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예수의 어머니)
| 성모 마리아 | |
|---|---|
| 하느님의 어머니, 천상의 모후, 교회의 어머니 | |
| 출생 | 기원전 18년경 나자렛 |
| 선종 | 41년경 예루살렘 또는 에페소 |
|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콥트교회,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
| 축일 | 성모 축일 참조 |
마리아(아람어: مريم Maryām, 그리스어: Μαριάμ, 라틴어: Maria, 히브리어: מִרְיָם Miriam, 아랍어: مَريَمْ, 기원전 18년경 – 서기 41년경)는 신약성경에서 예수의 어머니로 등장하는 갈릴래아의 나자렛 출신 유대인 여성이다. 기독교에서는 그녀의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아)이며, 강생한 성자라고 믿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마리아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서, 꾸란의 한 장을 그녀에 대한 이야기로 할애하고 있다.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성모(聖母) 마리아’ 또는 ‘복되신 동정(童貞) 마리아’, ‘동정녀(童貞女) 마리아’라고 호칭한다.
정경으로 인정받은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에서는 마리아를 그녀를 동정녀(그리스어: παρθένος, parthénos)라고 부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인들은 그녀가 성령으로 인하여 처녀 상태에서 예수를 잉태하였다고 믿고 있다. 이슬람교도들도 마리아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처녀의 몸으로 수태하였다고 믿고 있다. 이 일은 약혼자였던 요셉과 혼인을 앞둔 와중에 일어났다. 마리아는 요셉과 혼인한 후에 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곳에서 예수를 낳았다.[1] 데일 앨리슨은 고대 유대인의 문화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는 약 12세 가량 되었을 때 약혼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2] 마리아가 약혼 또는 예수를 잉태했을 당시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루카 복음서에서 마리아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 앞에 나타나 그녀가 예수의 어머니가 될 몸으로서 하느님에 의해 거룩하게 성별되었음을 알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복음서를 보면, 마리아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을 때 함께 있었으며, 예루살렘의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묘사하고 있다.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온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는 지상에서의 생애를 마친 후에 육신과 영혼이 모두 예수에 의해 천국으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고 한다.
마리아는 초기 기독교 이래 교회의 가장 위대한 성인으로서 공경을 받아 왔다.[3][4] 기독교 교파들 가운데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콥트교회, 시리아 정교회 등에서는 마리아를 성자인 예수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라고 부르고 있다. 주요 기독교 전통들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다양한 신심들이 존재하는데,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와 관련해서 4대 교의를 믿고 있다. 즉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원죄 없이 잉태되었으며(원죄 없는 잉태), 평생 동정녀이고(마리아의 평생 동정), 지상에서의 생애를 마친 후에는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국으로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것이다(성모 승천).[5]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있는 성공회와 루터교를 포함한 개신교는 다른 기독교파들과는 달리 마리아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6]
목차
[숨기기]이름[편집]
마리아(Maria)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Μαριάμ의 약자인 Μαρία에서 유래하였다. 마리아가 실제로 사용했던 언어인 아람어로는 마리얌(ܡܪܝܡ) 또는 마리암이다.[7] 그리스어로 기록된 초기 신약성경에는 마리아의 이름을 Μαρία와 Μαριάμ 둘 다 표기하였다.
기독교에서 마리아는 일반적으로 ‘동정녀’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마리아가 남자와의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으로 인하여 기적적으로 예수를 잉태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정녀라는 호칭 외에도 서방 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 ‘복되신 동정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성모) 등의 호칭으로 부르며, 동방 교회에서는 ‘테오토코스’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사료[편집]
신약성경[편집]
가족과 초기 생애[편집]
신약성경은 마리아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있다. 2세기 문헌인 야고보 복음서에서는 마리아의 부모에 대해 언급하는데, 아버지의 이름은 요아킴이고 어머니의 이름은 안나이다.[8] 요한 복음서 19장 25절에는 마리아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자매가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2세기 역사학자 헤제시포에 따르면, 요셉의 형제 클로파스와 동서지간이라고 한다.[9]
루카 복음서에 의하면, 마리아는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 즈카르야의 아내이자 아론의 자손인 레위 지파에 속한 엘리사벳의 사촌이라고 한다.[10] 신학자들은 마리아가 엘리사벳과 친척 관계라는 점에 주목하여, 마리아 역시 남편 요셉과 마찬가지로 다윗 가문의 후손이라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한다. 그들은 마태오 복음서 1장에 기술된 예수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이며, 루카 복음서 3장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는 사실상 마리아의 족보라고 보고 있다. 두 복음서는 다윗 대까지 이름이 동일하나, 그 다음부터는 이름이 서로 틀리다. 마태오 복음서 1장의 족보는 다윗 다음에 솔로몬으로 시작하는 데 반해, 루카 복음서 3장의 족보는 다윗과 밧 세바의 셋째 아들인 나탄으로 시작한다[11][12](아론의 아내 엘리세바는 유다 지파 사람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후손은 레위 지파인 동시에 유다 지파인 셈이다[13]).
마리아는 갈릴래아의 나자렛에 있는 자기 집[14]에서 약혼자 요셉과의 혼인을 준비하며 지내던 중에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맞게 되었다(성모 영보).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은총이 가득한 이”라고 부르며 인사한 다음 그녀가 성령을 통하여 메시아로 약속받은 한 사내아이를 잉태하여 그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이에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순전히 자유의지로 하느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명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15] 몇달 후,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남몰래 그녀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그 때, 그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지시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마리아와 잠자리를 같이하지는 않았다.[16]
천사가 다녀간 후, 마리아는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17]에서 남편 즈카르야와 함께 사는 사촌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하였다. 엘리사벳은 오랫동안 임신하지 못하였다가, 역시 천사 가브리엘의 예고대로 기적적으로 임신하였다. 마리아의 인사말을 듣고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녀에게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마리아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가 바로 마니피캇(Magnificat)이다. 마니피캇이라는 제목은 마리아의 노래 첫 구절을 라틴어로 번역한 말이다.[18]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19]
루카 복음서에 의하면,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서 칙령이 내려져 로마 제국의 모든 신민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을 떠나 자기 고향인 유다 지방의 베들레헴으로 갔다. 마리아도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곳에서 사내아기를 낳았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은 숙박할 여관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마굿간을 해산 장소로 이용하였다.[20] 루카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날 밤에 들판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다고 언급한다. 그러자 목자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전한 말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고 한다.[21]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별을 연구하다가 예언대로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동방박사들이 먼 길을 찾아와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한 다음에 가지고 온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쳤다고 언급한다.[22] 그로부터 8일 후에 유대 율법에 따라 사내아기는 할례를 받고 ‘예수’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 이름은 천사가 마리아와 요셉에게 일러 준 이름으로서[23], ‘하느님이 살리신다’는 뜻인데, 유대교 문화권에서 흔히 쓰이던 사람의 이름이다.
