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기념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19,25-34)

2026. 5. 20. 오전 8: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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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5일 월요일

[마리아 기념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19,25-34)



1독서<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창세3,9-15.20)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사람이 대답하였다.

12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는<그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1,12-14)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뒤에 12 사도들은 올리브 산이라고 하는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 산은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예루살렘에 가까이 있었다.

13 성안에 들어간 그들은 자기들이 묵고 있던 위층 방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아, 필립보와 토마스, 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열혈당원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였다.

14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화답송>시편87,1-2.35.6-7(3)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거룩한 산 위에 세운 그 터전, 주님이 야곱의 어느 거처보다, 시온의 성문들을 사랑하시네.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여기서 태어났으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 몸소 이를 굳게 세우셨다.”

주님이 백성들을 적어 가며 헤아리신다. “이자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노래하는 이도 춤추는 이도 말하는구나. “나의 샘은 모두 네 안에 있네.”

 

복음<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5-34)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동정 마리아 기념일 제1독서 (창세3,9-15.20)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15)

 

'나는 ~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원문의 '웨에바 아쉬트'(weebah ashith)는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증오를 놓을 것'(And I will put enmity)이다.

여기서 '증오'(에바 ; ebah)는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적대자에게 품은 삭힐 수 없는 깊은 원한과 적개심(민수35,21.22)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이 단어를 문장의 서두에  위치시켜 적개심 그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놓다'는 가슴에 '품다', '품에 안다'(룻기4,16), '갇히다'(시편88,9)로도 번역되는 '쉬트'(shith)의 미완료형으로서, 적개심(증오)을 가슴 속에 계속 품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사탄의 유혹에 빠져 범죄함으로서 비참한 운명 가운데 처하게 된 인간은 사탄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너와 그 여자 사이에'로 번역된 원문은 '뻬네가 우벤 하잇샤'(beneka uben haisha)인데, 직역하면 '너 사이에 그리고 그 여자 사이에' 이다.

이처럼 본문에는 '~사이에'를 뜻하는 '뻰'(ben)이 2번이나 등장하며, 여자와 사탄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장 형식은 이어 나오는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에서도 동일하다.

즉 하느님께서는 뱀과 여자, 그리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앞에 모두 '뻰'(ben)이라는 전치사를 어,  인간이 영원히 뱀 즉 사탄을 멀리하고 적대시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

 

'여자의 후손'으로 번역된 '자르아흐'(zarah)'씨를 뿌리다'(파종하다; 레위25,22)라는 뜻이 있는 '자라'(zara)에서 유래하며, 일차적으로는 '씨'(창세4,25)를 가리키나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후손'(창세12,7), '자손'(레위20,2) 등으로 더 널리 번역되는 '제라'(zera)여성 3인칭 단수 접미어가 붙은 단수형이다.

여기서 단수형이 사용된 것은, 히브리인들이 '씨'나 '자손'은 모두 하나의 근본에서 출발한 동일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수로 표기된 '여자의 후손'(her seed)은 이어 나오는 뱀의 후손과 대결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얻을 한 사람, 즉 장차 이 땅에 동정녀 마리아에 의해 탄생하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여자의 후손'(자르아흐)'제라'(zera)여성 3인칭 단수 접마어가 붙은 단수형이므로, 성모 마리아에게 적용해왔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갈라4,4)

 

첫 에와와 첫 아담의 하느님께 대한 교만과 불순명과 자유남용으로 지은 원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죄와 고통과 죽음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멸망과 저주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사(세속사)를 구원과 축복과 생명의 구원사로 바꾸시기 위해, 둘째 에와이신 성모 마리아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명과 자유의지의 선용과 협력이 하느님 아버지께 필요했던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로 번역된 '에슈페카 로쉬'(yeshupeka rosh)에서 '상처를 입히다'(상하다;슈프; shup)'때리다', '타박상을 입히다', 혹은 '눌러서 뭉개다'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머리'(로쉬; rosh)인간이나 동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또한 각 개체를 대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머리를 뭉갠다는 것은 상대방에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여 회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본문의 문맥으로 볼 때, 이와같이 사탄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분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사탄에게 승리하셨다.

