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聖藥 ** 고해와 사죄와 보속

2016. 2. 17. 오전 7:11:37

글자

[고해성사의 이해 ]

                        

** 영혼의 聖藥 **












고해와 사죄와 보속


고해라 함은 문답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범한 죄를 신부 앞에 바로 드러내는 것이다. 고해를 잘하려면 대죄와 그 횟수 및 사정 등을 빠짐 없이 진실로 뚜렷하게 말로 드러내야 한다.

그러므로 대강 고해해서는 충분하지 못하다. 비유하건대 막연하게 천주의 10계에 대해 죄를 범했다든가 또는  대체로 제6계를 범했다고만 해서는 넉넉하지 못하다.

한 가지 한 가지 죄를 그 죄가 대죄였는지 소죄였는지 밝힐 뿐 아니라 대죄는 그 사정까지 똑똑히 고해해야 한다. 고해해야 할 사정이라 함은 소죄가 대죄로 된 경우,또는 한 가지 악한 일이 여러 계명을 거슬러 대죄 위에 또 다른 대죄를 덧붙인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성당 안에서 누가 어떤 사람의 돈을 빼앗고 죽였다면 그저 살인죄를 범했다고만 고해하면 부족하다. 성당에서 범했으니 천주 10계 중 제1계를 범했고, 돈을 빼앗았으니 제7계를 범했고 또 제5계 즉 살인죄를  범했으니,한 가지 대죄에 두 가지 대죄가 겹친 것이 아닌가? 이러한 사정을 밝혀 고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죄에 관계되는 상대편의 이름을 말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죄를 말해서는 안된다.


고해는 주의 깊게 해야 한다. 그 까닭은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말하지 않고는 고해할 사정을 옳게 드러내지 못할 경우에는 그 사람의 이름은 대지 말고 자신에 대한 그의 지위 직업 혈연의 멀고 가까움 등을 말하면 충분하다.

또 고해 사제가 무엇을 질문할 때 고해자는 진실대로 대답해야 한다. 신부는 고해자가 죄의 종류나 횟수,사정 등을 제대로 말하지 않을 때만 묻는다. 또는 그 고해자가 죄의 직접적인 원인 중에 있었는가 그 죄를 범하는 데 습관이 되어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도 물어 본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도 죄의 상대방 이름을 말해서는 안된다. 


아내는 자신의 죄보다도 남편과 자녀들의 죄를 고백할 일이 아니다. 한 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어떤 남성이 아내가 고해하고 간 직후에 고해소에 와서 고백의 기도를 외우고는 아무 말이 없다.

고해 사제가 죄를 고하라고 하니까 그는 말하기를 “신부님! 당신이 벌써 제 죄를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까 제 아내가 그 전모를 똑똑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저 걸상에 앉아서 다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또 한가지 이야기.

어느 날,남편의 십자가였던 어떤 여성이 고해소로 와서하는 말이, “신부님! 저는 불행한 여자입니다.

저의 남편은 모진 짐승과 같은 사나이입니다. 저 사람은 항상 저주하는 큰 소리로 천주를 모독하고

주일을 지키지 않고 술집에만 다닙니다”라고 말하기에 신부는, “당신은?" 하고 물으니 그 여자의 대답이 “저는 불쌍한 치명자입니다. 남편은 놀러만 다니며 먹고 마시기만 하기에 어느 때 제가 무어라고 잔소리를 좀 하면 그만 저에게 욕하고 때립니다”라고 말한다.

신부는 또 묻기를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합니까?"라고 하니,그 여자는 더욱 열이 나서,“저 말입니까?

저는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습니다. 남편은 가정의 나쁜 표양이며 집안을 망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다는 것이 저를 못살게 구는 일뿐입니다”라고 한다.


신부는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네 좋소. 잘 알았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당신의 연속을 계속하시오. 그리고 보속으로 당신을 위하여 성모송 세 번 외우고 당신 남편의 몫으로 묵주기도 세 단을 외우시오” 하니까

그 여자가 의아한 모양으로,“저의 남편을 위해서라니요? 그 사람이 죄를 범했으니까 그가 제 보속을 할 것이지 제가 왜 남편의 보속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반문한다.


신부는 “죄를 범하기는 당신 남편이지만 그 죄를 고하기는 당신이 하지 않았소? 보속은 고해한 사람에게 주는 법이니까” 하고 작은 창문을 그만 닫아버리고 그 여자에게 남의 죄를 고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가버렸다.


고해 때는 착실하게 성찰해서 알아낸 모든 대죄와 앞에서 고백할 때 빠졌던 죄와 전에 잘 고해하지 않았던 죄를 전부들어 말해야 한다. 순서를 말하겠다.

