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간 수요일] 많은 이들의 몸값 (마르10,32-45)

2026. 5. 23. 오전 7: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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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7일 수요일

[연중 제8주간 수요일] 많은 이들의 몸값 (마르10,32-45)



1독서<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해방되었습니다.>(1베드1,18-25)

사랑하는 여러분, 18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19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

20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뽑히셨지만,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21 여러분은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시어,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 주셨습니다.

22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져 진실한 형제애를 실천하게 되었으니,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23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24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

 

<화답송>시편147,12-13.14-15.19-20ㄱㄴ(12)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주님은 네 강토에 평화를 주시고,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 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 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 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복음<예루살렘에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마르10,32-45)

제자들과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고 계셨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또 뒤따르는 이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고 가시며, 당신께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33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34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35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37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39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40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41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42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4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연중 제8주간 수요일 (1베드로 1,18-25)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흠 업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  (18-19)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에 해당하는 '파트로파라도투'(patroparadotu)는 '아버지'(조상)를 뜻하는 '파테르'(pater)와 '전해주다'란 뜻의 '파라디도미'(paradidomi)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이란 의미이다.

 이것은 신도들이 거듭 나기 전의 모습인 헛된 생활 방식이 그들 조상대대로부터 내려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그 조상들은 이방인들을 지칭한다. (1베드1,1.14참조)

또한 '헛된'(망령된)으로 번역된 '마타이아스'(mataias)가 다른 곳에서는 우상 숭배(사도14,15)나 하느님과 대조적인 이교도들의 우상이나 하느님께로부터 변절한 자들에 대해 경멸적으로 쓰인 것을 감안해 볼 때(레위17,7; 2역대11,15; 예레8,19),이 단어는 신도들이 하느님을 믿기 이전의 우상 숭배의 삶을 살았던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한 그들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오직 허무한 것과 어둠의 세력에 굴복하는 것 뿐이었다.(사도17,23; 에페2.1-3)

 한편 '해방되었는데'라고 번역된 '엘뤼트로테테'(elytrothete)는 본래 그리스 세계에서 전쟁 포로와 노예의 자유에 대한 몸값으로 지불된 돈을 가리키는 '뤼트론'(lytron)에서 온 단어로서,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죄의 노예된 자들을 자유케 하시려고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대가를 치르신 것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루카24,21; 에페1,7; 콜로1,14; 티토2,14)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나그네 삶을 하느님을 경외함으로써 지내야 될 이유가 한마디로 무가치하고 공허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자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은이나 금같이 언젠가는 사라질 따위가 아닌,  무죄하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가 그 댓가로 흘려졌기 떄문에, 그 은총과 자비를 받은 자들은 이전의 삶의 태도를 버리고, 하느님 대전에 그에 합당한  온전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땅에서의 나그네 생활을 방탕하게 살아가는 것은 그들을 구속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모독하는 처사라는 말이다.

 

 '흠없고 티없는 어린양 같으신' (19)


본절은 위의 18절과 연계가 되어 있는 부분이다. 

즉 이것은 영어의 not ~ but의 용법처럼, 전자를 부정하고 후자를 긍정하며, 후자의 의미를 강조하는 '우 ~ 알라'(u ~ alla)용법이 사용된 것으로, 신도들의 죄악된 삶으로부터의 구속이 은이나 금과 같이 썩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값으로 주고 이루어진 것임을 역설한다.

여기서 사용된 '어린양 같으신' 이라는 표현은 세례자 요한 예수님을 가리킬 때 이미 사용한 표현이다.(요한1,29.36)

이 표현의 유래에 대해서 혹자는 이사야 예언서 53장 7절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탈출기 12장 3절과 13절에 등장하는 유월절(과월절/해방절) 어린양에서 그 유래를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하느님의 진노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했기 때문에며, 어린양의 대속 개념이 유월절 어린양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의 어린양처럼,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과 자유를 안겨주었다. 특별히 이 어린양은 '흠없고 티없는'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다.

 

구약성경에서는 '흠없는'이라는 표현만이 등장하지만(레위1,3.10;3,1.6;4,3) 여기서는 '티없는'이란 말이 첨가되었다.  

그러나 '흠없는'이라는 말과 '티없는'이라는 말은 둘 다 '완전 무결한'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동의어이다.

이처럼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의 반복은, 의미를 한층 더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서, 어린양되시는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어떤 제물에 비할 바 없이 완전 무결한 존재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강조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성과 완전하신 인격을 대변하려는 베드로 사도의 의도가 담겨 있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23-25)

 

여기서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과 대조되어 있는 '썩어 없어지는 씨앗' 어떤 구체적인 것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말씀이 썩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도입한 언어적 장치일 뿐이다.

