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사순 제1주일]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루카 4,1-13)

2016. 2. 14. 오전 5:36:01

글자


 

[(자) 사순 제1주일]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루카 4,1-13)

악마로부터 유혹을받으신 예수님.jpg

늘은 사순 제1주일입니다.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장면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악마에게 맞서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기라고 가르치신 대로, 사순 시기를 맞은 우리도 한 분이신 주님만을 바라보며 우리의 신앙을 가다듬어야 하겠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요르단 강을 건너 그 땅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지시한다. 하느님께서 주신 땅에 들어가 추수를 하게 되면, 자기들을 구원하시고 온갖 좋은 것을 베풀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신명기 26,4-1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4 “사제가 너희 손에서 광주리를 받아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5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6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저희에게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7 그래서 저희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저희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희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저희가 억압당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8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9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10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드려야 한다.”


시편 91(90),1-2.10-11.12-13.14-15(◎ 15ㄴ 참조)
◎ 주님, 환난 가운데 저와 함께 계시옵소서.
○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아래 사는 이,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안에 머무는 이, 주님께 아뢰어라. “나의 피신처, 나의 산성, 나의 하느님, 나 그분께 의지하네.” ◎
○ 너에게는 불행이 다가오지 않고, 네 천막에는 재앙이 얼씬도 못하리라. 그분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가 가는 모든 길을 지켜 주시리라. ◎
○ 행여 네 발이 돌부리에 차일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너는 독사와 살모사 위를 거닐고, 힘센 사자와 이무기를 짓밟으리라. ◎
○ 그가 나를 따르기에 나 그를 구하여 주고, 내 이름 알기에 나 그를 들어 높이리라. 그가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환난 가운데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며, 그를 해방시켜 영예롭게 하리라. ◎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며 부활하셨음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선포한다.(로마 10,8-13)
형제 여러분, 성경에서 8 의로움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다음, 광야에 가시어 유혹을 받으신다. 이집트 탈출 때에 광야에서 하느님을 의심하면서 믿음이 흔들렸던 이스라엘과는 달리,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악마를 물리치신다.(루카 4,1-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만나의 기적

사순 제1주일 제1독서 (신명26,4-10)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드려야 한다."(8-10)

신명기 26장 8절이스라엘의 출애굽이 그들의 힘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전능하신 초자연적 역사로 가능했음을 다섯 가지 표현을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강한 손', '뻗은 팔', '큰 공포', '표징', '기적' 과 같은 생생한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역사(役事)에 큰 감동을 받았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신명기 26장 8절에서 '공포'로 번역된 '베모라'(bemora)'~로써'라는 의미를 가진 수단의 전치사 '뻬'(be)와 '두려워하다'란 의미의 '야라'(yara)동사에서 파생한 명사 '모라'(mora)가 합하여진 말이다. 따라서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그리고 큰 두려움으로써' 라고 할 수 있다.

이 단어는 본문에서 하느님의 표징과 기적과 대등한 표현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또한 이 단어가 모세가 이집트에서 행한 표징에 대해서도 사용된 것을 볼 때에도, 두려움을 일으킬 만한 하느님의 주권적인 행사나 표징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신명34,12).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여기서 '저희를 ~이끌어 내셨습니다'로 번역된 '와요치에누'(wayotsienu)'와우'(wau) 접속사와 '밖으로 나가다' 란 의미를 가진 '야차'(yatsa)동사의 사역형 미완료에 1인칭 복수 접미어가 합하여진 말이다.

따라서 다시 번역하면 '그리고 그가 저희를(우리를)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로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인도하심은 당신 백성을 세상의 노예된 상태에서 밖으로 끌어내어 당신에게로 향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은 과거에 머물던 세상과 현재의 세상을 뚜렷이 분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지녔던 옛 모습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인도해주신 새로운 세상에서 새 모습을 입고 구원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낳게 한다. 

'그리고 저희를 이곳을 데리고 오시어' 여기서 '그리고 저희를 ~ 데리고 오시어'로 번역된 '와예비에누'(wayebienu)는  '와우'(wau) 접속사와 '오다'는 의미인 '뽀'(bo)의 사역형 미완료에 3인칭 단수 주격 접미어 및  1인칭 복수 목적격 접미어가 합하여진 말이다. 이것을 번역하면 '그리고 그가 저희를(우리를) 오게 하였다' 이다. 

