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간 화요일] 내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마르10,28-31)

2026. 5. 22. 오전 7: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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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6일 화요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내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마르10,28-31)



1독서<여러분 정신을 차려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1베드1,10-16)

여러분, 영혼의 10 구원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받을 은총을 두고 예언한 예언자들이 탐구하고 연구하였습니다.

11 그들 안에서 작용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께 닥칠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증언하실 때에 가르쳐 주신 구원의 시간과 방법을 두고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12 예언자들은 그 일들이 자신들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일들이 하늘에서 파견된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한 이들을 통하여 이제 여러분에게 선포되었습니다. 그 일들은 천사들도 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13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14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무지하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15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화답송>시편98,1.2-3ㄱㄴ.3ㄷㄹ-4(2)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복음<현세에서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제1독서(1베드1,10~16)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무지했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14~15)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1장 14절에서 수신자들의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와 이후의 현재 신분을 대조하면서 과거를 단절하고 현재의 신분에 맞는 삶을 살 것을 촉구한다. 

그들은 복음을 받기 전에 무지하여 각종 더러운 욕망들을 추구하면서 살았었으나 이제는 하느님의 은총 아래에 있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 '순종하는 자녀로서 ~~해서는 안된다'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새 성경이 '~로서'로 번역한 접속사 '호스'(hos)는 자격의 의미를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영어의 'as'의 의미이다.

 

그리고 '무지했던 때'에 해당하는 '엔 테 아그노이아'(en te agnoia)에서 '아그노이아'(agnoia)의 원형 '아그노이아'(agnoia)'무지'(ignorance)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희랍어 구약 성경 70인역(LXX)과 신약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이방인의 특성인 하느님께 대한 무지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시편79,6; 예레17,30; 갈라4,8; 에페4,18).

이러한 용례는 본 서신의 수신자들이 사욕들을 따라 산 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을 때에 행한 것임을 말해준다. 

 

한편, '욕망'에 해당하는 '에피튀미아이스'(epithymiais)는 복수 명사로서 '사욕들'(lusts; evil desires)이란 의미이다. 원형 '에피튀미아'(epithymia)는 어떤 대상을 향한 욕구라는 의미로서 본래는 가치 중립적 단어이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는 대부분 도덕적, 영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여 버려야 할 욕망나타내는 용례로 쓰였고(요한8,44; 로마13,14; 에페4,22; 2티모2,22 등), 베드로 전서에서도 동일한 용례로 쓰였다(1베드2,11; 4,2).

 

사도 베드로가 여기서 말하는 욕망은 경계하여 엄격히 통제하지 않으면 사람을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죄를 짓게 하며, 자연적인 본능의 충동대로 살게 하는 것들로서 주로 이방인들의 특성인 도덕적 죄악을 가리킨다 (마르4,19; 갈라5,16; 1베드2,11; 4,2; 1요한2,16).

 사도 베드로는 지금 수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에 갖추어야 할 실천적인 요구로서 그런 욕망들을 따르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베드로 전서 1장 13,14절을 통해 성도들에게 거룩한 삶을 권고한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1장 15~21절을 통해 이렇게 성도들을 향하여 거룩한 삶을 권고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특히 베드로 전서 1장 15~17절에서는 성도는 거룩하신 하느님을 닮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거룩'이라는 것은 어떤 예식이나 의식상(ritual)의 정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도 베드로는 지금 유다인들이 지키던 전통, 즉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부지런히 씻거나 장터에서 돌아와 반드시 몸을 씻고 음식을 먹거나 그외에도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관례(마르7,3.4) 등에 관하여 '거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느님과 통교함에 있어 필요 불가결한 영적, 도덕적 거룩한 정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드로 전서 1장 15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지금에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결함과 도덕적인 완전함을 닮은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내면적이거나 '예수님의 구속사업의 공로의 은혜을 입어서 정결(거룩)하게 된' 존재론적인 변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도는 이 '거룩'을 일상의 구체적인 삶의 행동과 연관된 '행실'('anastrophe'; '아나스트로페'; manner of conversation)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세상 속에서 윤리를 실천하는 면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 카파르나움을 떠나 유다 지방 예루살렘으로 걸어가고 계십니다(마르 9,33; 10,1 참조).

