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루카 21,5-19)

2016. 11. 13. 오후 1: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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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루카 21,5-19)


말라키 예언자는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을 불살라 버리는 날이 온다며,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고 한다. (말라 3,19-20ㄴ)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바오로 사도는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라고 한다. ( 2테살 3,7-12)
형제 여러분, 7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9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11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12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허물어지고 무서운 일들과 표징이 나타날 것이며, 사람들이 박해할 때가 오리니,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고 하신다.(루카 21,5-19)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제1독서(말라 3,19-20ㄴ)

히브리어 성경에서 말라키서는 열두 소예언서의 마지막 이면서 동시에 예언서 전체의 마지막 책으로 예언서를 마무리한다. 

머리글(1 1)과 부록(3 22-24)을 빼놓고는 동일한 저자의 작품이다'말라'란 이름은 '나의 사자'라는 뜻인데, 3 1절에서 끌어들인 일종의 가명이며,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기원전 539년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배인들은 하카이와 즈카르야의 독려에 힘입어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고(BC520-515) 성전 전례를 완전히 회복하였다 

그러나 두 예언자가 예루살렘 성전의 복구와 연결하였던 이스라엘의 완전 회복에 대한 높은 기대와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백성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가르쳐야 할 사제들이 스스로 제사와 전례규정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았고(말라16-14: 제물의 정성스런 준비), 백성들은 십일조 규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말라3 8-12: 올바른 십일조 봉헌), 이방민족과 통혼하면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기 주체성을 모호하게 했다(말라 2 10-16: 혼혈과 이혼에 대한 경고).

이런 혼돈의 시기에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은 하루 품팔이 노동자들과 과부, 고아와 외국인등의 사회의 소회계층들이었다 (말라 3 5:가난한 이들에 대한 정의 실천). 이들은 지도자들로부터 보호를 못받고 손쉽게 가진자들의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이같은 문제가 기원전 440년경 느헤미야와 에즈라의 대개혁을 거쳐서 정리된다느헤미야이방인 통혼문제를 비롯해(느헤 10 29-31), 십일조 규정의 준수(느헤 10 33.38-39), 규정에 맞는 전례거행 (느헤 10 33-37), 가난한 이의 착취 금지(느헤 5 1-13)촛점을 맞추어 개혁을 진행했다. 

말라기 예언자가 활동한 것은 바로 이 대개혁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이다. 페르시아 황제 연대로 따지면, 크세르크세스1(BC 486-464) 통치 시절이다. 말라기 예언자는 대개혁자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유다에 안정을 회복할 임무를 띠고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다가올 때, 그길을 미리 준비한 셈이다. 

그리고, 최종 저작연대는 열두 소예언서가 완전히 확정될 때인 그리스 시대 초엽으로 보인다말라키서는 머리글과 마지막 세 절의 부록을 제외하고, 신탁 여섯 개로 구성된다 

첫 번째 신탁(말라1 2-5)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다른 민족 위에 아무런 조건 없이 자유롭게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신탁(말라 1 6- 2 9)은 사제들의 타락을 고발한다. 말라키는 아모스를 비롯해 사제들에게 비판적이었던 예언자들의 전통 위에 서 있다. 말라키가 비판하는 사제들의 가장 큰 잘못은 하느님께 값싼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세 번째 신탁(말라 2 10-16)은 두가지 잘못, 이방인들과의 통혼과 이혼을 단죄한다. 단죄의 근거는 주님께서 조상들과 맺은 계약이다. 

네 번째 신탁(말라 2 17-3 5)은 주님의 공정 또는 정의를 선포한다. 공정은 자애와 더불어 하느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다. 그분은 자애로우실 뿐만 아니라 공정하시기에, 이스라엘의 악을 적당히 넘기지 않으신다. 

다섯 번째 신탁(말라3 6-12)은 주님의 한결같은 성실성과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배신을 비교한다. 

여섯 번째 신탁(말라3 13-21)은 주님께 불경하고 거만한자들을 거슬러 의인과 악인을  분명히 판가름할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선언한다. 

거만한 불경자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또는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한다고 말하면서 하느님을 시험한다 (말라3 14-15).

그러나 그날이 오면 주님을 공경하던 자들은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그분의 아낌을 받겠지만, 제멋대로 살던 악인들은 모두 검불처럼 타 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말라 3 16-19) 

오늘 독서의 말씀이 바로 여섯 번째 마지막 신탁의 내용이다. 말라키 예언서의 중심 주제는 계약이다.말라키 2장의 세 가지 계약, 레위의 계약(8), 조상들의 계약(10), 혼인 계약(14)이 언급된다. 

여기서 조상들의 계약은 성조들과의 계약과 시나이 계약을 다 같이 가리킨다. 특히 시나이 계약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단체 계약이요,  구약계약의 핵심이다. 

말라키 3 1절에 나오는 "계약의 사자"시나이 계약의 준수를 촉구하는 예언자를 말한다 

하느님 편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으로 계약을 성실하게 이행하시나, 문제는 이스라엘의 불충이다. 

말라키 예언자는 유다를 짓누르는 국제 정세, 지도자들, 특히 사제들의 도덕적 해이, 약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적 불의에 맞서서, 시나이 계약에 바탕을 둔, 유배 이전의 예언자 전통을논쟁의 무기로 삼았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오히려 이제 우리는 거만한 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한다.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하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다."( 말라3 14-15)

이런 주장에 말라키 예언자는 옛 예언자 전통에 따라 강력하게 응수한다.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정의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계약에 성실하신 정의의 하느님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의인들의 송사를 들어 주시고 악인들의 잘못을 처벌하신다. 현재의 열악한 상황만을 보고 오만하면 큰 잘못이다.