여기서 '와우' 계속법이 의미하는 것은 신명기 26장 8절에서 하느님께서 표징과 기적과 큰 공포와 강한 구원의 역사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밖으로 끌어낸 목적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오게 하려는 것이었음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새 성경은 신명기 26장 8절과 9절에 사용된 주동사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와  '데리고 오시어'로 번역했는데, 원문도 '밖으로 나오게 하다'와 '오게하다'구별된 단어를 사용하여 분명한 의지를 드러낸다. 하느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구체적인 모습과 그 목적을 확연히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이제'로 번역된 '앗타'(atha)란 말 뒤에는 '보라'는 의미를 가지는 '힌네'(hinne)가 따라나왔다. 따라서 '앗타 힌네'(atha hinne)'이제 보십시오'로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주님께 경배드리는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느님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저희가 ~ 가져왔습니다'로 번역된 '헤베티'(hebethi)는 '오다'라는 뜻의 '뽀'(bo)동사의  사역형 완료 1인칭으로서, 문자적으로는 '내가 인도하였나이다' 이다. 이 동사 '헤베티'의 어근신명기 26장 9절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으로 오게 할 때 사용된 단어 '와예비에누'(wayebienu)의 어근과 동일하다.

이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열매(수확의 맏물)을 하느님 대전에 가져오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구원하신 것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신 은혜를 철저하게 기억하며, 감사드리는 가운데 보답하는 성실한 반응이다.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드려야 한다.' '너희는 ~경배드려야 한다'로 번역된 '웨히솃타하위타'(wehishethahawitha)에서 원형은 '구푸리다'는 의미의 '샤하'(shaha)이지만, 본문에서는 '샤하'(shaha)의 재귀형 완료 2인칭으로 쓰였으므로, '너는 스스로 몸을 엎드려야 한다'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동사의 실례를 살펴보면, 약자가 자신보다 강한 자 앞에서 스스로 엎드리는 문맥에서 사용되거나 (창세37,9; 1사무24,8; 2사무9,8), 사람이 하느님 혹은 다른 신에게 경배하는 문맥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여호23,16; 1열왕9,6; 2열왕5,18; 19,37).

경배는 상대의 주권적 명령에 대하여 철저히 순종하며, 그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 대전에 이와 같은 자세를 가지는 것은 하느님의 주권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적으로 하느님을 높이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경배가 수확의 맏물(첫 열매)을 드리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의 경배는 특별히 그 열매를 하느님께 드린 것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대축일(삼위일체론의 신학적 기점)Jesus Joy of Mans Desiring

 사순 제1주일 제2독서 (로마10,8-13)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9-10)

로마서 10장 9절과 10절은 믿음의 의로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거듭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입술의 고백 마음의 믿음이다. '고백하고'로 번역된 '호몰로게세스'(homollogeses)의 원형 '호몰레게오'(homollogeo; confess)'함께', '동시에'란 뜻을 지닌 '호무'(homu)'말함' 이란 뜻이 있는 '로고스'(logo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문자적으로는 '함께 말하다', '동시에 말하다'라는 뜻이 있고, 실제로는 주로 법정 서약약속 혹은 고백 행위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이러한 고백은 공개적 성격을 갖는다.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서원하다'라는 뜻의 '나다르'(nadar), '맹세하다' 라는 뜻의 '샤바'(shaba)등의 역어로 나타난다.  사도 바오로는 '호몰레게오'(homollogeo)'공개적으로 고백 또는 진술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9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공적으로 고백하고 진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고백이 가지는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주님'으로 번역된 '퀴리오스'(kyrios)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퀴리오스'(kyrios)일반적 경칭으로 영어의 'Sir'이나 독일어의 'Herr' 의 의미가 있다. 로마 황제의 일반적 호칭이었다. 즉 황제를 신으로 여기고 숭배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③ 그리스 신들의 이름 앞에 붙여, 인간과 다른 영역에 있는 신을 나타낸다.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어 70인역(LXX)에서 하느님의 명칭인 야훼의 역어로 사용되어 유일신을 지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누가 예수님을 '퀴리오스'(kyrios)라고 공적으로 진술한다면, 그는 예수님을 황제, 더 나아가 신적 존재 혹은 유일신 야훼와 동일시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자신의 삶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그분께 드리는 것이 된다. 즉 이러한 칭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 주권(主權)을 인정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유일한 구세주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예수님을 주님을 고백하는 것은 믿음의 시금석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Dominus)로 시인할 때, 우리는 그분의 신성(神聖)과 존귀하심, 그리고 믿는 자 자신이 그분께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 사이에 이것은 신앙 고백의 신조(credo)로 사용되었고, 세례의식에서 고백의 문구로 사용되었다.