유대인들은 여자가 아기를 배어 사내아이를 낳았을 경우, 몸이 피로 더렵혀져 이레 동안 부정하다고 보았다. 아마도 마리아 역시 율법을 준수하여 30일 동안 집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0일이 지난 후에는 아들 예수를 위한 번제물로 1년 된 어린양 한 마리와 속죄 제물로 바칠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만남의 천막 어귀로 가져와서 사제에게 주었을 것이며, 사제는 마리아를 위하여 제물을 봉헌하며 정결례를 거행했을 것이다. 만약 양 한 마리를 바치지 못했을 경우,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한 마리는 번제물로,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바쳤을 것으로 추정된다.[24] 또한,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성전에 봉헌하였다. 모세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25] 그 때, 시메온은 아기 예수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하고 나서 마리아에게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라고 예언하였다. 더불어 한나도 같은 시간에 하느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바치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아기 예수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시메온과 한나의 예언을 들은 후, 마리아와 요셉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26]
예수의 생애에서의 마리아[편집]
마리아는 신약성경에서 예수의 소년 시절에 대한 유일한 기록에서도 등장한다. 예수가 12세가 되던 해에 마리아와 요셉은 그를 데리고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마리아와 요셉은 그것도 모르고,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율법 교사들은 예수의 슬기로운 답변을 듣고 모두 놀라워하였다. 놀란 마리아가 예수에게 가서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그가 마리아와 요셉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7] 예수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친 후, 마리아는 그와 함께 카나에서 열린 혼인 잔치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예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알렸다. 예수가 “여인이시여,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마리아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일러 주면서 예수의 처분에 온전히 맡겼다. 결국 예수는 “물독에 물을 채워라.”고 지시한 다음 그것을 포도주로 변화시켰다. 이렇게 예수는 첫 번째 기적을 행하였는데, 그 자리에는 마리아가 함께 있었다.[28] 그 뒤에 마리아는 예수의 형제들이라고 불린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그리고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자매들을 대동하고 군중을 상대로 설교하고 있는 예수를 찾아갔다.[29] 교부 예로니모에 의하면, 여기서 ‘형제’와 자매라고 번역된 말은 실제로는 사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30] [31]
어머니와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러 왔다는 군중의 말에 대한 예수의 대답에 대해 각 복음서는 어법의 차이를 보인다. 루카 복음서는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라고 기록했고,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는 표현이 더 나와 있다. 그리스 태생인 루카는 철저한 남성 중심, 제자 중심에서 벗어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직접적 표현을 쓰지 않았다. 반면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는 “누가 내 어머니냐?”라는 반문을 뒤에 씀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32] 이 구절을 예수가 자신의 가족들을 거절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마리아가 자신을 낳은 어머니일 뿐 아니라, 어머니야말로 하느님의 뜻을 행한 사람으로서 “내 어머니다.”라고 하는 것을 예수가 반어법으로 말한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33]
마리아는 또한 예수가 수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힐 때,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가 사랑하는 제자라고 표현된 사도 요한과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 등의 여인들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4]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여기에 더해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를[35],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살로메[36]라는 여인을 추가하였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마리아와 요한을 보고,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예수는 요한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하며 마리아를 부탁하였다. 그때부터 요한이 마리아를 곁에서 모셨다고 한다.[37]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아래 서 있는 마리아의 장면을 가리켜 라틴어로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라고 표현한다. 정확한 뜻은 ‘어머니께서 서 계셨다’는 뜻으로, 통상 ‘슬픔의 성모’나 ‘성모 애상’, ‘십자가 길의 성모’ 등으로 번역한다.[38][39] 그리고 복음서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부둥켜 안은 마리아의 모습을 미술학계에서는 피에타라고 부르며 미술 주재로 다루고 있다.
예수의 승천 이후[편집]
예수의 승천 이후 11명의 사도가 올리브 산에서 돌아와서 성령 강림을 준비하며 예루살렘에 있는 다락망에 머물러 있을 때, 그들과 함께 머물렀던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이름이 거명된 사람이 마리아이다.[40] 일부에서는 요한의 둘째 서간 1장 1절에서 언급된 ‘선택받은 여인’이 마리아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 때부터 마리아는 신약성경에 다시는 등장하거나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요한 묵시록 12장 1절에 등장하는 묵시록의 여인이 마리아를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리아의 죽음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전승과 교리에서는 그녀가 생애를 마친 후에 천국으로 들어올림을 받았다고 한다. 마리아의 육신이 천국으로 올라갔다는 믿음은 동방 기독교와 서방 기독교의 구분 없이 비단 로마 가톨릭교회 뿐만 아니라, 동방 정교회[41][42]와 콥트교회[43] 그리고 성공회의 일부 공동체 등이 간직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 사료와 전승[편집]
위경에 속한 야고보 복음서에 따르면, 마리아는 요아킴과 안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안나는 마리아를 임신하기 전까지는 상당히 오랫동안 아기를 갖지 못했다. 구약성경에서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성전으로 데려간 것과 같이 요아킴과 안나도 마리아가 3세가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데려가 처녀로서 봉사하는 일에 바쳤다.[44] 일부 위경에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혼인할 당시 요셉의 나이는 30세였고, 마리아는 12-14세 가량이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45]
일부 기독교인들은 마리아가 원죄를 지닌 채 잉태되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죄로부터 자유로웠으며, 따라서 절대로 죽음을 겪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원죄로 인한 결과 중의 하나가 죽음인데,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었으므로 자연스레 원죄의 결과는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한 연유로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완전무결한 그녀의 육신이 땅에 묻혀 썩지 않고, 영혼과 함께 천국으로 몽소승천하였다는 것이다.
