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간 토요일]하느님의 나라 (마르 10,13-16)

2019. 3. 2. 오전 5:00:22

글자


[연중 제7주간 토요일]하느님의 나라 (마르 10,13-16)

 


집회서의 저자는, 주님께서는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한다. (집회17,1-15)
1 주님께서 사람을 흙에서 창조하시고 그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2 그분께서는 정해진 날수와 시간을 그들에게 주시고  땅 위에 있는 것들을 다스릴 권한을 그들에게 주셨다.
3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처럼 그들에게 힘을 입히시고  당신 모습으로 그들을 만드셨다.
4 그분께서는 모든 생물 안에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놓으시고  그들을 들짐승과 날짐승의 주인이 되게 하셨다.
5 그들은 주님의 다섯 가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 그분께서는 여섯 번째로 그들에게 지성을 나누어 주시고  일곱 번째로 그분의 능력들을 해석할 수 있는 이성을 주셨다.
6 그분께서는 분별력과 혀와 눈을 주시고 귀와 마음을 주시어 깨닫게 하셨다.
7 그분께서는 지식과 이해력으로 그들을 충만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선과 악을 보여 주셨다.
8 그분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 주시어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보게 하시고  그들이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영원히 찬양하게 하셨다.
9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선포하기 위하여
10 그들은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리라.
11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지식을 주시고  생명의 율법을 그들에게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 주시어  지금 살아 있는 존재들이 죽을 몸임을 깨우쳐 주셨다.
12 그분께서는 그들과 영원한 계약을 맺으시고  당신의 판결을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13 그들의 눈은 그분의 위대하신 영광을 보고  그들의 귀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14 그분께서는 “온갖 불의를 조심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그들 각자에게 제 이웃에 대한 계명을 주셨다.
15 그들의 길은 언제나 그분 앞에 드러나고  그분의 눈앞에서 감추어지지 않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신다. (마르 10,13-16)
그때에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연중 제7주간 토요일 제1독서(집회17,1~15)


집회서 15장 11절에서 23장 28절까지는 종교와 교리에 대한 가르침이 들어있다. 그중에 오늘 독서 집회서 17장 1~15절은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땅위의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는 사실을 계시한다.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오관과 지성과 이성을 주신 궁극적 이유와 목적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과 놀라운 일을 찬양하기 위해서이며, 영원한 계약을 맺으시어 계약의 산물인 당신 뜻이 들어 있는 율법과 계명의 실천을 통해 하느님을 섬기는데 있다는 것을 계시한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 주시어,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보게 하시고,  그들이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영원히 찬양하게 하셨다.  그들은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여라." (집회17,8~9)


"그들의 눈은 그분의 위대한 영광을 보고,  그들의 귀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집회17,13)


특별히 오늘 독서에서 위의 두 구절을 통해 하느님께 대한 찬양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싶다. 특히 집회서 17장 8절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경외심'을 가지고 할 일이 바로 주님을 찬양하는 일임을 계시한다. 

여기서 '경외함'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삶의 자세가 아니라 어른을 삼가 공경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말한다.


트라피스트수도회 신부였던 토마스 머톤(Tomas Merton; 1915-1968)은 <감사>란 <어떤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무감각하지 않는 것이며 새로운 경외에 대해 깨어 있는 것이며, 하느님의 선하심을 경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하느님의 선하심을 남에게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으로 안다고 이야기 했다.


<감사>란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이라면, <찬양>(찬미,찬송)이란 이런 은혜를 베푸신 하느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외적으로 드러내어 기리는 것을 말한다.


토마스 머톤은 이러한 <찬양>에 대해 놀라운 말을 한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참으로 인식하게 될 때,  그 분은 전능하시고 무한히 거룩하시며  우리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고 계신 분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인간은 자기 존재의 깊은 심층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히 크신 선(善)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소리가 되어, 환희의 외침으로 찬양이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찬양에 대한 전(前)지식을 가지고 마니피캇에 나오는 성모님의 찬양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루카1,46)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로 하여금 구세사안에서 인류의 구원자이신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품도록 하셨다.

즉 인류구원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동참하고 협력하도록 하시기 위해 영원으로부터 마리아를 선택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 성혈의 공로를 미리 앞당겨 입게 하시어 원죄로부터 해방되어 거룩하신 주님을 품고, 사탄이 공격할 수 없는 여인으로 만드시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그리고 사도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로서 인류를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게 하시는 성소와 사명을 다하도록, 교회안에서 교회의 영혼이신 성령님과 함께 성령님의 정배(짝)로서 그 역할을 하시는 마리아가 받으신 특은과 사명을 생각할 때 어찌 시골뜨기 여인의 입에서 찬양이 아니 나올 수 있겠는가!