구원받을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조건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공개적 진술과 함께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써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원'을 얻는 데에 두 가지 모두 필수이지만, 굳이 논리적 순서를 따진다면 '믿음'이 '고백'에 우선한다.

여기서 '믿으면'으로 번역된 '피스튜세스'(pisteuses)'피스튜오'(pisteuo)의 부정 과거 가정법이다. 특히 여기서 과거의 일회적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시제인 부정 과거형을 사용하여 그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결정적 믿음임을 보여준다. 이 믿음은 앞에 나온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신앙 고백의 근거가 된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에서 요구되는 믿음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단정짓는데, 이 부활에는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 모두를 믿는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 믿음은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심으로써, 영원한 구원을 보증해 주셨다는 확고한 확신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서약이기도 하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0) 로마서 10장 10절은 로마서의 주제인 믿음으로 의로움(구원)에 이르는 원리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구절이고 가장 많이 알려진 구절이다. 9절의 말씀이 순서가 바뀌어 서술되고 있고 9절 내용의 반복이다.

인간 구원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의로움'을 회복하고 내면에서부터 변화되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며, 거기에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일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음으로'로 번역된 '카르디아'(kardia; heart)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흔히 '마음'으로 번역하는 이 단어는 고전 그리스어 문헌에서 인간 전체의 지적, 영적 중심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리스어 구약 성경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히브리어 '레브'(leb) '레바브'(lebab)의 역어로 나온다. 구약 성경에서도 이러한 단어는 인간의 영적, 지적 생활의 자리, 곧 인간의 내적 본성이며, 책임의 자리를 나타낸다. 따라서 마음에서 나온 것 틀림없이 그 사람 자신의 내면 전체의 인간적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카르디아'(kardia) 하느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자리이며, 그곳에서 맨 처음에 하느님께 순종할 것인지,거부할 것인지의 문제가 결정된다. 그것은 불신앙의 자리도 되고, 신앙의 자리도 되는 것이다.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 믿음은 감상적 충동이나 추상적 사상으로만 인정받을 수 있을 뿐이지 진정한 의미의 믿음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믿음'과 '믿음의 고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10절에서 그 결과로 제시하고 있는 '의로움'과 '구원'은 동일한 의미이다.

또한 여기서 '믿어'에 해당하는 '피스튜에타이'(pisteuetai)'고백하여'에 해당하는 '호몰로게이타이'(homollogeitai)가  모두  현재 수동태 3인칭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3인칭 단수형은 믿고 고백하는 주체가 각 개인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형이란 사실은 이러한 믿음과 고백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또한 수동태로 되어 있다는 것은 믿음과 고백의 주체가 개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일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개인적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지기보다는 신적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은총의 차원을 드러내고 있다.


광야에서의 유혹.jpg

<유혹>송영진 모세 신부


악마가 예수님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라고 유혹하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유혹을 물리치십니다(루카 4,3-4).


악마의 첫 번째 유혹은, '빵의 기적' 후에 계속해서 빵을 배불리 먹는 것만을 바라면서 예수님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에 연결됩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
그 사람들의 모습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복'만 기원하면서 예수님을 찾는 오늘날의 일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신앙을 기복신앙이라고 부르는데, 기복신앙은 사실 신앙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그런 '복'을 약속하는 종교는 사이비 종교입니다.
메시아라고 자칭하면서 그런 '복'을 약속하는 사람은 거짓 메시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악마가 가리킨 '돌'은 '썩어 없어질 허무한 것'입니다. 그 돌로 빵을 만든다고 해도 그 빵도 역시 '썩어 없어질 허무한 것'이 될 뿐입니다.
예수님은 '허무한 것'으로 '허무한 것'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려고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주시려고 오신 분입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평화, 영원한 행복...)


악마가 예수님께 세상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면서,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라고 유혹하자,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유혹을 물리치십니다(루카 4,5-8).


악마의 두 번째 유혹은, 자신이 하는 일을 세상에 널리 알리라고 예수님께 권했던 예수님의 형제들의 말에 연결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곳을 떠나 유다로 가서, 하시는 일들을 제자들도 보게 하십시오.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남몰래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일들을 할 바에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십시오(요한 7,3-4)."


