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聖藥 **고해 사제에 대한 순종

2016. 2. 16. 오전 6:57:25

글자


 


** 영혼의 聖藥 **


고해 사제에 대한 순종


고해 사제에 대한 순종이라 함은 그를 신뢰하고 신용하며 그의 판단에 자기를 아주 맡기며,

그의 명령과 훈계와 권면을 충실하게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혹시 내가 아직 전부를 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고해 사제가 좋다, 알았다, 그만 해도 넉넉하다라고 말할 경우가 있다. 그때는 한 마디도 더 말할 필요가 없고 곧 잠자코 순종할 따름이다.

고해 사제가 좋다, 다 알았다고 말할 때는 모두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해도 상관 없다. 그 사람의 영혼 상태를 고해 사제는 벌써 짐작했고, 미처 말 못한 부분까지 다 잘 알았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또는 고해 사제가 무엇을 물어보려고 고해자의 말을 가로막을 때도 있다. 그 경우에도 고해자는 아무런 구애를 받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아직 덜 고해한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다 고한다고 신부의 말씀을 귀에 담아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자꾸 하려는 것도 안되는 일이다.

가령 아직 덜 고한 죄를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 할지라도 신부의 말씀부터 주의해 들어야 한다. 그리고 신부의 질문이 다 끝나거든 그때 아직 덜 고한 죄를 고해할 것이다. 이렇게 하다가 사실 무슨 죄(대죄일지라도)를 잊었다 할지라도 그 고해의 효과가 없지 않다. 그러나 잊었다고 생각되는 죄는 다음 고해 때에 할 의무가 있음을 알라.

그 고해가 유효한 까닭은 신부의 말씀에 주의하다 잊었지, 일부러 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해가 유효하였으니 다음 고해할 때 그 잊은 죄를 고할 마음을 먹고 영성체를 해도 무방하다.

고해 사제보다 학식이 많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신부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해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예수 그리스도가 신부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해할 때마다 신부의 긴 설명과 교훈을 들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 희망은 허영심에서 오는 것이다. 고해소는 무슨 설교대나 강론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고해 사제 쪽에서 무슨 긴 말씀이 있을 때는 주의 깊게 귀담아 들을 일이다.

어떤 아이는 고해 사제가 무슨 말씀을 할 때 고해틀 난간의 구멍을 헤아리다가 다 세고는 "신부님! 이 구멍이 백 두개 입니다" 라고 말했다.  또 어떤 할머니는 고해소에서 그만 잠이 들었다. 그래서 고해사제는 그 할머니를 깨우기 위해서 부득이 자리에서 밖으로 나가야 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흉내내서는 안된다.

, 한 가지는 고해 사제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

고해 사제가 고해자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야 함과 같이 고해자도 신부의 말씀을 솔직하게 믿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즉 고해사제가 위로하는 말씀이나 좋은 지도를 할 때, 그 말씀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 가운데서도 신부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가끔 고해 사제가 고해자에게, "당신의 죄의 원인은? 그 사람은? 그 일은? 그 직업은? 그 곳은?" 하고 물으면, 고해자는 "아니요. 그 일, 그사람, 그 직업은 유익하고 필요합니다. 결코 필요합니다."라고 반대로 나간다.

또 다시 고해자에게, "그 보는 책은, 그 노름은, 그 관계는 위험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신부님! 저는 제 할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 저는 매우 주의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또 어떤 고해자에게, "그 원한, 그 질투, 그 부러워함은 당신에게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라고 말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그렇지만 신부님! 저는 그 사람을 원망하지도 안고,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그가 나를 원망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합니다" 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신부의 권면을 듣지 않고 자신을 변명하려 드는 사람은 마치 자기 병을 고치겠다는 기분만 가지고 의사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데 아무 소용이 없는 이치와 같다.

