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일(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춘분](루카 22,14―23,56)

오늘의 모든 미사는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한다. 중심 미사 전의 행렬이나 성대한 입당식으로, 또는 다른 미사 전의 간단한 입당식 으로 기념한다. 행렬은 한 번만 할 수 있으나, 성대한 입당식은 교우 들이 많이 참석하는 미사 전에 반복할 수 있다.
행렬은 소성당이나 다른 적당한 곳에서 미사가 거행될 성당을 향해 나아간다. 다른 예식은 생략하고 본기도로 미사를 시작한다. 사제는 예식 시작 때부터 제의를 입을 수 있다.
주님의 종은 모욕과 수모를 당하지만 주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확신한다.(이사야 50,4-7)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비우시고 낮추시어 죽기까지 순종하시자, 하느님께서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다고 찬가를 부른다.(필리피 2,6-11)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6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는 백인대장의 고백을 전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장엄하게 전한다.(루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22,14─23,56)
○ 해설자 C 예수님 ● 다른 한 사람 ⦿ 다른 몇몇 사람 ◎ 군중.
○ 14 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 17 예수님께서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 19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20 예수님께서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지금 나와 함께 이 식탁에 앉아 있다. 22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23 사도들은 자기들 가운데 그러한 짓을 저지를 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서로 묻기 시작하였다. 24 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27 누가 더 높으냐? 식탁에 앉은 이냐, 아니면 시중들며 섬기는 이냐? 식탁에 앉은 이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28 너희는 내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다. 29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30 그리하여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32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 33 베드로가 말하였다.
●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 34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35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물으셨다.
+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36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그러나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기고 여행 보따리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이는 겉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 3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는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다.’는 말씀이다. 과연 나에 관하여 기록된 일이 이루어지려고 한다.”
○ 38 사도들이 말하였다.
● “주님, 보십시오. 여기에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그것이면 넉넉하다.”
○ 39 예수님께서 밖으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40 그곳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 41 예수님께서는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자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 42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 43 그때에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예수님의 기운을 북돋아 드렸다. 44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 45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시어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4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왜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
○ 47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라고 하는 자가 앞장서서 왔다. 그가 예수님께 입 맞추려고 다가오자, 4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느냐?”
○ 49 예수님 둘레에 있던 이들이 사태를 알아차리고 말하였다.
● “주님, 저희가 칼로 쳐 버릴까요?”
○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 51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그만해 두어라.”
○ 예수님께서는 대사제의 종의 귀에 손을 대어 고쳐 주셨다. 52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원로들에게 이르셨다.
+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단 말이냐? 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는 너희가 나에게 손을 뻗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다.”
○ 54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원로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끌고 대사제의 집으로 데려갔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뒤따라갔다. 55 사람들이 안뜰 한가운데에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아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 가운데 끼어 앉았다. 56 그런데 어떤 하녀가 불 가에 앉은 베드로를 보고 그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말하였다.
● “이이도 저 사람과 함께 있었어요.”
○ 57 베드로는 부인하였다.
● “이 여자야, 나는 그 사람을 모르네.”
○ 58 얼마 뒤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말하였다.
● “당신도 그들과 한패요.”
○ 베드로가 말하였다.
● “이 사람아, 나는 아닐세.”
○ 59 한 시간쯤 지났을 때에 또 다른 사람이 주장하였다.
● “이이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 저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게 틀림없소.”
○ 60 베드로는 말하였다.
● “이 사람아,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 베드로가 이 말을 하는 순간에 닭이 울었다. 61 그리고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62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63 예수님을 지키던 사람들은 그분을 매질하며 조롱하였다. 64 또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물었다.
●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 65 사람들은 이 밖에도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많이 퍼부었다. 66 날이 밝자 백성의 원로단, 곧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모여 예수님을 최고 의회로 끌고 가서 말하였다.
● 67 “당신이 메시아라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말하시오.”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가 그렇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믿지 않을 것이고, 68 내가 물어보아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69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을’ 것이다.”
○ 70 그러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모두 물었다.
● “그렇다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이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내가 그러하다고 너희가 말하고 있다.”
○ 71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말하였다.
●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언이 더 필요합니까?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을 우리가 직접 들었으니 말입니다.”>
○ 23,1 온 무리가 일어나 예수님을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갔다. 2 그리고 예수님을 고소하기 시작하였다.
● “우리는 이자가 우리 민족을 선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못하게 막고 자신을 메시아 곧 임금이라고 말합니다.”
○ 3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 4 빌라도가 수석 사제들과 군중에게 말하였다.
●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 5 수석 사제들과 군중은 완강히 주장하였다.
◉ “이자는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이곳에 이르기까지, 온 유다 곳곳에서 백성을 가르치며 선동하고 있습니다.”