요한복음서 저자는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요한 6,5).(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 말은 세속적인 명성과 인기를 추구하라는 뜻으로 해석되고, 사실상 악마가 한 말과 같은 유혹입니다.


악마에게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세상의 권세와 영광과 명성과 인기만 추구하는 것은 악마에게 경배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더라도,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세속적인 명성과 인기를 얻게 되는 일이 생겼을 때, 그 명성과 인기에 취해서 그 끝이 나쁘게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마가 다시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라고 유혹하자,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에 성경에 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유혹을 물리치십니다(루카 4,9-12).


악마의 세 번째 유혹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사제들이 했던 말에 바로 연결됩니다.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마태 27,53)."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악마에게 증명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이 당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악마에게 증명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또 악마에게는 그것을 증명하라고 하느님께나 예수님께 요구할 권한이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완전히 일치되어 있는 분이시고,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이기 때문에(요한 10,30), 예수님의 믿음을 시험하는 악마의 유혹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또 하느님께서 예수님이 당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실 이유도 없습니다.


하느님을 시험하면 안 된다는 말씀은, "믿음이란 시험하지 않는 것", "믿음이란 '그냥' 믿는 것"이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시험하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하느님(예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냥 믿으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시험하려고만 합니다.


악마의 유혹은 사실 일회성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되풀이했던 일입니다. (악마가 안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계속 유혹했을 것입니다.)
그런 직접적인 유혹뿐만 아니라 좋은 뜻으로 하는 권고나 충고도 유혹이 될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베드로 사도의 경우가 그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걱정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을 말렸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사탄의 유혹이 되어버렸습니다(마태 16,21-23).


예수님께서도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다고 해서 우리는 우리가 유혹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방심하면 안 됩니다.
"악마는 예수님을 유혹할 정도로 악랄한 존재다. 그러니 우리를 얼마나 더 심하게 유혹할 것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유혹을 받았을 때 첫 번째로 할 일은, 또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백전백패입니다(마르 9,29).



광야에서의 유혹.jpg 오늘의 묵상

언젠가 어려운 과목을 강의하던 신부님이 학생들에게 그 내용을 이해했는지 물으시며,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나중에 보면 알겠지.”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 나중은 시험 시기였습니다. 아마도 시험이 없다면 학생이 과연 그 내용을 파악했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혹과 시련을 겪는 순간에는 지금 드리는 이 말씀이 너무 매정하고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분명 유혹은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고 성장시켜 줍니다. 아무런 유혹이 없다면 신앙이 있는지 여부를 제대로 알 수는 없겠지요. 사람들 사이에서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위험한 순간이 닥쳐오면 얼마나 쉽게 그 믿음을 포기하는지 …….

하느님만 신뢰하며 의지한다고 장담하던 사람도, 막상 어려운 유혹과 시련의 때가 오면 악마가 제시하는 빵과 권세와 영광의 유혹에 아주 쉽게 넘어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약점이며 한계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 시기는, 그들의 신앙이 시험받는 때였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그들은 모든 것이 불편하고 척박한 광야에서의 자유보다는, 노예근성에 젖어 종살이하던 이집트의 음식을 더 그리워하며 울부짖었고, 더욱이 시련이 닥쳐오면 하느님의 약속마저 의심했습니다.

예수님께도 광야 시기가 있었는데, 그 광야에서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의 말씀들을 인용하시면서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광야는 있습니다. 믿음 없이는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광야들이, 어느 순간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서 우리를 위협하기도 할 것입니다. 칠흑같이 어둡고 질식할 정도로 꽉 막히고 암울한 광야 시기에도,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끝까지 고백할 수 있는 은총과 믿음을 더해 주시도록 간청합시다.


사탄의 유혹, 12세기, 모자이크, 성마르코 대성당, 베네치아, 이태.jpg

사탄의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 12세기, 모자이크, 성 마르코 대성당, 베네치아, 이태리