이로 인하여 사탄은 머리가 상한 뱀과 같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사탄의 모든 세력을 불과 유황 못에 던짐으로써(묵시20,10.15) 완전한 승리를 이루실 때까지, 상한 머리를 감싸고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미 머리가 상해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미 사탄에게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권세를 힘입을 때 승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의 '상처를 입히다'(상하게 하다)의 동사가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 그 상하게 하는 일이 계속 지속됨을 암시한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실로 사탄은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에 의해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으며,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군사인 성도들에 의해 계속 패배당하고 있다.

이와같이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에 이루어지는, 본절에 나오는 사탄에 대한 승리의 선언을 우리는 원시 복음(原始 福音;첫 복음; Proto Evangelium)이라고 부른다.

 

원죄로 말미암아 멸망과 저주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사(세속사)를 구원의 역사로 바꾸시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사람이 되게 하셔서,당신의 구원사업을 완성하게 하셨다.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여기서 '상처를 입히리라'로 번역된 '테슈펜누'(theshuphenu)는 바로 앞 문장에 나오는 '슈프'(shup)와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나 앞 문장에서는 '머리'가 상하게 하는 대상인 반면에, 여기서는 '발꿈치'(아케브; aqeb)가 그 대상으로 되어 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머리는 인간이나 동물에게 가장 중요하며, 상처를 입을 때 치명적이지만, 반대로 발꿈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부위를 상징하며,상처를 입어도 치명적이지 않다.

사탄의 공격은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중단케 하지 못했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서 그 발꿈치의 상처마저 완전히 치유되었다.

 

그러나 사탄의 상하게 하는 역사를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상하게 하다'(슈프; shup)는 히브리어는 집요하게 공격하여 상처를 남긴다는 의미이며, 또한 본문에서도 이 단어는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 사탄은 상하게 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할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묵시20,10.15;1베드5,8).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요한 복음서에서는 사도 요한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요한 13,23; 19,26; 20,2; 21,7.20 참조)라고 일컫습니다.

요한은 누구보다 주님을 깊이 사랑하였기에, 십자가 아래 남아 그분의 죽음을 지킨 유일한 제자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의 사도요한에게 성모님을 맡기시고 그를 통하여 교회에 공경할 어머니로 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서는 카나에서처럼 여인이시여”(2,4) 하고 어머니를 부르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카나에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5) 하시며 주님께 순명하셨듯이, 이 마지막 순간에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며 사랑하시는 제자를 바라보게 하시고 아들로 내주신 주님께 오롯이 순명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와를 메시아의 어머니요 장차 악에게 궁극적으로 승리할 온 인류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듯이(1독서 참조), 아드님께서도 새 하와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 주님께서 목마르다.” 하시고(시편 22[21],16; 69[68],22 참조) 신 포도주를 드셨으며(시편 69[68],22 참조), 그분의 뼈가 상하지 않았고(시편 34[33],21 참조) 창에 옆구리를 찔리신(즈카 12,10 참조) 예수님을 낱낱이 증언한 요한은, 이로써 구약의 예언과 성부께서 마련하신 구원 경륜이 온전히 실현되었음을 드러냅니다.

성부께 목숨을 바치기까지 순명하신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는, 사랑으로 어머니와 아들로 서로 받아들이신 성모님과 요한의 순명도 함께였음을 기억합니다.

주님께서 어머니로 주신 성모님께 의탁하며, 이웃과 동료를 가족으로 맞아들여 사랑하는 삶 가운데 우리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기념일]

 

하와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에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독서(창세3,9-21)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어디, - 어느 장소에 있느냐? 가 아니라, 어느 자리에 있느냐? 를 물으신 것이다. 곧 선과 악의 자리와 생명의 자리, 그 중 어디에~  모르셔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네가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지 아니?’ 하고 물으시는 것이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 ‘숨는 자리’에 있다. 곧 하느님의 소리, 말씀을 선악으로 먹고는 자신의 알몸을 보았고, 두려워 숨은 것이다.(그래서 죄인은 하느님을 피해 스스로 어둠, 지옥을 찾아간다고 한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 나무 열매? - 나무는 히브리어 ‘스타오로스’로 기둥이며, 기둥은 하느님의 계약, 약속을 뜻한다.

그러니까 사람은 뱀의 유혹으로 하느님의 약속인 말씀을 자신의 뜻, 욕망, 의를 위한 선악으로 먹고(창세3,5-6), 자신의 알몸은 부끄러운 것이고 그것은 하느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이라 스스로 판단하여 두려워 숨은 것이다.

