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 (요한16,12-15)

2026. 5. 9. 오전 9: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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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3일 수요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 (요한16,12-15)



1독서<알지 못하는 신’>(사도17,15.22-18,1)

15 바오로를 안내하던 이들은 그를 아테네까지 인도하고 나서, 자기에게 되도록 빨리 오라고 실라스와 티모테오에게 전하라는 그의 지시를 받고 돌아왔다.

22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3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7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29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30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31 그분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32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

33 이렇게 하여 바오로는 그들이 모인 곳에서 나왔다.

34 그때에 몇몇 사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가 있고,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18,1 그 뒤에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화답송>시편148,1ㄴㄷ-2.11-13ㄱㄴ.13-14ㄱㄴㄷ 주님의 영광 하늘과 땅에 가득하네.

하늘 위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데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군대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세상 임금들과 모든 민족들, 고관들과 세상의 모든 판관들아, 총각들과 처녀들도, 노인들과 아이들도, 주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 이름 홀로 높으시다.

주님의 위엄 하늘과 땅에 가득하시다. 그분이 당신 백성 위하여 뿔을 높이셨네.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 그분께 가까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은 찬양하여라.

 

복음<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16,12-1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제1독서(사도17,15.22~18,1)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듬 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4-27)

 

바오로는 먼저 하느님을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분으로 소개한다.

그리스인들의 범신론(汎神論; pantheism; 신과 우주를 똑같은 것으로 보는 종교관 또는 철학관)에 의하면, 만물의 근원은 물, 불, 공기 등이며, 이것들이 이합집산(離合集散)에 의하여 만물이 만들어지고 신들도 존재하게 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바오로는 우주와 만물 모두가 단수로 표현된 '신'(호 테오스; ho theos)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선포함으로써 그리스 철학자들의 견해를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이러한 바오로의 선포는 수많은 우상을 숭배하며 우주 만물의 존재와 역사의 흐름에 대하여 끊임없이 사변적인 논쟁을 거듭하였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모든 논쟁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24) 

원어 '퀴리오스'(kyrios; 주님)는 주재자(主宰者; 책임지고 맡아서 처리하는 사람)라는 의미와 더불어 '소유' '섬김의 대상'이라는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단어이다.

즉 본문은 '천지의 주인이시다' 라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하늘과 땅을 소유하는 주인이라는 표현은 소유권 뿐만 아니라 통치권도 있음을 나타낸다.

어떤 대상을 소유하고 있는 자가 그것의 운명까지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삶과 우주의 운행에 대하여  무관심하다고 가르쳤던 에피큐로스 철학자들의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바오로에 의하면,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분이 아니라 인간이 삶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행동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우주와 인간을 소유하고 있는 소유주이시기 때문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사도행전 17장 23절에 나오는대로 '알지 못하는'(아그노스토스; gnostos) 신(神)까지 섬겼다.

그 유래는 B.C.6세기 키레네인 에피메니데스(Epimenides)가 전염병으로부터 아테네 사람들을 구한 후에, 이 일에 대해 신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과정에서 혹시 몰라서 감사드리지 못한 신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는 단(壇)을 쌓아 제사를 드린데서 기원하였다.

 

신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알지 못하는 신까지 섬기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바오로는 그 알지 못하는 신이 누구인가를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하느님께 대해서 설명해 나갔다.

바오로는 선교 대상지의 관습과 환경을 무시하지 않고 거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선교했던 것이다.

 

바오로는 이러한 아테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으로 섬기고 있는 그 신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들이 알지 못하고 섬겼으나 유일한 참 신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증거한데 이어서 이 하느님은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계시지 않음을 선포하였다.

 여기서 '손으로 지은 신전'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아테네에 있는 신전들의 무용성을 주장한 것이며, 더 나아가서 아테네 사람들이 섬기는 잡다한 우상들과 구별되는 하느님의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편재성(遍在性)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25)

 바오로는 섬기는 자가 없으면 곧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며 마치 어떤 것이 부족한(need)것처럼 사람의 손에 의해 섬김을 받는 우상과 달리 하느님께서는 자기 충족성(self-sufficency)을 가지신 분임을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우상들은 다른 존재에 의하여 자기 존재와 의미를 가지는 허구적이며 의존적인 존재인데 반해서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주요 주권자로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친히 주시는 유일한 절대자이심을 밝히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6)

본문은 모든 인류가 하느님께서 만드신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이어져 왔음을 밝힌다.

아테네 사람들은 그들이 아티카(Attic)본토의 흙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다른 족속들과는 다르다는 민족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오로는 이에 반대하여 온 인류가 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동일한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인류의 하나됨을 언급하면서 그들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 준다.