테베의 히폴리투스는 마리아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날로부터 11년이 지난 서기 41년에 선종하였다고 주장하였다.[46]
7세기 기독교 성인이자 증거자 막시모가 집필한 《동정녀의 생애》는 현재 마리아의 생애를 기록한 문헌 가운데 가장 초기 문헌으로서, 예수 사후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47][48][49]
19세기에 독일의 아우구스티노회 수녀 안나 가타리나 엠머릭이 체험한 환시를 토대로 터키 에페소 인근에 한 오래된 가옥이 발견되었다.[50][51]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이 가옥이 마리아가 몽소승천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장소로 여기고 ‘동정 마리아의 집’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주요 순례지 가운데 하나로서 각광받고 있다.[52][53][54][55]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사랑하는 제자[56]라고 표현된 사도 요한이 마리아를 모시며 살았다고 전하고 있다. 이레네오와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오 또한 요한이 나중에 에페소로 갔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마리아가 요한과 함께 에페소에서 살았다는 근거 자료가 되고 있다.[57][58]
기독교의 신심[편집]
기독교인들의 마리아 공경은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431년 에페소 공의회 이후 전례력상으로 마리아를 기념하는 체계가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에페소 공의회는 약 100년 전에 마리아에게 봉헌된 에페소의 한 성당에서 소집되었다.[59][60][61] 이집트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3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오리게네스는 마리아를 가리켜 테오토코스라고 지칭하였다.[62]
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Sub tuum praesidium)와 같이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하는 가장 오래된 기도문들은 그 역사가 3세기(약 27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917년에 이집트에서 파피루스 형태로 남아있던 것이 재발견되었다.[63][64]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5세기부터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등 마리아를 수호 성인으로 모시며 봉헌된 성당들이 증가하였으며, 마리아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성화상들이 만들어졌다.[65][66][67]
이후 수세기에 걸쳐 기독교 전통 안에서 마리아에 대한 신심과 공경은 다양화되었다. 정교회 신학자 세르게이 불가코프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은 정교회의 경건한 정신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분의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정교회와 다른 신앙을 지닌 기독교이다.”[68]
가톨릭교회와 정교회는 마리아를 공경하며 칭송하기는 하지만, 그를 하느님으로 보거나 하느님처럼 숭배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에게 철저히 예속되어 있지만, 그녀가 세상의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고 바라보고 있다.[69] 동방 정교회 역시 이와 비슷하게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피조물이며 인류를 위해 끊임없이 중재하며 기도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물론 마리아가 유일한 중보자인 그리스도에 버금가거나 대체하는 존재로 여기지는 않는다.[68] 정교회 신학자 세르게이 불가코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마리아께 영광을 드리기는 하지만, 하느님께 바치는 경배를 드리지는 않는다.” 가톨릭교회 역시 마리아를 공경할 뿐, 숭배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어놓고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특별히 마리아에게 드리는 공경을 하느님에게 드리는 흠숭지례보다는 낮지만, 다른 성인들에게 드리는 공경지례보다는 좀 더 높은 상경지례라고 표현하고 있다.[70] 흠숭지례와 상경지례, 공경지례의 구분은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71]
기독교 전통 속에서 마리아를 미술적으로 표현한 것들이 매우 다양하다. 가톨릭교회에서 마리아를 주제로 삼은 미술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성모자’(聖母子)라고도 불리는 마돈나는 특히 유서가 매우 깊다. 정교회 미술에서도 마리아를 묘사한 이콘이 가장 대표적으로 공경받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양측 모두 마리아상에 대한 공경을 허용하고 있다.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성화상 공경은 성화상 자체에 대한 공경이 아니며 그것을 통해 표현된 그리스도나 성인들 및 천사들에 대한 공경이기 때문에 우상 숭배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으며,[72] 842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노드에서도 이와 같은 입장을 재차 확인하였다.[73] 그러나 정교회에서는 3차원 상본이나 성상이 아니라 오직 2차원의 성화인 이콘 앞에서만 기도하며 공경하고 있다.[74]
마리아에 대한 성공회의 입장은 일반적으로 볼 때, 다른 개신교 교파들에 비해 상당히 유화적이다. 한 예로, 캔터베리 대주교 로원 윌리엄스는 자신의 저서에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향한 마리아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마리아를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마리아에 대한 그리스도의 보살핌을 바라보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다.”라는 글을 쓴 바 있다.[75]
호칭[편집]
기독교 전통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공경심이나 전구를 요청하기 위해 표현된 여러 가지 호칭이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호칭들로는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 또는 ‘귀부인’(Our Lady, Notre Dame, Nuestra Señora, Nossa Senhora, Madonna), ‘천상의 모후’(Regina Caeli) 등이 있다.[76][77]
동방 정교회와 오리엔탈 정교회, 성공회, 동방 가톨릭교회 등에서는 마리아를 테오토코스(Theotokos)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호칭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을 단죄하고 공인한 호칭이다. 라틴어로는 ‘Deipara’ 또는 ‘Dei genetrix’로 번역되는 이 호칭은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하느님을 낳은 여인’이다. 서방 가톨릭교회에서는 테오토코스와 같은 의미의 ‘하느님의 어머니’ 또는 ‘천주의 성모’(라틴어로는 Mater Dei)라는 호칭을 더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한 그리스어 단어(Μήτηρ Θεοῦ)가 마리아를 그린 비잔티움 이콘에서도 등장하는데, 마리아의 좌우에 각각 ‘ΜΡ’(어머니)와 ‘ΘΥ’(하느님)라는 그리스어가 있는데, 이를 합치면 하느님의 어머니(Μήτηρ Θεοῦ)가 된다. 에페소 공의회에서 교부들은 “거룩하신 동정녀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라고 전해진다.[78][79][80]
마리아에게 주어진 일부 호칭들은 성경에 기원을 두고 있다. 가령 ‘모후’라는 호칭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를 가리키는 호칭인데, 이는 예수가 다윗 왕의 후손으로서 이따금씩 ‘임금들의 임금’으로 불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루카 복음서 1장 32절과 이사야서 9장 6절을 보면 예수에게 다윗의 왕위가 주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열왕기 상권 2장 19-20절과 예레미야서 13장 18-19절을 보면 다윗 왕가에서는 왕의 어머니가 모후라고 불리며 존경을 받는 것이 나와 있다. 이것이 마리아에게 모후라는 호칭이 주어지는 근거가 된다.[81] 그 밖에도 착한 의견의 성모, 항해사의 성모, 자비의 성모와 같이 사적 신심이나 보고된 기적 등에 의해 주어진 호칭들도 있다.[82][83][84][85]
동방 정교회에서는 마리아에게 세 가지 호칭을 헌정하였는데, 하나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의 테오토코스(Θεοτόκος)이며, 두 번째는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선포된 ‘영원한 동정녀’(ἀειπαρθὲνος), 세 번째는 ‘지극히 거룩하신 분’(Παναγία)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에게 수많은 호칭을 헌사하였는데, 이들 호칭은 수많은 예술 작품의 주제가 되곤 하였다. 가령 고통의 성모라는 호칭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같은 걸작품을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축일[편집]
