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11일 월요일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진리의 영이 증언 (요한15,26-16,4ㄱ)
제1독서<주님께서 리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사도16,11-15)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화답송>시편149,1ㄴㄷ-2.3-4.5-6ㄱ과 9ㄴ(◎4ㄱ)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
복음<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요한15,26-16,4ㄱ)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16,11-15)
티아티라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14-15)
사도행전 16장 11절부터 마지막 절인 40절까지는 바오로 일행의 유럽 선교의 시발지인 리피에서의 활동을 기록한다. 필리피에서의 선교 활동을 이렇게 길게 기록하는 것은 이곳이 유럽 선교의 시발지일 뿐 아니라 이곳에서의 선교 성공으로 인해 유럽 선교의 기틀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필리피 교회는 바오로의 선교 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이것은 바오로가 다른 교회에서는 거부하였던 재정 지원을 필리피 교회에서는 받은 것으로 보아서(1코린9,3-14) 그들에 대한 바오로의 신뢰를 알 수 있다(필리1,3-5; 4,18).
필리피에서의 활동과 관련된 기사는 바오로 일행의 필리피 도착,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의 회심(사도16,11-15), 점 귀신들린 하녀에 대한 구마 행위로 인한 바오로와 실라의 투옥 및 필리피 감옥 기적 사건(사도16,16-34), 필리피 관리들의 공식 사과와 바오로와 실라의 명예로운 석방(사도16,35-40)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사도행전 16장 14절에서는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리디아가 새롭게 등장한다. '티아티라'는 고대 리디아(Lydia) 지역에 속한 한 성읍으로서 '티아의 성읍' 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헬무스 계곡과 카이쿠스 계곡을 연결하는 소아시아의 국경의 요새이기도 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염색, 의복등의 제조업의 중심지였고, 특히 자색 염료로 유명했다. 바오로 일행은 그들이 찾아간 필리피의 기도처에서 옛날 로마 시민의 겉옷이나 왕족의 겉옷으로 사용되던 자색 옷감 장수를 하던 리디아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원래 티아티라 성읍 출신이었으나, 더 큰 도시인 필리피에 와서 거주하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녀는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자로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섬기는'으로 번역된 '세보메네'(sebomene)는 현재분사인데, 이 단어의 원형 '세보마이'(sebomai)는 단순히 아랫 사람이 윗 사람을 공경하는 인륜적 차원의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이나 신적 존재를 예배하며 숭배하는 종교적 차원의 의미를 나타낸다. 리디아는 하느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13잘 43절에는 유다교로 개종된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을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지만, 본문의 리디아는 유다교에 깊은 관심이 있고 율법을 따라 하느님을 섬기기는 하나, 완전히 개종하지 않은 자로서 코르넬리우스와 티리우스 유스투스와 유사한 신앙(사도10,1.2; 18,17)을 가지고 있던 여인으로 보인다.
그녀는 티아티라 성읍에 살던 때에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티아티라 성읍에는 유다인 정착지가 있었고, 그 유다인들을 통해 리디아는 하느님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이 본문은 신앙을 가지게 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예이다. 사람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가지게 되려면, 첫째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로마10,17), 둘째로 들은 그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어야 한다. 그런데 들은 말씀을 깨닫고 수용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하느님께서 말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루카24,45).
여기서 '열어 주셨다'로 번역된 '디에노익센'(dienoiksen ;opened)은 단순히 '열다'는 의미보다 더 강한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원형 '디아노이고'(dianoigo)는 '철저히' 라는 의미가 있는 '디아'(dia)와 '열다', '열어 젖히다'라는 의미가 있는 '아노이고'(anoigo)의 합성어로서 '철저히 열어 젖히다', '(닫혀 있는 것을) 활짝 열어 젖히다'라는 의미이다.
사도행전 17장 3절에는 '설명하고'로 번역되었으며, 루카 복음 24장 32절에서는 '성경을 풀이해 주다'로, 그리고 루카 복음 24장 31절에는 '눈이 열려'로 번역되었다.
한편 사도행전 16장 15절에는 리디아가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호 모이코스 아우테스'(ho oikos autes; the members of her household)로 번역된 '온 집안'은 단순히 건물(house)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정(home)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정은 그녀의 혈육만을 한정하는게 아니고 사업가로서 많은 직원들과 인들을 거느리고 있던 리디아에게 속한 모든 자손들을 다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 다수 학자들의 견해이다.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러 주신 갈등과 분열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선교 여정에 관한 의견 차이로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 갈라졌습니다(15,39 참조).
이러한 갈등에도 바오로 일행이 선교 여행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호자 성령께서 섭리하셨기 때문입니다(16,7.14 참조).