십자가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길 위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10,1 참조).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10,28).

하느님 나라를 위한 제자들의 과감한 선택과 결정은 부자 청년의 머뭇거림(10,22 참조)과 대조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물었던 부자는 지상에서 가지고 있던 재물 때문에 하늘에서 받을 수 있는 보화를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가족의 유대와 소유의 안전을 포기하고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1,18.20 참조).

제자들은 부자 청년이 하지 못한 행동, 곧 소유한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요청에 응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용기 있는 결정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그 어떤 것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포기한 것들을 백 배로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은 부자 청년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습니다(10,17 참조).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를 때 수많은 어려움(포기, 박해 등)이 함께 따른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얻게 될 유익도 많음을 환기시켜 줍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과 함께 걷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받고자 가진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정진만 안젤로 신부)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내세 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

(마르10,24-31)​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부자란, 세상이 가치로 여기는 것들을 가지고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큰마음이 부자이다. 세상의 명예, 의로움, 지혜, 지식이 많은 사람을 부자라 한다. 그 모든 것이 힘, 돈(맘몬-만모나스-신)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그 세상의 것을 위해 살기에 모두가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니 낙타가 바늘 귀로 빠져 나가는 것보다 사람이 스스로의 열심히 구원에 이르기가 더 어렵다는 말씀이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 그런 자신들의 마음을 들켰기에 놀라서 말한 것이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 하느님께서 가능케 하심이다. 부자가 가지고 있는, 곧 우리 돈(명예, 의로움, 지식, 지혜)의 헛됨을 가르치시고 교육하시어 부인(否認)시켜서 낮은 자, 작은 자로 만드시어, 작은 바늘 귀로 빠져나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히브12,10-11) 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훈육하였지만, 그분(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구원)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 하느님의 훈육하심으로 하늘의 평화, 의로움을 당신의 영을 통해 받게(깨닫게) 하신다. 사람은 스스로 절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지난 성령강림 대축일 미사 강론 때 사제께서 “내 안에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면 성령께서 나를 차지하시도록 내 안에 있는 욕망과 탐욕을 내려놓고 성령의 이끄심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내 안에 온갖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성령께서 들어오실 틈이 없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길 원하신다면 바로 이 순간, 내 앞날에 대한 걱정, 과거에 대한 죄책감, 또 다른 이들에 대한 원망, 미움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제 과거의 삶을 끊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상

그런데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절대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앞날에 대한 걱정, 과거에 대한 죄책감, 다른 이들에 대한 원망, 미움들을 버릴 수 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주님! 저는 저의 뜻, 욕망을 스스로 버릴 수 없는 불가능한 존재 이오니 도와주십시오,” 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야 하는 것이다.

 

(갈라5,17)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 성령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의 육적, 그 세상의 힘의 원리가 참 진리가 아님을 곧 하늘의 평화, 생명을 받는 데는 유익이 안 되는 헛된 것임을 깨닫게 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또 38년된 병자를 살리시기 위해 먼저 찾아 가셨듯 찾아오시는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이다. 말씀을 통해서 이웃이 전해주는 복음을 통해서 찾아오신다.(귀한 순간이다.)

그리고 제자, 사도들이 자신들의 욕망, 뜻을 버리지 못해, 두려워서 함께 모여 기도 했을 때, 성령께서 찾아 오셨고, 그 후 제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위해 살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 베드로 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말씀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따랐다. (마르10,39-41참조)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 곧 영(靈)의 구원을 위해, 세상 가치의 육적 관계를 부인하는 사람은 ~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 하늘의 영적 가족으로 백배, 곧 많은 형제 자매, 어머니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빠져있다. 아버지는 하느님을 뜻하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은 한 분 뿐이시며 그분이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 세상의 계명을 지킨 힘, 곧 돈, 명예, 의로움, 지혜로 사는 사람은 세상의 칭찬으로 첫째가 되지만 하늘에서는 꼴찌가 된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될 것이라 하신다. 그러면 하늘의 첫째가 되려면, 하느님의 계명,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하늘의 힘, 평화, 생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율법(계명)을 구원에 이르도록 완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다 지키시어 우리에게 전가 시켜주셨기에 죄인들이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힘, 능력이 생긴 것이다.