마리아를 주제로 한 초창기 축일들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일에서 유래하여 발전하였다. 루카 복음서 2장 22-40절에 의하면, 예수가 탄생한 지 40일 후에 마리아는 유대인 율법에서 규정한 바에 따라 아기 예수를 성전으로 데리고 올라가 봉헌하였다. 이 사건을 기념하는 축일이 5세기에 비잔티움에서 ‘시메온 축일’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내게 되었으며, 오늘날 주님 봉헌 축일(성모 취결례)의 전신이 되었다.[86]
7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동방 교회에서는 성모 축일이 네 개 더 제정되었다. 서방 교회에서는 7세기에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라벤나의 교회들이 크리스마스 전날을 성모 축일로 지낸 것이 시초다. 로마의 네 성모 축일인 성모 취결례 축일과 성모 영보 축일, 성모 승천 축일, 성모 탄생 축일은 11세기에 잉글랜드로 서서히 산발적으로 도입되었다.[86]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별로 마리아와 관련된 축일의 숫자와 종류(그리고 이와 관련된 마리아의 호칭들), 신심 행사 등이 다르게 발전되어 갔다.[87] 가령 승리의 성모 축일은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교황령이 승리함으로써 생기게 되었다.[88][89]
교리적 차이점 때문에 축일의 내용이 서로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마리아의 죽음 이후의 상황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신 뒤에 영혼과 육신이 모두 하늘로 불려 올라갔다고 믿기 때문에 성모 승천 대축일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지만, 동방 정교회에서는 마리아가 안식에 들었다고 표현하며, 교리화 하지 않고 교회에서 내려오는 전승으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성모 안식 축일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고 있다. 두 축일 모두 8월 15일이라는 같은 날짜에 기념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모든 성모 축일과 성모 신심 미사를 집전할 때에 마리아를 의미하는 하늘색 제의를 입는다.
르네상스 미술에서의 묘사[편집]
미술계에서 전통적으로 마리아를 상징하는 색상은 파랑이다. 이러한 전통은 500년경 동로마 제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파랑색은 동로마 제국에서 여제 및 황후를 의미하는 색상이었다. 푸른색을 사용하게 된 보다 실질적인 설명으로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입한 청금석이 금보다 더 가치가 높았으며, 이 돌을 통해서 파랑색 색소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화가들은 마리아를 묘사하는 그림을 그릴 때 물감의 원료를 구하기 위한 재료로서 금이나 청금석을 구입했기 때문에 당초에 후원자들이 책정했던 비용 단가를 뛰어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즉 마리아가 파랑색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한 것은 마리아에 대한 깊은 공경과 찬미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교리[편집]
수많은 기독교 교파는 전통적으로 마리아를 공경해 왔으며, 이들이 믿고 가르치는 마리아와 관련된 핵심 교리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다.
- 동정녀 탄생: 마리아는 성령의 활동으로 동정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하여 낳았다.
- 안식 또는 몽소승천: 마리아는 안식에 들었거나 자연사 후 하느님의 은총으로 승천하였다.
- 원죄 없는 잉태: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어 태어났다.
- 평생 동정성: 마리아는 예수를 낳기 전에도, 낳은 후에도 평생을 동정녀로 살았다.
이와 같은 교리들을 받아들이는 기독교 교파들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6][90][91]
| 교리 | 교회 공인 | 수용 |
|---|---|---|
| 하느님의 어머니 | 에페소 공의회(431년) |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 등 |
| 동정녀 탄생 |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 |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개신교 |
| 성모 승천 |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 1950년) | 로마 가톨릭교회, 일부 성공회, 일부 루터교 |
| 원죄 없는 잉태 |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 1854년) | 로마 가톨릭교회, 일부 성공회, 일부 루터교 |
| 평생 동정녀 |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533년) |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일부 성공회, 일부 루터교 |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라는 호칭은 431년 마리아 성당에서 소집된 에페소 공의회에서 공인되었다. 공의회 교령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규정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아들 예수가 신성과 인성을 하나의 본성으로 모두 지닌 하느님이면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교리는 일반적인 기독교파에서는 모두 폭넓게 수용하고 있으며,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하는 가장 오래된 기도라고 할 수 있는 250년경 ‘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Sub tuum praesidium)에서도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일컫고 있다.[92]
동정녀 탄생 역시 사실상 모든 기독교 교파에서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교리이다. 이에 대해 사도신경과 같은 기독교의 신앙 고백에서는 예수가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마리아를 통해 이사야서 7장 14절에 기록된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93]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와 루카 복음서의 저자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 남자와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은 정결한 몸이었다고 말하면서, 예수의 잉태가 남녀 간의 성관계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94] 이것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것은 요셉이나 기타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95]
마리아의 승천 또는 안식 교리는 그녀의 죽음과 이후 그녀의 육신과 영혼이 온전히 천국으로 올라갔다는 믿음과 관련이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모 승천은 마리아가 지상에서의 생애를 마친 후에 육신과 영혼이 모두 천국으로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내용으로서 교의로 선포된 것이지만, 동방 정교회에서 믿는 성모 안식은 마리아가 사도들에게 둘러싸인 채 깊이 영면에 들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96]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는 1854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교의로 선언된 것으로서, 마리아가 그 어머니의 태중에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원죄에 조금도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전되었다는 내용이다. 라틴 전례 가톨릭교회에서는 전례력으로 12월 8일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97] 동방 정교회에서는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교의를 부정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원죄에 대한 이해가 로마 가톨릭교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98]
마리아의 평생 동정은 그녀가 전 생애 동안 참으로 동정성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된 ‘평생 동정녀’ 혹은 ‘영원한 동정녀’(ἀειπάρθενος)라는 용어는 마리아가 예수를 낳기 전에도, 예수를 잉태한 후에도, 예수를 낳은 후 인생의 나머지에도 계속 동정녀로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리는 동정녀 잉태 교리와도 연결된다.[95][99][100]
이슬람교에서의 마리아(예수의 어머니)[편집]
마리암 (수라) 참고.
