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08일 금요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15,12-17)
제1독서<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사도15,22-31)
22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30 사람들이 이렇게 그들을 떠나보내자,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내려가 공동체를 모아 놓고 편지를 전하였다.
31 공동체는 편지를 읽고 그 격려 말씀에 기뻐하였다.
<화답송>시편57,8-9.10-12(◎10ㄱ) ◎ 주님, 백성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송하리이다.
○ 제 마음 든든하옵니다, 하느님. 제 마음 든든하옵니다. 저는 노래하며 찬미하나이다. 내 영혼아, 깨어나라. 수금아, 비파야, 깨어나라. 나는 새벽을 깨우리라. ◎
○ 주님, 백성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송하고, 겨레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노래하리이다. 당신의 자애 크시어 하늘에 이르고, 당신의 진실 크시어 구름에 닿나이다. 하느님, 하늘 높이 오르소서. 당신 영광을 온 땅 위에 드러내소서. ◎
복음<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1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15,22-31)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8-29)
'성령과 우리는 ~ 결정하였습니다'
'결정하였습니다'로 번역된 '에독센'(edoksen)은 15장 22절과 25절에도 그대로 나오는 단어이다. 이는 '좋게 여겼다'(It seemed good to the Holy Spirit and to us~)는 기본적인 뜻과 더불어 '결정했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이방인에게 할례가 불필요하다는 결정은 사도들과 원로들뿐만 아니라 성령까지도 뜻을 함께한다는 사실이 본문에 나타나 있다.
특히 여기서 '성령'을 언급하는 것은 이 결정이 단순히 인간의 뜻이 아니라 성령 하느님의 인도로 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지혜의 영이신 제3위 성령 하느님까지도 이방인에게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할례를 요구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뜻을 나타냄으로써 사도들과 원로들은 그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원로들이 어떻게 성령의 뜻을 알았을까 하는 것은, 6-21절까지 기록된 회의 진행 과정에서 성령이 나타나 그 뜻을 밝혔다는 진술은 보이지 않지만, 사도행전 저자가 기록하지 않았을 뿐, 사도들과 원로들은 성령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하느님께 진지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몇 가지 필수 사항'으로 번역된 '에파낭케스'(epanangkes)는 신약 성경에서 여기밖에 쓰이지 않는 단어로 '부득이', '불가피한' 등의 의미이다. 이는 이방인이 지켜야 할 네 가지 기본적인 금기 사항(20절)을 불가피 하게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쓰여진 단어이다.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구약 성경에서 아브라함(이사 41,8)과 모세(탈출 33,11)는 ‘하느님의 벗’으로 불립니다.
신앙의 정수를 살아간 아브라함과 모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숨김없이 알려 주시고(창세 18,17 참조), 모세와는 얼굴을 마주하여 사귀셨습니다(탈출 33,11; 신명 34,10 참조).
사실 하느님의 벗이 된다는 것은 인간 편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로, 오직 하느님께서 호의로 베푸신 매우 예외적인 은총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서로 사랑하여라.” 하신 주님의 당부로 시작하고 마칩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이는 당신의 친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친구는 주인에게 복종하는 종과 달리, 벗의 뜻을 헤아리고 진심으로 동의하여 그를 따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당신과 맺는 친밀한 관계와 사랑에서 우러나는 자유로운 순종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들은 할례를 비롯한 지난날의 복잡한 규정들을 이방계 신자들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일(우상 숭배)과 피째 고기를 먹는 일(‘생명[피]은 오직 하느님의 것’)과 불륜을 금하는(가정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계명만을 요구함으로써, 개종한 형제들도 ‘주님의 벗’이 되어 자유롭게 순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배려는 “서로 사랑하여라.” 하신 주님의 뜻과 일치합니다.
주님께서 보잘것없는 나를 친구로 삼아 주셨는데, 내가 어찌 누구를 미워하고 내 벗이 될 자격이 없다 하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은 주님을 닮아 목숨을 다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에 있습니다.
나를 뽑아 세우신 주님 앞에서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사랑과 구원의 열매를 맺는 그분의 사랑받는 포도나무로 영글어 가는 우리가 됩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성령과 우리는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주님의 뜻-구원의 약속으로 감사와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삶을 의탁합니다.
(사도15,28-29)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 정말 이대로 살면 올바로 사는 것일까?- 그럼 신앙 생활이 쉬울 것 같은데, 그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15,19) 하신 걸까? 세상이 헛된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불륜이 우상입니다.