 '씨앗'에 해당하는 '스포라스'(sporas)는 신약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쓰인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식물의 씨앗, 또는 생명체의 정자를 지칭하는 단어는 '스페르마'(sperma;마태13,24;22,24등 43회)이다.

본문의 '스포라스'는 씨 그 자체(seed)가 아닌 '씨 뿌리는 것'(파종;the planting ;the process of sowing)나타내는 단어이다. 그리고 여기서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의 뿌림은 곧 복음 메시지의 선포를 의미한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도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라고 되어 있으며 본절 내용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런 사실은, 죄인이 거듭나는(새로나는) 것은 결코 자신의 율법적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고, 위로부터 들어온 '말씀'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이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으며 인간의 전인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릴 힘이 있다.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23)

 

베드로 사도는 죄인에게 역사하여 거듭남(새로남)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하느님의 말씀이 결코 썩지 않는 것으로서, 언제나 살아있고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진술한다. 

이러한 진술은 24절과 25절에서 인용되는 이사야 예언서 40장 6-8절 반영이다.

 본문에서 '살아 계시며'에 해당하는 현재 분사 '존토스'(zontos)말씀의 생명력과 운동력을 상기시킨다.

 

히브리서 저자는 4장 12절에서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라고 말씀한 바 있다.

 이러한 말씀의 생명력과 운동력은 죽어 있는 영혼을 살릴 수 있으며, 인간의 영혼안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마음을 태동시켜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원죄로 인해 죽었던 본성과 죄에 굴복하던 이전 마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을 잉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움직이는 하느님의 말씀인 것이다. 

'말씀'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본문에서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해당하는 '메논토스'(menontos)'머물러 있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메노'(meno)의 현재분사로서,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다시말해 '영원히 존재하는' 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24)

 

본절은 이사야 예언서 40장 6-8절의 인용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바로 이 말씀을 가지고 그 옛날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였다.

즉 이스라엘의 억업자들의 세력은 언젠가는 쇠할 것이지만, 이스라엘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은 결코 시들지 않고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선포되었던 본 구절을 인용함에 있어서, 베드로 사도는 주님의 말씀의 신실성과 영원성을 강조함으로써, 그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이 영원한 효력을 지닌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자연적 피조물은 무상(無常)한 반면,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그 생명력을 항상 변함없이 지니고 있다.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꽃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그'에 해당하는 인칭 대명사 '아우테스'(autes)는 앞의 '사륵스'지칭한다.

 이사야 예언자가 말하는 육체 즉 인간은 죄로 물든 죄인이라는 의미보다는, 전능자 하느님에 비해 유한하고 무기력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지칭한다.

 그들은 이 세상의 한때 풀의 꽃처럼, 화사한 아름다움과 영광을 뽐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환난과 심판의 때가 되면, 그 화려했던 영광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이처럼 죄인의 구원은 인간의 업적이나 공로가 아니라 영원히 효력을 발휘하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되어지기 때문에 더욱 더 확실한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25)

 

24절에서 육체와 육체의 영광이 가지는 공허함과는 대조적으로, 본절에서는 주님의 말씀의 절대성과 영원성이 증거된다.

즉 썩어 없어지는 씨앗으로부터 생겨난 모든 것은 마르고 떨어질 것이지만,  주님의 말씀만은 영원토록 남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영원한 주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말씀'으로 번역된 단어는 '로고스'(logos)가 아니라 '레마'(rema)이다.

그런데 이 두 단어는 본래 '기록된 말씀'(로고스)과 '선포된 말씀'(레마)이라는 차이를 나타내기는 하지만, '레마'는 '로고스'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도한다.(에페6,17;히브6,5;11,3) 본절에서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말씀은 사도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서,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이므로,

그 복음을 통해 이루어진 거듭남(새로남/다시태어남) 또한 영원히 견고하다는 것이다.





갈 길은 멀고 험해도

 

우리가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삶에 활력을 줍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지향하는 바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애써서 가르쳐도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게으르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스승은 끝까지 품고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예고 말씀을 하셨을 때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을 꼭 붙들고 안 된다고 반박하다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르8,31-35). 하고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예고(마르9,30-32)에서도 알아듣지 못하고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을 하였습니다. 

세 번째 예고(마르10,32-34)에서도 알아듣지 못하고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 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하고 높은 자리, 영광을 받는 자리를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10,43-44).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광의 자리에만 집착하는 제자들에게 이제 인간의 생각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고 살라는 일깨움을 주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너무도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인간을 생각하고 계시지만 인간은 먼저 자기 자신을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더 많은 것을 베풀고자 하시지만 인간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챙길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적인 것을 먼저 생각하지만 인간은 육적인 것을 우선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느님의 나라와 아버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지만 인간은 먼저 자기의 뜻과 이익만을 찾습니다. 

