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06일 수요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참 포도나무 (요한15,1-8)
제1독서<할례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하였다.>(사도15,1-6)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3 이렇게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파견된 그들은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 다른 민족들이 하느님께 돌아선 이야기를 해 주어 모든 형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4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원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5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다가 믿게 된 사람 몇이 나서서,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
<화답송>시편122,1-2.3-4ㄱㄴ.4ㄷㄹ-5(◎1)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복음<내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5,1-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독서 (사도15,1-6)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1-2)
사도행전 15장은 사도행전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교회사 전체에 있어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당시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심각하게 대두된 이방인의 할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도들과 원로들이 역사상 최초의 그리스도교 종교회의인 예루살렘 공의회를 열게 되었다.
사도행전 저자가 이 사건을 특히 바오로의 제1차 이방 선교 여행을 기록한 13장과 14장 직후에 기록한 것도 의의가 있다.
바오로의 선교를 통해 믿은 그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고 그외의 것 즉 유다인의 전통과 같은 것은 구원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제1차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기까지는 대략 1년여의 시간이 흘렀던 것으로 보이며, 그 개최시기는 A.D.49년경으로 추정된다.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1)
여기에서 '관습에 따라'로 번역된 단어는 '에테이'(ethei)이다. 이 단어의 원형 '에토스'(ethos)는 성문 율법을 가리키는 '노모스'(nomos)와 달리 법적인 구속력이 없이 사람들의 관습과 관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들 유다인들이 '노모스'라는 단어를 쓰지않고, '에토스'라는 단어를 쓴 것은 할례라는 행위가 십계명 같은 곳에 법조문으로 명백히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단지 하느님께서 제정하셔서(창세17,10-14) 유다인들이 계약 백성의 표시로 전통적으로 행해 오고 있는 관례이기 때문이다.
사실 할례가 유다인들에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계약 백성에서 끊어지기 때문이다.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 곧 포피를 베어 할례를 받지 않은 자, 그 자는 자기 백성에게서 잘려 나가야 한다. 그는 내 계약을 깨뜨린 자다." (창세17,14)
그러나 이런 할례는 하느님의 계약 백성이 되었다는 외적 표시일 뿐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절대 조건은 될 수 없다.
따라서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 말씀을 따라 살게 된(로마1,17) 이방인들의 경우 할례의 과정이 필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협한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이 유다인들은 방편적으로 주어진 계약의 표징을 절대시하여 이방인들이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유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희생으로 자유롭게 하신 자들을 다시 종의 멍에로 얽어 매는 것이었으며,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무익하게 하는 것이었다(갈라5,1-2).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1)
'구원을 받을'로 번역된 '소테나이'(sothenai)는 원형 '소조'(sozo)의 부정(不定; Indefinite) 과거 수동태 부정사이다. 사실 '소조'는 죽음이나 위험이나 병 등에 놓임을 받은 때에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러나 본절에서처럼 부정 과거 수동태 부정사로 쓰인 경우는 성경에서 본절에서 말고 7번 나오는데, 모두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나타내는 데에만 쓰였다. 따라서 본절에 나오는 주장은 그리스도의 성혈의 능력을 거부하는 것이며 반 그리스도적인 주장이 되는 것이다.
한편 '~수 없습니다'로 번역된 '뒤나스테'(dynasthe)는 현재 직설법이다. 구원을 받는 것이 장차 결정될 미래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어 '우'(u)와 더불어 현재형으로 쓰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주의자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너무나 확실하게 주장하였음을 의미한다.
즉 그들은 확신에 찬 어조로 할례받음과 구원을, 조건과 결과로 규정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그릇된 주장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유다인 출신의 개종자들의 주장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고 돌아와 안티오키아에 머물러 있던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 충격적인 주장일 뿐 아니라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었다.
그것은 이제 막 출범하기 시작한 이방인 교회의 정체성을 흔들고 유다주의로 회귀하게 하는 위험천만한 주장이었다.