또한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융성한 로마 식민시(로마시의 특권과 자치권을 보장받은 도시)였던 필리피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세속적인 관습과 맞서는 복음을 적대시할 때도(16,21 참조), 성령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이”(유다교 개종자를 뜻함) 리디아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이끄셨습니다.
세례를 받고 큰 기쁨 속에 바오로를 집으로 모셔 들이는 리디아의 모습은 하느님을 자신의 천막에 맞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라던 성조 아브라함의 정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창세18,3).
보호자 성령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머무르셨고, 그들이 하느님의 진리를 깨닫고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보호는 그 어떤 갈등도 분열도 고난도 겪지 않게 막아 주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시련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포기하지 않으며 평생토록 그것을 증언할 수 있도록 지켜 주는 것입니다.
까닭 없는 시련과 박해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과 뜻을 떠올리는 기회입니다.
억울하고 답답할 때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열어 주시고 하느님의 진리 안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가도록 보호하여 주시기를 청합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진리의 성령이시여!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해 간구해 주소서~
(요한15,26-16,4)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 예수님께서 진리이심을 증언하십니다.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8,31-32)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14,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16,8-11)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 세상의 길은 진리가 아니라는 말씀,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 죄- 말씀(예수)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취급하며 진저리 내며 불평하는 것, (민수21,5)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는 십자가의 대속 그 의로움이 구원의 참 인 것,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한3,17-18)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성령의 법- 증언입니다.
(로마7,22-25)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 죄의 법(제사와 윤리 그 율법)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 예수님만이, 곧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하십니다.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로마8,1-3)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심판) 죽이기~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 성령의 이끄심으로 우리도 십자가의 증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증언- 순교자)
예수님께서 자신을 버리고, 곧 하늘 자리를 버리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듯이(이사53,12) 우리 또한 나의 길, 그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진리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나의 죽음이 만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루가9,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그러나 그 십자가의 길이 세상에는 어리석음이기에(1코린1,23) 세상이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 성경에서 세상이라 함은~ 회당(교회)안에 들어와 있는, 곧 세상의 말과 섞여버린 교회 안에 세상을 뜻합니다.
밖의 세상에서 그들과 상관없는 교회 안에 교인들을 왜 쫓아내겠습니까? 세상의 말과 섞여버린 신자, 지도자들이 잘못이라고 단죄하는 그것이 하느님의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입니다.
(요한12,42-43) 42 사실 지도자들 가운데에서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지만, 바리사이들 때문에 회당에서 내쫓길까 두려워 그것을 고백하지 못하였다. 43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을 사람의 말, 곧 사람의 생각을 보태고 뺀, 그 도덕과 윤리의 인간의 계명으로 자신의 뜻을 위한 말씀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어찌 하느님의 뜻인 그 예수님을 알겠습니까?
(티토1,14) 유다인들(사람)의 신화, 그리고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않게 하십시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 박해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그들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하십니다.
어느 신학자는 ‘저 사람 말씀을 이상하게 말하네?’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진리를 말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맞습니다.
하느님의 지혜의 말씀은 사람의 지혜의 말과 다르기 때문입니다.(1코린1,21 이사55,9참조)
언젠가 사제께서 ‘여러분은 진리의 말씀을 얼마나 하십니까?’
과연 우리 신자들이 얼마나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진리로 믿고 의탁 하며 살아갈까요? 십자가는 하늘의 생명을 얻는 구원의 길, 진리이지 땅(흙)의 복을 주는, 내 뜻을 들어주는 길이 아닌데 말입니다.
신앙인의 지향입니다.
(필레몬1,6) 우리 안에 있으면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는 모든 선을 깨달아, 그대가 더욱 활발히 믿음에 동참할 수 있기를 빕니다.
(로마8,28. 26)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喜怒哀樂)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 보호자, 진리의 성령이시여! 저희를 의탁합니다. 아멘.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복음(요한15,26~16,4ㄱ)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6)
여기서 '성령'을 지칭하는 '보호자'로 번역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 comforter)는 '옆에', '곁에'라는 뜻의 '파라'(para; by, at, beside)와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의 '클레토스'(kletos; invited, called)의 합성어로서, 원래는 '돕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라는 수동적인 의미를 가졌었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가리켜서 쓰이며, '남을 위해서 나타난 자', '돕는 자', '상담자', '위로자', '중재자' 등을 뜻한다. 그리고 '진리의 영'에 해당하는 '토 프뉴마 테스 알레테이아스'(to pneuma tes aletheias; the Spirit of truth)는 성령의 본질 및 대표적인 일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그분은 진실하신 하느님이신 주님(시편31,6)에게서 나오셨으며(요한15,26), 믿는 이들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므로(요한16,13), 진리는 성령을 특징짓는 가장 적절한 용어이다.