같이 보기[편집]
마리아론
기독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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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론 개요 |
| 마리아 교의와 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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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축일 |
마리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에 대해 연구하는 기독교의 신학 분야이다.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된다. 마리아론은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대속, 은총 등 기독교 신앙의 다른 여러 요소와의 관계와 관련하여 조직적으로 발전해왔다. 마리아와 관련된 성경과 성전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을 발견하여 연결 짓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목차
[숨기기]마리아론의 발전과 영향[편집]
마리아론의 기원은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기독교회에서는 순교자에 대한 공경이 대중신심으로 가장 두드러졌다. 순교자들에 대한 공경에 이어 초대 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구약과 신약 및 대망(待望)과 성취(成就)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1] 로마의 카타콤바에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린 프레스코화가 그려졌으며,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한 가장 오래된 기도는 250년경에 작성된 ‘성모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sub tuum praesidium)’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가 고통 받는 인류와 임금들의 임금이자 심판자인 아들 예수 사이를 중개하는 연민 어린 존재로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세기경, 제3차 세계 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 마리아는 '테오토코스'(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교의가 선포되었다. 이 교리이 이후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을 지니고 탄생했음을 확인하였고, 기독교의 교리로 공식 선포됨에 따라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묘사한 성화도 교회로부터 정식으로 인준되었다. 6세기부터 비잔티움 궁정의 공식적인 보호와 후원 아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성모 신심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2] 하지만 성모 신심이 대중들 사이로 본격적으로 증대하기 시작한 것은 5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이며, 이 시기에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다룬 각종 전승들과 유물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을 비롯하여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여 그녀를 주보성인으로 삼은 성당들을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하였다.[3] 교황 세르지오 1세(687-701)는 최초로 로마 전례력 안에 성모 마리아의 축일을 포함시켰다.[4]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마리아와 하와를 대비시켜 “하와의 불순종이 묶어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순명이 풀어 주었고, 하와가 불신으로 맺어놓은 것을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었다.”라고 하였으며, 마리아를 ‘새 하와’ 또는 ‘제2의 하와’라고 불렀다.[5] 즉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세상에 죽음과 불행을 가져왔으나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생명의 원천인 그리스도를 낳고, 마침내 세상에 구원과 축복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교회 대분열 이후 서부 유럽의 서방교회에서 중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성모 신심은 시리아의 성 에프렘,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등 성모 신심가들의 영향을 받아 더욱 성장하여 한 차원 크게 발전하였다. 성모송과 같이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는 기도문들이 생겨나고, 수도원 등지에서 아베 마리아, 살베 레지나 등의 마리아를 찬미하는 성격을 띤 단선율 성가가 작사 작곡되었다. 그리하여 성모 신심 행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대중 사회에 굳건하게 자리잡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서방교회에서는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거장들의 손에 의해 마리아를 표현한 명작들이 무수히 탄생함으로써 마리아와 관련된 미술이 크게 성장하였다.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종교를 주제로 한 그림과 건축 양식을 법적으로 규정하였다. 그 결과, 바로크 시기에 마리아를 다룬 미술과 마리아론이 크게 발전하였다. 종교개혁 시대에 개신교가 출현하면서 개신교도들이 마리아론에 대한 이설을 제기하자 가톨릭교회는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마리아론을 수호하려고 애썼다. 레판토 해전에서 이슬람 해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기독교 연합 함대가 이를 마리아의 공적으로 돌린 것을 시점으로, 잠시 주춤했던 성모 신심은 다시 한 번 유럽 사회 전반에 걸쳐 크게 부흥하기 시작하였다.[6] 마리아를 주제로 한 바로크 문학은 예상 외로 크게 성장하였다. 17세기에 한해서만 마리아론을 다룬 작품이 500권 이상 출판되었다.[7] 19세기에는 오랜 심사숙고 끝에 1854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가 선언되었다. 20세기에는 교황 비오 12세가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마리아에게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이 헌정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편집]
| 가톨릭교회 |
| 배경 |
|---|
| 예수 · 사도 기독교 · 가톨릭주의 사도 전승 · 교회의 네 가지 속성 십계명 · 예수의 탄생 십자가형 · 부활 승천 |
| 조직 |
| 교황 · 성좌 추기경단 · 주교제 사제 · 부제 수사 · 수녀 동방 가톨릭교회 · 라틴 교회 교회법 |
| 신학 |
| 삼위일체 (성부·성자·성령) 성경 · 성전 천국 · 연옥 지옥 · 원죄 구원 · 성인의 통공 교의 · 그리스도론 · 마리아론 |
| 전례 |
| 미사 · 성찬예배 성무일도 · 전례력 로마 전례 · 아르메니아 전례 알렉산드리아 전례 · 비잔티움 전례 안티오키아 전례 · 서시리아 전례 · 동시리아 전례 |
|
|
로마 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은 신학 분야 외에도 매일 기도, 음악, 미술, 건축 등에서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또한 지금도 마리아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교황들의 회칙뿐만이 아니라, 신자들의 신심(sensus fidelium)과 성인들의 가르침, 몇 차례의 성모 발현과 그곳에 세워진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마리아 운동과 신심단체가 대중적으로 두드러지게 성장하였다.
마리아에 관한 교의[편집]
로마 가톨릭교회에는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4대 교의가 교회 교도권에 의해 선포되었다.
