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월요일]표징(마르 8,11-13)

2019. 2. 18. 오전 5:55:19

글자


 

 [연중 제6주간 월요일]표징(마르 8,11-13)


카인은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인다. (창세 4,1-15.25)
1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아이를 얻었다.”
2 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5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6 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7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8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9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11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12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13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14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아들을 낳고는,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을 보고 깊이 탄식하시며, 그들은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마르 8,11-13)
그때에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제1독서(창세4,1~5.25)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3~5ㄱ) 

 

여기서 '세월이 흐른 뒤에'에 해당하는 '와예이 믹케츠 야임'(wayei miqets yaim;  in the course of time)을 직역하면, '그리고 날들의 끝으로부터 이 일이 있었다'이다.

 

'세월' '한 날'에 해당하는 '욤'(yom)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야임'(yaim)이며, 이러한 '날들'은 무한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끝'에 해당하는 '케츠'(qets)있음을 보여 준다.

 

'흐른'으로 번역된 '믹케츠'(niqets)'끝'이란 뜻의 '케츠'(qets)'~으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민'(min)이 결합한 형태로 '~의 끝으로부터'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주로 심판을 다루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창세6,13; 에제7,2.3; 이사9,6).

 

그러므로 창세기 4장 3절은 단순히 세월이 흐른 어느 시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카인과 아벨을 평가하고 심사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카인과 아벨이 각각 자신의 수고에 따라 힘써 일하고 보냈던 날들이 마감되고, 하느님 대전에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에 지켜볼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전개될 사건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정해진 때, 카인과 아벨이 자신들의 수고에 따라 일한 것들을 통해 그들의 신앙이 검증받아야 때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제물'에 해당하는 '미느하'(minha; offering)는 반드시 인간이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선물을 나타낼 때에도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혹은 감사를 나타내기 위해 바치는 선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여기서 이 단어는 카인이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이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존경과 감사를 돌려 드리기 위해 바치는 것이어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래서 창세기 4장 5절에 나오는 것처럼 카인의 제물을 하느님께서 굽어 보시지 않은 이유가 바로 제물을 바치는 대상인 하느님 당신께 대한 진정한 존경과 감사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히브11,4참조).

 

사람은 보통 겉모습을 보지만, 전지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의 정성을 보시고 이러한 제물을 굽어보시고 기꺼이 받아주시는 것이다

(1사무16,7참조).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직역하면, '그의 양 첫 새끼들 그리고 그것들의 기름을'이다. 여기서 '맏배들'에 해당하는 '뻬코라'(bekora; some of the firstborn) 복수형으로 되어 있어서 아벨은 새끼양 한 마리만을 제물로 바친 것이 아니라 여러 마리를 바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뻬코라'(bekora)'맏배'(첫 새끼; firstlings) 외에도 모든 '처음 난 것'가리키거나 그 말 속에는 '가장 뛰어난 것'이나 '우두머리'라는 뜻도 들어 있다.  

 

그리고 '기름'에 해당하는 '헬레브'(heleb; fat portions)는 일차적으로 '지방'뜻하지만, '살찌고' '기름지며' '아름다운' 것이란 뜻도 들어 있다.

 

그래서 본문은 '그의 양 떼의 첫 새끼 몇 마리로부터 얻은 기름진 부분들'이나 '그의 가장 좋은 어린 양들로부터 얻은 고기의 기름진 조각들'과 같이 의역되기도 한다.

 

어쨌든 아벨은 형식적인 제사를 바친 카인과는 달리 정성을 다해 가장 좋은 것을 하느님께 바쳤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아벨의 태도는 하느님을 만물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태도이며, 하느님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겸손의 표현이다(히브11,4).

 

'기꺼이 굽어 보셨으나'

 

'기꺼이 굽어 보셨으나'에 해당하는 '와이샤'(waisha; and looked with favor on; and had respect) '기쁘게 받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샤아'(shaah)의 뜻은 '응시하다','둘러보다'이다.

 

특히 이 단어는 상대방을 돕기 위해 둘러본다는 뜻이 있으며, '돌이키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응시하신 대상이 단지 제물만이 아니라 아벨 그 자신까지도 포함된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아벨을 제물보다 앞에 단어를 위치시켜서 아벨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응시하심을 보여 주고 있다.

