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09일 토요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요한15,18-21)
제1독서<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사도16,1-10)
1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하였다. 그곳에 티모테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신자가 된 유다 여자와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2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3 바오로는 티모테오와 동행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베풀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다.
5 그리하여 그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다.
6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7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리하여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갔다.
9 그런데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10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화답송>시편100,1-2.3.5(◎1)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
○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
복음<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요한15,18-2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16,1-10)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6~7.10)
사도행전 16장 6절부터 10절까지는 바오로가 트로아스에서 본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시와 바오로의 선교 여행 진로 변경의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바오로는 성령의 강력한 권고와 같은 주도적 개입으로 계속해서 아시아로 향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그 진로를 유럽으로 향했다. 따라서 본 단락은 유럽 복음화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다.
바오로의 선교 여행이 사도행전 16장 5절에서 처럼, '그리하여 그 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늘어갔다'는 놀라운 성과 뒤에는 바오로의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방법론적인 면에서의 지혜가 동반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적인 활동에 뒤이은 아시아에서의 선교 활동이 성령에 의해 금지됨으로써 그의 선교 여행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본문에서는 성령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바오로에게 뜻을 전했는지는 언급되지 않고 그 결과만을 저자가 언급할 뿐이다.
또한 그 일로 인해 바오로가 어떤 심리적인 반응을 일으켰는지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막으셨으므로'로 번역된 '콜뤼텐테스'(kolythentes)의 원형 '콜뤼오'(kolyo)동사가 '반대하다'(사도11,17; 27,43), '금지하다'(1티모4,3),'거절하다' (루카6,29; 사도10,47)라는 매우 강력한 의미로 쓰인 것을 볼 때, 당시 성령께서는 바오로가 깨달을 수 있는 분명한 방법으로 아시아의 선교 활동을 막았음을 알 수 있다.
당시로서는 성령께서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선교 활동의 진로를 왜 가로막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었지만, 바오로는 성령의 뜻에 순종하였다. 이처럼 완전하게 성령께 의지하고 순종하는 바오로에게서 참다운 하느님의 봉사자로서의 자세를 보게 된다.
더불어 이것은 바오로의 선교 여행의 놀라운 성과는 모두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임을 우리들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바오로가 유럽으로 발걸음을 옮겨 유럽을 복음화시키게 된 것이 그 자신이나 예루살렘 모교회의 선교 전략과 정책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주관적인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임을 분명히 밝혀준다.
이것은 오늘날 선교사가 선교 지역을 택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교회가 어떤 결정을 함에 있어서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할 지에 대하여 좋은 본본기가 된다.
바오로는 애초에 제2차 선교 여행 지역을 제1차때 선교했던 곳으로 계획했었는데 (사도15,36), 이러한 단락은 인간의 계획이 성령의 강력한 개입으로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잠언16,9)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7)
본절에 나오는 지명 중 '미시아'는 소아시아의 서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그리고 '비티니아'는 '미시아'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바오로 일행이 미시아에서 비티니아를 가고자 애썼다는 것은 지금까지 계속 서쪽으로 전진했지만, 미시아에 이르러서는 방향을 바꾸어 다시 동쪽으로 가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시아의 서단에까지 이르자 다시 방향을 돌려 아시아의 다른 지역을 선교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의 인간적 생각은 예수님의 영에 의해 막혔다. 우리는 사도행전 16장 6절에서 '성령'께서 바오로의 선교를 이끄시는 주체로 묘사되어 있었는데, 본절인 사도행전 16장 7절에서는 '예수님의 영'으로 바뀌고, 사도행전 16장 10절에서는 '하느님'으로 또 다시 바뀐다는 것을 본다.
이것은 각각의 절에 서로 모순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바오로의 선교 활동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이심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카이 우크 에이아센 아우투스'(kai uk eiasen autus; but not suffered them) '허락하지 않으셨다'라고 번역된 '우크(uk) 에이아센(eiasen)'에서 '에이아센' 동사의 원형은 '에아오'(eao)이다.
그런데 이 동사는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시련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음을 나타낼 때나(1코린10,13),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침묵을 명하실 때(루카4,41) 등에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용례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금지에는 하느님의 섭리가 내포되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본절에서도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한계를 가진 인간의 생각으로 미쳐 헤아릴 수 없지만, 이러한 하느님의 금지 명령에는 분명히 오묘하신 하느님의 섭리가 있을 것임을 기대하게 만든다.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아홉 달 만에 태어난 아기가 의사의 부주의로 뇌성 마비가 되었습니다.