그래서 그런 주장이 안티오키아 교회 내에 큰 이슈가 되지 않을 수 없었고 할례를 찬성하는 편과 반대하는 편 사이에 분쟁과 논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방인 할례에 관한 문제가 안티오키아 교회 자체에서 해결되지 않아 안티오키아 교회는 바오로와 바르나바 및 다른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형제들이 ~ 하였다(작정하였다)'로 번역된 '에탁산'(etaksan)이 '결정하다'는 뜻이 있는 '탓소'(tasso)의 3인칭 복수 부정(不定) 과거형이란 점에서 잘 보여진다.
즉 이 단어에는 교회의 회중들이 확고하게 결정을 내렸다는 뉘앙스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예루살렘 모교회가 모든 교회의 모체로서 사도들과 원로들이 있어 교리적인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루기에 적합하다고 여겼으며, 또한 유다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어서 그들의 의견을 듣기에도 용이했기 때문에 내려졌을 것이다.
또한 '올라가기로'로 번역된 '아나바이네인'(anabainein)은 '올려 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나바이노'(anabaino)의 부정사로서 '올려보낼 것을'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이 안티오키아보다 고지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루살렘을 높이 표현하는 당시 보편적인 어법 때문이기도 하다.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하느님께서는 “광야의 포도송이”(호세 9,10)처럼 보잘것없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려오시어 약속의 땅에 심어 주셨지만(시편 80[79],9-12 참조), 이들은 들포도만 맺을 뿐(이사 5,2 참조) 거룩함과 정의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하십니다.
참포도나무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구원을 맺는 나무입니다.
농부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께 접붙이셨고, 우리는 삶의 결실을 오직 그분과 함께 얻을 뿐입니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 혼자서는 결국 볼품없는 들 포도를 맺기가 일쑤입니다.
제1독서에서 유다계 신자들은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며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에게 맞섭니다.
그들은 할례를 계약의 표징으로 명시한 율법 때문에 심각한 갈등을 겪지만,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 같이 충실히 머물렀기에, 구약의 그루터기에서 잘라 내어 ‘접붙이기’ 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열매 맺는 가지일수록 더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농부이십니다.
잘못된 열망과 나만의 고집에 접붙은 나를 ‘가지치기’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때로 매섭게 느껴질지라도, 늘 새롭게 주님의 말씀과 뜻에 나를 접붙이는 용기를 냅시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소중한 참포도 열매가 되어, 쓰러진 이웃의 상처에 붓는 ‘치료 약’이요(루카 10,34 참조) 가족과 이웃의 기쁨과 사랑을 북돋는 잔치의 ‘음료’로(요한 2,10 참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나는 참포도나무(십자나무)요
우리의 힘은 구원의 능력이 없으니 그 힘 ‘끊어버립니다’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나의 버림, 그 부인으로 하늘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15,1-8)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쳐 내시고~를 잘라버리시는, 버림으로 알아듣는다면~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요한12,47) = 이 구원의 말씀과 충돌합니다.
2절에 ‘다 쳐내시고’(헬라어-아이로)- 가지를 들어 올리다. 입니다. 햇빛을 잘 받아 열매를 잘 맺도록 깨끗이(카다이로) 가지치기를 의미합니다.
역시 열매를 잘 맺도록, 그리고 그 카다이로가 3절에 깨끗하게(카다로이)와 같은 동일한 어원에서 나온 구절입니다.
그 모두 열매를 잘 맺게 하기 위한 농부의 손길에 쓰이는 단어입니다.
직역하면~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 가지를 높이 들어오려 열매를 맺게 하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가지치기를 해 준다.’입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 내 본성의 자리에서 들어 올려짐이, 그리고 그 가지가 잘려지는 아픔이 있어도 참고 붙어있어라 하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손길입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붙어있기 위한 힘은, 죄인인 나와함께 하시기 위해 하늘께서 나무로 땅으로 내려오신 그 신의 자리의 버림, 죽음, 그 사랑을 깨닫는 그 깨달음입니다.(탈출15,25참조)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뜻 안에서 청하라~입니다. 참 포도나무의 뜻은 그 나무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가지의 들어 올려짐과 가지치기, 그 사건들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의 뜻을 깨달아 받을 수 있도록 이끄실 보호자 성령을 청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이끄심, 보호하심으로 깨닫고 믿고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하늘의 생명입니다.
