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의 이해 ]
** 영혼의 聖藥 **
통회와 정개(定改)
고해성사에 있어서 통회(痛悔)와 정개(定改)는 매우 중대한 요소로서 절대로 빠뜨릴 수 없다. 마치 물이 없이는 세례성사를 행할 수 없고,제병과 포도주가 없이는 성체성사를 이룰 수 없는 것과 같이 통회와 정개 없이는 고해성사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죄를 성찰하는 데만 정신을 집중하여 덤비다가 통회를 하지 못한 사람은 흔히 무익한 고해를, 어떤 때는 독성을 범하는 고해를 해버리기 쉽다. 일부러 통회를 하지 않고 고해를 했으면 그것은 독성적인 고해일 것이요,정신없이 통회를 하지 않고 고해했으면 그것은 무익한 고해가 되고 만다.
그러나 대개 바른 고해를 하겠다는 뜻을 가진다든지,진실하고 솔직한 성찰을 하는 정성 속에는 통회의 요소가 포함되므로 심하게 근심할 일은 아니다.
죄를 통회하는 마음을 일으키려면 이러한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가 범한 죄 때문에 잃어버린 하늘나라를 보고,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수난하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천주께서는 만물의 임자시요,우리는 보잘것없는 허무한 존재이며, 천주께서 우리를 버리시면 우리는 곧 망해 없어지고 말 것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지옥에 떨어진 우리보다 젊은 사람의 사정을 생각해보고,우리가 아직 살아 있음은 천주의 큰 자비하심에 의한 것이라는 등등을 묵상하면 통회의 정이 의심없이 발해질 것이다.
성주간의 목요일이었다. 어떤 사관(士官)이 고해소에 와서 말하기를,
“신부님,바로 말씀드리기에는 실례입니다. 저는 군인인데 고해를 하러 여기 온 것이 아니고,저쪽 걸상 위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와 누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기에 온 것입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부활 축일의 본분을 다하도록 애를 쓰시는데,저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도리어 경멸할 정도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당신은 종교와 성사를 업신여긴단 말입니까?"
“네,신부님! 저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지옥과 천국의 영원한 진리도 믿지 않습니까?"
“네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신도 잘 알겠지만,나는 당신에게 죄를 사해 줄 수 없고,영성체도 하게 할 수 없소"
“그런데, 신부님! 아무래도 어머니와 누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영성체만은 해야겠는데요"
“그러면 좋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당신은 어머니와 누이들과의 약속을 연기하도록 해보세요. 그리고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고해 사제가 영성제하기 전에 보속을 다하도록 명령했다고 말하고 그동안 당신은 지금 내가 명령하는 보속을 다 하고 나서 다시 여기로 와주시오"
“보속이요? 저는 고해를 하지도 않았는데요"
“그것은 상관 없소. 적어도 당신은 여기 와서 고해를 하는 체 한 것 아닙니까?
나를 업신여기지 않는다면 내가 주는 보속을 다 하시오. 훌륭한 군인의 정신으로 약속해주세요”
“네. 그러면 신부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보속을 다 하지요. 무슨 보속입니까?"
“오늘 밤부터 사흘 밤을 계속해서 밤에 나가지 말고, 노는 것을 중지하고, 침실에 들기 전에 ‘천주여,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의 종교와 성사를 경멸했습니다. 당신을 믿기는 합니다마는 죽음과 심판에 대한 사정을 업신여겼습니다. 당신을 믿으면서도 죽음과 심판에 대한 사정을 경멸했습니다’ 하고 외우시오. 그것을 외운 다음에 자도 좋습니다. 약속합니까?"
“신부님! 약속합니다. 군인은 두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관은 돌아갔다.
성 토요일 밤에 그는 다시 고해소로 와서, “신부님! 저는 전에 보속을 받은 사관입니다.
보속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신중히 생각하는 동안에 이 때까지 경멸해오던 사정을 다시는 경멸할 수가 없게 되고, 도리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두렵고 무서운 생각뿐입니다.
제발 신부님! 제가 바른 고해를 하게끔 도와주십시오” 하고 고해를 하기 시작했다.
보라! 효과는 나타났다. 사말(四末) 도리를 생각하게 한 점이 결국 군인을 회개시킨 것이다.
나쁜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그의 신앙이 표면상으로는 없는 것 같았지만 그 마음 속 한 구석에 신앙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었다. 그 불씨가 사말을 생각할 때 다시 활활 타올라 결국 그를 뜨겁게하고 회개시켰다.