| 명칭 | 교의 선언 | 교의 내용 |
|---|---|---|
| 평생 동정녀 |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553년) | 마리아는 동정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하였으며, 예수를 낳을 때도 동정이었으며, 예수를 낳은 뒤에도 계속 동정으로 살았다. |
| 하느님의 어머니 | 에페소 공의회 (431년) | 마리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된 하느님의 아들이다. |
| 원죄 없는 잉태 | 교황 비오 9세 (1854년) | 마리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 원죄 없이 잉태되어 태어났다. |
| 성모 승천 | 교황 비오 12세 (1950년) | 마리아는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하느님에 의해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들어올림을 받았다. |
마리아의 평생 동정[편집]
마리아의 평생 동정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도 동정이었으며, 예수를 낳는 중에도 동정이었으며, 예수를 낳은 후에도 동정이었다는 가톨릭교회의 교의이다. 여기서 잉태 이전의 동정성은 남성의 활동 없이 잉태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출산시의 동정성이 의미하는 것은 출산의 고통이나 동정성의 파괴 없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출산 후의 동정성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출산 후에도 마리아가 인간적인 결혼 생활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평생 동정인 마리아 교의는 마리아가 인생 전반에 걸쳐 ‘영원한 동정녀(ἀειπάρθενος)’였으며, 그녀의 유일한 소생은 예수 한 사람뿐이었으며, 그마저도 동정의 몸으로 기적적으로 잉태하여 낳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해서는 이미 초대 교회 때부터 믿음의 내용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교회 초창기부터 마리아의 이름은 언제나 ‘동정녀’라는 수식어구와 함께 나타났다.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과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도 마리아를 ‘동정녀’라고 불렀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탈출기 3장 2절을 예로 들며, 가시덤불이 불에 휩싸였음에도 타지 않은 것처럼 마리아도 아기를 낳았지만, 동정성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시리아의 성 에프렘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진주를 비유로 설명하였다. 조개는 진주가 될 돌을 받아들일 때에도 그리고 그 돌이 진주가 되어 내어 놓을 때에도 손상을 받지 않는다. 마리아도 이와 비슷한 이치로 예수를 잉태할 때와 낳을 때에 아무런 고통도 손상도 입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성 프로클로는 “만일 구세주의 어머니께서 동정이 아니셨다면, 그분께서 낳으신 구세주는 단지 인간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탄생의 신비는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구세주를 낳으시고 낳으신 후에도 마리아께서 계속 동정으로 계셨다면, 어찌 이것이 하느님께는 더 영광이 되고 더 훌륭한 신비가 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8]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의 육신이 참으로 육신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여인으로부터 태어나셨다. 그러나 당신의 신성을 분명히 드러내시기 위하여 그분은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셨다.”라고 하였다. 성 예로니모는 예수가 동정남으로 살았듯이 마리아 또한 동정녀로 평생을 살았다고 말하였다.
신약성경을 살펴보면, 마리아의 동정성을 분명하게 언급한 구절은 마태오 복음서 1장 24절~25절과 루카 복음서 1장 26절~27절이다. 마리아의 잉태 이전의 동정성과 출산 중의 동정성에 대해서는 2세기의 문헌인 야고보의 원복음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의해 미리 선택되었고,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것은 남자와의 관계없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출산 때도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동정성이 보존되었다고 나온다. 물론 이 이야기는 다소 전설적인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대한 사람들의 확신을 문학적인 표현을 빌어서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 교리는 점차 발전하여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553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셨다.”라고 고백함으로써 교회의 가르침으로 공식 선포되었다. 그리고 649년 라테라노 시노드는 “성모님은 해산 전에, 해산 중에, 그리고 해산 뒤에도 동정녀이셨다.”라는 말로써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을 더욱 강조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런 교리를 다시 확인하였다.
하느님의 어머니[편집]
성모 마리아가 테오토코스, 즉 하느님의 어머니(또는 천주의 성모)라는 교리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선포된 교의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호칭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마리아가 낳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인간임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예수가 참된 하느님임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으로는 한처음부터 성부와 같은 몸으로 하느님의 제2위(성자)이며,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성령으로 인하여 스스로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서 인성을 취하였다. 이것이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이 교의가 확정되기까지는 커다란 신학적 논쟁을 거쳐야 했다. 4세기 말 기독교 신학의 주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로 나뉘어 서로 쌍벽을 이루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신성과 인성의 결합에서 신성을 강조하였고, 안티오키아 학파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하면서 인성과 신성을 나란히 놓고 보았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성 치릴로였고, 안티오키아 학파의 대표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였다. 성 치릴로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라고 주장하였고,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어머니(크리스토토코스)’라고 주장하였다. 성 치릴로는 예수의 신성을, 네스토리우스는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위격을 신격과 인격으로 보기 때문에 마리아는 인간 그리스도의 어머니일 뿐이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대하여 성 치릴로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주장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지니지만 말씀 안에서 위격적 일치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논쟁은 평신도들까지도 그 과정에 휘말려들 정도로 매우 격렬하게 불타올랐다. 결국 교황 첼레스티노 1세가 하느님의 어머니 논쟁을 진정시키기 위해 431년에 에페소 공의회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공의회에 참석한 교부들이 논의 끝에 동정 마리아는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함으로써 네스토리우스는 에페소 공의회에서 단죄되고 논쟁은 성 치릴로의 승리로 끝났다. 이에 신자들은 기뻐하며 교부들을 떠메고 횃불을 흔들며 거리를 행진했다.
에페소 공의회의 이 교의를 451년 칼케돈 공의회가 재확인하였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에 있어서 세기 이전에 성부에게서 태어나셨다. 그러나 같은 그분이 인성에 있어서 마지막날에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
이러한 가르침은 그 후 여러 공의회를 통하여 재확인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다시 확인되었다.
- 동정 마리아께서는 천사의 아룀을 들으시고 하느님의 말씀(성자)을 마음과 몸에 받아들이시어 생명의 생명을 세상에 낳아 주셨으므로 하느님이신 구세주의 참 어머니로 인정받으시고 공경을 받으시는 것이다. 마리아께서는 아드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뛰어나게 구원을 받으시고 아드님과 불가분의 관계로 긴밀히 결합되셨으며 천주 성자의 어머니가 되는 직무와 품위를 갖추시었다.[9]
그러므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교의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히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이 부각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는데, 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기 때문에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교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전제한다.[10] 가톨릭교회에서는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원죄 없는 잉태[편집]
원죄 없는 잉태는 무염시태(無染始胎)라고도 하는데,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회칙에 의해 교의화하였다. 하느님이 마리아를 죄의 영향 아래 놓이지 않게끔 태중에서부터 보호했다는 가톨릭교회의 교의로, 모든 인간은 원조인 아담과 하와의 영향으로 잉태된 순간부터 원죄를 물려받고 태어나게 되었지만, 마리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인간 중에서는 유일무이하게 어머니의 태 안에 잉태된 바로 그 순간부터 원죄에 조금도 물듦이 없이 완전하게 보전되었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이며 지극히 거룩한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뱃속에 잉태하기 위해서는 그녀 또한 조그마한 흠도 티도 없이 깨끗해야 하고, 본죄뿐만이 아니라 원죄의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또한 마리아는 일생동안 본죄 또한 저지르지 않았다고 믿는다.
