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마태 8,18-22)

2013. 7. 2. 오전 5:07:03

글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연중 제13주간 월요일>(2013. 7. 1. 월)(마태 8,18-22)

 

 

 

 

"그때에 한 율법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마태 8,19)."

'따르겠다.' 라는 말은 제자(신자)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라는 말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그가 예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겪게 될 고생을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는 왜 예수님을 따르려고 했을까?

그의 지향과 소망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예수님께서는 그의 청을 계기로 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예수님의 말씀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잠시 앉아서 쉴 곳조차 없는 생활도 각오해야 한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내가 돌아다니면서 활동하는 것은 세속의 부귀영화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는(속세에서는)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분이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지상의 예수님의 처지를 함께 겪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세속적인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속한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속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하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만을 희망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말씀에 '세속의 부귀영화를 얻기를 바란다면 나를 따르지 말고 다른 사람을 따라가라.'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은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만 따라가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세속의 부귀영화'만' 바라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좀 더 편안한 삶을 바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닌데, 편안한 삶'만' 바라면서 조금이라도 힘든 것을 거부한다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을 얻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문을 '좁은 문'으로 표현하셨습니다(마태 7,13).

적은 수의 사람들만 선별해서 받아들이려고 일부러 하느님 나라의 문을 '좁은 문'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멸망의 문을 향해서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길이 넓어지고, 적은 수의 사람들만 생명의 문으로 가서 그 길과 문이 좁아진 것입니다.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4)."

그 문은 누구든지 두드리기만 하면 열리는(마태 7,7-8) 문인데, 편한 것만 찾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하고 말씀하셨다(마태 8,21-22)."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 라는 표현은 이미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가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겠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잠시 중단하겠다는 뜻입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잠시 중단하겠다는 뜻으로 말했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가지 말라는 뜻도 아니고,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세상의 일만 생각하느라고 하느님의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세상의 일도 하느님의 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일이고,
교회 밖에서나 안에서나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과 대립되는 일이 아닙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라자로가 죽었을 때 당시의 관습대로 장례를 치렀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따름을 중단하지는 않았습니다.

(루카복음 9장 60절을 보면,“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이 말씀은 그 제자를 다른 곳으로 파견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가긴 가되, 가서 세속 일에 집착하지 말고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는 계기로 삼아라.”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장례 외에도 여러 가지 중요한 세상일들과 행사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하는 기간 동안에 '신앙인'이라는 신분과 정체성이 일시 정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신앙인은 항상 신앙인입니다.

정치를 하고 있어도, 사업을 하고 있어도, 농사를 짓고 있어도, 군복무를 하고 있어도, 휴가철이 되어서 놀러갔어도, 시험공부를 하고 있어도, 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어도...

신앙인은 신앙인으로서 행동하고 살아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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