세속적 승리, 이성적 승리가 아니라 십자가의 실패를 통한 승리를 갈망해야 하겠습니다. 

 높은 자리, 영광의 자리에 앉기를 원하는 야고보와 요한을 보고 다른 제자들이 불쾌하게 생각하였다는 것은 역시 그들도 그런 욕심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줍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높은 자리를 바라는 것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영광의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만한 노력과 희생이 따라야 하는데 그런 수고 없이 영광만을 바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수고와 땀 없이 주어지는 영광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높이높이 오르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고 하신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 멀고 험해 보여도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겸손하게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섬김은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천적이어야 합니다.

 

요한복음13장36-3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을 예고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 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는 착한 목자가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듯이(10,11.15.17참조) 자신도 예수님을 위해 바치겠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명하신 새 계명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은 그분이 보여주신 모범을 충실히 따르는데서(“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나와야지, 자신의 의지나 용기를 과시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간절한 원의와 실천할 능력 사이에는 커다란 틈이 있기 마련입니다. 

배워서 알았으면 안 만큼 진실하고 겸손하게 실천함으로써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라파엘 신부





  연중 제8주간 수요일 복음(마르10,32~45)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8)


마태오 복음 20장 22절에는 '잔'에 대한 언급만 나오지만, 마르코 복음 10장 38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례'까지 언급하고 있다.

 '잔'이나 '세례'는  여기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잔'에 해당하는 '토 포테리온'(to poterion; the cup)은 일차적인 뜻으로는 마시는 그릇(마르7,4; 마태23,25; 루카11,39)를 가리키며, 구약에서 때로는 번영과 재산, 부(富)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시편16,5; 23,5), 주로 괴로움과 수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시편75,9; 이사51,17; 예레49,12; 에제23,31~34).

여기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 죽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마르14,36; 루카22,42; 요한18,11).

그리고 '세례'에 해당하는 '토 밥티스마'(to baptisma; the baptism)도 구약에서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어떤 사람이 극심하게 당하는 재난이나 고난을 뜻한다(시편69,1~2).

이런 의미에서 '잔' '세례' 그리스도의 수난을 아주 분명히 보여 주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마시는' 해당하는 '피노'(pino; drink)는 현재 능동태로서 예수님께서 자원으로 기꺼이 수난을 받으시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께서 마시는 잔은 당신의 목숨을 많은 이들의 대속의 제물로 주는 것으로서 이사야서 53장 5절의 예언과 같다.

따라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마시는 잔을 같이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과 수난을 같이 하겠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를 여전히 깨닫지 못한 채, 개인적인 영광에 대한 집착만으로 예수님께서 마시는 '잔'과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제자들의 마음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마태20,22)하시며 안타까워 하셨다.





소유욕과 지배욕을 버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여행길에 제자들은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도 왜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 곧 예루살렘에 도착하는데 거기에서 자신은 대제관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지고 사형을 선고받아 죽게 될 것이며,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부활할 때는 영광된 모습으로 다시 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기보다는 그분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모습과 지위에 대한 욕심을 드러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각각 그리스도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했고 다른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 질투합니다. 

그들에게서 드러난 것은 소유욕과 지배욕, 그리고 명예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광에 집착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 영광에 이르는데 따르는 고통과 모욕의 길을 제시하십니다(10,38-39). 

동시에 십자가 죽음에까지 이르는 추종을 다짐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고난의 잔을 함께 마시며 섬김으로써 영광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10,40).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10,43-44) 

우리가 걸어야 하는 길은 고난의 길이요, 그 길은 낮추고 작아짐을 통해서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이 길은 남들 위에 서고, 더 많은 힘을 지니려는 나의 의지와 부단한 싸움을 해야 하는 길입니다. 

작아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자신을 버리고 포기하고 손해 볼 것을 각오하고 자존심을 버리는 것은 곧 죽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길을 걸어가려면 소유욕을 버려야 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소유욕을 버리려면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는 믿음이 필요하고 내 영혼의 빈자리에 그분을 채우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내 안에 사랑을 키워나감으로써 하느님과 동일화를 이뤄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으며, 가난만이 죽음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10,42-44). 

다른 이를 섬기려면 자존심을 버리고 남을 더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하느님의 마음을 지녀야 하겠지요. 

또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양식을 자신의 틀 속에 집어넣어 마음대로 조절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길 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소유에서 벗어난 가난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섬김으로써 주님의 수난의 사랑에 동참하도록 힘쓰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260527일 수요일

[연중 제8주간 수요일]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오늘 복음에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은 그들을 불쾌하게 여깁니다. 사실 그들도 똑같이 높은 자리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과 다른 지도력을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

부활의 로랑 형제라 불리는 니콜라 에르망은 전쟁에서 다친 뒤, 스물여섯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의 한 수도원에 들어가 부엌일을 맡았습니다.