먼저 죄를 고하고 나서 양심을 괴롭히는 모든 의문과 걱정을 말해도 좋다. 고해는 가장 먼저 대죄를 고하고,자주 범하는 죄와,자기의 특별히 나쁜 습관 에서 생기는 죄를 고할 것이다.

자기의 특별히 나쁜 습관을 거슬러 싸운 상대를 드러내기에는 매우 괴로운 일이고 꼭 고해할 것은 아니지만 고해 사제에 따라서 우리를 더욱 완전히 지도하기 위해서 아주 중대한 문제가 되므로 그것도 분명히 말해야한다.


고해는 정직하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무서워서 또는 부끄러워서 어떤 죄를 숨겨서는 절대로 안된다.

또한 죄의 횟수를 덜 말하지 않도록 하고,우리의 결점이나 습관에서 생기는 모든 사정을 말하고,소죄까지 정직하게 말해야한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를 넘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고해할 때 모욕과 나쁜 말을 벌려놓으면서 “저는 이러저러 했습니다” 라며 자기가 말한 악담과 욕설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기에 고해 사제가 그러지 말라고 제지해도 그 사내는 더욱 열을 내며 기어이 전부를 사실 그대로 되풀이하고 말았다. 또 어떤 여성은 남편과 아이들과 가축에 대해서 악담과 욕설,잡담을 되풀이하여 고해 사제를 귀찮게 한 일도 있고,어떤 처녀는 나쁜 노래를 불렀다고 고해하게 되었다.

신부가 무슨 나쁜 노래냐고 물었더니 그 처녀는 성당 안에 신자들이 가득 앉아 있는데도 큰 소리로 한바탕 그 노래를 불렀다. 이러한 짓들은 모두 도가 지나친 것이다.

또는 일부러 자기의 과오를 과장하여 말한다거나 범하지도 않은 죄를 확실한 것 같이 고하는 것도 도를 넘는 것이니 그래서는 안된다. 산상설교(山上說敎)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그 정직으로 고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해는 겸손하게 해야 한다. 자기가 자기를 송사하는 사람은 천주께서 그를 변호해 주시리라고 생각하고,자기의 비천함과 무력함을 알고 겸손되이 고해해야 할 것이다.

고해는 그야말로 겸손의 성사며, 자존심을 꺾는 형장이라 할 것이다. 고해자는 겸손을 갚게 하기 위해 죄만 고할 것이 아니라 그 죄의 비밀스런 원인과 우리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나쁜 원욕과 의향을 승낙하지 않았어도 그것을 물리치기를 게을리했거나 그것을 물리치기보다는 싫어하면서도 조금 애착심을 두지 않았나 하는 등등의 사실까지 모조리 말해야한다. 입술이 바싹바싹 타고 등에는 식은 땀이 또는 더운 땀이 날지라도 우리의 교만심을 억누르고 자존심을 상하는 사정을 똑똑히 말하는 것이 좋다. 힘을 내서 쫓을수록 마음은 가뿐해진다.


우리 마음이 상한 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속히 또한 완전히 낫게 될 것이다.

매우 겸손한 고해의 예를 말해보자. 이 고해는 성 도미니코회 라고르벨이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설교가의 사례이다. 이 웅변을 잘하는 설교가가 1852년 늦가을에 자기 수도회의 집을 지으려고 드로오사라는 지방으로 갔다.

그는 도중에 디지오메 마을을 지나가다가 그 마을에 있는 소성당 으로 가서 주임신부를 찾았다.

부우고 주임신부는 마침 미사를 마치고 제의방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제의를 벗은 신부 앞에 라고르텔 신부가 나타나서 고해성사를 청했다. 다음은 부우고 신부가 한 이야기다. 


나는 즉시 그가 유명한 설교가 신부인 것을 알아보고 그에게 무릎틀을 내주려고 하는데 그는 벌써

마루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내게 말하기를 “어릴 때부터의 총고해를 할 테니 들어주십시오” 하고는

고해하기 시작한다. 그는 소년,청년,사제,수사 시절을 통한 총고해를 매우 겸손되게 절실한 통회로 또한 비상하게 열심히 고해했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결코 고해의 비밀을 깨뜨리는 것은 아니다.


총고해가 끝나고 나는 그에게 사죄경을 염했다. 그는 두 서너 번 내 발에 친구하고 나서 하는 말이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신부님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라고 한다.

