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일]전교 주일 (마태 28,16-20)

2016. 10. 23. 오전 5: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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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일](전교 주일) (마태 28,16-20)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이사야 예언자는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으로 밀려들고, 주님께서 심판관이 되시어 민족들이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 않으리라고 예언한다. (이사 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바오로 사도는, 믿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인데,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냐며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들었다고 한다. (로마 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내가 명령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며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겠다고 하신다. (마태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연중 제29주일 제1독서 (로마10,9-18)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9-10) 

로마서 10장 9절과 10절은 믿음의 의로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거듭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입술의 고백 마음의 믿음이다. 

'고백하고'로 번역된 '호몰로게세스'(homollogeses)의 원형 '호몰레게오'(homollogeo; confess)'함께', '동시에'란 뜻을 지닌 '호무'(homu)'말함' 이란 뜻이 있는 '로고스'(logo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문자적으로는 '함께 말하다', '동시에 말하다'라는 뜻이 있고, 실제로는 주로 법정 서약약속 혹은 고백 행위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이러한 고백은 공개적 성격을 갖는다.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서원하다'라는 뜻의 '나다르'(nadar), '맹세하다' 라는 뜻의 '샤바'(shaba)등의 역어로 나타난다. 사도 바오로는 '호몰레게오'(homollogeo)'공개적으로 고백 또는 진술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9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공적으로 고백하고 진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고백이 가지는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주님'으로 번역된 '퀴리오스'(kyrios)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퀴리오스'(kyrios)일반적 경칭으로 영어의 'Sir'이나 독일어의 'Herr' 의 의미가 있다.

로마 황제의 일반적 호칭이었다. 즉 황제를 신으로 여기고 숭배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③ 그리스 신들의 이름 앞에 붙여, 인간과 다른 영역에 있는 신을 나타낸다.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어 70인역(LXX)에서 하느님의 명칭인 야훼의 역어로 사용되어 유일신을 지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누가 예수님을 '퀴리오스'(kyrios)라고 공적으로 진술한다면, 그는 예수님을 황제, 더 나아가 신적 존재 혹은 유일신 야훼와 동일시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자신의 삶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그분께 드리는 것이 된다.  

즉 이러한 칭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 주권(主權)을 인정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유일한 구세주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예수님을 주님을 고백하는 것은 믿음의 시금석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Dominus)로 시인할 때, 우리는 그분의 신성(神聖)과 존귀하심, 그리고 믿는 자 자신이 그분께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 사이에 이것은 신앙 고백의 신조(credo)로 사용되었고, 세례의식에서 고백의 문구로 사용되었다. 

구원받을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조건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공개적 진술과 함께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써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원'을 얻는 데에 두 가지 모두 필수이지만, 굳이 논리적 순서를 따진다면 '믿음'이 '고백'에 우선한다.

 

여기서 '믿으면'으로 번역된 '피스튜세스'(pisteuses)'피스튜오'(pisteuo)의 부정 과거 가정법이다.

특히 여기서 과거의 일회적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시제인 부정 과거형을 사용하여

그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결정적 믿음임을 보여준다. 

이 믿음은 앞에 나온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신앙 고백의 근거가 된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에서 요구되는 믿음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단정짓는데, 이 부활에는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 모두를 믿는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 믿음은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심으로써, 영원한 구원을 보증해 주셨다는 확고한 확신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서약이기도 하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0)  

로마서 10장 10절은 로마서의 주제인 믿음으로 의로움(구원)에 이르는 원리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구절이고 가장 많이 알려진 구절이다. 9절의 말씀이 순서가 바뀌어 서술되고 있고 9절 내용의 반복이다. 

인간 구원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의로움'을 회복하고 내면에서부터 변화되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며, 거기에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일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음으로'로 번역된 '카르디아'(kardia; heart)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흔히 '마음'으로 번역하는 이 단어는 고전 그리스어 문헌에서 인간 전체의 지적, 영적 중심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리스어 구약 성경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히브리어 '레브'(leb) '레바브'(lebab)의 역어로 나온다. 