또한 '진리의 영'이라는 말은 '속이는 영'(1요한4,6)과 대립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진리의 영'의 특징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요한15,26),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시며(요한14,28), 믿는 이들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로 번역된 '알레테이아스'(aletheias)는 '알레테이아'(aletheia)의 단수 소유격이며,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에메트'(emeth)의 역어로 흔히 나온다. 성령께서는 사건들을 밝히 드러내시며, 어떤 사건을 참된 모습으로 제시하는 분이다. 그러기에 '진리의 영'이라는 말은 제자들에게 감추어진 부분을 확실하게 보여 주시는 이해의 빛이라는 말이다(요한14,16.17,26).
요한복음에 나오는 '보호자', '진리의 영'에 대한 구절들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의 요청을 받아들여, '보호자'이시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실 것과 성령의 하시는 일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 15장 26절에는 이러한 구절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내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직접 성령을 보내신다는 것이다.
1인칭 단수 동사 '보낼'에 해당하는 '펨프소'(pempso; I will send) 앞에 1인칭 단수 대명사 '내가'에 해당하는 '에고'(ego; I)가 단독으로 쓰인 사실이 이것을 더욱 강조한다. 물론 요한복음 15장 26절에서도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라는 표현으로서 성부 하느님께서 보내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지만, 동시에 성자께서도 성령을 보내시는 주체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사실이 특별히 언급되는 것은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와 동일한 신성(神性)을 지니셨으며, 본질적으로 하나이심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니체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나오는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교리의 성경적 근거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으로부터 발출한다는 이 교리를 동방 교회에서는 거부하였다. 동방 교회에서는 성령을 오직 성부 하느님에게서만 발한다고 주장하며, '아버지에게서'에 해당하는 '파라 투 파트로스'(para tou patros; from the Father)을 성령 발출의 근원으로 보고, '보낼'에 해당하는 '펨프소'(pempso; I will send)는 이것에 종속된 것으로만 보았던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 차이는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분열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구절의 표현에서 성령을 보내시는 주체가 성부 하느님만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으로서 성자 하느님 역시 성령을 발출함을 볼 수 있다.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마르튀레세이 페리 에무'(martyresei peri emou; he will testify about me)는 '나에 관하여' 혹은 '나를 위해서 계속해서 증인이 될 것이다'는 뜻이다. 전치사 '페리'(peri)는 '관하여'(of)라는 뜻 뿐 아니라 '위하여'(for) 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서 성령께서 증거하는 이중적인 내용을 나타낸다.
즉 성령께서는 예수님에 관하여 증거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증거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증언하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마르튀레세이'(martyresei)는 '마르튀레오'(martyreo)의 미래 시제로 '계속해서 증언하실 것이다', '계속해서 증인이 되실 것이다'라는 뜻으로서, 성령께서 오실 때에 계속 진행될 일이 예수님께 관한 증거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모든 믿는 이들의 활동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데에 맞추어져야 함을 일깨우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성령의 현존과 역사를 가시적인 특수한 은사와만 관련지어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진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사용되어지지 않는 은사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사도1,8 참조).
[부활 제6주간 월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성령 강림 대축일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호자요 진리의 영이 오시리라 알려 주시면서 그때에는 성령과 더불어 제자들도 주님을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1)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회당에서 쫓아내고, 또 죽이려 할 터인데 그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증언의 삶을 살라는 것이지요.
며칠 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15,5)라는 말씀을 들었기에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주님 말씀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오늘 독서에 바오로 사도가 두 번째 전도 여행에서 만난 리디아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는 유럽 교회의 첫 번째 신자로서 마케도니아에서 첫째가는 도시인 필리피에서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부유한 상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신 그는, 바오로가 전하는 하느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고서는 바오로 사도에게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사도 16,15) 하고 청합니다.
이렇게 필리피 교회는 바오로 사도와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선교 여정에서 다른 이의 도움을 철저히 거절하면서도 필리피 공동체의 도움만은 호의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의 진실한 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확신인 동시에, 자신을 내주는 새로운 삶의 길로 굳건히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랑과 봉사의 길에 관대한 마음으로 흔쾌히 응답하는 봉사자들은 우리 교회와 세상에 모두 귀한 보물들입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새 사람이 되고 싶은가? 말씀을 담아라.
제1독서(사도16,11-15)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强勸)하였다.
=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말씀을 알아듣는 것과 별개일 수 있다. 하느님께서 귀를 열어 주셔야 알아들을 수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 그분의 뜻은, 사람의 말, 사람의 뜻과 다르기 때문이다.