“제가 무엇을 거절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더니,그는 수단 밑에서 가죽 채찍을 꺼내

내게 말하기를, “신부님께 청하고 싶은 것은 이 채찍으로 저를 백 대만 때려주십사 하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아니오. 그것은 도저히 못합니다…”라고 나는 무서워서 대답했다. “그러면 신부님이 나의 청을 거절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 그가 말할 때 그의 눈망울과 말투를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부득이 나는 그 가죽 채찍을 받았다. 매우 호인이었던 라고르댈 신부는 열다섯 대에서 스무 대를 맞는 동안에 깊고도 유순한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나는 마침내 마지막까지 때리기를 계속했다. 몇 번이나 도중에 그만두려고 해봤지만 그는 도저히 듣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최후까지 그 참혹한 의무를 다했다.

그는 내가 백 대를 다 때리고 나니 일어서서 나를 안고 “지금 내가 고해한 모든 죄를 내게 회상시켜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상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나를 고해의 비밀에서 자유롭게 해주었다.


나는 그 순간의 기분을 글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마음속 깊이 감동받지 않는 사람은 이러한 경우를 말해주었댔자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여기까지가 부우고 신부의 이야기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이처럼 겸손으로 고해한다. 우리도 이러한 모범을 따르자.

고해하는 사람이 이와 같이 한다면 의심할 것 없이 속히 성인이 될 것이다. 그는 성인까지는 몰라도 언제까지라도똑 같은 죄를 아뢰어야 할 고해와 고해란 무익한 자물쇠를 부숴버릴 수 있다.


즉 이 성사의 결과인 참된 개심(改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고해할 때 이미 사함을 받은 과거의 죄를 또 다시 고해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겠지만 너무나 평범한 죄를 거듭 고해하는 것은 무익하고 효과가 적다.

그러므로 과거의 죄 중에서도 고해자의 마음에 제일 걸리는 죄와 완덕으로 나아가려는 데 늘 방해가 될 수 있는 죄를 되풀이 고해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고 효과적일 것이다.

예를 들면 순명, 애덕 정결 본분 의무에 관한 죄 등이다. 아무래도 고해할 용기가 나지 않는 죄가 있을 경우에는 곧 고해 사제에게 “신부님! 고해할 용기가 없는 죄가 있습니다”라고 하고 신부의 애덕과 마음쓰기에 맡겨 그를 신용하고 솔직하게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좋다.


과거에 고해를 잘못한 탓으로 마음이 산란할 때는 곧 고해 사제에게 “신부님 ! 제 마음이 소란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오랫동안(또는 얼마 전부터) 모고해를 해왔습니다”라고 말하면 좋다.

그러면 신부는 당신을 도와 당신 마음의 소란한 것을 낫게 해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처럼 간단하게 행복을 얻는 것을 꿈처럼 느낄 것이요 당신 영혼 속에는 환희와 평화가 넘칠 것이다. 우리가 잘 알아야 할 점은 고해할 때 대죄를 한 가지라도 숨기면 고해한 다른 죄 한 가지도 사함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모고해한 대죄 한 가지를 더하게 된다. 대죄를 숨겼을 때는 그 모고해죄는 물론 그때 고해했던 모든 대죄와 그 후에 새로 범한 대죄를 전부 새로 고해해야 한다. 고해에 대해서는 이만큼 말해두고 이제는 사죄(敬罪)에 대해서 조금 말하기로 하자. 


신부는 “예수그리스도의 권위로써… 나 신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하노라”고 하는 말씀으로 죄를 사하신다. 이 말씀으로 죄와 영원한 벌을 사하고 잃었던 은총을 회복하고 또한 죄를 피하게 현행 은총을 받게 된다. 그런데 유한한 벌 즉 보속은 이 세상에서나 연옥에서 다 갚아야 한다. 죄를 사하는 것은 이 성사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대목이다.


이 사죄경만은 잘 듣는 약이요 죄로 죽은 영혼을 되살리는 생명의 말씀이요 착한 생활을 하도록 힘을 주는 말씀이요,사람의 영혼에 천국을 열어주는 열쇠인 것이다. 신부가 사죄경을 염하실 때 우리는 당신 피로써 우리를 씻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신부의 입을 통해 우리 영혼 위에 예수님의 이 거룩한 말씀은 얼마나 많은 영적(靈橫)을 행하셨는지,얼마나 많은 진흙을 영혼에서 덜어주셨는지 다 말할 수 없다. 악에 물든 많은 영혼이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소생되어 다시 영혼을 얻게 되는 사실은 기가 막힐 일이다.