구약 성경에서도 이러한 단어는 인간의 영적, 지적 생활의 자리, 인간의 내적 본성이며, 책임의 자리를 나타낸다. 따라서 마음에서 나온 것 틀림없이 그 사람 자신의 내면 전체의 인간적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카르디아'(kardia) 하느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자리이며, 그곳에서 맨 처음에 하느님께 순종할 것인지,거부할 것인지의 문제가 결정된다. 그것은 불신앙의 자리도 되고, 신앙의 자리도 되는 것이다.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 믿음은 감상적 충동이나 추상적 사상으로만 인정받을 수 있을 뿐이지 진정한 의미의 믿음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믿음'과 '믿음의 고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10절에서 그 결과로 제시하고 있는 '의로움'과 '구원'은 동일한 의미이다. 

또한 여기서 '믿어'에 해당하는 '피스튜에타이'(pisteuetai)'고백하여'에 해당하는 '호몰로게이타이'(homollogeitai)가  모두  현재 수동태 3인칭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3인칭 단수형은 믿고 고백하는 주체가 각 개인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형이란 사실은 이러한 믿음과 고백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또한 수동태로 되어 있다는 것은 믿음과 고백의 주체가 개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일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개인적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지기보다는 신적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은총의 차원을 드러내고 있다.


[주일복음(다해) 10-10-24] - 연중 제30주일(전교주일)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마태 28,16-20)


<기쁜 소식> 송영진 모세 신부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신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권한’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구원하거나 멸망시킬 수 있는 권한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권한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라는 말은 ‘온 세상’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또 예수님의 통치권의 밖에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라는 말씀은,
“‘밖에’ 있는 사람들을 포섭해서 ‘내 편’으로 만들어라.”가 아니라,
“잃은 양들을 찾아서 회개시키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신앙인으로 변화시켜라.”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본래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우쳐 주는 일이고,
그래서 잃은 자녀를 되찾는 일입니다.


자기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소식 자체가 ‘기쁜 소식’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또는 부모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지금 부모가 애타게 너를 찾고 있다.” 라고 알려주는 일과 같습니다.
당사자에게 그것은 대단히 큰 기쁨을 주는 ‘기쁜 소식’이 됩니다.


복음서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전해 준 ‘기쁜 소식’은
‘메시아 강림’ 소식이었습니다(루카 1,17).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마르 1,15).
사도들이 성령을 받은 뒤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선포한 ‘기쁜 소식’은
“예수님이 곧 메시아이고, 사람들은 그분을 죽였지만 부활하셨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라는 소식이었습니다(사도 2,22-36).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이것을 모두 합해서 생각하면,
‘기쁜 소식’이란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하느님을 위한 일이고,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고, 자기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위한 일이고,
우리가 모두 함께 구원을 받는 일이 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믿음’과 ‘기쁨’입니다.
루카복음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지는 과정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고,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엘리사벳은 즈카르야에게,
즈카르야는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 줍니다(루카 1장).
(그래서 마리아는 루카복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준’
첫 번째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기쁜 소식’을 맨 처음 들은 사람은 즈카르야였는데,
그는 그 소식을 믿지 못해서 말을 못하게 되어버렸고(루카 1,20),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는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지 못했습니다.
즈카르야의 경우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모습을 보면,
‘기쁨’에 가득 찬 모습입니다(루카 1,46-47).
그 모습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곧 ‘기쁨’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선교활동은 나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입니다.)


신앙인은 ‘믿는 사람’이니까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기쁜 소식’을 전하려면 자기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믿음’만 있고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죽는 것이 무서워서 억지로 살고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수 없습니다.
(혹시 전해 준다고 해도,
‘기쁨’ 없이 전해 주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찰 수 있는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충실한 신앙생활 외에 선교활동을 잘하는 비결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만 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만 받기를 희망하면서,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뒤만 따라갈 때, 그때 우리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게 됩니다.
만일에 세속의 헛된 것들에 한눈을 팔면서,
속마음으로 다른 것들을 바라고 있다면,
믿음도 흔들리겠지만, 가장 먼저 신앙생활의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기쁨이 사라지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줄 힘도 사라집니다.
이 말을, “세상을 복음화시키려면 신앙인들이 먼저 복음화되어 있어야 한다.”,
또는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려면 신앙인들이 먼저 밝은 빛이 되어야 한다.”
라고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연중 제29주일 복음 (마태28,16-20)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18ㄴ~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에 해당하는 '파사 엑수시아 엔 우라노 카이 에피 테스 게스'(pasa eksousia en ourano kai epi tes ges;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에서 '하늘과 땅의'로 번역된 '엔 우라노 카이 에피 테스 게스'(en ourano kai tes ges)'하늘 안에 그리고 땅 위에'로 직역되는데,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모든 영역'을 말한다.