 이러한 관계성 아래서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창조주 되시는 하느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것이 마땅함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바오로의 인간관은(로마5,12-21; 갈라3,28) 인간 평등 사상의 뿌리가 되고 있다.

 

'일정한 절기' 번역된 '카이루스'는 '카이로스'(kairos)의 목적격 복수로서 연대기적 시간을 나타내는 '크로노스'(chronos)와 달리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사의 때 혹은 기회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여기서 바오로가 말하는 '카이루스'라고 하는 것은 루카복음 21장 24절에 나오는 '이방인의 때'와 같이 각 민족의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다' 표현과 더불어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역사의 주관자되신 하느님의 철저한 개입과 섭리에 따라 되어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만물의 움직임이나 역사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에피큐로스 학파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 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27)

 '찾게'로 번역된 '제테인'(zetein)은 '몰두하여 찾다'(seek)라는 의미의 동사 '제테오'(zeteo)의 현재 부정사이다.

'더듬거리다가'로 번역된 '프셀라페세이안'(pselaaheseian)은 '느끼다','만지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프셀라파오'(pselaphao)의 희구법 과거형이다.

이러한 문법적 요소를 가지고 풀어서 번역한다면, 본문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듬어 찾아서 그를 발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면, 그를 찾을 수 있도록' 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의 연대(일정한 절기)를 정하시고 거주지의 경계를 한정시켰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인간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더듬어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므로 인간들이 이제 그 방법으로 하느님을 찾아 나선다면 그분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느님께서는 우주 너머 어딘가에 따로 떨어져 있어 인간이 결코 찾을 수 없는 그런 분이 아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 가까이에 그리고 역사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인간 역사의 영고 성쇠와 계절의 변화  그리고 우리 인간 사회 속에서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 접할 수 없는 현상들을 보고서  그런 것들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느님을 찾아 나서기만 하면 우리는 그분을 만날 수 있다.

 즉 인간은 '자연 계시'를 통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자연 계시'를 통해 접하게 되는 하느님은 '초자연적인 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접할 수 있는 하느님만큼 구체적인 모습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초자연적인 계시'인 성경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7)

 사람이 하느님을 더듬어 찾아야 그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분은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않고 가까이 계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되,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고 무관심하다는 주장을 하는 에피큐로스 철학자들의 사상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며 하느님께서는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분은 인간과 친교할 수 있는 인격적이며 인간에게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므로 인간들이 그분을 찾고자 하면 발견하여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고대 그리스 문화의 수많은 유적이 남아 있는 아테네.그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아크로폴리스 정상에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의 정수라고 손꼽히는 파르테논 신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5세기에 세워진 건물로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지만, 그 거대한 규모와 높이 솟아오른 수많은 돌기둥은 여전히 보는 이를 압도하며 과거의 영광과 위용을 그대로 자랑하고 있는 듯합니다.

여행길에 그 아크로폴리스 정상을 향하여 가다가 산 중턱 한 모퉁이에서 작은 푯말 하나를 보았습니다.

“아레오파고스, 바오로가 이곳에서 설교하다.”

바오로는 그렇게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인 아테네에서, 그리스의 다신론 사상이 절정을 이루고 있던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며, 산 중턱 한 모퉁이에서 유일하신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선포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거대함과 웅장함과 그 화려함 앞에서 담대하고도 용기 있게 외칩니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용기가 나왔을까요?

신전 중에 신전이요, 인간이 지은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졌던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어떻게 이런 말로 설교할 수 있었을까요?

 바오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1코린 3,16)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이 다 담아낼 수 없는 하느님, 사람의 손으로 드리는 섬김과 예배에 결코 종속되실 수 없는 그 하느님께서 바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오늘은 그렇게 온 세상조차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크고 위대하신 하느님께서 자신 안에 계심을 깊이 묵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부활 제6주간 수요일]

 

創世前 예비하신 容恕救援은 자기 버림否認으로 받는것.

 

(요한16,12-15)

1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 창조주의 뜻, 말씀(진리)을 피조물인 인간이 어찌 감당 할 수 있겠는가.

 

13ㄱ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하느님과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성령께서 眞理이시다. 하늘의 영, 그 진리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17,28ㄴ) 28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13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이야기 지 않으시고 하느님 아버지께 들으신 것만 말씀하셨다. 그리고 죽기까지 그 말씀에 순종 하셨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아버지의 뜻으로 우리에게 닥쳐올 죄의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시고 죽으러 오신 것이다.