의사가 아기 머리를 잘못 건드려 뇌가 손상되었고, 그 때문에 뇌성 마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로 자신의 인생이 시작부터 망가져 버린 것입니다.
아기는 열 살이 넘어서야 겨우 숟가락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난한 집안에, 아버지는 결핵을 앓고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아이는 하느님을, 부모님을 죽도록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우연히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에서 얻은 새로운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며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그의 글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많은 이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라는 시로 유명한 송명희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그 이름’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이 시에서, ‘예수’라는 이름에 엄청난 비밀과 사랑이 숨어 있으며, 자신의 마음속에 새겨진 그 이름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이자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라고 노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신 이름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수많은 이들이 그 이름 때문에 고통당하고 모진 고문과 박해 속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렇게 숨져 간이들 대부분이 자신의 죽음을 영광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름’이 이들을 세상에 속하지만 세상을 초월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송명희 시인이 노래하였듯, ‘예수’라는 그 이름이 우리의 삶에도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자 기쁨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그 이름의 의미와 사랑을 마음에 새기며 세상이 아닌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요한15,18-21)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 세상은 인간의 道가 진리라 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이 진리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계명으로 지킨 의로움으로는 하늘의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지금이 ‘참’이라 하고 예수님은 ‘이 세상이 헛되다’하십니다. 왜요? 세상은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끝이고 하늘은 영원한 생명이기에~
세상의 물은 다시 목마르게 하지만, 예수님의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곧 사람의 말, 도덕과 윤리의 그 가르침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시니 세상이 미워합니다.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인간들의 길 그 사람의 의로움을 부인 시키는 말씀입니다.
19ㄱ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 예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 도덕과 윤리로 들어 세상과 짝 한다면 세상이 좋아합니다.
19ㄴ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앞 16절에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좋은 열매 구원을 말씀하심 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세상이 미워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구원의 길이 세상의 길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루가9,23-25)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하셨듯이 세상의 자기 의로움을 버리고(부인하고) 십자가의 의로움을 진리로 말한다면 세상이 미워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 하늘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 자기 생각, 뜻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마르4.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 돌풍- 세상의 물이 배(교회)에 들어와 섞여 버린 모습입니다. 오늘 그 섞여버린 세상 물을 버려야 합니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 하였으면 너희도 박해 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세상이 칭찬하는 신앙이라면 사람의 뜻을 만족 시키는 그 자기 말로, 또 그 행위의 자기 의로움으로 신앙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에 그것을 진리라 말한다면 다른 이에게 구원을 줄 수 없어 악인 인 것이고 또한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기에 죄입니다.
곧 십자가의 길 만이 참 진리라고 말한다면 세상은 그 사람을 미워하고 말하지 않으면 당연히 칭찬한다는 것입니다.
(루가16,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 올바른 신앙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나를 버리는 그 부인이 되었는지~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간 것은 아닌지~ 오늘 다시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1코린10,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아멘.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15,18-21)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18~19)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11절에서 믿는 이들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다룬 후, 범위를 확대해서 요한복음 15장 12~17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한 믿는 이들 상호간의 관계를 다루고, 요한 복음 15장 18~27절에서 믿는 이들에 대한 세상의 핍박 및 이에 대한 믿는 이들의 자세를 교훈하신다.
특히 요한복음 15장 18~27절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할 당시 이 말씀을 듣던 제자들 및 믿는 이들이 이 세상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다.
박해와 핍박에 대한 예고는 다음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게 됨으로써 가시화되고,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과 믿는 이들이 무수한 세상의 박해를 받으며, 사도 요한 복음사가가 이 복음을 쓴 1세기 후반에 있어서도 믿는 이들은 유대교 및 이방 종교의 박해만이 아니라 황제 숭배 등과 관련된 로마 공권력의 조직적인 박해를 받아 왔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5장 18~27절의 내용은 이 교훈을 직접 들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사도 요한 당시의 믿는 이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와 힘을 주었을 것이다.
여기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은 조건문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으로 번역된 '코스모스'(kosmos; world)의 성격을 규명하는 열쇠가 된다.