(에페5,5) 이것을 꼭 알아 두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에서 받을 몫이 없습니다.
= 그 불륜은 의지해야 할 피조물들이 자신만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인간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듯이 아닌 자신의 뜻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자신의 뜻을 위한 욕심, 그 욕망, 탐욕의 자신이 우상이 됩니다.
사실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는 것입니다.(1코린8,4) 그래서 세상을 불륜과 탐욕을 부리는 우상 숭배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1코린5,10참조)
예수님께서 불륜을 저지른 경우는 이혼장을 써주고 버려라 하셨는데(마태5,31), 이혼장(케리투투) -분리하는 책입니다.
성경책과 분리된자라는 뜻입니다. 곧 하느님의 뜻과 분리된 구원의 몫에서 떨어져나간 자 라는 것입니다.
(2코린5,14-15)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 예수께서 우리의 죄로 죽으셨고, 그래서 우리의 죄는 죽었고 우리는 살았습니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사는 것, 나의 구원을 믿는 것입니다. 내 죄의 대속으로 죽으셨다 부활하신 그 그리스도를 믿으며 감사하는 삶입니다.
(콜로3,1-3) 1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콜로2,16-17) 16 그러므로 먹거나 마시는 일로, 또는 축제나 초하룻날이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17 그런 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모르면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 그리고 그 욕망을 위한 모든 종교 행위는 올바른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 그 피로 더러운 모든 죄가 다 씻겨 졌음을 믿는 것- 참 신앙입니다.
(히브10,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아멘.
부활 제5주간 금요일 복음(요한15,12~17)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6)
요한복음 15장 16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신 이유를 밝힌다. 그중에서 전반부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선택을 받은 자임을 밝힌다.
부정과 긍정으로 이루어진 문장 구조 및 '내가'로 번역된 '알르 에고'(all' ego; but I)가 여기서는 강조적으로 쓰여, 그들이 제자가 된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예수님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강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뽑아'로 번역된 '엑셀렉사멘'(ekseleksamen; chose)은 부정(不定) 과거 중간태이며, 그 뜻은 '내가 스스로를 위해서 뽑았다'이다.
중간태와 능동태의 차이점은 행동의 주체가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점인데, 동작의 주인공을 강조하며, 동작과 주격을 보다 밀접하게 연결시켜 준다.
따라서 '내가 뽑아'에 해당하는 '에고 엑셀렉사멘'(ego ekseleksamen; I chose)은 '나 스스로를 위해 내가 선택했다'는 뜻으로서, 그 안에는 아주 강한 주체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70인역(LXX)에서는 거의 언제나 히브리어 '빠하르'(bahar)의 역어로 나오는데, '빠하르'(bahar) 역시 구약에서 어떤 사람을 특별히 선택하는 의미로 쓰였다 (신명7,6; 1사무8,18; 시편33,12).
우리는 우리 안에 선택받을 만한 그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주님의 은총으로 선택받은 자임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한편, 주님께서는 우리를 뽑으셨을 뿐 아니라 세우셨다. 여기서 '세웠다'에 해당하는 '에테카'(etheka; appointed; ordained)는 '놓다', '두다', '~로 임명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티테미'(tithemi)의 부정(不定) 과거 시제이다.
이것은 철저한 소명 의식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70인역(LXX)에서 히브리어 '숨'(sum)이라는 단어도 '티테미'로 번역되는데, 그것의 중요한 의미가 '사람을 어떤 지위에 임명하다'는 것이다.
압살롬이 요압 대신에 아마사를 내세워 군대를 지휘하게 한 것(2사무17,25), 다윗이 브나야를 세워 호위대장으로 삼은 것(1역대11,25) 등을 이 단어로 나타냈다.
또한 '숨'(sum)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따로 구별해 두다'는 뜻도 전달한다.
이러한 단어의 용례를 보면, 어떤 특별한 계획과 목적을 위해 많은 사람들 가운데 구별하여 세운다는 뜻이 여기에 들어 있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아 일꾼으로 세우신 일차적인 목적을 나타내는 말이다.즉 예수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가서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하여' 뽑으신 것이다.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면, '너희가 계속해서 목적지로 가서 계속해서 열매를 내게'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가서'로 번역된 '휘파게테'(hypagete; go)와 '맺어'로 번역된 '페레테'(pherete; bear; bring forth)는 모두 가정법으로서, 접속사 '히나'(hina; that)와 함께 목적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또한 현재형으로서 계속적인 동작의 의미를 전달한다.
