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일]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요한 21,1-19)

2016. 4. 10. 오전 8: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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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3주일]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요한 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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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는 지시를 어겼다며 신문을 당하지만, 하느님께 순종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한다.(행전 5,27ㄴ-32.40ㄴ-41)
그 무렵 대사제가 사도들을 27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사도들에게 40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시편 30(29),2와 4.5-6.11-12ㄱ과 13ㄴ(◎ 2ㄱㄴ 참조)
◎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당신은 저를 구하시어, 원수들이 저를 보고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주님, 당신이 제 목숨 저승에서 건지시고, 구렁에 떨어지지 않게 살리셨나이다. ◎
○ 주님께 충실한 이들아,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그분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이니, 울음으로 한밤을 지새워도, 기쁨으로 아침을 맞이하리라. ◎
○ “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구원자 되어 주소서.” 당신은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니, 주 하느님, 영원히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      

요한은,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다며 천사들이 찬미를 드리는 장엄한 광경을 묘사한다.(묵시록 5,11-14)
나 요한은 11 어좌와 생물들과 원로들을 에워싼 많은 천사들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백만 수억만이었습니다.
12 그들이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13 그리고 나는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 그 모든 곳에 있는 만물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14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화답하고 원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고기잡이 이적을 보이시고,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을 물으신 뒤 당신 양들을 돌보라고 말씀하신다. (요한 21,1-19)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부활 제3주일 제1독서 (사도5,27ㄴ-32.40ㄴ-4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31~32)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목적이 여러 가지 결과를 가져오는데 그 결과 가운데 이스라엘의 회개와 죄의 용서를 받게 하는 것도 포함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본문에 나오는 '받게 하시려고' 번역된 '두나이'(dunai)란 부정사를 목적이 아닌 결과의 의미로 해석할 때 그렇게 된다. 이러한 번역이 문맥과 더 잘 어울린다. 

그리고 당시 베드로는 유대인 지도자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회의에서 이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구속 사업의 효력이 전체 인류에게 미치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유대인에게 국한시켜 말했다고 볼 수 있다. 

원문에는 '그분을'로 번역된 '투톤'(tuton)이 본절의 맨 처음에 나온다. 이것은 '투톤'으로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 강조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그분을 하느님께서 영도자(왕; 아르케곤 archegon)와 구원자(구세주; 소테라 sotera)로 높이셨다'이다.

이처럼 본문에서 '그(분)'을 강조적으로 문장 맨 처음에 위치시킨 목적앞절에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분을 나무에 매달아 죽여 저주할 자로 여긴 것과 대조하여 바로 그분을 하느님께서 오히려 왕과 구세주로 높이신 것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대조는 원문에서 문장의 주어로서 '하느님'(호 테오스)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앞절의 서두에 '호 테오스'(ho theos)가 나와 있기 때문에 본절에서 생략될 수 있지만 여기서 다시 언급함으로써, 강조적으로 쓰인 '하느님'은 앞절에서 예수님을 죽인 자들을 가리키고 있는 '너희'(휘메이스; hymeis)와 대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하느님을 예수님을 저주할 자로 여겨 죽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대조함으로써 그들에게 죽임당한 예수님을 왕과 구세주로 높인 분이 바로 하느님 당신 자신임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을 왕과 구세주로 높이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및 하느님 옥좌 오른편에 앉히심을 가리킨다(필리2,9~11).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며 유일한 구세주이심이 성부 하느님에 의하여 인정된 것이다.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31)

시편 110장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 이것은 본문이 승천의 방향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여겨지게 한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에서는 '테 덱시아'(te dexia)가 도구, 수단의 여격이므로 문법적으로 볼 때는 '오른손으로' 번역하여 승천의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히브리 개념에서 오른손은 능력 말한다. 

즉 사도행전 2장 33절에도 나오지만, 하느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당신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시고 하늘로 올리신 것을 상징적인 표현 방법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탈출5,6; 89,14).

한편 '들어 올리시어'라는 표현은 지상에서 천국으로의 장소적 이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보다는 육신을 입으셨던 그리스도께서 부활과 승천을 통해 다시 영광스러워지셨다는 신분적 이동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필리2,9-11). 

한편 사도행전 5장 32절은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마지막 지상 명령인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1,8)는 말씀을 잘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에서 '일'로 번역된 '레마톤'(rematon)의 원형 '레마'(rema)는 대부분 '말씀'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단어가 히브리어적인 어법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따바르'(dabar)처럼 '일','사건' 가리키게 되는데, 새 성경을 포함하여 여러 영역본들도 본문에서 이러한 관점으로 이 단어를 해석하였다. 

이렇게 볼 경우 이 단어는 앞절에서 진술하고 있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과 구세주로 높이신 사건들을 가리키게 된다. 따라서 사도들은 바로 이 '사건의 증인' 되는 것이다.