 

(야고2,10-11) 10 누구든지 율법을 전부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11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분께서 또 “살인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대가 비록 간음하지 않더라도 살인하면 *율법을 어긴 범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영원한 죽음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범법자이다. 그래서 예수님게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대속으로 계명, 율법을 지키실 수밖에 없으셨다.

 

(마태5,17)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모든 율법은 십계명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으로 따 이루셨기에 그 사랑이 우리를 거저 의롭게 하셨기에(티토3,5참조) 그 사랑에 감사드리는 것이 집회서에서 말씀하시는 계명 지킴이며 하늘의 힘이며 양식인 십일조 드림이다.

 

 (집회35,1-5)

1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이고

= 율법, 계명을 십자가로 다 이루셨음을 믿는 것이 율법(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2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제사를 다 이루시어 죄인들이 거룩하게 되었음을 믿는 것이다.(히브10,14참조)

 

3 그래서 은혜를 갚는 것이 고운 곡식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이 하느님의 은혜를 갚는,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히브10,18참조)

 

4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 지금까지의 말씀을 이웃에게 전해주는 것, 자선이다. 그 자선만이 하늘의 용서, 생명을 준다.

 

5 악을 멀리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불의를 멀리하는 것이 속죄하는 것이다.

= 세상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악이며 불의이다. 그것들이 십자가의 복음, 그 구원의 진리를 헛되게(약탈), 곧 하늘의 용서, 생명을 얻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그 하느님의 뜻(말씀)을 약탈한다 하신다.

 ​

(말라3,8-10) 8 사람이 하느님을 약탈할 수 있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약탈하면서 “저희가 어떻게 당신을 약탈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십일조와 예물이 아니냐, 9 너희 온 백성이 나를 약탈하고 있으니 저주를 받으리라. 10 너희는 십일조를 모두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양식이 넉넉하게 하여라. 그러고 나서 나를 시험해 보아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하늘의 창문을 열어 너희에게 복(하느님의 생명)을 넘치도록 쏟아 붓지 않나 보아라.

= 하느님은 하늘에 꼴찌가 되는 인간의 힘(돈, 의로움, 명예)은 받지 않으신다. 그것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곳간에 양식이 되겠는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원의 힘,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 그 의로움만을 받으신다. 그래서 그 십자가의 복음을 진리로 입고 가는 것이 구원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충만하게 하소서~ 아멘!!!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복음 (마르10,28-31)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29~30)

 

마르코 복음 10장 29절'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라고 기록되었지만, 마태오 복음 19장 29절에서는 '내 이름 때문에'라고 기록되어 있고, 루카 복음 18장 29절에서는 '하느님의 나라 때문에'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내 이름', '나와 복음', '하느님의 나라'다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계시며,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때문에', '~을 위하여'에 해당하는 '헤네켄'(heneken; for; for sake)은 전치사 '헤네카(heneka)소유격인데, 여기서 두 번 언급된 것은  이 전치사와 함께 쓰인 단어들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유가 아닌 바로 '예수님 당신과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족이나 집 등으로 대표되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버리는 것만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버린 사람'에 해당하는 '호스 아페켄'(hos apheken; one who has left)을 통해서 외적 및 내적 분리를 의미하는 포기를 가르치는데,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내어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음 속으로부터 진정으로 예수님을 가장 소중한 분으로 여기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되는 절대적인 기본 조건인 것이다.

 

한편, 마르코 복음 10장 30절의 '백 배'(a hundred times)는 반드시 산술적 의미의 백 배가 아니며,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내어버린 것의 백 배의 보상을 받는다는 것많은 보상을 받게 됨을 나타내는 문학적 표현이다.