○ 6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이 사람이 갈릴래아 사람이냐고 묻더니, 7 예수님께서 헤로데의 관할에 속한 것을 알고 그분을 헤로데에게 보냈다. 그 무렵 헤로데도 예루살렘에 있었다. 8 헤로데는 예수님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오래전부터 그분을 보고 싶어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어떤 표징이라도 보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9 그래서 헤로데가 이것저것 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그 곁에 서서 예수님을 신랄하게 고소하였다. 11 헤로데도 자기 군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한 다음,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 12 전에는 서로 원수로 지내던 헤로데와 빌라도가 바로 그날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 13 빌라도는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을 불러 모아 14 그들에게 말하였다.
● “여러분은 이 사람이 백성을 선동한다고 나에게 끌고 왔는데, 보다시피 내가 여러분 앞에서 신문해 보았지만, 이 사람에게서 여러분이 고소한 죄목을 하나도 찾지 못하였소. 15 헤로데가 이 사람을 우리에게 돌려보낸 것을 보면 그도 찾지 못한 것이오. 보다시피 이 사람은 사형을 받아 마땅한 짓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소. 16 그러니 이 사람에게 매질이나 하고 풀어 주겠소.” (17)
○ 18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 “그자는 없애고 바라빠를 풀어 주시오.”
○ 19 바라빠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반란과 살인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자였다. 20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주고 싶어서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에게 다시 이야기하였지만, 21 그들은 외쳤다.
◎ “그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22 빌라도가 세 번째로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에게 말하였다.
●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사형을 받아 마땅한 죄목을 하나도 찾지 못하였소. 그래서 이 사람에게 매질이나 하고 풀어 주겠소.”
○ 그러자 23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이 큰 소리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다그치며 요구하는데, 그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24 마침내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정하였다. 25 그리하여 그는 반란과 살인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자를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풀어 주고, 예수님은 그들의 뜻대로 하라고 넘겨주었다. 26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가다가, 시골에서 오고 있던 시몬이라는 어떤 키레네 사람을 붙잡아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을 뒤따르게 하였다. 27 백성의 큰 무리도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28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29 보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배어 보지 못하고 젖을 먹여 보지 못한 여자는 행복하여라!’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30 그때에 사람들은 ‘산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내려라.′ 하고, 언덕들에게 ′우리를 덮어 다오.′ 할’ 것이다. 31 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마른나무야 어떻게 되겠느냐?”
○ 32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은 다른 두 죄수도 처형하려고 예수님과 함께 끌고 갔다.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두 죄수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그분의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34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제비를 뽑아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다. 35 백성들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빈정거렸다.
●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그분을 모독하였다.
●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 40 다른 죄수가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 42 그러고 나서 그 죄수가 예수님께 간청하였다.
●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 4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44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5 해가 어두워진 것이다. 그때에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 46 그리고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 무릎을 꿇고 잠시 묵상>
○ 47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백인대장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
○ 48 구경하러 몰려들었던 군중도 모두 그 광경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 49 예수님의 모든 친지와 갈릴래아에서부터 그분을 함께 따라온 여자들은 멀찍이 서서 그 모든 일을 지켜보았다. <50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의회 의원이며 착하고 의로운 이였다. 51 이 사람은 의회의 결정과 처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유다인들의 고을 아리마태아 출신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52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였다. 53 그리고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셨다. 그것은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무덤이었다. 54 그날은 준비일이었는데 안식일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55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온 여자들도 뒤따라가 무덤을 보고 또 예수님의 시신을 어떻게 모시는지 지켜보고 나서, 56 돌아가 향료와 향유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계명에 따라 쉬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제1독서 (이사50,4-7)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을 안다." (7)