가톨릭교회는 동정 마리아 역시 인류의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리아 또한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단지 마리아는 다른 방식으로 구원받았을 뿐이다. 말하자면 ‘보다 숭고한 방식,’ 즉 ‘선취에 의한 구원’이다. 가령 사람은 병에 걸리면 수술을 받거나 약을 복용함으로써 치료받을 수 있으며, 또한 예방접종을 받아 아예 병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원죄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리아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며, 그리하여 그녀는 사탄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가톨릭교회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 사실을 전하기에 앞서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11]라고 한 인사말에서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교의의 근거를 찾아냈다. 예수가 인류를 위해 은총을 획득하기 수년 전에 한 이 천사의 인사에서 알 수 있듯이, 마리아는 이미 ‘은총이 가득한 이’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교회는 아담의 타락 이후에 하느님이 원조들에게 죄를 짓게 한 사탄에게 저주를 내리며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리라.”[12]라고 한 말에서도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의 근거를 보았다. 이 말은 여자의 후손, 즉 동정 마리아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의 왕국을 무너뜨리라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런데 사탄이 패배하도록 예수의 구속 사업에 전적으로 협력하였던 마리아가 한순간이나마 사탄의 영향을 받아 죄의 노예로서 원죄에 물들었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리하여 하느님에 의해 계획된 동정 마리아와 뱀 사이의 적대는 죄에 대한 마리아의 승리로서 원죄 없는 잉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자들 사이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는 지속적으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믿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예수의 어머니를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예수에게 죄를 짓는 불경한 행위라고 말하였으며,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의 영예는 당신 모친이 범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조차 허락하시지 않는다.”라고 하였다.[13]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는 아담의 후손이므로 응당 원죄의 죄과를 받아야 했지만 하느님이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마리아를 원죄에서 면제해 주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고 하는 사실은 성모님이 예수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구원받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라고 말하였다. 19세기까지 이 문제는 신학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남았으며, 교황들은 중립적 자세를 취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을 통해 성모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어 태어났다는 것을 아래와 같은 말로 보편 교회 전체가 믿을 교의로 장엄하게 선포하였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은 12월 8일로 제정되었다.
-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되셨다.
그리고 1858년 루르드에 성모 발현이 일어나면서 이 교의는 사람들에게 재차 확인되었다(루르드의 성모).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마리아는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모두 18회 발현하였는데, 마지막 발현 때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다.”라고 말하였다.
성모 승천[편집]
가톨릭교회에서는 1950년 모든 성인 대축일에 교황 비오 12세가 사도헌장을 통해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동정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나라로 불러올림을 받아 아들 예수와 함께 하늘나라에 영원히 머물러 있다는 내용의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였다. 다른 말로는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도 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8월 15일을 성모 승천 대축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죽은 인간들의 육신 부활은 세말의 공심판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마리아의 육신은 원죄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곧장 하늘나라로 갈 수 있었다. 성모 승천 교의는 마리아를 새 하와로 보는 성경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만약 마리아가 죄를 정복한 새 아담의 승리를 공유하는 새 하와라면, 죽음과 육신의 부패를 정복한 새 아담의 승리 또한 공유해야 마땅하다. 또한 하느님에 의해 죄의 오염으로부터 보호받아 성별된 육신이 부패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자신의 왕국에 새로운 계약궤를 가지고 갔다. 요한 묵시록에서 저자 요한은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나는 환시[14]를 목격한 후에 한 여인을 보게 된다.[15] 요한이 목격한 이 계약궤와 여인은 새 하와이자 교회의 표상인 동정 마리아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가톨릭교회는 묵시록의 이 구절이 마리아의 승천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동방 교회에서는 리비아의 테오테크노가 강론을 통해 마리아는 육신과 영혼이 모두 하늘로 들어올림을 받았다고 강조하면서, 십자가상에서 오른편의 회개한 도적에게 한마디 말로써 낙원을 선사한 예수가 자신이 태중에 머물렀던 어머니에게 어찌 낙원을 선사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제르마노는, 마리아의 운명은 그리스도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에 그 유사성 때문에라도 죽은 다음에 부활하여 승천해야만 하며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예수의 보답이며 사랑이라고 주장하였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은 마리아의 승천을 그녀의 동정성의 신비와 연결시켰다. 크레타의 안드레아는 마리아의 빈 무덤을 전하면서 순결한 여인이었던 마리아가 죄의 벌로 죽음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며 죽음 후 하늘에 올랐음을 주장하였다. 서방 교회에서는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가 처음으로 성모 승천에 관해 언급했는데, 마리아의 임종으로 모든 사도들이 모였고 마리아의 육체는 무덤에 안장된 다음 영혼과 분리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성모 승천에 관한 라틴어 문헌들이 많이 속출하였다. 특히 8-9세기경 성 아우구스티노의 서한에 의해 성모 승천은 신학적인 근거를 갖고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성 대 알베르토,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보나벤투라, 교황 베네딕토 14세에 의해 성모 승천 사실이 끊임없이 재확인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1870년부터 교황들은 성모 승천을 교의로 공식화하자는 요청을 끊임없이 받게 되었다.[16] 그리하여 1950년 모든 성인 대축일 교황 비오 12세는 사도헌장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 성모 승천을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교의로 선포하였다.
-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의 영광으로 들어올림을 받으셨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계시된 신앙의 진리다.