(요한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 우리가 맺는 열매는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뜻, 그 자기 의로움의 길을 버리는~ 그 자리에서 들어 올리심이, 잘라내심이 맞습니다. 하는 그 자기 부인으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당신 외 아드님을 포도나무로 이 세상에 내주시어 죄인들을 접 붙이시어 하늘의 존재로 살려 내시는~
(요한3,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그 하느님의 뜻, 그 일이 참 의로움이며 하느님만이 의로우신 분임을 고백 드리는 것입니다.
그 영광 드림을 위해 인간의 희생, 사랑, 의로움은 개짐(쓰레기)일 뿐임을 인정하는(이사64,5) 그 자기 부인으로 구원의, 하늘의 의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바2,3)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마태6,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16,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참 포도나무- 십자 나무 입니다. 자기 버림, 자기 부인의 그 열매로 얻는 포도나무의 생명입니다.
아멘.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15,1-8)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1)
요한복음 15장의 '참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와 사랑과 인내에 대한 교훈이 주어지는 내용들은 요한복음 13장에서부터 17장까지 전개되는 성주간 목요일 밤에 주어진 다락방 이별의 담화의 일부이다.
특히 요한복음 15장 1~11절은 예수님 당신 자신이 육신적으로는 비록 제자들과 떨어지게 될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의 일치된 유기체이심을 보여 주는, 그 유명한 참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이다. 이것은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에도 예수님과 영적으로 일치를 이루고 있는, 믿는 이들의 상태를 보여 주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참포도나무요'라고 하실 때, '참'이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인 이스라엘과 참포도나무이신 당신 자신을 의도적으로 대조시키기 위해서이다. 팔레스티나의 특산물이며 매우 흔한 식물이기도 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구약시대 때부터 이스라엘은 주님의 포도나무, 혹은 주님의 포도밭으로 비유되어 있다. 그들은 주님의 포도밭(이사5,1~7)이었고, 주님께서 심으신 좋은 포도나무였으며 (예레2,21), 열매맺는 무성한 포도나무였다(호세10,1).
하느님께서 이 포도나무를 이집트에서 가져다가 팔레스티나에 심으셨다는 시편 저자의 노래(시편80,9)에서 볼 수 있듯이,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징이었다. 마카베오 시대의 화폐에 이스라엘이 포도나무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과 포도나무를 일치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당신 자신이 '참포도나무', '참된 포도나무'라고 주장하심으로써, 동시에 가짜, 혹은 불완전한 포도나무와의 구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참'으로 번역된 '알레티네'(alethine; true)의 원형 '알레티노스'(alethinos)는 가짜 혹은 불완전한 것을 의미하는 '프슈데스'(pseudes; pseudo)의 반대로서 '진짜', '순수한', '이상적인'등을 뜻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 내포된 당시 이스라엘의 실상은 무엇인가? 그들은 가짜, 혹은 최소한 불완전한 포도나무라는 것이다. 성경은 주님의 포도밭으로 지칭되는 이스라엘이 열매가 없는, 형편없는 포도나무, 들포도 나무라고 말한다(이사5,2).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주님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한 불완전한 포도나무였던 것이다.
구약에서는 포도나무의 상징이 언제나 타락의 개념과 함께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사야 예언자가 노래하고 있는 주님의 포도밭에 나타나는 중심 사상은 포도밭이 황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이사16,10).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야생의 낯선 들포도나무로 퇴화되었다고 탄식한다(예레2,21). 호세아 예언자도 헛된 포도나무라고 외쳤다(호세10,1).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칭하신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낼 수 없는 포도나무라는 사실이다. 유대인,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마태3,7~10참조).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도 민족, 혹은 혈통, 가문으로 만나시지 않는다. 오로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서 개별적으로 만나시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로마2,28.29).