'가서'로 번역된 '휘파게테'(hypagete)의 원형 '휘파고'(hypago)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서 가다'이다.
요한복음 15장 1~11절의 '참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을 권고하신(요한15,5) 예수님께서는 여기서도 동일하게 열매를 맺을 것을 권고하시지만, 특히 '가서' 열매를 맺으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세상 가운데서 살면서 나타내 보이는 '선행'과 동시에 '복음 전파'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로마1,14.15).
'내 이름으로 ~ 청하는 것을 ~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원문은 구하는 주체(너희)와 주는 주체(그분)를 구분하고, 끝에는 받는 대상을 '너희에게'로 번역된 '휘민'(hymin)으로 명기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주시게'에 해당하는 '도'(do; he may give it)가 부정(不定) 과거형으로 쓰여 받을 것이 너무나 확실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뽑힘을 받은 자와 열매를 맺는 자이고,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자라는 자세한 언급이 있다.
사도 요한 복음사가가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신 후 제자들과(믿는 이들) 통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기도뿐이기 때문이다.
A.D.1세기에 이 복음이 쓰여질 당시에 유대적인 율법주의, 희랍적인 영지주의, 황제 숭배와 관련된 박해와 시련, 탄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기도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사도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다락방 이별 담화에서 기도를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요한14,13.14; 15,17; 16,23; 24,26).
이것은 이방인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유대인 출신 신자들과의 거리낌 없는 친교와 이방인들 주변에 있는 디아스포라(Diaspora ;교포와 같은 의미로 흩어져 있는 유대인 공동체)를복음으로 이끌어들이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치였다.
그리고 네 가지 기본적인 금기 사항(20절)은 어제 독서의 말씀에서 이미 설명하였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네 가지 필수 금기 사항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짐'으로 번역된 '바로스'(baros)는 원래 '무게'(weight)를 의미하는 단어였는데, '무거운 것' 즉 '짐'(burden) 또는 무거움 때문에 느끼는 '고통'(suffering)이라는 단어로 발전하였다.
우상의 제물, 피,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심적 부담과 고통이 되지 않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 할례를 행하고 모세 율법 전체를 지켜야만 하는 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요, 고통이라는 사실이 본문에 잘 드러나고 있다.
복음의 진수를 바로 깨닫고 있는 사람은 구원을 조건으로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과 심적 부담을 주지 않으나, 하느님 은총의 복음의 진수와 그 깊이를 깨닫지 못하고 편견과 독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구원을 조건으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큰 부담과 고통을 안겨 주게 되는 것이다.
바오로는 갈라디아 신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가르쳐 주었지만, (갈라5,1-4) 콜로새 교회에 이단을 퍼뜨렸던 어떤 자들은 사람이 감당치도 못할 금기 사항을 주장해 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것(콜로2,21)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스스로 삼간다'는 것은 이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로 번역된 '유 프락세테'(yu praksete)에서 '프락세테'는 '행하다'(do)는 의미를 지닌 '프랏소'(prasso)의 미래 능동형으로서 '행할 것이다'라는 의미이고, '유'(yu)는 '잘'(well)이라는 의미이다. 즉 '잘 행할 것이다' 라는 뜻이다.
이것은 곧 제반 신앙 생활을 잘 수행하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열매를 맺어나갈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예수 믿기 전에 행해 오던 악습을 버리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 신앙의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부활 제5주간 금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이 계명이 주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시듯 제자들도 당신 사랑 안에 머무르라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15,11).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사랑 안에 머물러 주님 사랑을 배우고 맛 들이면서 기쁨으로 충만해지기를 바라십니다.
이어서 그리스도인의 가장 위대한 사명, 새 계명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5,12).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은 무의미하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인간의 구원자」 10항 전반부 내용입니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라는 어제 복음 말씀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가정과 우정 안에서, 연인 또는 부부 사랑 안에서, 공동체의 친교 안에서, 사랑의 연대와 봉사 안에서, 미사와 기도와 묵상 안에서, 저마다의 길에서 사랑을 만나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무의미와 권태, 곤경의 나락에 떨어집니다.