마리아에 대한 기타 가르침[편집]
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에 대해 그밖에도 많은 가르침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르침의 대다수가 위에 교도권에 의해 정의된 마리아 교의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어머니[편집]
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인 모든 기독교 신자들의 어머니라고 가르친다. 교황 그레고리오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성 제르마노에게 보낸 서신에서 동정 마리아에 대해 언급할 때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만인의 어머니”, “모든 그리스도인의 어머니”라고 표현하였다.[17] 이에 대해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사실 동정 마리아께서는 구세주의 참어머니로 인정받으시고 공경을 받으신다. … 분명히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어머니이시다. … 왜냐하면 저 머리의 지체인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태어나도록 사랑으로 협력하셨기 때문이다.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시다.[18]
좀더 부차적인 설명을 하자면, 마리아는 영원한 말씀이 사람이 될 때 하느님의 종이 되기로 ‘영원으로부터 예정’되어 있었으므로[19], 따라서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20]가 교회와 마리아의 관계도 동시에 규정짓는다.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라는 관계가 마리아의 형제자매인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의 지체들, 곧 기독교 신자들과의 관계에도 반영된다. 그래서인즉, 마리아는 ‘은총의 세계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어머니’이다. 다시 말하면, 마리아는 신자마다에게 어머니이다.[21]
신약성경의 요한 복음서[22]를 보면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사도 요한과 어머니 마리아를 내려다보며,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며 어머니로 모실 것을 당부하였으며, 마리아에게는 요한을 아들로 내주었다. 교회는 예수의 이 당부가 요한을 대신해서 이 세상 마칠 때까지 모든 기독교 신자에게도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신앙인의 모범이며 교회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어머니도 된다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7년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유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십자가 밑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이다. 그러나 요한 혼자만이 아니다. 전통을 따라 공의회는 서슴없이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인류의 어머니라 부른다. 그것은 마리아께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아담의 혈통에 결합되어 계실뿐더러 참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며 사랑으로써 교회 안에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신도들이 태어나도록 협력하셨기 때문이다.[23]
천상의 모후[편집]
마리아가 하늘에 들어올림(성모 승천)을 받아 천상 모후의 관을 썼다는 교리는 초기 기독교의 교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지안주스의 성 그레고리오는 마리아를 “우주의 임금의 어머니”, “온누리의 임금을 낳은 동정 어머니”라고 하였으며[24], 시리아의 성 에프렘은 “위엄 가득하신 하늘의 여인이시며 모후이시여, 멸망의 씨를 뿌리는 사탄이 저를 지배하여 의기양양해하는 일이 없도록, 악이 저를 거슬러 승리하는 일이 없도록 당신의 날개 아래 저를 보호해 주소서.”라는 내용의 동정 마리아에게 보호를 청하는 기도를 바쳤다.[25]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성 모데스토는 “현세 인간들의 모후이자 지극히 거룩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말하였다.[26] 여러 교황도 마리아에게 찬사의 표시로 ‘하늘과 땅의 모후(비오 9세)’, ‘세계 통치자들의 모후(레오 13세)’, ‘세계의 모후(비오 12세)’ 등 각종 수식어를 붙였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예형론의 관점으로 요한 묵시록에서 열두 개의 별로 된 면류관을 쓴 여인[27]이 천상의 모후로 등극한 마리아를 예시한다고 보고 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왕국은 다윗 왕조 시절에 모후(母后) 또는 게비라(위대한 부인)이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었다. 왕들은 대체로 인간으로서의 나약함 때문에 여러 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모후로 불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영예는 왕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왕의 어머니가 지닌 권위는 왕과 혼인한 수많은 여인들을 훨씬 능가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솔로몬 왕의 모후인 밧 세바를 들 수 있다. 밧 세바는 왕위에 오른 어린 아들 솔로몬에게 여러 가지를 조언하며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게 협력하였다. 솔로몬도 이러한 모후를 존중하였는데, 모후가 대전으로 들어올 때 그가 왕좌에서 일어나 몸을 굽혀 인사를 하고 자신의 오른편에 어머니를 모셨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예형론적으로 보았을 때, 다윗 왕조는 장차 다가올 그리스도의 왕국을 예고한 것이다. 따라서 다윗 왕조에서 모후의 역할은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동정 마리아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다윗은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의 후손 중 한 사람이 영원히 자기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는 계시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다윗에게 약속된 그 후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서 계시대로 다윗의 왕국을 상속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 사실을 예고할 때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28]
그리고 유다의 왕국에 대한 예고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왕국에서의 왕비, 즉 모후를 예고한 시편의 예언도 있다.
- 임금님의 화살은 날카롭게 원수들의 심장을 꿰뚫고 민족들은 당신 발 아래 쓰러집니다. 오, 하느님 같으신 분! 당신의 왕좌는 영원무궁하며 당신의 왕홀은 공정의 홀입니다. 당신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시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하느님께서 기쁨의 기름을 당신 동료들에 앞서 당신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몰약과 침향과 계피로 당신 옷들이 모두 향기로우며 상아궁에서 흘러나오는 현악 소리가 당신을 즐겁게 합니다. 제왕의 딸들이 당신의 사랑을 받는 여인들 사이에 있으며 왕비는 오피르의 황금으로 단장하고 당신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29]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이 통치하는 왕국은 다윗의 후손이 영원히 다스릴 왕국과 같은 왕국이다. 비록 그 왕국이 현세에서 교회 안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 왕국은 지상의 왕국이 아니라 하늘 위 천상의 왕국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천상 왕국에서 동정 마리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천상의 모후가 된다.
동방 정교회의 마리아론[편집]
동방 정교회의 신학에서는 마리아를 테오토코스, 즉 ‘하느님을 낳은 이’라고 호칭한다. 물론 이는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이 아니라 그녀가 낳은 예수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하느님이기 때문에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고자 한 말이다. 정교회 마리아론의 중심은 마리아의 동정성과 모성이다. 그리하여 정교회에서는 종종 마리아에 대해 언급할 때 ‘영원한 동정녀’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또한 성모 마리아를 찬미할 때 하느님의 피조물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피조물로서 케루빔보다 더 고귀하고, 세라핌보다 더 영광스러운 존재로 묘사한다.[30] 정교회의 마리아론은 마리아의 고결함과 거룩함, 그리스도의 인류 구속 사업에서 받은 그녀의 몫, 은총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정교회 마리아론의 역사는 동방 교회의 교부인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이 마리아의 중개 역할과 성모 안식에 관해 저술하였던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교회의 마리아론은 14세기에 들어서면서 마리아론을 우주적 시점에서 바라본, 즉 예수와 마리아를 우주의 중심과 세계 역사의 목표로 생각한 비잔티움 제국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꽃피기 시작하였다. 20세기에 정교회의 마리아론은 러시아 신학자들로 인하여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정교회에서는 가톨릭교회와는 달리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무염시태) 교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교회는 마리아도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 사실을 전한 후에 성화됨으로써 원죄가 사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성모 승천을 교의화 하지 않고 그냥 단순히 ‘성모 안식’이라고 표현하며 교회에서 내려오는 전승으로 간직하고 있다.
개신교의 마리아관[편집]
개신교의 마리아관은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 등의 주요 개신교 창시자들과 일부 근현대 개신교 신학자들의 입장을 다루고 있다. 개신교는 교파가 매우 많고 다양한 신학과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마리아관을 일반화하는 것은 어렵다.
마르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등 개신교의 창시자들은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각별했던 반면에,[31][32] 오늘날 개신교도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느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을 강조하면서 마리아에 대해 공경하지 않거나 성공회나 루터교처럼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마리아에 대해서 로마 가톨릭교회나 동방 정교회처럼 많이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개신교의 전형적인 마리아관은 하느님 앞에서 그녀의 겸손함과 자신에 대한 하느님 계시에 대해 마음을 열고 순명함으로써 성자가 인성을 취하게끔 한 종으로서의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들어 개신교계에서 새로이 논란이 되고 있는 마리아관은 그녀를 거침이 없고 자신감에 찬, 급진적인 기독교 여인으로 보는 관점이다.[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