당시 로마 세계를 지배하던 희랍 사상에 있어서 '코스모스'(kosmos)는 조화로운 곳이며, 신의 개념으로까지 숭배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와 정반대인데, 코스모스'(kosmos)는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죄로 말미암아 파멸되고 타락한 곳이다.
특히 이 구절에서 세상은 '코스모스'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 즉 하느님과 동떨어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집단이며, 사탄의 지배아래 죄와 죽음의 올가미에 사로잡혀 영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눈이 먼 자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여기서 '미워하거든'으로 번역된 '에이~ 미세이'(ei~misei; if~hates)는 조건을 나타내는 불변사 '에이'(ei; if)가 현재 직설법 동사와 함께 쓰여 명백한 사실을 조건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박해하게 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미세이'(misei; hates)는 '미세오'(miseo)의 현재 3인칭 단수이며, '미워하다'는 뜻만이 아니라 '미워서 박해하다'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까지 지니고 있다. '미세오'(miseo)는 고전 희랍어에서 '혐오하다', '배척하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어떤 행동에 대한 반감만이 아니라 타인들, 심지어는 신(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을 드러낸다.
70인역(LXX)에서는 거의 히브리어 '사네'(sane)의 역어로 등장하는데, 원수로 여긴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런 것들로 볼 때, 세상의 믿는 이들에 대한 미움은 그 지배 세력이 하느님의 원수인 사탄이기 때문에, 믿는 이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더불어 반드시 복수해야 할 원수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요한복음 15장 18절의 후반절처럼, 단순히 믿는 이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
이 구절은 세상이 믿는 이들에 대한 미움을 가지는 이유를 나타낸다. 믿는 이들에 대한 세상의 미움과 적개심은 영적 불일치에 근거한다. 믿는 이들이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세상은 믿는 이들을 미워하고 원수로 여긴다.
여기서 전치사 '에크'(ek; of)는 '에이미'(eimi)동사를 기본형으로 하고 있는 '에스테'(este; you are)와 함께 쓰였는데, 이때에는 '~에게 속한다'는 '소속'의 의미를 나타낸다. '에스테'(este)는 '에이미'(eimi)의 복수 2인칭 현재 시제이다.
여기서 계속성을 나타내는 현재형이 쓰인 것은 예수님과 일치한 제자들이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항상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우리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한, 우리는 결코 이 세상의 지배를 받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요한복음 15장 19절에서 '세상에(서)'에 해당하는 '에크 투 코스무'(ek tou kosmou; of the world)가 세 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즉 요한복음 15장 19절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과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와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에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믿는 이들과 세상의 관계가 너무나 미묘하기 때문에 거듭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앞의 두번은 '소속'의 의미로 사용되어 영어 번역에서 'of'로 번역했고, 뒤의 한번은 '분리'의 의미로 사용되어 'out of'로 번역했다.
이것은 '에크'(ek)라는 전치사가 가지는 포괄적 의미 때문에 대조적인 용례로 사용된 것이다. 하지만 앞선 두번의 '에크'(ek)도 내면적으로는 '분리'를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내면적으로는 '분리'의 의미가 강한 '에크'(ek)라는 전치사의 중복 사용을 통해, 믿는 이들은 모름지기 이 세상에서 내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역설하셨다.
[부활 제5주간 토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사랑과 평화와 일치의 길을 걸어가면 인정과 칭찬, 사랑과 기쁨만을 맛볼 것 같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세상에 이미 죄와 악이 존재하고 또 약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은 때때로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선한 이웃들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처한 절박한 상황만을 보기에 그렇게 하겠지요.
사랑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랑의 길에서 십자가를 체험하셨습니다.
주인인 당신께서 그런 일을 당하셨다면 종들인 우리도 마찬가지라 하시며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요한 15,18) 하시고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15,20)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에 앞서 빵과 포도주로 성체성사를 세우신 까닭을 다시 묵상해 봅니다. 성체성사의 빵은 밀로 만들어집니다.
밀밭을 지나가 본 적이 있습니까? 밀들은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솨솨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일어나는 고단함을 되풀이합니다.
이 밀이 빵이 되려면 먼저 그 낱알들이 잘게 부서져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밀가루가 빵 반죽이 되려면 숙성하는 시간을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빵이 되기까지 마지막으로 뜨거운 오븐에 구워지는 시련을 거쳐야 합니다.
성체성사를 이루는 포도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진 가지치기에서 살아남은 가지들이, 태양과 바람을 견디며 포도나무에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들이 눌려 으깨어진 다음 오랜 숙성의 시간을 가져야 비로소 포도주가 됩니다.