 

(요한6,39)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 그래서 성령께서 앞으로 올 일, 곧 예수께서 대속의 제물로 죽으신 그 십자가를 진리로, 새 계약으로, 앞으로 받게 될 우리의 구원을 성령께서 증언하시며 완성을 하신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 영광,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사랑이 드러나는 것, 예수님의 대속, 그 십자가가 하늘의 이타의 사랑, 영광이었음을, 구원의 진리였음을 성령께서 알려 주신다는 것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 성령께서 깨닫고 기억하게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영원히 떠나시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기에 우리 성도들과 영원히 하나 됨의 삶을 위해 천국이라는 거처를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이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안에 미리 하느님나라와 함께 그 나라에서 함께하실 성령을 보내신 것이고,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그 성령과 하나 되어 사는 연습을 미리 시키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이시며 영이신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 예수님의 말씀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 나라의 원리, 진리를 배우는 것이다.

 

(요한16,13)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적 자신을 버리고(부인하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고, 용서하고 섬기라고 또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성령님은 그 가르침이 진리이며 그 진리가 왜 옳은지, 어떻게 옳은가를 가르치러 오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르치시는 성령과 내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세상(힘)의 자재가 늘 다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내면의 다툼 속에서 자꾸 ‘버림’의 편을 드는 훈련을 받는 것이다.

 

(야고3,14-16) 14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거든,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15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16 시기와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행도 있습니다.

 

(히브12,6.11)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 훈육 또한 우리 혼자 받지 않는다. 영원한 보호자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성령께서 말씀의 힘으로 이끌어 가신다. 그러면 성령과 함께하는 삶이란, 말씀을 기억하는 기도, 나눔(예배)이다.

 

(요한4,23)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 영과 진리로 드리는 기도, 예배는 성령을 포착하고 인식하며 뜻을 분별하여 쫓는데 가장 중요한 은총의 방편이다. 하느님의 은총, 은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닌,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은혜)이 쏟아 부어지는 것이다.

 

(지혜6,13) 13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필립2,13) 13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루가2,25-29)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죽게, 구원) 해 주셨습니다.

 

☨ 은총의 성령님! 늘 함께하시어 이끄시니 감사하나이다. ~아멘!!!

 

 

 

 

 

행복으로 이끄시는 진리의 영 안에서 

-기경호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16,13-14) 

진리의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계시진리를 더 명확히 더 풍요롭게 해주시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진리를 찾고 있습니까? 세상살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이나 과학적 진리, 삶의 지혜도 물론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지식과 경험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지는 못하지요. 우리가 찾는 진리는 영혼 구원을 위한 진리요,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완성하며, 하느님을 반영하는 구원의 진리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진리는 하느님을 떠나서 만날 수 없지요.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것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완전한 진리는 계시 자체이며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뿐인 구원의 진리, 생명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포괄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할 진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자비의 말씀이 진리요, 연민으로 다가가 함께 하는 몸짓이 진리요, 십자가 죽음에 이르는 희생의 봉헌이 진리입니다.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할 진리는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눔으로써 참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사랑의 진리요, 생명의 진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온 마음과 정신을 다 쏟아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 오시어 도와주셔야만 진리이신 예수님과 온전히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진리는 영이 아니고서는 깨달을 수 없고, 사랑의 실천 없이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참 신앙의 길, 참 인간됨의 길은 성령 안에서 끊임없이 그리스도와 동화되려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진리의 영이 내 안에 오실 수 있도록 깨어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집착과 번뇌, 자기애착과 탐욕, 근심걱정과 교만의 덫에 걸려, 오시는 영께서 드나드는 문을 닫아버리지 말아야겠지요.
오늘의 시대는 장미빛 성공과 행복의 지름길을 제시하며 유혹하는 온갖 지식과 정보가 넘쳐 납니다. 세속화된 지식과 거짓 사상들로 정신세계는 물론 삶 자체가 오히려 피폐해져 가는 현실이지요. 

그러나 돈과 외모, 출세, 물질적 풍요를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이 과연 참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일까요?
우리는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 진리의 영께서 주시는 진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진리의 영께서 나를 찾아오시어, 계시의 말씀을 더 깊고 풍요롭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밝혀주시어 ‘진리’에 따라 살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거기에 참 생명, 참 행복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마음을 비우고, 온갖 집착과 애착에서 벗어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진리의 영을 모시도록 해야겠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예수님의 구원 행위를 계속 수행함으로써 예수님의 ‘영광’에 기여하실 수 있는 ‘구원의 마당’, ‘생명의 터’가 되어야겠지요. 

오늘도 진리이신 예수님을 갈망하고, 그분께서 보내시는 진리의 영 안에 머물며 영적 풍요로움을 체험하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부활 제6주간 수요일(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독서인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 사도의 아레오파고스 연설을 전합니다.