(1코린2,9-10)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진리의 성령께서 섬김의 마음이 있는 이에게 말씀을 알아듣는 귀와 마음을 열어 주신다. 그리고 그 사람은 강권(强勸)한 마음으로 말씀을 원(願)하며 찾고 받아들인다.
복음(요한15,26-16,4ㄱ)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등에게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 진리(眞理)의 영(靈), 성령께서 십자가(十字架)의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피의 새 계약으로, 모든 죄의 무죄(無罪)를 증언(證言)하신다. (로마8,1-4)
(히브10,15-25)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예레31,31-34)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 이 계약의 능력을 믿고, 살고 있는가?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새 계약)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성전, 하늘)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대속)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21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십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말씀)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악(惡)한 양심이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 졌음을, 그리고 그 ‘피의 전지전능한 사랑’을 믿는가?
23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믿음)하신 분이십니다. 24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25 어떤 이들이 *습관적으로 그러듯이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으니 더욱더 그렇게 합시다.
= 말씀을 모르고 믿지 못하면, 섬김의 생활을 두려워, 의무(義務)로, 습관적(習慣的)으로 하게 된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 새 계약의 일꾼이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뽑으셨고, ‘성령을 통해 새 계약의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계명)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믿는 이들의 현실이다. 그리스도의 피, 그 단 한 번의 예물(禮物)로 거룩해진 이들을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영구히 완전하게 해주신다.(히브10,14 참조)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 나는 사람의 규정과 교리, 계명, 관습, 제사와 윤리, 그 율법, 그 옛 계약에 매달려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이 거저 주시는 용서, 의로움, 거룩을 몰라 양심의 죄를 자주 기억해 내며, 예물(보속)을 드리는 신앙을 살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영구한 하늘의 의(義), 거룩, 완전하게 됨을 알지도, 믿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알고, 깨닫고, 나니 믿어졌다.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너무 좋고 감사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누리는 자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상하다고 한다. 성경(聖經) 말씀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인데, 틀렸단다.
(마태15,14)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 그래서 오늘 독서(牘書)의 ‘리디아’처럼 매일 말씀을 강권하여 찾는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사람의 말(계명, 지혜의 가르침)을 따라가 지옥(地獄), 구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다.(1코린1ㅡ2 참조)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 누군가는 말한다. ‘많은 이들이 박해하는 길을 간다는 것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루가13,24)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좋은 글이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변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먼저 섬겨주고, 내가 먼저 바르게 살면, 세상도 우리를 본받아 청렴(淸廉)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변할 것이라고 배웠고, 믿어왔다. 우리 교회(敎會)가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중 하나다. 큰 착각(錯覺)이다. 신자(信者)가 바르게 살아서 세상이 변(變)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셔서 저주(詛呪)의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어 대신 죽게 하셨는가?
우리의 노력, 열심히 될 수 있었다면 대신 죽으실 것이 아니라 끝까지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셔야 맞다. 신자(信者)가 신앙으로 살아야할 이유는 누군가를 변화(變化)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 남편, 내 아내가 우리의 희생과 사랑을 보며 뉘우치고 변해서, 새 사람으로 오던가요? 가리리다 지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맞다.
세상은 아무리 교육을 하고 훈계를 하고, 모범을 보여도 ‘하느님의 은총을 입지 않으면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통해서 진리(眞理)를 배우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는 왜 사랑하며 섬기고 살려고 애를 쓰는가? 예수님께 속(贖)한 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속한 자’는 예수님의 생각과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자신이 누구에게 속(屬)해있는가를 분명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다른 삶의 원리로, 다른 삶을 추구는 이들을 뜨악해하며 급기야는 미워하며 박해하게 도는 것이다. 그것이 공식(公式)이다.
그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여러분의 노력은 모두 미움으로 돌아오는 것이 정상이다.
(요한15,18)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은총의 보호자 천주 성령님!
오늘도 함께 하시며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모두의 귀와 마음을 열어 주시어, 말씀을 잉태하고 자라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년 05월 11일 월요일
[부활 제6주간 월요일]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닥칠 박해도 예언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요한 16,2).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느님을 위하여 봉사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옳은 일을 한다고 믿으면서 예수님께 하였듯이 제자들에게도 할 것입니다.
미국 유학 시절, 저는 고생하며 얻은 공부 요령을 막 유학 온 후배 신학생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후배들은 저를 멀리하였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후배들의 생각이나 처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강요하였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교회가 박해를 받은 일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회도 하느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습니다. 천주교는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배우고 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종교와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고 넉넉하게 품는 교회가 되려고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16,4).
우리 또한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다른 이를 박해하지 않도록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 생각에 갇혀 있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