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 예수님과 자케오 (루카19,1-10)

2016. 10. 30. 오전 8: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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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일] 예수님과 자케오  (루카19,1-10)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신다고 지혜서의 저자는 고백한다. (지혜 11,22─12,2)
주님, 22 온 세상도 당신 앞에서는 천칭의 조그마한 추 같고, 이른 아침 땅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같습니다.
23 그러나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그들의 죄를 보아 넘겨 주십니다.
24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25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었으며, 당신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26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 12,1 당신 불멸의 영이 만물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주님, 당신께서는 탈선하는 자들을 조금씩 꾸짖으시고, 그들이 무엇으로 죄를 지었는지 상기시키며 훈계하시어, 그들이 악에서 벗어나 당신을 믿게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우리가 아닌 누가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불안해하지 말라고 한다. (2테살1,11─2,2)
형제 여러분, 11 우리는 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당신 힘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빕니다. 12 그리하여 우리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따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2,1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가 그분께 모이게 될 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2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세관장인 자캐오는 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이고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이르신다. (루카 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연중 제31주일 복음 (루카19,1-10)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2~4) 

'자캐오'에 해당하는 희랍어 '작카이오스'(Zakcaaios; Zacchaeus)'순결한'(pure),'무죄한'(innocen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작카이'(zakai)에서 유래되어 '깨끗한 자', '의로운 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자캐오는 그의 직업이 당시 사람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허가받은 도둑'세관장이었기에 자신의 이름의 뜻에 걸맞게 살지 못하는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세관장'에 해당하는 '아르키텔로네스'(architelones; a chief tax collector)'우두머리'라는 뜻의 '아르코'(archo)'세금 징수원'이라는 뜻의 명사 '텔로네스'(telones)가 결합된 합성어이다. 

당시 예리코는 세금을 거두는 관리들이 로마로부터 파견되어 늘 머물러 있었고, 세관원들은 요르단 강 동편 지역에서 유다 땅으로 들어오는 물품에 대한 통관세를 받는 일을 했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이 일일이 세금을 징수한 게 아니라, 그곳 유대인들과의 임대차 계약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유대인들에게 주었고, 그들 세리(세관원)중에 우두머리가 바로 세관장이었던 것이다. 

또한 루카 복음 19장 2절에는 세관장 자캐오가 '부자'였다고 말한다. '부자'에 해당하는 '플루시오스'(plusios; was rich, wealthy)라는 표현은 그가 단지 잘먹고 잘사는 정도가 아니고, 당시 유대인 대부분이 식민지 생활로 인해 가난한 생활을 하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재산이 아주 많았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이것은 부정직한 방법으로 그가 부를 축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루카 복음 19장 3절'그가 ~ 애썼지만'에 해당하는 '에제테이'(ezetei; he sought)'집요하게 찾아'라는 뜻이 있는 '제테오'(zeteo)의 미완료 능동태이다. 

희랍에서 미완료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므로, 이것은 자캐오가 능동적으로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단어 뒤에 '보려고'로 번역된 부정사 '이데인'(idein; to see)이 따르고 있는데, 이것은 '보기 위해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캐오는 키가 작은 신체적 장애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라는 환경적 장애로 말미암아 난관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자 계속적으로 노력했음을 말해준다. 

자캐오는 자신들을 경멸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 주시며, 병을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죄도 사해주시는 권세도 갖고 계시다는 소문도 들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러한 외롭고 수치스런 상황에서 구원받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고 본다. 

자캐오는 가까이에서 지나가고 있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장애 요인, 즉 수많은 군중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 접근하기 어려운 것과, 자신의 키가 작음에서 오는 난관을 극복하고자 두 가지 행동을 한다. 

첫째로 군중들에 의해 둘러싸인 예수님 보다 '앞질러 달려가는 것'이다. 여기서 '달려가'로 번역된 '프로드라몬'(prodramon; he ran)은 능동태 분사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간절히 보기를 원하는 자신의 열망과 더불어, 결단을 내린 후 즉시 행동에 옮기는 강한 의지를 잘 보여준다. 

둘째로 그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돌무화나무 위로 올라간다.' '올라갔다'에 해당하는 '아네베'(anebe; and climbed up)자캐오의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할 뿐 아니라 믿는 이들이 본받아야 할 믿음의 모델이 된다. 

한편, 자캐오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코모레안'(sykomorean; a sycamore-fig tree)루카 복음 17장 6절에 나오는 '돌무화과나무' ('뽕나무'; '모폰'; mopon)와는 다른 나무이다. 

이 나무는 일명 '이집트 무화과 나무', '시카모어 무화과나무', '백뽕나무'로 불리는데, 잎사귀는 뽕나무와 비슷하고 열매는 무화과와 비슷하며, 가지가 사람이 올라가기 쉬운 형태로 뻗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수님과 자캐오



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자캐오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르시며 마침내 완성하고자 하시는 구원 업적의 예표와도 같이 묘사됩니다.

유다인들의 선민의식은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 시대에는 율법 규정에 따라 철저하게 지켜지고 강조되었습니다. 율법에 어긋나는 삶을 살거나,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은 아예 이방인 취급을 받았고, 하느님의 구원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자캐오가 로마의 지배하에 세금 징수 업무를 위임받아 제국의 압제자 노릇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가 받은 멸시와 비난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민족에게서 외면당한 자캐오라고 해서 위대한 예언자, 메시아로 칭송받던 예수님을 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비록 먹고살려고 지배 세력에 협력하고 있지만, 그 불편한 마음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그냥 예수님을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무화과나무에 올라 자신을 쳐다보는 자캐오의 속마음을 읽어 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내려오라’는 말 속에는 그의 욕심, 자책감, 상처를 버리라는 요청이 들어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죄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금기시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집에 머물기까지 하십니다.
구원은 바로 이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사건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그들의 죄를 보아 넘겨”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했듯이, 그토록 소중한 재산을 내어놓겠다고 선언하는 자캐오의 마음에는 주님의 ‘불멸의 영’이 살아 있었고, 그 영을 일으켜 주신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에게 ‘오늘’ 구원을 선포하고,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선언하십니다. 자비는 이렇게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선 하느님의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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