하느님의 약속을 상속으로 계승하게 될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영적 이스라엘뿐이다(갈라3,7.9). 따라서 모든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머무를 때에만, 희망있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열매는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만 맺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심오한 진리를 선포하시기 위해, 먼저 당신만이 유일한 참 포도나무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 밝히신 후에, 성부 하느님께서 누구신지를 밝히신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을 지칭하신 '나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호 파테르 무' (ho pater mou; my Father)라는 호칭은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님만이 사용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독생성자 예수님만이 성부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나의 아버지'라는 호칭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성자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선언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농부'로 비유되고 계신다.
'농부'에 해당하는 '게오르고스'(georgos; gardener; husbandman)의 기본적인 의미는 '땅을 경작하는 사람'으로서, 신약성경에서는 '농부'(2티모2,6), '포도밭 주인'(포도밭지기)(마태21,33~35) 등을 가리켜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관리인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도 하느님께서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일치한 가지인 참된 믿는 이들을 더 나은 축복으로 인도하시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심판하시는 분으로서,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을 세밀히 관리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한편, 당신 자신을 참포도나무로 비유하시고, 성부 하느님을 농부로 비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곳 팔레스티나의 주요 농작물 가운데 하나인 포도 재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동시에 이 가르침이 주어졌던 당시의 장소가 성체성사가 이루어진 마르코의 다락방이었다고 할 경우에, 제자들 앞에 '아직 남아 있는 과월절 만찬용 포도주'를 바라보면서 이 가르침이 주어졌다는 것은, 제자들이 잘 알고 있던 친숙한 소재를 사용한 놀라움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26년 05월 06일 수요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삐뚤어질 테다.” 부모나 주변 사람이 내가 바라는 것을 해 주지 않을 때 일부러 반항하겠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망가지는 것을 가장 마음 아파하기 때문이지요. 자녀들은 반항심으로 자기 자신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참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어린 자녀들은 그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깨닫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갖는 관계에서도 “삐뚤어질 테다.”라고 말하는 자녀들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 막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시련에 아파하다가 하느님께 등을 돌리는 경우를 때때로 봅니다.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시련이 와도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성당에 다니며 실망하게 되는 일도 많고, 본당 신부나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형제자매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날마다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하며 성당을 떠나지 않습니다.
신앙의 든든한 힘은 거창한 환시나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예수님께 의지하는 끈기와 인내에서 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이 신앙의 힘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요한 15,1-8 참조).
성당에 꾸준히 나온다고 모두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실망스러워도 예수님께 붙어 있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화가 나도 예수님 안에서 화내고, 슬퍼도 예수님 안에서 슬퍼합시다.
어떤 상태에 있든 예수님 안에 머무르면 결국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주제를 알고 살자.
복음(요한15,1-8)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 세상의 모든 나무들, 사람들은 참 포도나무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오늘 아버지께서 당신의 백성, 자녀들을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을 말씀하심이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 협박의 말씀 같다. 아니, 그 반대의 말씀이다. ‘다 쳐내시고’는 헬라어 ‘아이로’로 ‘가지를 들어 올려 햇빛을 잘 보도록 해 주다’라는 의미인 것이고, ‘깨끗이 손질 하시어’는 ‘카다이로’로 ‘가지치기’라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그래서~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 깨끗하게 되었다.- ‘카다이로’다. ‘*다 쳐내시고 깨끗이 손질하시어 *깨끗하게 되었다.’ 모두 열매를 잘 맺게 하기 위한 농부의 손길에 쓰이는 단어인 것이다. 2절을 제대로 번역하면 “ 하느님께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가지를 높이 들어 올려 열매를 맺게 하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가지치기를 해준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2절은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잘라 없애 버리신다는 뜻이 아니라,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도록 가지를 들어 올려서 라도 기필코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그 정반대의 내용인 것이다. 그러니~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끗해진 사람들이다. 2절에서 본 것처럼 깨끗하게 된 사람들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이미 열매를 맺을 수 있게 깨끗하게 된 그들에게 ‘내 안에 머물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메시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면 ‘다 쳐내시고’에 강세(强勢)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에 강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 앞에 가지는 단수(單數), 뒤에 가지들은 복수(複數)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는 가지와 밖으로 던져진 그런 가지들은 다른 의미다. 예수님은 지금 포도나무인 당신께 접붙여진 제자들에게, 곧 이미 깨끗하게 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시는 중이다.