 

(창세2,9.16-17)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하느님의 계약(나무, 기둥)의 말씀을 죽음의 선악으로 먹을 것이냐? 생명(生命)의 열매로 먹을 것이냐? 사람에게 선택하게 하셨던 것이다. 곧 죽음과 생명, 저주와 축복, 그 둘 중 선택하라 하신 것이다.

성경은 아담을 사람이라 부르고 있다. *성경- 하느님의 말씀은 점층적이며, 반복적으로 쓰여 졌다고 한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세상)의 종살이에서 탈출시키신 뒤, 곧 오늘날 믿는다는 우리의 인생길에서 하시는 말씀이~

(신명30,19)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 하늘과 땅은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사랑의 계약, 약속으로 지어졌고, 말하고 있다.

 

(창세1,1-2) 1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비어있는 상태가 어둠(조- 죽음)인 것이고, 그 위를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곧 하느님의 영이 덮으시고, 채우심으로 창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로마1,20)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사랑, 영광)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 그러나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뜻, 계약, 생명, 영광의 말씀보다 창조물인 조물을 욕망했고, 사랑했고, 원하며 죄를 짓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흙인 사람들의 습성,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왜 사람 앞에 죽음의 선악의 나무를 노아 두셨을까? 그것은 사람이 자신의 본질이 흙의 먼지일 뿐인 그 없음(죄)의 실체임을 깨닫고, 그 없음에 당신의 숨, 곧 하느님의 숨(생명력)을 넣어 주셨음을 알고,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다. 그래서 사람들의 칭찬, 영광을 받으시면서 사람과 인격적으로, 당신의 생명력을 먹은 당신의 자녀로 서로 사랑하며 영원히 살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망, 그 고집은 엄청나다. 무섭다. 징글징글하게 끈질기다.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자신의 창조주의 뜻, 생명의 말씀을 끝까지 거부한다. 곧 하느님을 죽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 죄의 선택이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핑개를 대는 것이 사람이다.

 

오늘 그 모습을 보라 하신다.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 사람이 자신이 다스려야 할 짐승에게, 자신이 오히려 지배를 받은 것이다. 자신의 죄(罪)된 욕망 때문이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 하느님의 숨, 생명력을 거부하면 흙의 먼지일 뿐이다. 곧 자신의 욕망, 영광 때문에 말씀을 거부(拒否)하면, 뱀에게 먹혀 뱀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착하게 살았던 율법자 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의 작품, 창조물, 곧 당신의 숨, 생명력을 받은 당신의 사람을 뱀의 자식으로 내버려 두실 수가 없으셨다.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선악의 생각)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진리의 길)에 상처를 입히리라.”

= 하느님의 외 아드님이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죄인들의 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구원의 모습이다. (요한14,6) 뱀의 후손인 율법 자들에 의해서 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창조 이전 하느님께서 세우셨던 구원의 계약, 뜻이었다.(에페1,4)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 최초의 죄인인 여자, ‘하와’가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대속, 그 계약의 말씀으로 살아났기에 자신을 비롯해 ‘모든 산(生) 이들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절이~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어린양이 죽어 남긴 가죽’으로 만든 옷이다. 곧 모든 죄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다.

 

(로마13,14) 14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에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여자(빈 그릇)들만 소개한 것이다. 곧 하느님의 계약, 그 ‘구원의 말씀을 담고, 존재가 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어머니’란 ‘하느님의 말씀’을 뜻한다. ‘아버지’는 ‘하느님의 성전’이다.

빈 그릇인 여자, (그릇-여자. ‘데무트’로 같다) 곧 하느님의 질 그릇인 피조물(여자) 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담아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2코린4,6-7) 6 (창조 때)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말씀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1코린1,24)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을 피해 어둠에 숨을 수밖에 없는 저희를 십자가의 그리스도, 그 하느님의 계약의 말씀으로 빛이신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이끄시니 감사하나이다. 저희 모두의 마음에 성령이 불을 놓으시어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복음(요한19,25~27)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6~27)

 

요한 복음 19장 25절과 19장 27절에는 '어머니'라는 뜻의 '메테르'(meter)가 사용되었다.

19장 25절에서는 요한 복음사가가 예수님과 마리아와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했고, 19장 27절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사도 요한에게 모친을 부탁하면서 당신과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어머니'라는 뜻의 정감있는 '메테르'(meter)란 표현을 했다.