그리고 '권한'에 해당하는 '엑수시아'(eksousia)는 신약에서 '권세', '권능', '권리', '힘', '자유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중보자(중재자)로서의 권한'이 강조된다. 또한 '나는 ~받았다'에 해당하는 '에도테 모이'(edothe moi; was given to me)에서 '에도테'(edothe)'주다'는 뜻을 지닌 '디도미'(didomi) 동사의 직설법 부정과거 수동태 3인칭 단수로서 '그것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 동사가 수동태로 쓰인 것은 성부 하느님에 의해 주어진 것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동사가 부정(不定) 과거형으로 쓰인 것은 예수님께서 받은 권한이 단번에 받은 것임을 나타낸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화(강생) 이전에도 성자로서 성부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가지셨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자를 고치시며, 자연계와 영계를 제어하는 권한을 나타내보이기도 하셨다.

러나 그 권한은 신성(神性)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근본적으로 지니셨던 권한에 비하면 제한적이셨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십자가상 구속(대속) 사업을 완수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잠시 성부 하느님께 맡겨 드렸던 본래의 권한을 다시 받아 회복하신 것이다.

그래서 구속 사업과 부활 이후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오직 구속 사업을 완수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행사하기로 하셨다(요한5,20~22.30).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그 권한을 가지고, 마태오 복음 28장 19절에서 제자들에게 선교 명령을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영역인 하느님의 나라는 선교를 통하지 않고서는 확장되고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너희는 가서'로 번역된 '포류텐테스'(poreuthentes; go)복수 2인칭 명령 분사이며, '너희'는 직접적으로 승천 직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을 지칭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사도1,8참조).

그리고 제자로 삼아야 할 대상은 '모든 민족'이다. 여기서 '민족'으로 번역된 '에트네'(ethne)'에트노스'(ethnos; nations)의 목적격 복수로서 제자를 삼는 대상이다. 또'제자로 삼아'에 해당하는 '마테튜사테'(matheteusate; make disciples; teach)'마테튜오'(matheteuo)의 복수 2인칭 명령형 동사이다.

이 동사는 '너희는 가서'에 해당하는 '포류텐테스'(poreuthentes), '세례를 주고'해당하는 '밥티존테스'(baptizontes), '가르쳐'에 해당하는 '디다스콘테스'(didaskontes)세 개의 분사에 둘러싸여 있다.

원문의 뜻은 '제자로 삼는 일''가는 것''세례를 주는 것''가르치는 것'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지상 명령의 궁극적인 핵심을 보여 주는데, '제자로 삼는 일'가장 중요한 중심 주제이며, 나머지는 이에 수반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세례를 주고'에 해당하는 '밥티존테스'(baptizontes; baptizing)현재 분사인데, 현재형이라는 점에서 세례가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데, 세례가 바로 제자로 삼는 수단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밥티존테스'(baptizontes) 기본형인 '밥티조'(baptizo)본래 '담그다'는 뜻을 지닌 '밥토'(bapto)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동사가 '세례를 받다'(사도1,5)는 세례 의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일 때에는 '담그다''씻다'(루카11,38참조)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가 있다.

먼저 이 동사를 '담그다'는 의미로 볼 때, '세례'몸을 물에 담그는 의식을 나타내며, 영적으로 믿는 이들이 세례 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에 함께 참여한다는 뜻이 강조된다(루카12,50; 로마6,3).

또한 이 동사를 '씻다'는 뜻으로 보면, '세례''죄의 씻음', '죄의 용서'라는 의미가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사도2,38; 22,16).

실제로 세례 성사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뜻과 더불어 죄사함의 이중적인 의미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함이 분명하게 계시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삼위일체 하느님 가운데 한 분이심을 명확하게 하셨다.



-* 오늘 나는 배론성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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