바오로는 먼저 아테네 시민을 대단한 종교심을 지닌 이들로 치켜세우며 그들의 예배소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사도 17,23)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미지의 신그러나 숭배받아 마땅한 그분께서 하느님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니바오로의 이 설교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코린토 1서에서 바오로는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자신을 보내셨지만그 일은 인간의 말재주가 아닌 십자가의 복음으로 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리석어 보이지만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믿는 이들을 구원하셨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 1,22-24).

말재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을 내주는 어리석은 사랑의 길십자가의 복음만이 인간을 지성이 아닌 근원 곧 마음에서부터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에게 이해시키고 또 그 사랑으로 나아가게 해 주시는 분은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간절히 보내 주시고자 하는 성령이십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부활 제6주간 수요일]

 

희망과 절망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복음(요한16,12-1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주님의 말씀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진리로 깨닫지도, 믿을 수도, 기억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진리- ‘알레떼이아’ ‘레떼’- 망각의 강, 잘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진리란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 성령님만이 앞으로 올 일들, 곧 내일의 영원한 생명, 구원에 관한 일들을 알려 주실 수 있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 13절 ‘진리의 영’께서 이끄시는 진리? 그 진리로 ‘앞으로 올 일들을 알 수 있다.’ 하신다. 그것이 ‘예수님을 영광스럽게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먼저 ‘우리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오셔서 십자가에 대신 달리시고, 죽으시는 예수님의 생명, 구원의 길이요 진리시다.’(요한14,6) 그 진리로 하느님의 영광을 받아 영광이 되는 것이다.

<영광-독사,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사랑이 가시적으로 드러나 나타난 십자가의 사랑이다.>

 

사도 바오로가 잘 증언하고 있다. 오늘은 사도 바오로의 증언으로 배우고자 한다. (천천히 마음에 새기자)

(로마8,1-17)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새 계약새 법)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의뜻)이 아니라 성령(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5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땅의 법생존)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성령(하늘의 법생명)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믿기만하면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믿지않으면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맏으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의로움(믿음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의로움 - 믿음이다. (로마4,3 참조)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믿으)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 육의 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피의 새 계약‘, 새법이 덮고 있기 때문이다.

13 여러분이 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 성령의 힘인 성령의 법(1절)에 의탁하여 육(법)의 행실이 헛된 것임을 믿는 것, 그러면 육(법)의 행실이 헛된 것임을 믿는 것, 그러면 육(법)의 행실이 헛된 것임을 믿는 것, 그러면 육(욕망, 죄)의 힘이 죽는다.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하느님이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아빠, 아버자’임을 믿는다면 성령께서 함께하심이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 진리의 성령께서 세상의 나, 육적인 나를 부인(否認)하는, 버리는 그 고난, 시련의 자리로 이끄신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모든 약속인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야고1,12) 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히브12,7-8.10-11)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8 모든 자녀가 다 받는 훈육을 받지 않는다면여러분은 사생아지 자녀가 아닙니다. 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훈육하였지만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난, 시련의 사건들은, 구원을 위한 나의 부인, 버림으로 이끄시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면 영원한 생명, 의, 평화에 대한 희망이지만, 믿지 못하면 절망이다.

 

(사도17,28) 28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영원한 보호자 眞理의 성령님!

우리의 삶속에서 저희 모두의 보호자로 함께 하시며 이끄시니 안심이며 우리의 生命이십니다感謝합니다저희 모두의 마음을 붙들어 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0513일 수요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학창 시절에 수포자’, 수학을 포기한 자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수학 교과서는 수준이 높고 내용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도만 나가니 학생들이 배우기를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본당 특강도 수준이 너무 높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듣기를 포기하고 졸게 됩니다. 좋은 선생님은 제자들의 수준을 잘 고려합니다. 너무 어려워 처음부터 포기하지 않게 하고, 너무 쉬워서 흥미를 잃지 않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2-13).

제자들의 눈높이를 고려하는 좋은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의 완급을 조절하실 줄 아십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처럼 완급 조절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의 완급을 성령을 통하여 조절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히브리 말로 루아흐입니다. 이 말은 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루아흐가 이 두 가지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숨 쉴 틈도 없이바쁘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를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실 것이라고 말해 주는 듯도 합니다.

밤을 새워 모든 것을 내가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물러날 줄 알고, 쉬는 법을 알 때 성령의 바람이 다시 우리에게 진리를 따라 살아갈 힘을 주실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일상생활에서 완급 조절 없이 바쁘게만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성령의 숨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숨을 쉬고자 교회에 모입니다.

성령의 숨을 쉬고, 예수님의 진리를 쉬엄쉬엄 세상에 전파합시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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