도리어 의사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그를 신용하여 자기 생각에는 덜 맞을지라도 약이나 주사를 선정하는 책임을 의사에게 맡기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해야, 병을 고치든지 건강을 회복하든지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영혼의 의사인 고해 사제의 권면을 안 듣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요, 또한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또 이런 사람도 있다. 고해 사제가 고해자에게 이제는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는 그 죄는 고하지 마시오 라고 말한다든지, 그 의심, 그 의혹에 마음을 태우지 마시오, 그 유감 가지고는 걱정할 필요 없소. 등등의 말을 하면 절대로 확신을 가지고 고해 사제가 말씀하시는 것이니까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좀처럼 안심하지 못하고 자기 혼자 머리 속으로 아마 내가 설명을 잘못했나, 신부가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나, 나의 통회가 부족했는가 등등의 의심을 되풀이하면서 늘 걱정한다.

기질적인 의심을 가진 어떤 부인이 의사에게 가서, 자기의 병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전부 이야기 했다. 의사는 그 길고 긴 증세를 듣고는 정한 시간에 이러저러한 가루 약을 먹으라고 했다. 그 부인은 별로 마음에 흡족하지는 않았지만 의사가 시키는 가루약을 약국에 가서 조제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약을 먹기 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 의사는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을거야.

내가 설명을 잘 못한 모양이지... 의사의 처방이 틀린 것이지... 약국 주인도 의심을 하던 모양이던데... 약국 주인도 깜빡 저울질을 잘못했을는지 몰라. 아! 이 약을 먹으면 안된다. 나는 죽고야 만다.

결코 이 약을 먹어서는 효험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를 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튿날 아침에 다른 병원을 찾아가서 의사에게 앞서보다 병세를 더 자세히 설명하느라고 길고 긴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너무나 지루한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처방을 주면서 그것을 정한 시간에 한 숟가락씩 마시라고 했다. 부인은 매우 만족해서 병원을 나와 약국에 가서 처방대로 물약을 지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약을 먹으려고 하다가, 또다시 생각해본다. 대체 어찌 된 셈일까... 저 의사는 가루약을 먹으라고  하는데, 이 의사는 물약을 먹으라고 하니..., 저 사람들이 한 일이 모순이 아닌가... 사람들은 내 병을 잘 모르는  모양이지... 저 사람들은 되는대로 처방을 내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나는 저런 무지막지한 의사들의 처방에 희생되고 싶지 않다. 그녀는 결코 이 약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 약병을 밖에 내동댕이쳤다.

그 이튿날 그녀는 또 다른 의사에게 가서 앞에서보다 더 자세히 증세를 이야기 하고 처방을 받았다.

이번에는 환약을 먹으라는 것이다. 부인은 대단히 만족해서 환약을 지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또 그 약을 먹기 전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의심이 구름같이 머리에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어떻게 내가 이 환약을 먹는단 말이냐. 어째서 세 사람이 다 다른 처방을 할까? 하나는 가루약, 하나는 물약, 하나는 환약... 의사고 뭐고 다 모르는 바보들이다.

나의 병을 바로 알아맞히는 의사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나보다. 아! 나는 죽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아! 불쌍한 나로구나... 그녀는 탄식만 하다가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실망하고 말았다. 하인, 하녀, 이웃사람, 친구들이 모여들어 그 부인을 위로해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는 내 병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자기는 아무래도 죽을 사람이라고 하면서 또 다시 울기만 했다. 사실 그녀의 병은 병도 아니고, 단순히 기분에서 생긴 의심병일 뿐이었다.

고해 사제의 권면과 타이르는 말을 순종하지 않은 사람과, 영혼 사정에 대해 신부가 말하는 것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은 이런 부인과 같은 것이다. 고해 사제가 우리 영혼 사정과 양심 문제에 대해 책임을 가지는 것은, 신부는 우리 마음속을 잘 알고 우리의 결점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면 그 환자보다 훨씬 병상을 잘 아는 것처럼.

그러므로 우리는 의사를 신임하는 것과 같이 고해 사제를 신용해야 하고, 자기의 의견을 버리고 솔직하게 고해 사제의 훈계와 위로를 받아들이는 영혼만이 참된 평화를 마음에 누리게 될 것이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교리방/기도문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