통회에는 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 두 종류가 있다. 즉 상등통회와 하등통회인 것이다.
이 세상이나 사후에 영벌을 무서워하며 통회하면 즉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생각하고 발한 통회는 불완전한 즉 하등통회다. 이런 통회는 마치 인정된 화폐지만 구리돈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반대로 우리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에서 우러난 통회야말로 완전한 상등통회인 것이다. 그것은마치 금돈과 같다.
상등통회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고해할 결심을 갖고 상등통회를 발했으면 고해하기 전에 벌써 그 죄는 사함을 받게 된다. 그래서 상등통회를 발한 사람이 고해를 못하고 숨졌더라도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다.
다만 고해하기까지 영성체는 할 수 없지만 고해 할 결심만 했으면 완전한 통회의 힘으로 죄는 사해진 것이다.
다음 그 결심대로 고해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완전한 통회로 사해진 죄가 다시 살아나지 않고 영원히 사해진 것이다. 그러나 태만이라는 다른 새로운 대죄를 범하는 것을 매우 주의해야 한다.
어쨌든 불행하게 대죄를 범했을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고해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완전한 통회를 발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첫째 양심이 편안해질 것이다. 통회는 감정적으로 일으킬 필요는 없다. 마치 치통이나 두통을 느끼는 것처 럼 할 필요가 없다. 마음속으로 발하면 충분하다.
어떤 아이가 제 고해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 자주 머리를 벽에 들이받고 있었다. 그것을 본 고해 사제가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아,신부님 ! 저는 통회를 발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이 천진한 아이가 하는 그런 방법은 필요 없다. 통회와 함께 결심 즉 정개(定改)가 필요하다.
결심이라 함은 지금부터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않고 이런 죄를 범할 기회를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단단히 작정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단단히 작정한다는 것은 참 통회에 절대로 필요한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없고서야 참 통회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결심은 실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어떤 희생을 할지라도 죄의 기회를 피해야 하며,또다시 같은 죄를 범하기보다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편이 나으며, 죽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준비가 있는 결심이라야 한다.
거짓으로 교사한 의향을 품은 결심, 그것은 바르고 단단한 결심이 못된다.
어떤 사람이 나뭇단을 훔친 것을 고해하러 왔다.
“나무를 훔쳤습니다"
“몇 단을 훔쳤나요?"
“신부님 ! 다섯 단을 훔쳤는데 일곱 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왜 그럴까요?"
“발견하기는 일곱 단인데 다섯 단은 훔쳐오고 오늘 밭에 남은 두 단을 마저 훔치러 갈 작정입니다. 그러니 일곱 단이라고 해도 무방하단 말입니다"
또 어떤 소녀가 새벽에 고해를 하고 사죄를 받은 뒤에 막 나가려고 하다가 고해 사제에게,
“신부님, 오늘 아침에 영성체해도 좋습니까?" 하고 묻는다.
“물론 좋다. 오늘 아침뿐 아니라 내일도 모래도…"
“신부님! 내일은 못하겠습니다. 오늘 밤에 무도회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아니 갈수 없습니다"
“무도회? 방금 예수님에게 다시는 예수님을 괴롭히지 않기로 또는 죄의 기회를 멀리 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나?"
“신부님! 저는 과거를 위한 약속을 했지 미래를 위한 약속은 한 일이 없습니다"
이상과 같이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대개 사람들이 과거를 위한 약속을 한다. 이런 약속은 무익한 약속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같은 죄를 범해서 죄와 고해를 번갈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고해를 하고 자기 허물을 고치지 않는 것은 지옥으로 떨어지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이 결심을 잘 지키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세 가지 방법을 써보기로 하자.
1. 너무 자기의 힘을 믿지 말고 다만 천주의 은총의 도움을 기도할 것이요,
2. 죄를 범했을 때마다 무슨 보속을, 즉 묵주기도 한 단을 더 한다든지, 밥 먹을 때 한 그릇씩 먹던 것을 조금 덜 먹기로 결심한다든지 술 마시는 사람은 몇 잔씩 덜 마시기로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런 보속은 죄를 조금씩 갚는 동시에 주의를 일으키는데 큰 효력이 있다.
3.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고해할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전교하던 어떤 선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지방에는 집에서 먹이는 고양이보다 좀 더 큰 산고양이란 것이 있는데 이 놈은 그 지방에 있는 많은 독사에게 자주 습격을 당한다. 이 때 산고양이와 독사 사이에 굉장한 싸움이 벌어져 결국 산고양이가 이기고 만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산고양이는 독사의 독을 받지 않는 이상한 효력이 있는 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산고양이는 독사에게 물리면 즉시 그 풀에 몸을 문지르고 나서 또 독사에게 가서 싸우다가 다시 물리면 또 그 풀로 몸을 문지르기를 여러 차례 하다가 최후에는 뱀의 대가리를 물어 부수고 만다.