계약이 언제나 유효하다는 것을 믿고,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고, 십일조를 제대로 바치면서, 하느님께 마땅한 공경을 바치는 사람들은, 반드시 주님께서 간직하시는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될 것이다.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다."( 말라 3 20)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영생의 복음적 가치관 대로 살다가, 하느님의 의로움을 살다가 억울한 고통과 수모와 불이익을 겪은 적이 있는가그런 분들과 단체들에게 오늘 말라키의 독서 말씀은 희망과 부활과 명예회복과 승리를 보장해 준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진리와 의 때문에 억울한 고통을 바치는 분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과 희생, 당신께 대한 충성을 제사로 받아들여 주시고, 그 제물을 이 세상의 성화를 위해 쓰시고, 언젠가 명예를 회복시켜 주신다. 

"불의하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는 양심 때문에 그 괴로움을 참아 내면 그것이 바로 은총입니다. ... 그러나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1베드 2 19.20절ㄴ.21절ㄱ)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복음(루카 21,5-19)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들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곳이다."(5~6)

 

마태오 복음 21장 5~19절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종말의 여러 징조들, 그리고 대박해에 대한 성도의 자세에 관한 교훈이 들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언을 하신 후, 그 일이 언제 일어나는지

그 때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하시고, 대신에 전쟁, 반란,

민족분쟁, 지진, 기근, 전염병, 천체의 큰 표징 등의 종말론적인 징조들

(Eschatological Signs)을 언급하신다.

 

그 다음 예수님께서는 대박해를 겪어야 할 성도의 자세를 교훈하신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예언 성취의 시기를 알고 싶어하는 제자들에게

예언이 성취될 때에 가져야 할 바른 자세에로 관심의 방향을 전환시키신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더불어 종말의 징조들이 복합적으로 예언됨으로써,

대박해를 겪어야 할 자세에 대한 교훈은 당시 제자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종말의 시기를 살아갈 성도들에게도 확대되고 있다.

 

마태오 복음 21장 5절~19절까지는 성주간의 올리브산 설교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마태오 복음 24장과 25장 및 마르코 복음 13장과 병행을 이루며,

예루살렘 성전 파괴 및 종말과 그리스도 재림에 관계된 예언들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에 '소묵시록'(Little Apocalypse)이라는 별명이 불려지기도 한다.

 

그중에 21장 5절과 6절은 올리브산 설교가 주어진 동기가 되는

예루살렘 성전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이 성전 멸망에 대한 예언은 일차적으로 A.D.70년에 발생할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예언을 성전 안에 계시다가 성전 밖으로 나오실 때

주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마태 24,1; 마르 13,1), 루카 복음사가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계속적으로 머무르시면서 주신 것처럼 묘사한다.

 

루카 복음사가 성전에서 나갔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또한

몇몇 사람이 구체적으로 가리키며 질문한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

성전 내부에서 자세하게 볼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수 있다.

 

루카 복음사가가 이렇게 다르게 기록한 것은, 지금까지 성전 안에서 행해진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들과 치열한 논쟁의 절정으로써 성전 멸망을 다룸으로써,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맞이할 최후의 심판을 보다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대교의 구심점이 되는 성전이 붕괴된다는 것동물의 희생을 통한

구약의 제사의 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단 한 번 흘리신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뜻과 더불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가진

잘못된 신앙에 대한 심판적인 의미도 가진다.

 

그리고 루카 복음 사가는 장소적 이동보다는 등장 인물들의 시선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 시킴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진정으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성전의 화려한 외적인 아름다움과 같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신앙이 아니라, 가난한 과부의 두 렙톤과 같은

경건한 믿음을 소유한 자들의 진실된 신앙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한편, 루카복음 21장 5절의 '아름다운 돌'로 변역된 '리토이스 칼로이스'(lithois kalois;

beautiful stones)성전을 건축할 때 사용된 희고 큰 대리석을 말한다.

이 돌은 주로 성전의 기초와 기둥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자원 예물'로 번역된 '아나테마신'(anathemasin; gifts dedicated to God)

원형 '아나테마'(anathema)'아나티테미'(anatithemi)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성전에 바쳐진 물건', '봉헌된 제물'을 가리킨다.

 

이 자원 예물들은 임금이나 지도층에 있는 부유한 사람들이 성전에 바친

물건으로서 성전을 장식하고 전시하는 데 사용된 물건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름답게 장식된 성전이 아니라

영과 진리안에서 영이신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었다(요한 4, 20~24).

 

루카 복음 21장 6절의 '때가 올 것이다'에 해당하는 '엘류손타이 헤메라이'

(eleusontai hemerai; the days will come)에서 '때', '날'로 번역된 '헤메라이'

(hemerai; the days; the time) 어떤 특정한 목적에 따라 예비된 날로서

바로 하느님의 진노가 현실 가운데 드러나는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A.D. 70년 로마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토(Titus)가 이끄는 부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성전이 화염에 휩싸여 전소될 때를, 4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예지 능력으로 미리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라는 표현은 철저한 파괴와

멸망에 대한 예언인데, 루가 복음 사가는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 사가에 비해서

성전 파괴가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는 오해를 막기위해서 성전 파괴를

마지막 날들에 일어날 많은 종말적인 사건들 중 하나로만 기록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승천 직후에,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에

바로 이 세상의 종말이 있을 것으로 여기고,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것을 기다렸다.

 

루카 복음 사가이러한 당시 사람들의 상황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사람의 아들'(인자;人子)의 도래를 분명하게 구분함으로써,

재림의 자연이 예수님의 예언과 결코 모순되지 않음을 밝히며, 또한 인내심으로 기다리라는 권고를 하고 있다(루카21,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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