그러나 '레마'(rema)는 신약 성경에서 대부분 '말씀'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본문에서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의 '레마'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과 구세주로 높이신 일에 관한 '설교','말씀'을 가리키게 된다. 이렇게 보면 여기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의 증인' 된다. 

그러나 '레마' 어떻게 해석되든지 변함없는 사실은 사도들의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께서 왕과 구세주로 삼으셨다는 사실에 있다. 

이 말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증인이며,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편에 있는 합당한 증인으로서 자신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이처럼 대사제의 권위도 두려워하지 않는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바로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써 증인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하여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성령을 받았으므로, 그 어떤 위협 앞에서도 위축되거나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성령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로 하여금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복음의 당당한 증인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이다. 





<예수님과 베드로> 송영진 모세 신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이나 물으신 것은 그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 사도의 잘못을 계속 마음에 담고 있다가 추궁하신 일은 아니고, 그를 용서하기 위해서, 또 그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지으면, 죄 지은 사람 자신에게도 상처가 남습니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약은 '사랑'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


예수님께서 당신이 지어 주신 이름인 '베드로'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그의 원래 이름인 '시몬'을 사용하신 것은,
그가 처음에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뜻일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좀 더 인간적으로 친밀하게 부르신 것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 됩니다.)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말씀에서
'이들보다 더' 라는 말은,
사도단 안에서 베드로 사도의 위치가 그만큼 특별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더 큰 책임을 맡은 사람은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사도들보다 베드로 사도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은 아니고,
베드로 사도 쪽에서 갖춰야 할 마음 자세를 강조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편애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 말씀 앞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 라는 말씀을 넣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도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 사도의 '예수님 사랑'은 받은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너를 용서하겠다."가 아니라,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너를 사랑하고 있고, 이미 너를 용서하였다.
너도 나를 사랑하여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신 것은
아마도 그에게 믿음을(확신을) 주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큰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고, 또 이미 용서받았다는 확신.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나는 너를 사랑하고, 용서한다." 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고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신 것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되고,
능동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 사랑합니다." 라고 단순하게 대답하지 않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라고 대답한 것은
자기 자신을 낮춘 것입니다.
즉 그의 겸손을 나타냅니다.
(다 아시면서 왜 물어보시느냐는 말대꾸가 아닙니다.)
이 말에, "제가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주님을 부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님께서 알고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은
겁에 질려서 엉겁결에 한 행동이었습니다.
믿음을 잃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도 아닙니다.
"겁에 질렸다는 것은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라고 반박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도들의 믿음은 부활 전과 부활 후가 달랐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수난 당시에는 아직 사도들에게는 부활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믿음이 부족해서 겁에 질린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라는 말씀은,
베드로 사도의 임무를 다시 확인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로 바꿔 주셨고,
또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고,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셨습니다(마태 16,18-19).
예수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라는 말씀을 통해서

그가 여전히 반석이라는 것을,
또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빼앗았다가 다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가 당신을 부인하는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반석으로 삼으신 일과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신 일을 취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를 믿으신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를 믿으셨으니까 그에게 당신의 앙들을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믿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항상 우리 쪽에서 예수님을 믿는 일만 생각하면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믿고 계실까, 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요한 2,23-24)."
신앙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예수님께서 믿어주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어 주실 수 있도록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라는 말씀에서
'어린 양들'은 전체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를 전체 교회의 최고 목자로 임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베드로 사도를 첫 번째 교황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말씀 때문입니다.
일부 종파에서는 이것에 대해서 시비를 걸기도 하고,
베드로 사도의 자격에 대해서 시비를 걸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일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자격은 이미 예수님께서 확인하신 일입니다.




 photo169.jpg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 예수님께 사랑받던 제자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랑받던 제자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요한 사도라고 알려졌지요.
복음을 보면 호숫가에 서 계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맨 처음 알아본 사람은 사랑받던 제자인 요한 사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먼저 간 제자는 베드로입니다. 또한, 나머지 제자들이 고기가 가득 찬 그물을 끌고 나왔을 때, 그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린 사람도 베드로였지요.
여기서 베드로가 늘 앞에 나섬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가 수위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법과 질서를 지키고자 권위는 베드로에게 집중된 것입니다. 반면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는 요한 사도가 늘 나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법과 질서를 상징하고, 요한은 사랑을 상징한다 하겠습니다.
법과 질서가 없는 사랑은 자기중심적이고 애덕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반면 사랑이 없는 법은 형식에 흐르며 사람을 질식시키지요. 오늘날에도 법의 정신은 외면한 채 그저 법 자체에만 매달리는 일이 있지요.
우리는 법이나 질서를 찾는다고 사랑을 외면해서는 안 되고, 사랑을 찾는다고 법과 질서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 내용이라면 법은 그릇에 비유할 수 있지요. 따라서 이 두 가지, 법과 사랑을 공존시킬 때 진정 우리의 삶은 더욱 의미 있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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