그런데 당신께 붙어있지 않으면 ‘던져져 말라 버린다?,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 하신다. 그것은 선택받아 깨끗해진 사람에게서 나오지 말아야 할 것들, 곧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것 같지 않는 행위들”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농부이신 하느님의 뜻인 ‘대속(代贖)의 십자나무,’ 그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약의 피’로 깨끗해졌음 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위한 행위들을 매일 내놓는다. 곧 세상 사람들 같이 하느님께 받은 의(義), 칭찬보다 사람들에게 받는 의(義), 칭찬을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더 인식하고 나의 힘, 가치를 믿는 신앙을 살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다 태워버리신다’는 말씀이다.
(1코린3,10-15) 10 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저마다 잘 살펴야 합니다. 11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2 그 기초 위에 어떤 이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다면, 13 *심판 날에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저마다 한 일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그날은 *불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 한 일이 어떤 것인지 그 불이 가려낼 것입니다. 14 어떤 이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삯을 받게 되고, 15 어떤 이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입게 됩니다.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겠지만 불 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할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 모두 이세상의 힘의 원리에 근거한 인간들의 ‘인본주의적 행위’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열심에 의해 집이, 내가 지어져야 하는데, 율법(제사와 윤리)자들처럼 자신들의 노력과 열심, 자격, 조건을 보태려고 하는 시도들을 하느님께서 다 태워버리시고, 오직 예수님과 그분의 공로(피의 새 계약)만을 오롯이 남겨 천국에 넣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맺어 내시는 열매들 말고, 자신의 욕심과 이 세상의 힘의 원리를 쫓아 살면서 내어 놓는 모든 열매들을 모두 태워버리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와 상관없는 인간 측에서 내어놓는 인간의 의(義), 업적, 종교적 행위의 열심, 그 무엇도 하느님 앞에 드려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에페2,8-9참조)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 신앙, 구원의 최종 목적은,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그 참열매를 맺도록 청(請)하라’는 말씀이다. 곧 스스로 참포도나무가 되고자 살았던 그 자신의 힘, 모든 것을 부인(否認)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던 그 이기적 자아(自我)’에서 벗어나, ‘아버지 하느님을 목숨 걸고 사랑하는 자아(自我)’로 지어져 가는 것이다.
그것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으로 받는 구원의 길이며, 창조 이전 당신 외 아드님을 ‘속죄 제물로 계획하시고 내 주신’ 그 ‘하느님의 자비(慈悲), 사랑이 참(眞)입니다.’하고 사랑하는 것, 칭찬해 드리는 것, 영광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워내시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順從)하여 그분의 대한 사랑을 보이셨듯이 우리도 자신의 욕망, 야망을 비워내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다. 그 열매를 청하면, 기도하면 그대로 들어주신다는 말씀이다.
(야고4,2-3) 2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 보지만 얻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주님의 뜻인 자기 비움, 자기 부인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늘 말씀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저희 모두의 마음에, 발길에 함께 하소서. 의탁하오니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자비)가 아버지의 뜻(사랑)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아버지 하느님의 관계,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관계를 포도나무에 비유하십니다.
먼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참포도나무’요 아버지를 ‘농부’로 소개하십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맺는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에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제자들인 우리도 포도나무이신 당신 안에 머물며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사제 서품 전 8일 피정 중에 포도나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참 볼품없는 나무였습니다.
거무튀튀하고 윤기가 없어 죽은 나무를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말라비틀어져 보여도 가지가 그 나무 몸통에 붙어 있지 않으면 싱싱한 줄기와 이파리를 가지지 못할 뿐 아니라 열매 맺을 도리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다소 과장된 표현입니다.
주님께 의지하지 않고도 주님께 기도하지 않고도 주님 은총의 선물을 받지 않은 것 같아도 우리는 제법 많은 것을 그럭저럭 잘 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열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신명 나고 보람찬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열매입니다.
주님 없이 적당히 열매 맺고 살다가 자신이 거둔 그 모든 것이 그저 쭉정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을 생각해 봅시다.
(김동희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