그리고 그 보상도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고, 그것보다 휠씬 더 소중한 영적인 축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그 보상이 현재와 이 세상의 삶이 끝 난 후 오는 세상인 내세(미래)에 모두 받게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참된 행복을 맛보며 살고,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시한 영생의 복음적 가치관 때문에 혈육간의 관계가 단절되고 떄로는 핍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은 영적으로 더 많은 가족을 얻으며, 마음 속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와 기쁨을 주님 안에서 누리고 살기 때문에 이 말씀은 참된 내용인 것이다.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예수님을 위해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풍요'만이 아니라 '박해'도 겸해서 받는다는 내용이 여기 마르코 복음에만 나온다.

여기서 '박해'에 해당하는 '디오그몬'(diogmon; persecution)원형'디오그모스'(diogmos)이다.

 

신약에서 '디오그모스'(diogmos) 말고도 '박해'를 나타내는 단어가 하나 더 있는데, 코린토 1서 4장 12절에 나오는 '블라스페메오'(blasphemeo)라는 동사이다. 이 동사의 뜻은 '비난하다', '중상하다', '헐뜯다'이다.

이 두 단어는 의미상으로는 모두 '박해', '핍박'이라는 뜻을 가지지만,  세부적으로는 '블라스페메오'(blasphemeo)'말을 통한 박해'이고,  '디오그모스'(diogmos)'구체적인 행위로 가해지는 박해'를 가리킨다.

 

여기 본문에서는 '~중에', '~가운데', '~함께'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메타'(meta; with)와 함께 쓰였는데, '메타 디오그몬'(meta diogmon; with persecution)'박해 중에', '박해 가운데'라는 뜻이 된다.

이 말이 공관 복음서 중에 마르코 복음에만 기록된 것마르코 복음사가가 자신의 일차적 독자인 로마 신자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로마에 있는 당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로마 황제 네로의 극심한 박해 속에 있음을 알고, 그들이 겪고 있는 박해가 그리스도인이면 필연적으로 겪어야 되는 것임을 강조하며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이 내용을 부각시켰다(마태5,10~12).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오늘 복음은 어제 본문에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사람이,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부담을 느끼고 떠나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이 문장에서 버리다라고 옮긴 그리스 말 아피에미어떤 것을 두다’, ‘용서하다’, ‘없는 것으로 하다,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옮기는 낱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것을 버리다또는 포기하다에 해당하는 낱말을 쓰지 않고 아피에미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이 문장을 극단적인 포기나 과장된 비움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음을 암시합니다.

 독서에서는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고 사랑이신 분이십니다.

거룩함과 사랑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고, 거룩함은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핵심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수녀원에 입회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녀님이 자기가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 여기저기 발자국을 내버렸습니다. 수녀님은 불같이 화를 냈고 사람들은 민망해졌습니다.

철저히 버리고 포기하며 살려고 애썼지만 정작 자신의 완고한 자아는 버리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제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버림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집과 형제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모범적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사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오늘 다시보라 하신다.

 

복음(마르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앞~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라고 말씀하신 그때이다.

우리는 그 부자(富者)의 구원을 위해 그 자기 의(義), 재물(財物)을 부수심으로, 없애심으로 작은 자로 만들어 낙타 바늘귀를 빠져나가게 하신다고, 그리고 그 부수심이 하느님의 자비(慈悲)라고 공부했다. <‘바늘귀’란 성(城)을 드나드는 아주 작은 문의 이름이다>

베드로는 그 말씀에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곧 부수어 없애고 따른다고 말씀을 드린 것이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 예수님 때문에, 복음(福音)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통한 구원(救援), 곧 우리 신앙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다. 또한 그 아드님을 대속의 제물로 내주신 하느님께 감사,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부모형제를 버렸다는 것은, 이 땅의 것을 위해 뭉친 가족관계(家族關係)는 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부인(否認), 버림이다.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 29절에 있는 아버지가 빠져있다. - 아버지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복음을 믿는 이들은 하느님나라(땅-집)에서 (이미 이 땅에서부터)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서로 완전(백배)한 형제자매,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이다.