 

본문은 하느님께서 정성껏 제물을 바치는 아벨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펴 보시는 것을 의인법적으로 더 친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6주간 월요일 복음(마르8,11~13)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2)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구한 '표징'에 해당하는 '세메이온'(semeion; a sign)어떠한 것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해 주고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함뜻하는 단어이다.

 

'세메이온'(semeion)'표' '신호'(마태26,48)라는 뜻 외에 '표징', '표적', '기적', '징조' 등의 의미로 사용될 때는 '능력' 뜻하는 단어인 '뒤나미스' (dynamis; act of power) 비교된다.

 

'뒤나미스'(dynamis)는 다분히 초자연적인 능력이라는 뜻이 있는 데 비해서, '세메에온'(semeion)그것을 행하는 자가 모든 사람들이 부정할 수 없는 신적(神的)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뜻이 있다.

 

따라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한 것은 과연 신적(神的) 권위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증명해 달라는 뜻이고, 그러한 호기심은 순수하게 예수님을 인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신다.

'깊이 탄식하며'에 해당하는 '아나스테낙사스'(anastenaksas; he sighed deeply)원형 '아나스테나조'(anastenazo)'위쪽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아나'(ana)'탄식하며 신음하다'는 뜻의 동사 '스테나조'(stenazo)가 결합된 단어인데, 가슴 밑바닥 깊은 곳으로부터 숨을 끌어 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곤경에 빠지게 하여 고소하려는 비열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아들의 깊은 실망과 비애 및 탄식의 마음을 대변하는 단어이다.

 

마르코 복음 8장 12절의 후반절'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는 말은 '하느님께서 이 세대에 표징을 주시는 일만큼은 결코 하지 않으실 것이다'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6장 4절에는 '이 세대''악하고 절개없는 세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로 표현되고 있으며, '요나의 표징밖에는 아무런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예수님의 구체적인 답변이 나온다.

 

'요나의 표징'이란 바리사이들이 구하는 표징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이라는 영광의 표징만이 이 시대에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며 어두움에 속한 이들은 눈에 보이는 신비한 표징만을 구하며, 그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에는 결코 하느님을 믿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진실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며, 자연인의 지혜와 이성으로 온전히 깨달을 수 없는 십자가의 신비(1코린1,18.21)를 믿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주신 진정한 표징으로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 매순간 하느님의 표징을 발견하며 ♣  


예수님께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여주신 뒤, 바리사이들이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며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8,11). 사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통치로 도탄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원해줄 정치적 메시아를 고대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적 예언자임을 밝혀주는 증거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제껏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가르침과 치유와 구마를 통해 메시아이심을 보여주셨지요.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능력과 권위를 보여주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인정하려들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현실문제를 해결해주는 정치적 메시아이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성과 감각으로 증명되는 확실한 증거를 요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완고한 마음과 불신에 대해 “영으로 한숨을 쉬시며”(8,12), 그들이 요구한 표징을 단호히 거부하십니다. 왜냐하면 찾아야 할 진정한 표징은, 기적이나 이기적인 욕구 충족이나 제 입맛에 맞게 움직여주는 능력자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야말로 갈망해야 할 진정한 표징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우리는 어떤 표징을 갈망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탐욕과 쾌락을 추구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한, 하느님의 사랑의 표징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여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핵심적이며 궁극적인 표징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고 갈망해야겠습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럴싸한 결과물들, 시선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는 세상의 현상들이 끈질기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표징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고통을 품고 견뎌냄으로써, 모두를 사랑하고 더불어 행복해지는 길이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찾는 참 표징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황홀한 신비체험,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 눈물 흘리는 성모상, 오상 체험, 방언, 이해할 수 없는 치유능력과 같은 특이한 현상이나 표지들에 괸심을 쏟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 신앙은 이성적 명료함이나 현상에 있지 않고, 하늘의 표징 자체이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데 있음을 상기해야겠습니다. 표징은 주님 사랑의 표지이자 우리 믿음의 열매입니다. 


사실 예수님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의 매순간이 바로 하늘의 표징이지요. 우리가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것들과 세상의 힘만 추구할 때, 예수님께서는 깊이 탄식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사랑의 표징, 고난 속에서도 함께하는 부활의 표징을 보이며 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열린 마음으로 응답했으면 합니다. 좋음이신 주님을 거스르는 '악한 세대'가 되지 말아야겠지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