우리도 항상 지속의 독사와 싸우고 있다. 이 독사는 온갖 꾀와 수단과 올가미로 우리를 죄로 유인한다. 이 지옥의 뱀을 쳐서 이기려면 어떤 상처에든지 확실한 효력이 있는 약을 써야 한다. 이 약은 자주 올바른 고해를 하는 그것이다. 자주 바른 고해를 함으로써 이 무서운 마귀를 쳐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자주 고해하겠다는 결심을 항상 깨뜨리는 사람은 매우 불행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꼭 큰 죄에 빠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천주께서는 인간에게 속을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우 열심이고 매우 인자한 어느 어머니가 오랫동안 자식의 개심을 위해 애를 쓰는데 그 자식은 어머니에게 번번히 약속을 하고는 그대로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말보다 눈물로써 자식을 개심시키기 위해 마음을 썼다. 어느 날 자식이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어머니! 잘 알았습니다. 저도 어머니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저도 이 생활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이제는 이 생활에 염증이 나서 곧 청산하려고 합니다마는 어머니!
사육제(謝肉察)의 이 최후 사흘 동안 만은 참아주십시오. 그 뒤에는 꼭 이 생활을 청산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이 불행한 청년은 이것으로 천주와 무슨 타협이 된 줄로 생각했다. 새로운 죄를 범하고 나서 개심과 고해를 준비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결코 인간에게 놀림을 당할 분이 아니다.
향락과 방탕 중에 사흘이 지나고 재의 수요일 전날,그 청년이 오랫동안 춤추느라 너무 피로해서 밤 늦게 집으로 돌아와서 침실로 들어가자마자 그 방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집안 사람들이 뛰어왔을 때 이미 그 청년은 침대 위에 거꾸러져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의 개심의 예정과 결심은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지옥은 자신의 과오를 고치고 싶다고 말은 하면서 그것을 끝내 고치지 않은 사람들로 꽉 차있다. 항상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아까 이야기한 그 청년보다 더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그것은 사실 가장 더러운 악마의 종이 되어버린 표적이다.
참으로 자기의 허물을 고치려면 고칠 수 있다. "하면 된다. 안하면 안된다. 무슨 일이든지 안되는 것은 자기가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격언이 있음과 같이, 개심을 마음껏 희구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천주께서는 은총의 도우심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사람의 의지력은 단련함으로써 점점 강해질 수 있다.
이것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실 한 가지를 들어보기로 한다.
워털루 전쟁에서 영웅적인 전사를 한 칸보른 장군이 아직 한낱 병사로 있을 때 한번은 술이 곤드레만드레 취해 상관이었던 소위를 손바닥으로 친 일이 있어 군법회의로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평소에 선량한 군인이었다는 점을 잘 아는 어떤 대령 한 사람이 그를 위해 변호를 잘 해주어서 다행히 용서받게 되었다. 그
러나 그 대령은 그에게 다시는 술에 취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칸보른은 말하기를 “대령님! 당신은 제 목숨의 은인입니다. 당신이 제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는 이제부터 포도주나 알콜 성분이 있는 것은 절대로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을 굳게 약속합니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나 칸브론은 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을 쫓아 칸에서 파리로 갔을 때 이미 퇴역한 그 대령의 초청을 받아 만찬에 참석했다. 그런데 칸브론은 포도주를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그전 일을 까맣게 잊은 대령은 왜 포도주를 마시지 않느냐고 물었다. 칸브론은 22년 전에 그에게 약속한 사실을 말해주면서 그동안 충실하게 그 약속을 지켜왔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고해할 때의 결심도 이 칸브론 대장의 충실을 본받아야 한다.
사람에게 한 약속은 잘 지키면서 천주께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인가?
죄를 버리고 죄의 기회를 멀리 할 굳은 결심이 없이는 고해한 죄의 사함도 헛일이다.
왜냐하면 고해 사제가 백번 당신의 죄를 사한다 할지라도 마음속까지 들여다보시는 예수님께서는 “나는 백 번 너를 죄로 다스리노라”고 하실 것이다. 모처럼 고해를 해도 그 사람의 영신적 성화(聖化)에 진보가 없이는 헛된 고해요, 헛된 사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