조회 87[대림 제1주일] 깨어 있으라 (마태오 24,37-44)16.11.26조회 62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 주간)( 루카 23,35ㄴ-43)16.11.20조회 60[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루카 21,5-19)16.11.13조회 82[연중 제32주일]부활논쟁(루카 20,27-38)16.11.06조회 57[연중 제31주일] 예수님과 자케오 (루카19,1-10)16.10.30조회 59[연중 제30주일]전교 주일 (마태 28,16-20)16.10.23조회 59[연중 제29주일]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루카 18,1-8)16.10.16조회 189[연중 제28주일]나병 환자 열 사람 (루카 17,11-19)16.10.09조회 56[연중 제27주일 (군인 주일)]종의 본분 (루카17,5-10)16.10.02조회 225[연중 제26주일]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루카 16,19-31)16.09.25조회 215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16.09.18조회 66[연중 제25주일] 약은 집사의 비유 (루카 16,1-13)16.09.18조회 55[연중 제24주일] 되찾은 아들의 비유 (루카 15,1-32)16.09.10조회 60[연중 제23주일] 제 십자가를 지고 (루카14,25-33)16.09.04조회 102[연중 제22주일] 끝자리 (루카14,1.7-14)16.08.28조회 57[연중 제21주일] 좁은 문 (루카 13,22-30)16.08.21조회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