성체성사의 위대한 사랑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내가 진짜 하느님나라 소속이 맞구나!”
복음(요한15,18-21.25)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 왜?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라 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뜻, 소원, 영광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 왔다’ 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뜻, 소원을 위한 제사를 부수셨기 때문이다.(요한2,14-16) 세상의 평화가 아닌 ‘하늘의 평화를 주러 왔다’ 하셨기 때문이다.
(루가12,51)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모두 예수님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얻는 구원을 말씀하심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논리, 힘을 부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세상의 힘을 보태주러 오신 분이 아니다. 그 힘을 빼러 오신 것이다. 세상의 힘, 경제, 문명, 과학 등. 모두는 죽음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루가2,34) 34 시메온은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우리를 쓰러지게도 하시고 다시 일어나게도 하시는 것, 구원의 자비(慈悲)다. 세상이 반대하는 그리스도를 받아 들였을 때 세상의 온갖 유혹에서, 저주의 죄에서, 죽음에서 자유롭게 된다.
(루가2,28-29)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 그러나 세상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다.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 ‘예수님께 뽑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박해(迫害)를 받게 되어있다는 말씀이다. 반대로 세상이 칭찬하는 사람은~
(루가16,15)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 그래서 세상의 논리로 사는 신자(信者)들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로운 길인 피의 새 계약을 말하면 이상한 소리 한다며 수군거린다. 질타한다. ‘사람의 의(義), 열심인 제사(祭祀)를 부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죽임까지 당하지 않으셨는가. 그래서 새 계약의 일꾼(2코린3,6)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5 이는 그들의 율법에 ‘그들은 까닭 없이 (육으 본능으로) 저를 미워하였습니다.’라고 기록된 말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 하느님은 외아들 예수님을 인간들의 생명, 빛, 의, 평화, 안식으로 보내셨다. 인간의 어떤 노력, 열심히도 이룰 수 없는 하느님의 열심, 은총의 선물인 것이다. 나는 박해를 각오하고 진리를 전(傳)하는가? ‘세상이 칭찬하는 구원자 예수’를 전(傳)하는가?
(1테살2,13) 13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세상은 세상끼리 사랑합니다. 세상은 절대 하느님 백성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 백성들은 자기를 미워하는 세상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도 그들처럼 하느님의 은혜를 입지 못했다면 그들과 똑같은 그 세상으로 남겨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그 누구 앞에서도 자신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소속이 다릅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들을 미워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했기 때문인 것이고, 예수님의 소유인 우리도 함께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멸시(蔑視)를 당하고, 미움을 당하며, 억지스러운 일로 모욕(侮辱)을 당할 때, 우리들은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내가 진짜 하느님나라 소속이 맞구나” 하고 박수를 쳐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속이 다른 우리가 세상과 너무 잘 어울려서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함께 추구하며, 그들의 욕심과 탐욕, 야망을 위한 모습으로 흉내 내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게 가당이나 합니까? 우리 삶의 원리(논리)는 달라야 합니다. <좋은글 중에서>
(시편103,1-5) 1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들아,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여라. 2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 3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는 분. 4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로 관을 씌워 주시는 분. 5 그분께서 네 한평생을 복(福)으로 채워 주시어 네 젊음(생명)이 독수리처럼 새로워지는구나.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나도록 저흐 영(靈)에게 명령하소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년 05월 09일 토요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여러분은 미움받는 것이 좋습니까, 사랑받는 것이 좋습니까?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인 일본의 심리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그 책에서, 우리가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진실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정 욕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었을 때 삶의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좋아서, 이웃을 사랑해서 봉사하는 것인지 아니면 혹시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거나 사랑받으려고 봉사하는 것인지.
누구보다도 착하고 온순하며 이타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어쩌면 남들 눈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지나치게 신경쓰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세상에서 미움과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요한 15,18-19).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 지도층에게 미움을 받으셨고, 결국 대중에게도 미움을 받으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미워하시는 대신 용기 있게 그들의 마음을 거스르는 사랑과 용서의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을 사랑하는 길임을 아셨습니다.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받기만을, 인정받기만을 바라고 진리와 타협하며 자기 잇속을 챙기는 세상의 정치꾼이나 장사꾼과 같은 사람이 아닌,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내 몸처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진심으로 사랑합시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