이사야서 50장 6절은 주님의 종이 당할 극심한 고난과 더불어 그 고난 가운데서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다 이겨낸다는 사실을 예언한다. 그가 이런 극심한 고통을 인내로 견뎌낸 것은 그 고통이 죄인들을 대신해서 받는 고통이요, 그 고통을 통해서 죄인들을 위한 속죄를 이루고 그들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주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주님의 의(義)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종의 고난에 대한 예언은 주님의 종의 노래 가운데 마지막 노래인 이사야서 52장 13절~53장 12절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예언되며, 그 고난이 죄인들을 대신해서 받는 고난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낸다. 그 고난은 단순히 육체적 아픔만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굴욕과 치욕감을 깊이 느끼게 하는 고난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옷을 벗긴 상태에서 채찍으로 과격을 당하고 수염을 뽑히며 얼굴에 침뱉음을 당하는 것은 인격을 철저히 무시하는 너무나도 크나큰 굴욕감을 일으키는 행위였다(신명25,9; 2사무10,4; 느헤 13,25; 예례7,29; 마태26,67; 요한18,22). 그러나 주님의 종은 그 고난을 하느님의 구원의 경륜을 성취하는 통로로 여기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이를 묵묵히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본문에서 '나를 매질하는 자들에게'에 해당하는 '레막킴'(lemakim)의 원형 '나카'(nakah)는 채찍으로 때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사야서 53장 4절에서는 그가 맞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느님께 맞는 것으로 오해한다고 예언된다. 그러나 그는 무죄하면서 무시무시한 채찍질을 감내해야 했으며, 그런 가운데서도 전혀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등을 그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실로 주님의 종이신 예수님은 로마 병정들의 모진 채찍질을 묵묵히 참음으로써 이 예언을 성취하셨다(마태26,27; 27,26; 요한19,1).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다윗이 통치하던 시대에 암몬 임금 하눈은 그의 죽은 아버지께 조의를 표하고자 온 다윗의 신하들을 욕보이며 턱수염을 절반씩 깎아 버린 일이 있었다(2사무10,4). 이것은 극심한 모욕감을 일으키는 행위였다. 그래서 그 신하들은 다윗의 지시에 따라 턱수염이 다 자랄 때까지 예리코에 머물러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고대 사회에서 수염은 멋으로 기르는 것, 즉 장식용이 아니라 남성의 인격을 상징하였다. 따라서 그것을 깎는다든지 뽑아 버리는 것은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완전히 깔아 뭉개버린다는 뜻이었다. 아울러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형벌(느헤13,25)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종은 이런 치욕적인 일, 이처럼 무고한 모독과 형벌까지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즉 자기 턱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피하지 않고 도리어 그 뺨을 그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오른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는 가르침 (마태5,39)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모욕'으로 번역된 '켈림무트'(kelimmuth)는 주먹과 손바닥으로 얼굴을 맞는 것을 통해 주님의 종이 느끼는 인격적 상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마태26,67).
또한 '수모'로 번역된 '로크'(loq)는 구약에서 본문과 욥기 30장 10절 두 곳에서만 사용된 매우 희소한 단어인데,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 침뱉음을 뜻하고, 얼굴에 침뱉음을 당한다는 것은 턱수염이 뽑히는 것보다 더 드문 일이고 더 굴욕적인 일임을 암시한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의 종은 그 굴욕을 피하기 위해 저항하거나 얼굴을 가리우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무기력해서가 아니라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이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일임을 잘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을 안다.'(7)
앞의 이사야서 50장 4~6절에서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한 주님의 종의 고난과 고난을 받는 중에도 전적으로 참고 순종한다는 사실을 노래하였다.
이제 이사야서 50장 5~9절 까지는 주님의 도우심에 의지하는 종이 승리할 것에 대한 전적인 확신을 노래한다.
먼저 이사야서 50장 7절은 그토록 견디기 힘든 치욕과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종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것은 자기를 종으로 세우신 주 하느님께서 자신을 돕는다는 확신과 그 하느님께서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신 것 때문이다.
주님의 종은 극심한 수치와 모욕과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 취급을 당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의 종은 자기가 당하는 그 고난이 주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감당해야 할 사명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본절은 원문상 접속사 '와우'(wau; because; for 혹은 but)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본절의 내용이 앞절과 긴밀하게 관련되는 사실을 말해 준다.
주님의 종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그 고난을 자기 혼자 당하는 것도 아니며, 그 고난 때문에 자신이 절망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 본절을 '와우' 접속사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진정한 배후에는 자신의 정당성을 지지해 주시는 주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도와 주시니'에 해당하는 '야아자르'(yaazar)의 원형 '아자르'(azar)는 이사야서 50장 4절에서 주님의 종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는 것을 언급할 때 사용된 표현과 동일하다.
주님의 종은 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올바른 지식으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며, 하느님을 통해 고난의 때에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아자르'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 주님께서 종의 사명 전반을 지지하며 도와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한편 이에 이어지는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구절은 인과(因果)관계를 나타내는 '알 켄'(al ken; therefore)이란 표현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주님께서 종을 도우신 결과, 그가 수치스런 고난 가운데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사명의 의미를 앎으로써 고난과 모욕을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치욕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본문 역시 앞 문장과 같이 인과 관계를 나타내는 '알 켄'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주님께서 종을 도우시는 결과, 주님의 종이 자기 얼굴을 차돌같이 굳게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만든다'에 해당하는 '사므티'(samthi)는 '두다','되게 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동사'숨'(sum)의 능동 완료형 1인칭 단수로서 본문의 행동의 주체가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즉 그는 자기 스스로 자기 얼굴을 차돌처럼 굳게 하였다는 것이다.
'차돌'로 번역된 '할라미쉬'(hallamysh; flint)는 '아주 단단한 물건', '단단한 돌','부싯돌','바위'의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매우 단단한 돌을 말한다(신명8,15; 시편114,8). 따라서 본문은 낯이 매우 두꺼운 것을 의미한다.