 

하지만 요한 복음 19장 26절에서는 '메테르'를 사용하지 않고, 셈족 계통의 언어로서 어떤 거리감을 두는 표현인 '귀나이'(gynai)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여인', '부인'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어떤 여인을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2장 4절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향해 '귀나이'(gynai)라고 불렀고, 지금 자신의 사명을 마무리하는 십자가 형틀 위에서도 어머니를 그렇게 불렀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하느님의 계획하에 치밀하게 이루어진 구원 사업 안에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둘째 하와이신 마리아의 성소와 역할을 규정지어 주는 개념이기도 하다.

 

마리아가 예수님과 피와 살을 나눈 혈육적 관계 안에서의 모친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고, 공적으로 첫 기적을 베풀어 당신의 신성(神性)을 드러내야 하는 카나의 혼인 잔치 자리와, 인류 구원 사업이 완성되는 십자가의 형틀의 자리와 거기에서 모든 은혜가 내려져서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와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그 자리가, 혈육과 육정의 관계를 넘어 각자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성부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자신의 성소와 역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신, 구약 성경을 통틀어 첫 복음이라고 불리워지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에 해당하는 '잇샤'(isha) 70인역(LXX)에서는 '귀네'(gyne)로 번역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를 걱정하여 사랑하는 제자였던 사도 요한에게 맡기기 위해 부르는 호칭으로만 '귀네'(gyne)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의 초기에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약속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여자의 후손'이라는 모티프(motif)를 사용한 것이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출산하기 전(前)이나 출산시, 그리고 출산 후에도 평생 동정이시라는 교리를 신덕 도리로 이천년 동안 믿어온 가톨릭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대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부정하는 개신교는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도 여러 명의 아들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 자매들이 요셉 양부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고종 사촌들이나 마리아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이종 사촌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복음에 나오는 '형제'라는 뜻의 '아델포스'(adelphos)라는 희랍어 단어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촌 형제들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예수님의 친형제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머니를 친형제들에게 맡기지, 왜 이종사촌인 제자에게 맡겼겠는가!

 

루카 복음 1장 38절에서 마리아는 구세주의 모친, 교회의 모친,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모성을 수락하셨는데, 그 수락한 모성이 요한 복음 19장 26~27절에서 인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를 상징하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가상칠언(架上七言) 중에서 루카복음 23장 34절, 루카복음 23장 43절에 이어서 세번째 말씀인 요한복음 19장 26~27절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사도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로 선포하심으로써 이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당신께 나아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시는 것이다.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오는 것이 가장 구원과 완덕에 이르는 쉬운 길이며 빠른 길이고, 가장 완전하고 완벽하며 안전한 길이라는 말이다.

 

마리아론 학자들은 이 길은 바로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께 봉헌하는 것과,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신 마리아의 성덕(聖德)을 본받는 것, 그리고 묵주의 기도로서 마리아의 강력한 중재와 전구에 의탁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완전한 하느님이셨지만(요한1,1), 보통 여느 사람들처럼 이성과 감정을 지니신 온전한 인간이기도 하셨다.

 

자신의 손과 발이 못박혀 몸이 찢기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요한19,18.28) 자신의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눈물로 지키고 있던 자신을 낳고 길러준 육신의 어머니요, 하느님의 아들이신 무죄한 당신이 고통받고 죽어야만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의 뜻이 아루어지기에, 마음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어머니를 내려다보는(요한19,25) 아들로서의 심리적, 영적 격정은 그의 온 심장과 오장육부를 파고들어 타는 듯한 안타까운 심정이 되게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이 친어머니처럼 섬겨주기를 바랬던 마리아는 바로 자모이신 성교회, 죄인들의 피난처이신 교회를 상징하는데(십자가의 길 13처), 주님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는 믿음의 모델이며 은총의 전구자이시고, 예수님의 첫 제자이기도 한 마리아를 통해 구원과 성화와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기념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오늘 복음은 십자가 위에서 교회가 탄생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예수님 마음속 깊은 사랑을 여러 차원에서 보여 줍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7)라는 말씀으로 요한에게 주신 어머니는 실제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성모님을 여인이시여”(19,26) 하고 부르시며 당신만의 어머니로 독점하시지 않고 모든 제자에게 가닿는 모성의 보편성을 드러내십니다.