  <사순제1주일>

우리는 지난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두 기둥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4주간 대림시기를 통해서 준비합니다. 세상의 주인께서 오심을 묵상하고, 깨어 기다릴 것을 교회는 대림시기를 통해서 권고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의 수난, 십자가와 죽음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사순시기를 통해서 우리들 역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고자 40일 동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순시기에 교회는 희생, 기도, 단식, 나눔, 봉사를 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또한 이번 사순시기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신앙은 믿음입니다. 믿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나면 소리를 치기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와서 늑대를 쫓아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심심했던 양치기 소년은 거짓으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였습니다. 늑대가 없는 것을 알고는 돌아갔습니다. 며칠 후에 소년은 또 심심했고, 장난을 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을 사람들은 모였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며칠 후에 이번에는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소년은 소리를 쳤고,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도 거짓이라고 생각을 해서 모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믿음의 가장 커다란 적은 거짓말임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목욕탕엘 갔습니다. 아버지는 뜨거운 물에 들어가시면서 시원하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어린 아들은 정말 시원하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탕에 들어간 아들은 뜨거운 물에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뜨거운 물이 시원하게 느껴졌지만 아직 어린 아들에게는 뜨거운 물은 뜨거운 물일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솝우화의 이야기를 읽었던 나이는 지났습니다.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서 시원하다.’고 느낄 나이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양치기 소년은 단순하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누구의 잘못인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빠와 어린 아들의 이야기도 우리는 재미있게 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과 북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것은 개성공단의 문제입니다. 남과 북의 화해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폐쇄되었습니다. 남한은 북한이 개성공단을 통해서 벌어들인 자금으로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 발사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서 폐쇄를 결정했습니다.

북한은 자주적인 결정을 외세가 간섭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권한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남과 북의 문제는 엉킨 실타래와 같아서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지 난감한 문제입니다. 긴장과 갈등을 넘어서 화해와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항해를 하는 배가 거친 풍랑을 만날 때, 배가 큰 파도에 침몰 할 것 같을 때, 선장은 이야기합니다. ‘배에 있는 물건들을 바다로 버리십시오.’

배에 있는 물건들은 다 필요한 것들 일 것입니다. 먼 항해를 위해서 식량도 있어야 하고, 항구에 도착해서 팔아야 할 물건들도 있고, 배를 운전하려면 꼭 있어야 하는 기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배가 침몰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장은 배가 침몰할 수 있는 긴박한 순간이 오면 배에 있는 무거운 것들을 바다로 던져버리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야 거친 파도와 거센 풍랑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단식기도를 하신 후에 악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악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길에도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유혹은 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 명예, 권세라는 커다란 짐들을 모두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수난의 거센 폭풍우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개성공단이라는 배는 앞으로도 거센 풍랑에 떠밀려 갈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체면, 명예, 권력이라는 짐을 가득 담고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면구원을 얻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는 우리의 신앙은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산드로 보티첼리, 그리스도의의 세가지 유혹, 프레스코, 1481-1482년 작, 350× 572㎝, 시스티나 경당, 바티칸.jpg

산드로 보티첼리, 그리스도의의 세가지 유혹, 프레스코, 1481-1482년 작, 350× 572㎝, 시스티나 경당, 바티칸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
[사순 제4주일] 돌아온 탕자의 비유 (루카 15,1-3.11ㄴ-32.)16.03.05조회 133[사순 제3주일] 무화과나무 비유 (루카 13,1-9)16.02.28조회 58[(자) 사순 제1주일]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루카 4,1-13)16.02.14조회 1,003[(녹) 연중 제5주일] 고기잡이 기적을 보고 (루카 5,1-11)16.02.07조회 60[연중 제4주일]고향에서 설교 (루카4,21-30)16.01.30조회 137[연중 제3주일]은혜의 해 선포 (루카 1,1-4; 4,14-21)16.01.22조회 60[2016년 1월 17일 연중 제2주일] 가나의 혼인잔치(요한2,1- 11)16.01.16조회 78[주님 세례 축일] 세례 (루카 3,15-16.21-22)16.01.10조회 102[주님 공현 대축일]동방박사 (마태 2,1-12)16.01.02조회 10512. 27.[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순종 (루카 2,41-52)15.12.27조회 67[예수 성탄 대축일]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요한 1,1-18)15.12.25조회 109[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예수님의 탄생 (루카 2,1-14)15.12.24조회 58[대림 제4주일]믿으신 분! (루카 1,39-45)15.12.20조회 340[대림 제3주일.장미주일. 자선 주일]성령과 불로 세례를 (루카3,10-18)15.12.12조회 61[12. 6. 대림 제2주일]광야에서 외치는 이 (루카 3,1-6)15.12.05조회 89[11월 29일다해 대림1주일] 깨어 기도하라 (루카 21,25-28.34-36)15.11.28조회 59[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주간 (요한 18,33ㄴ-37)15.11.22조회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