모두 그렇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하느님 나라의 가족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 자기 의(義)로 첫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꼴찌인 것이고, 죄(罪)로 꼴찌라고 하는 사람이 첫째가 된다는 말씀이다. 곧 첫째인줄 아는 그 사람의 자기 의(義)는 하늘의 대속(代贖) 그 의(義)로 부수시고(인간의 의(義)는 구원(救援)이 없다고), 자신의 죄로 꼴찌인줄 아는 그 사람은 하늘의 대속(代贖), 그 구원의 의(義)를 주시는 그 자비(慈悲)로, 모두 구원(救援)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慈悲)를 다시보자~

(루가1,52-53)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 그런데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慾望) 때문에, 곧 자신들이 원(願)하는 것을 주님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해 따랐던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라 하시는 것이다.

어제 묵상했듯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의 크옵신 사랑 때문에 세상 부귀와 영화와 권세, 행복도 필요 없다고 슬픔과 괴로움 밀려와도 영원히 주님만을 의지하겠다고, 세상 즐거움, 명예 다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다고.....”

열심히 성가(聖歌)로 신앙고백(信仰告白)을 했는데, 그것이 ‘진심(眞心)이었나’ 말이다. 우리의 뜻, 소원을 위해 ‘미사. 기도’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자비)이 우리(나)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祈禱)’했는가. 아니지 않은가. 모두 위선(僞善)일 뿐이다.

어제 묵상했듯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며, 말씀을 잘못 듣고,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다시 배우라고 하시는 것이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의 속셈을 보고 ‘다시 시작(始作)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히브4,12)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독서(1베드1,10-16) 10 영혼의 구원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받을 은총을 두고 예언한 예언자들이 탐구하고 연구하였습니다. 11 그들 *안에서 작용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께 닥칠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증언하실 때에 가르쳐 주신 구원의 시간과 방법을 두고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12 예언자들은 그 일들이 자신들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일들이 하늘에서 파견된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한 이들을 통하여 이제 여러분에게 선포되었습니다. 그 일들은 *천사들도 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13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14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무지하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15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서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血)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겨 거룩해 졌기에 하늘을 희망하며 거룩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작아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아니 살아보는 것이다. 자주 넘어질 것이다. 그랬을 때, 예수님의 피로 이미 거룩해 졌음을 자각(自覺)하며 다시 일어나 가는 것이다.

욕망(慾望)과 위선(僞善)의 베드로가 그 자신을 부인(否認)하며 참 사도(使徒)가 되도록 이끄셨던 보호자 성령(聖靈)께 의탁하며 해 보는 것이다. 가(行) 보는 것이다.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욕망, 속셈을 위한 신앙이 아닌 하느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 그 복음으로 우리 영혼의 구원과 그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모든 희망을 걸게 허소서. 힘을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0526일 화요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아프리카에는 원숭이를 잡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조롱박에 작은 구멍을 뚫어 놓고, 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이를 넣어 튼튼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습니다.

원숭이가 손을 넣어 먹이를 움켜쥐면 주먹이 조롱박 구멍에 걸려 손을 뺄 수 없습니다. 움켜쥔 것만 놓으면 도망갈 수 있는데, 원숭이는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붙잡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29-30).

우리는 재물을 꼭 잡고 놓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를, 가족을 꼭 붙듭니다. 그러나 그렇게 움켜쥔 손은 집착일 때가 많습니다. 그 집착이 오히려 우리 생명을 갉아먹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움켜잡은 손을 놓으라고 하십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놓을 때 우리는 더 풍요로워집니다.

관계에 대한 집착을 놓을 때 우리는 참된 사랑을 발견합니다.

움켜쥔 손을 펼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꽉 쥔 주먹으로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지만, 활짝 핀 손으로는 하늘의 은총을 가득 담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10,31). 하느님 나라에서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이 내어 준 사람이, 많이 움켜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나눈 사람이 첫째가 됩니다.

오늘 하루,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을 조금씩 놓아 봅시다.

영원한 생명이 성큼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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