요한이 어머니를 자기 집에”(19,27) 모셨다는 구절의 그리스 말은 자신의 것들을 뜻하는데, 마리아께서는 예수님께서 요한을 통하여 인류에게 맡기신 소중한 유산이심을 가리킵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모범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셨다.”(19,30)라는 구절을 그리스 말로 읽어 보면 단순히 생물학적 죽음을 뜻하지 않고 당신의 을 제자들에게 넘겨주셨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19,34)은 새로운 계약의 희생 제사인 성체성사와 세례성사 위에 세우신 교회를 뜻합니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온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당신 옆구리에서 새로운 하와인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 위에서 드러나는 교회의 탄생은 어제 우리가 기념한 성령 강림과 역사적 교회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미리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저 한 죄수의 죽음을 확인하려던 군인의 창끝을 통하여, 마리아를 본보기로 삼아 새로운 인류를, 곧 성자의 신부인 교회를 탄생시키셨습니다.

교회의 어머니를 기념하는 오늘, 성모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예수님처럼 그분의 충실한 자녀로 살아갈 다짐을 새롭게 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다 이루어 졌다

 

(요한19,25-34)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마리아)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 성경이 십자나무 곁에 ‘마리아(쓴물)’라는 이름만 소개한 것은 쓴물이 나무 하나의 희생으로 단물이 되는, 곧 죄인들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의인이 되는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라 묵상했었다.(탈출15.25) 그래서 십자가 곁에 마리아들만 소개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독서(창세3,10.15.20)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뱀의 꼬임에 넘어가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말로 따먹은 죄인 하와, 그래서 반드시 죽어야하는 그 하와가 원시 복음으로 살아나는데~

 

15 (하느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께서 뱀에게 발을 물려 피를 흘림으로 그 여자의 죗값을 치루시고 뱀의 머리(생각)를 밟으시므로 뱀의 선악의 말, 그 죽음의 법을 없애심으로 하와가 살아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속, 십자가의 복음이다.

 

사람(아담)이 그것을 알아듣고~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 여자, 하와 모두 그리스도의 피로 살아나는 우리의 모형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성도(교회)가 하느님의 신부, 짝이 되는 것이다.

 

(사도20,28) 28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 모든 일이 다 이루어 졌는데 아직도 사람들이 믿지를 못해 용서, 자유를 모르는 갈증 속에 있음을, 그래서 예수님께서 “목마르다” 하신 것이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 예수님의 “다 이루어졌다” 하심을 받아야 한다. 쓴물이 십자나무로 단물이 되는, 곧 죄인들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의인이 되는 그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가 ‘다 이루어 졌음’을, 그 예수님의 피로 얻는 구원의 새 계약, 새 계명이 ‘다 이루어 졌다’ 하심을 믿는 것이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 예수님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피의 새 계약으로 오신 첫 아들이셨고(루가2,7) 그 첫아들의 피의 새 계약으로 거저 구원을 받은 첫째 사람이 죄인 강도이다.

 

(루가2,7) 7 (마리아가)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 성모만 낳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낳아야 한다. 낳았다는 것은 깨달음을 낳았다는 것이다. 곧 짐승(죄인)의 먹이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피의 새 계약으로 오신 예수님을 깨달아야(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피의 새 계약을 깨달은(낳은) 첫째 사람이 죄인 강도이다.

 

그 강도가 모든 사람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모욕했을 때~

(루가23,39-43)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깨닫는(낳는) 순간이 구원이다. 오늘이다.

 

33 (군사들이)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 피와 물,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 구원의 계약인 어린양의 죽음(피)의 제사다. 그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신 예수께서 그 피의 제사를 완성하셨기에 죄인들에게 구원, 생명을 줄 수 있는 생명수, 물이 되셨다.

 

(1요한5,6)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해 간구 해 주시는 은총의 천주 성령님! 오늘도 의탁합니다. ~아멘.

 

 

 

 



 20260525일 월요일

[마리아 기념일]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 계신 성모님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19,27).

나자렛의 소박한 여인이셨던 마리아께서는 어떻게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을까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비슷한 예로 전태일 열사의 경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1960년대 청계천 봉제 공장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하여 투쟁하다 스물두 살의 나이로 분신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평범한 여인이었지만, 아들이 죽은 뒤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핍박받는 노동자들에게서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자녀가 어디에 있든 함께합니다. 자녀가 고통받을 때 함께 고통받고, 자녀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령 강림을 기다리는 제자들과도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

초대 교회부터 성모님께서는 교회의 어머니로 제자들과 함께 계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놓이든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우리 자신을 맡깁시다.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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