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토요일]가엾은 마음 (마르 6,30-34)

2019. 2. 9. 오전 7: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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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토요일]가엾은 마음 (마르 6,30-34)


제1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말라며, 이것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이라고 한다. (히브 13,15-17.20-21)
형제 여러분, 15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16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17 지도자들의 말을 따르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하느님께 셈을 해 드려야 하는 이들로서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탄식하는 일 없이  기쁘게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탄식은 여러분에게 손해가 됩니다.
20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21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화답송시편 23(22),1-3ㄱ.3ㄴㄷ-4.5.6(◎ 1)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복음.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신다. (마르 6,30-34)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히브13,15~17.20~21)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15~16)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3장 15절, 16절에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찬미와 선행의 제사를 드릴 것을 권면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히브10,12.18) 이후로 다시 문자적인 의미의 제사가 바쳐질 필요가 없어졌다.

따라서 이제 성도가 하느님 마음에 바칠 제사는 바로 찬미와 선행이라는 성도 개인의 신앙 표현인 것이다.


본절에서 언급된 성도들이 항상 계속해서 바쳐야 할 하느님께 영광드리는 제사는 찬양의 제사이며, 랍비들의 격언대로 다른 모든 제사는 없어질지라도 이 제사만큼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유대 철학자 필로(Philo)는 이것을 '최선의 제물'이라고 표현했다. 찬양은 우리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최선의 제물이므로 이것을 계속 바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바칩시다'로 번역된 '아나페로멘'(anapheromen) '아나페로'(anaphero)의  현재 가정법으로 권유를 나타낸다.

'아나페로'동사는 '위쪽으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전치사 '아나'(ana)'가지고 가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동사 '페로'(phero)의 합성어로서 '위쪽으로 올려드리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물을 제단에 올려드리듯이 찬양을 올려드리자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찬양'으로 번역된 '아이네세오스'(aineseos)원형 '아이네시스'(ainesis)'명예롭게 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이네오'(aine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하느님께 합당한 명예를 올려드리는 찬양'을 의미한다.


한편 히브리서 저자는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행위와 관련하여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예수님을 통하여'바치는 것이 그 하나이고, '언제나' 바쳐야 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먼저 '통하여'로 번역된 전치사 '디'(di)의 원형 '디아'(dia)는 본절에서처럼 소유격을 지배할 때 수단, 방편, 매개의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이 제사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바칠 수 있으므로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들은 이 제사를 바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또한 '언제나'로 번역된 '디아 판토스'(dia pantos)'계속적으로' (continually)라는 뜻이다. 찬양은 곧 하느님을 명예롭게 말하는 것이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찬양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모든'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 '판토스'(pantos)가 나타내듯이 어떤 환경속에서도 찬양을 할 수 있는 성도가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며,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을 기대할 수 있다(사도16,25.26).

하바쿡 예언자는 정치, 사회, 경제, 종교적 기반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구원의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고 노래하였다(하바쿡3,16~19).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찬양의 제사는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찬미하는'으로 번역된 '호몰로군톤'(homollogunton)의 원형 '호몰로게오'(homollogeo)'고백하다','시인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 희랍어 번역 성경 70인역(LXX)에서는 '찬양하다'를 뜻하는 '야다'(yada)'서원하다'를 뜻하는 '나다르'(nadar), '맹세하다'를 뜻하는 '샤바'(shaba)의 역어로 한 번씩 나온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외적 표현 중에서 입술의 표현, 즉 고백인 것이다.

 

'입술의 열매'이사야 57장 19절 호세아서 14장 2절에도 나오는 것으로서 히브리서 독자인 히브리 출신의 성도들에게는 익숙한 표현이다. 이같은 입술의 열매, 즉 구체적인 감사의 찬양하느님의 은혜를 아는 이들이 결코 중단해서는 안되는 너무나 고귀한 참된 제사이다.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16)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찬양의 제사와 함께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섬김(봉사)의 희생 제사인데, 히브리서 저자는 이것을 선행와 나눔으로 요약한다.

'선행'으로 번역된 '유포이이아스'(eupoiias)원형인 '유포이이아'(eupoiia)'잘' 또는 '좋은'을 뜻하는 부사 '유'(eu)'행하다'를 뜻하는 동사 '포이에오'(poie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좋은 일'을 뜻한다.


신약에서 본절에서만 나타나는 이 단어는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 좋은 일을 도모하는 것을 지칭한다(마태5,13~16; 로마15,2; 에페2,10).