이러한 마리아의 모습을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도 하느님께 드릴 감사와 찬양의 재료를 찾아 찬양드려야 하겠다.


어린이와 같은 사람

반영억라파엘신부

  

믿는 이들은 하느님 나라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희망하는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나라를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회복하여 거듭 태어난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빈구석이 있는, 그러나 전적으로 의지하는 단순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유대사회에서는 12세이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는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른과 달리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취사선택 없이 받아들입니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싫은 것은 뿌리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부모를 떠나면 죽는 줄 압니다. 잠시 딴 짓을 하다가도 부모가 안 보이면 놀라고 겁을 내어 다시 부모의 품을 찾게 됩니다. 또한 정직합니다. 잘못을 꾸짖으면 금방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이 아이들의 특징입니다. “순진무구, 천진난만!”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아직 글을 깨우치지도 못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라 했더니 ‘식사 전 기도, 주님의 기도, 성모송’을 후딱 외워 내려갔습니다. 내용의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늘 부모와 함께 기도를 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가정에는 18개월이 된 아이였습니다. 어른들이 기도를 하는 중에는 손을 모으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치며 안수를 해 드렸는데 어린아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자기 할머니에게 가서 두 손을 펴서 머리에 얹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그래서 제가 그를 ‘미래의 신부님’이라고 칭찬하고 왔습니다.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어린이가 되어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때 눈이 맑아지고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고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약삭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계산을 하면 주님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행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분명히 얻게 됩니다.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어린이들의 축복을 가로막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은 자유”라는 이론을 내세워 ‘유아세례’, ‘첫영성체’에 무관심한 분이 계십니다. “나중에 커서 스스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무지한 부모입니다. 신자라면 마땅히 종교교육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육의 의무와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의 교육문제를 놓고 “나중에 커서 스스로 공부하게 될 때까지 신나게 놀아라.”하십니까?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커서 스스로 배워가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보여주고 가르치며 신앙의 근본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커서 신앙의 가치와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의 기도와 가르침이 큰 역사를 이룹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협력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공부할 때, 입시나 먼 길을 떠날 때, 군대 갈 때, 결혼을 할 때....하느님의 축복을 청해주는 부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마르 10,13-16(연중 7주 토)

 이영근올리베다노  신부


오늘 <복음>은 어린이를 데리고 와서 축복해주기를 청하는 사람들을 제자들이 꾸짖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줍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작심하시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벌어진 상황에 따라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부자청년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두 이야기를 다 같이 하느님 나라에 관련하여 이끌어갑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앞장(9)에서 제자들에게, 가장 큰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것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을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4-15)


이는 하느님 나라어린이 같은 사람들의 것이며, ‘어린이와 같이 들어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이는 성경에서 무력하고 힘없는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 수 없어 돌보아주지 않으면 곧 죽게 되는 무능하고 약한 이를 표상합니다.

따라서 어린이사회에서 스스로 살 수 있는 힘이 없는 무력하고 무능한 이, 미천하고 버려진 이, 천대받고 소외된 이를 대변합니다.

또한 율법을 모르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어린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이들이 들어가는 곳이라 함은 하느님 나라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들어가는 이에게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이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느님 나라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주어지는 나라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율법을 잘 지켜온 부자청년과의 대화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10,23) 하시면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10,27)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처신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약하고 무력하고 가난한 이들, 사회적 약자들을 업신여기고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다가가고 축복받는 것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그들이 성당에 오는 것을 반겨 맞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꺼리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사실, 교종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에게 우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그들이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복음화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 되게 하고, 회개하여 어린이 같이 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종께서는 가난한 이들과의 유대와 연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넘어서 가난한 교회가 되라고 하십니다.

마태오의 병행구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오늘 제1독서인 집회서는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알려 줍니다.

그것은 바로 때를 알아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을 가지는 것이고, 모든 생물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도록 하여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입니다.

또한 지성과 하느님의 능력을 해석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게 된 것이며, 분별력과 혀와 눈을 가지고 귀와 마음으로 하느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닮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흙에서 창조된 피조물로,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하느님께 의탁하며 그분 앞에서 그분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것이 율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심으로써, 인간 스스로 하느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사람은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귀한 존재이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음을 깨달아 언제나 하느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모습을 닮아 태어나 부모에게 사랑받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아울러 어린이는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들과 우애를 나누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만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창조된 모습대로 하느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사람, 철저히 하느님의 피조물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합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