회칙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인간 내면에 이 깊은 진전이 이루어진다면 그 결실로 인간은 하느님을 흠숭할 수 있을뿐더러 자기 자신에 관해서도 깊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사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그 깊은 경탄을 일컬어 복음, 곧 기쁜 소식이라고 한다.”
기쁨이 충만한 이들이 참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친구로 맞아 주신후 친구로 살아가게 하신다.
복음(요한15,12-17)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 친구(親舊)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우리)는?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 놓을 수 없는 나(우리)이기에,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우리의 죄값으로 목숨을 내 놓으심으로 친구가 되어 주셨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16ㄱ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 친구가 되어 주시기 위해 우리를 선택해 주셨다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께서 나(우리)를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맡기셔서(접목시키셔서) 그분의 친구(존재)가 되게 해 주셨음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가?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흙의 티끌인 없음의 존재인 우리가 무엇을 알아서(분별해서) 주님을 선택하겠는가?
주님께서 먼저 뽑아 주셔서 사랑을 , 곧 당신의 생명, 희망, 평화, 기쁨을 주셨음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뽑아 주셨고, 예수님의 친구,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다는 것이다.
(로마8,29-30)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그렇게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친구가 되었다. 우리(나)가 태어나기도 전에, 곧 영원 속에서 이미 우리(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시다.(에페1,4 참조) 믿어지는가?
그러니까 예수님의 친구, 그 열매를 언제나 지니고 이웃들의 친구가 되어 주라는 말씀이다. 곧 세상과 짝하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해, 예수님의 친구로 돌아오게 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세상과 짝하고 있는 이들의 (오늘 독서의 사도들처럼) 박해가 있을 것을 각오(覺悟)하고 전해야한다.
독서(사도15,26)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시간, 존심)작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물과 사람과 상황, 여건들을 전부 친구 사귀기에 쓰여져야 하는 것들이다. 먼저 내가 깨닫고, 믿어져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곧 성령께서 이끌어 주셔야 믿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이다.
16ㄴ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 성령을 청하라는 말씀이다. 믿음의 열매를 맺고, 언제나 남을 수 있도록.....
(요한14,26) 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요한15,1)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나를 지으셨고, 예수님의 친구로 구원의 열매를 맺도록 시작하시고 끝을 맺으신다.(이사44,6 46,3-4 묵시22,13) 그래서 기쁜소식, 복음(福音)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 12절과 17절 사이에 들어있는 구원의 주님을 친구로 서로 나누는, ‘서로 사랑함’을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목숨을 내 놓으신 ‘피의 새 계약’인 십자가에서 그 사랑으로 친구가 되어 주셨으니, 그에 합당한 삶으로 예수님의 또 다른 친구들에게, 곧 ‘이웃에게 사랑의 친구가 되어 가라’ 는 말씀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예수님의 친구로 그분의 사랑, 기쁨, 쉼을 살 수 있도록 늘 ㄴ말씀 안에 머물게 하소서. 자기 부인으로 참 포도나무의 가지로 붙어,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 기쁨, 열매, 쉼을 살 수 있도록 늘 말씀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저희 모두의 마음에, 발길에 함께 하소서. 의탁하오니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년 05월 08일 금요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일본에 파견되었던 한국인 신부님이 일본인 신학생을 한국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 신학생은 사제관에 머물며 식사하고, 신자들과 인사도 나누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보좌 신부가 주임 신부 방에 들어가지 않으며, 약속하지 않고 찾아 가면 만나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그는 한국의 ‘정 문화’를 불편해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일본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눈물을 글썽이며 한국 교구로 오고 싶다고 진심을 담아 말하였다고 합니다.
친한 사람과 진정한 친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물고기를 달라고 하였을 때 친한 사람은 물고기를 주고, 진정한 친구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애인이 생겼다고 하면 친한 사람은 외모나 배경을 물어보고, 진정한 친구는 행복한지를 물어봅니다.
친한 사이라도 미리 연락을 하고 와야 마음이 편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불쑥 찾아와도 불편하기보다는 반가움이 앞섭니다. 진정한 친구란 서로 진심으로 걱정하고 자신의 삶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관계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는 나의 친구가 된다. ……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4-15).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시어 우리와 살을 맞대고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십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15,13).
예수님께서는 우리라는 친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15,17).
그저 친한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고, 정을 나누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가 먼저 이웃에게 친구가 되어 줍시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