다리의 상처가 악화되어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게 되자 신발을 수선하고 포도주를 배달하는 등 궂은 일을 주로 맡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고되고 힘든 일도 즐거운 일로 여겼습니다. 접시 하나 닦는 것도 수많은 군중에게 설교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변함없이 살자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의 비결이 섬김이라는 것을 그의 삶이 증언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10,45)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십자가에서 당신을 온전히 바치심으로써 몸소 섬김의 본보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참으로 높은 사람은 섬기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을 따라 다른 이를 섬겨 봅시다. 섬김으로 우리도 참된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사람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연중 제8주간 수요일]

 제발! 예수를 낳는 신앙을 삽시다.

 (마르10,32-45)

32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고 계셨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또 뒤따르는 이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고 가시며, 당신께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33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34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인 당신을 왜 사람의 아들이라 계속 말씀하실까? 사람의 육을 입고 오셔서 인간(사람)들의 죄로 죽으시고 살리시려 오셨기 때문은 아닐까. (안타깝게도 가르쳐 주시는 분이 없다)

 

대속으로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심이란, 성전 정화 때~

(요한2,19)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 사흘 안에- 직역하면 세 번째 것으로, 그리스도의 영을 모신 사람을 뜻한다.

 

(요한2,21)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첫 번째- 장사하는 물건을 부수시고, 두 번째- 보이는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대속으로 죽으시고(부서지고), 세 번째 성전이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아나심으로 죄인들이 의롭게 된다,(로마4,25참조)

어제 묵상을 기억해 보면~ 앞31절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의 묵상을, 계명을 열심히 지킨 힘, 곧 돈, 명예, 의로움, 지혜로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칭찬으로 첫째가 되지만 하늘에서는 꼴찌가 된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될 것이라 하신다. 그래서 하늘의 첫째가 되려면- 하느님의 계명,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하늘의 힘, 평화, 생명, 구원의 진리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율법(계명)을 구원에 이르도록 완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다 지키시어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셨기에 죄인들이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힘, 능력이 생긴 것이다. -이상-

그 묵상을 했듯이 사람의 듯을 위해 열심히 제사 드리는 기념일 등, 계명 지킴으로 완전해 질 수 있다고 하는, 그래서 하늘의 꼴찌로, 그 교만의 죄로 영원히 죽어야할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 사람들이 온전히 지키지 못한 율법, 계명을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대속으로 다 지키시어 전가시켜 주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그 율법에 의해 죽으러 가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32절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셨다.”는 표현을 쓰신 것이다.

 

35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 여전히 자신들의 뜻인 사람의 욕망을 청한다.

 

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37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 육적 혈육의 욕망이다. 병행복음(마태20,20)에서는 어머니까지 와서 청하는 모습을 소개한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두가 형제이다. 하느님 나라에는 혈육의 성가정이 없다.

 

38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 그들의 청이 하늘에서 꼴찌가 되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는 말씀이다.

 

38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39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 잔, 세례- 같은 의미이다. 죽음의 잔이며 죽음의 세례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율법, 계명을 다 지키신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거저 받기 위해서는 육적, 우리의 열심, 의로움이 구원의 가치 없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그 자기부인, 버림(죽음-세례)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40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 오른쪽은 구원을, 왼쪽은 버림이신데 형제 중 하나는 버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일만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정해진 이들이란~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으로.....

 

41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42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4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예수님께서 인간(사람)을 섬기시려, 곧 하느님의 뜻인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바치셨는데 우리가 사람의 뜻, 욕망을 위해 그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면, 그래서 기도하고, 미사 드리고, 종교행위에 열심을 부리는 그 자기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산다면 그것은 거래(장사)하는, 신앙(성전)으로 예수님께서 목숨을 바쳐 우리를 섬겨주신, 그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큰 죄로, 그에게는 하늘의 용서, 구원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해야 하는 것이 성경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 곧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말씀, 약속, 그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교회(우리, 나)가 예수를 낳아야 한다. 말씀을 깨달아(낳아)야 한다.

말씀을 모르는 채 매일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심’만 묵상한다면 우리는 언제 예수님을 낳을 것인가 말이다. 성모님께 매일 빌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내가 예수님을 낳아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으로 구원을 받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저용서,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해서 우리 신앙의 최종 목적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이사43,7)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1코린6,19-20)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 그러니 매일 성령께 의탁해야 한다.

 ​

(로마8,26)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도 약속의 말씀을 믿으며 당신의 기도에 의탁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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