우리 말에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낯이 두껍다고 하는데, 이것은 주님의 종이 주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치욕스런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의 처지를 전혀 치욕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을 이런 직유법을 사용해서 표현한 것이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본문은 이중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첫째는 주님의 종이 그런 치욕스런 상황 가운데서도 결단코 수치스럽게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는 그가 비록 죄인들이 당하는 수난을 당하고 있지만, 마지막 날에는 결코 심판에 처해지지 않고, 자신이 의로운 존재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을 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수치를 당하다'는 의미로 번역된 '에보쉬'(ebosh; shall be ashamed)의 중의성 때문이다. 이 단어의 원형'뽀쉬'(bosh)는 수치를 느낀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창세2,25) 최후 심판에서 단죄되어 치욕스런 상태로 떨어진다는 의미까지 가지고 있다(창세45,16).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신성 모독죄를 저질렀다는 고소를 당해 수난을 겪고 죽임을 당했다(마태26,65). 그러나 그들이 단죄한 그 신성 모독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혀 해당되지 않았다.
그들이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진 분이라는 사실 (요한1,1~3; 필리2,6)을 깨달았다면, 그들은 그를 신성 모독죄로 고소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단죄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는 위치로 끌어 올려 주셨다(필리2,10). 이 사실이 본문에 나오는 주님의 종의 확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예수님을 왜 따르는가?>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라는 것을 행동으로 선포하신 일이기도 하고,
'메시아 왕국'을 선포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메시아 왕국은 인간 세상의 왕국과 다르다는 것을 가르치신 일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신 뒤에,
이 일이 예수님을 두고 성경에 기록되고 또 사람들이 그분께
그대로 해 드렸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요한 12,16)." 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를 몰랐는데,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뒤에 성령을 받고 나서
이 일이 메시아 왕국을 선포하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걸치고,
예수님을 거기에 올라타시게 하였다.
예수님께서 나아가실 때에 그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예수님께서 어느덧 올리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이르시자,
제자들의 무리가 다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 때문에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루카 19,35-38)
'어린 나귀'는 겸손과
평화를 상징합니다(즈카 9,9-10).
반대로 군마(軍馬)는 교만과 전쟁을 상징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에 걸치고, 또 길에 깔아 놓은 것은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데,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세속의 왕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7)." 라고 청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제자들은 그때까지는 메시아 왕국을 세속의 왕국과 같은 것으로만
생각했고,
그 왕국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의 무리'
라는 말은
사도들을 비롯해서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 수가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갖출 것을 다 갖춘 성대한 행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박하고 초라하고 작은 규모의 행렬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환영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도 메시아를 세속의 임금과 같은
분으로 생각하고서 하는 말입니다.
또 '환영'하는 말이지만, 예루살렘 주민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갈릴래아에서부터 따라온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들이 들떠서 하는 말입니다.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보내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
사람들은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라고
말하면서(요한 6,14),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한 메시아는 자기들을 구원할 '하느님의
메시아'가 아니라
물질적인 복을 가져다 줄 세속의 임금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피해서 혼자서 산으로
가셨습니다(요한 6,15).
세속적인 임금이 되어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거부하신 것입니다.
재판 때에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라고 물었습니다(요한 18,33).
그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임금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으셨지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메시아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임금이 아니고,
메시아 왕국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왕국이 아닙니다.
최후의 만찬 때 사도들은
자기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루카 22,24).
메시아 왕국이 세워지면 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로
다투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22,25-27)."
우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을 재현하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희망하면서 따르고 있는가? 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인가? 아니면 물질적인 복인가? 세속적인 부귀영화인가?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23-25)"
이 말씀에서 '온
세상'이라는 말은 세속의 부귀영화로 해석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온갖 부귀영화와
무병장수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은
세상을 버리고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 즉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세속의 명예나 돈이나
권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순 기간 동안 우리가 행했던 회개와 보속이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모아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에 대한 순명이며, 우리 인간과의 유대이고, 그분의 고통이 바로 부활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오늘 수난 복음에 나오는 올리브 가지는 모든 불행을 극복하는 부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왕권은 보잘것없는 십자가입니다. 바로 이 모욕과 고통, 그리고 버려짐 속에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처음 만나면 우리의 신앙이 흔들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의로우신 분이 처형대에 서시는 것이 바로 불의와 폭력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대변해 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만 십자가의 무능함 안에 계신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극진히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유로이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으로 가득 찬 온전한 자유로 자신을 바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인간의 지혜가 역전됩니다. 십자가로 인해 모든 것이 끝나 버리고, 악이 승리한 것 같지만,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벌써 온 세상에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성전이 건설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