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요한 1,1-18)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다며, 땅끝들이 모두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고 한다.(이사야 52,7-10)
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게 말하는구나.
8 들어 보아라. 너의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다 함께 환성을 올린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심을,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다.
9 예루살렘의 폐허들아, 다 함께 기뻐하며 환성을 올려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다. 10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시니, 땅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히브리서 저자는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히브리 1,1-6)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6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는데, 그분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으로,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고 요한 사도는 말한다.(요한 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제1독서(이사52,7-10)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서 말하는구나." (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문자적으로 '그 산들 위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는 의미가 된다.
발은 신체의 지체 중에서 아름답지 못한 부분으로 간주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발이 아름답다고 표현되는 것은 그 발을 통해서 아름다운 하느님의 구원의 소식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본문에서 '산'에 해당하는 '헤하림'(heharim; the mountains)은 복수로서 '그 산들'이라는 의미이므로, 여기서 그 발은 여러 봉우리의 산들 위에 서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위에'로 번역된 '알'(al)은 전치사로서, 본문은 발이 산을 넘는 동작을 강조하기보다 산 위에 굳게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How beautiful upon the mountains are the feet of him' 의 뜻이다. 즉 원문은 복음 선포자가 높은 곳에 올라 거기에서 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것은 이사야서 40장 9절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하고 말하여라." 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라고 한 표현과 유사하다.
그리고 본문은 궁극적으로 사탄의 세력에 포로된 자들에게 영적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음 선포자들의 활동을 칭송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을 인용한 사도 바오로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로마10,15).
이사야서 52장 7절은 주님의 승리를 전달하는 전령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앞선 이사야서 40장 9절과 41장 27절과 유사하게 되어 있다. 본절은 원문상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에 해당하는 구절이 맨 앞에 위치해 강조되고 있으며, 그 이하를 다섯 개의 분사 구문이 뒤따르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 다섯 개의 분사는 모두 남성 단수로서, '발'에 해당하는 '라글레'(laglle; are the feet of)라는 단어를 수식하고 있다.
즉 그 발은 첫째,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이며 둘째, 평화를 선포하는 발이며 셋째,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이며 넷째, 구원을 선포하는 발이며 다섯째, 시온에서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너의 하느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사실을 전하는 발이다.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하는'에 해당하는 '메밧세르'(mebasser; those who bring goods news)의 원형 '빠사르'(basar)는 주로 전쟁과 관련하여 전령이 승전 소식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2사무18,19.26.31).
여기에서는 일차적으로, 바빌론 압제하의 이스라엘 자손이 해방되어 곧 시온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것을 의미하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된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때 천사는 베들레헴 근처의 목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라고 선언하였는데, 이것은 본문 내용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루카2,10).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소식 가운데서 그리스도 탄생보다 더 기쁜 소식도 없다. 그 사건은 인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영원한 죽음과 멸망의 문제를 해결하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확대하여 말하자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사업을 바탕으로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 놓여진 인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70인역(LXX)에서는 이 단어를 '복음을 전하다'는 의미를 갖는 희랍어 '유앙겔리조'(euangellizo)의 분사형으로 번역하여 이런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평화를 선포하고'에서 '평화'에 해당하는 '샬롬'(shallom)은 기본적으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할 뿐 아니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영육간의 복지(well-being)의 상태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본절의 세번째 분사 구문인 '기쁜 소식을 전하며'에 해당하는 '메밧세르 토브'(mebasser tob)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으로 번역된 첫번째 분사 '메밧세르'(mebasser)의 내용을 강화하는 문장이다.
즉 '기쁜', '좋은', '선한', '아름다운'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토브'(tob)란 표현을 첨가해서 동일한 표현을 다시 반복하여 매우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번째 분사 구문인 '구원을 선포하는구나'라는 표현은 '복된 기쁜 소식'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물론 일차적으로 바빌론의 압제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한 죄와 죽음과 사탄에게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서 '구원을'에 해당하는 '예슈아'(yeshuah; salvation)가 주님의 이름 '예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마태1,21).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하고 시온에서 말하는구나'
여기서 '임금님이시다'에 해당하는 '말라크'(mallak; reigns)는 '통치하신다'는 뜻으로 왕의 지배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바빌론의 포로로서 잔혹한 바빌론의 군주에게 다스림을 받아왔는데, 이제 그 압제에서 벗어날 것이며,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 되어 이들을 다스리신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배의 근본 원인은 하느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불신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하느님께서 통치하신다는 본문은 가장 근원적인 측면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회복하게 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은 보다 궁극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게 되는 비참한 인생을 해방시켜서(로마5,14; 8,2)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과 가족(자녀)이 되게 하심(에페2,19)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기쁨이 넘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해마다 태어나시는 이유가 우리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오늘 복음처럼 우리도 온갖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과는 달리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 만큼 때로 황량한 사막에 들어온 느낌마저 들지요. 사막과도 같은 세상에서 영적인 물을 퍼 올려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늘 함께 계시려고 새롭게 태어나셨습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평화와 기쁨은 내 힘만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라 하겠습니다.
아울러 성탄은 이웃을 향한 의무의 시기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나와 함께 계시듯이, 나 역시 혼자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 사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