또한 '나눔'으로 번역된 '코이노니아스'(koinonias) 원형 '코이노니아'(koinonia)'친교','교제','참여','교섭'등을 의미한다.

로마서 15장 26절에서는 '구제'란 의미로 쓰였다.


그리스 세계에서 이 단어는 신들과 인간들 사이의 분명하고도 깨어지지 않는 친교를 나타내는 용어였고, 인간들 사이의 '밀접한 결합''친밀한 결속'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를 다른 말로 바꾸면 '형제애'가 된다.

 

이러한 대신(對神) 및 대인(對人) 관계에 있어서의 친교가 초대 교회 안에 모범적으로 이루어 졌다. 그들은 밖으로는 전교와 함께 구제를 힘썼으며, 안으로는 유무상통하는 친교(사도4,32~35)에 힘썼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 편지를 기록하던 때에도 교회 안에서 이와 같은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좋은 관행은 계속되어야 함은 물론 더욱 확산되어야 했기에 히브리서 저자가 이것을 소홀히 하지 말도록 촉구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22,39)는 계명은 여기서처럼 선행과 나눔을 통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다만 주의할 것은 선행이나 나눔이 외인들 보다는 성도들 사이에서 먼저 행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교회 밖의 사람들도 선을 행해아 할 대상이기는 하지만  우선 순위는 주님 안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있다(갈라6,10).



 연중 제4주간 토요일 복음(마르6,30~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4)


여기서 '목자'로 번역된 '포이메나'(poimena; a shepherd)'포이멘'(poimen; 1베드2,25)의 목적격 단수이다.

신약에서 '포이멘'(poimen)이 여기처럼 단수형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마태26,31; 히브13,20).

하지만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목자'예수님처럼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를 뜻한다.

당신 군중들을 인도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 즉 당시에 존경받던 랍비들이나 말씀을 가르친 율법학자들은 참된 의미의 목자가 아니었다.


마르코 복음 6장 34절(ㄴ)에서 동사 두 개하나는 직설법으로 쓰였고, 다른 하나는 분사로 쓰였다.

'목자 없는''없는'분사로 쓰인 '에콘타'(echonta; having)시제는 현재이며, '같았기 때문이다''같았기' 직설법으로 쓰인 동사 '에산'(esan; they were)시제는 미완료 과거이다.


이것은 벳사이다 들판에 몰려든 큰 군중들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목자 없는 양들 같은 삶', 즉 참된 영적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채  목적없이 방황하는 삶을 살아 왔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들에게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은 더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군중들에 대한 예수님의 애끓는 감정을 묘사한 단어가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이다.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angchnisthe; was moved with compassion) 원형 '스프랑크니조마이'(splagchnizomai)'창자' 혹은 '내장'을 의미하는 '스플렌'(splen)에서 유래했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이 내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으며, 그래서 이 용어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사랑이 전제되어 상대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측은지심' (연민의 정; 동정심)의 마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마태9,36).

이것은 이 용어가 루카 복음 15장 20절에서,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아들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아들임을 알아채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가 가졌던 마음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바로 이같은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사랑의 마음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복음 선교와 선행과 치유의 밑바닥에는 이같은 측은지심이 깔려 있어야 하고, 전제되고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목자 없는 양들 같은 군중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신다.

여기서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가르쳐 주기'에 해당하는 '디다스케인'(didaskein; to teach; teaching)현재형으로서 그 가르침이 쉬지 않고 계속 베풀어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마르6,35).


그리고 본문과 병행 구절인 루카 복음 9장 11절에서 이 가르침이 '하느님 나라'관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으며, 여기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목자로서의 첫번째 행위가 '가르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4장 14절에서는 병자들을 고쳐 주신 것으로 되어 있고, 루카 복음 9장 11절에서는 말씀과 치유가 둘 다 언급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로서 자신을 찾아온 가엾은 양들에게 영적 양식과 육적 회복을 다 베푸셨던 것이다.



2018년 2월 3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파견하셨던 열두 제자가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일을 보고하였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하여 알려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전파의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습니다.

배를 타고 떠나는 그들보다 육로로 먼저 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짧은 말씀 안에 예수님의 마음과 하시는 일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나선 사람들을 쳐다보십니다.

그분의 눈길은 사람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느님의 눈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립적이거나 무관심하시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시며 겪으십니다.

그 가엾어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며,

그 사랑에서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심이 시작됩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마음은 이제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무작정 따라나선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은 풀밭을 찾지 못하여 배를 곯은 채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러한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빵을 주시는 대신 가르침을 주십니다.

바로 말씀의 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고 말씀의 빵으로 배불리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시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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