우리는 끝 없는 신뢰심을 가지고 죄 사함을 받도록 하자. 우리는 이 사죄가 지혜 있는 약이요 언제든지 잘 듣는 약이므로 그것을 바를 때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사죄를 받은 어떤 죄수가 다행히도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매우 열심한 수사 신부의 훈도를 받아 형장에 이르러막 올가미가 목에 감기기 직전에 옆에 있던 그 수사 신부가 또 한번 그의 모든 죄에 대한 사죄경을 염하자마자 그는 대성통곡했다. 신부가 “왜 그렇게 우느냐?"라고 물으니 그는 대답하기를 “저는 저의 운명을 슬퍼해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까지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경찰관에게 잡혔을 때나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지금 천주께서 저의 죄를 사해주시는 것을 생각하니 어찌 제가 울지 않고 견디겠습니까?" 한다. 

그 곳에 모인 수천 명의 군중은 그 말을 듣고 감동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우리도 죄 사함을 받을 때마다 천주께서 우리 죄를 사해 주신다고 생각하면 울지 않고는 못 견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죄 사함을 받을 때 우리 마음에 감동을 느끼지 않았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성사란 것은 성사 그 자체의 힘으로 효력을 발하게 되는 것이니 사죄경이 우리 귀에 잘 들리지 않았어도 그 말씀의 효과는 나타난다.


사죄경이 언제든지 우리 죄를 사해 없앨 수 있을까? 생각나는 모든 죄를 솔직하게 고해하고 통회하며 죄의 기회를 멀리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언제든지 사죄경의 말씀이 우리 죄를 사해 없앤다.

그러나 바른 고해가 아니거나 통회 정개가 없는 고해면 수백 번 사죄경을 염했다 해도 죄는 여전히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바른 고해를 하겠다는 준비도 없이 무슨 죄든지 사해 주시리라고 믿고 신부를 찾아가서 마치 신부로부터 사죄함을 빼앗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불행을 초래한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빠질 구멍 이를 파는 사람이요 스스로 제 올가미를 마련하는 사람이다.

천주께서는 의심 없이 그런 사람을 벌하실 것이다. 고해 사제는 속일 수 있어도 마음속까지 밝혀 보시는 천주만은 속이지 못할것이다.


소송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시비 때문에 재산을 다 날리고 매우 가난해져서 몸이 바짝 마르고, 누더기를 뭄에 감게 되었다. 그는 자식에게 사진을 꺼내주며 그 밑에 기록하기를 “항상 시비해서 내가 이겼다.

그래서 최후에는 내가 이 꼴이 되고 말았다”라고 했다. 이 사람의 이야기는 사죄함을 마치 빼앗는 듯한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 되는 대로 고해하다가 사죄를 받지 못할 때는 즉시 다른 고해 사제를 찾아갈 생각을 하지 말고 겸손되게 그 신부의 지도에 따라 새로운 각오를 하여 다시 고해하도록 해야 한다. 고해를 다한 후에 사죄받은 것을 천주께 감사하고,신부의 훈계하신 말씀과 권면받은 것을 잘 생각하며,명하신 보속을 속히 해야한다.


고해성사의 보속이라 함은 고해한 죄에 대한 신부로부터 명령받은 의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으로 인해 죄 때문에 받을 유한한 벌을 갚기 위한 특별한 행사다. 먼저 신부가 정하신 보속을 할 것은 물론이고,그 밖에 착한 일을 행하며, 이 세상 노고와 근심,걱정 같은 것을 잘 참아 그를 죄의 보속으로 삼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한다. 이것을 천주가 정한 보속이라 한다. 그리고 남의 신체나 재산, 명에를 훼손했을 때는 할 수 있는 대로 그 손해를 갚음으로써 보속을 다할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엄한 보속을 주는 풍습이 있던 옛날 어떤 두 사람이 아마도 같은 죄를 범하고 같은 보속을 받았는데 멀고 먼 성지를 걸어서 순례하게 되었다. 그들은 용기를 내서 오랫동안 걸어갔다. 한 사람이 말하기를,“좀 천천히 가세. 나는 더 걸을 수 없네. 발이 몹시 아파서 ... 자네는 모르는지 몰라도, 고해 사제가 보속으로 구두 속에다 콩을 넣고 걸으라고 명령하셨다네” 하니까,또 한 사람 역시 “하,그래? 내게도 그렇게 명령하셨다네”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자네는 콩을 넣지 않았는가?" “물론 넣었지" “그래도 안 아파?" “아니 조금도…. 도리어 유쾌하네"

“어째서?" “삶은 콩을 넣었지" 혹시 누구는 이 사람을 영리한 사람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실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보속은 고해 사제가 명령한 대로 순명해서 확실히 실행해야 한다.

삶은 콩을 구두에 넣어 자기를 속이는 어리석은 꾀에 지나지 않는 그런 보속은 참 보속이 아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교리방/기도문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