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월요일]겐네사렛 병자치유 (마르 6,53-56)

2019. 2. 11. 오전 5:34:44

글자


[연중 제5주간 월요일]겐네사렛 병자치유 (마르 6,53-56)


제1독서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는데,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고, 보시니 좋았다고 한다. (창세 1,1-19)
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4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5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
7 하느님께서 이렇게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에 있는 물과 궁창 위에 있는 물을 가르시자, 그대로 되었다.
8 하느님께서는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곳으로 모여, 뭍이 드러나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0 하느님께서는 뭍을 땅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2 땅은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였다.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
1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궁창에 빛물체들이 생겨, 낮과 밤을 가르고, 표징과 절기, 날과 해를 나타내어라.
15 그리고 하늘의 궁창에서 땅을 비추는 빛물체들이 되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6 하느님께서는 큰 빛물체 두 개를 만드시어, 그 가운데에서 큰 빛물체는 낮을 다스리고  작은 빛물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리고 별들도 만드셨다.
17 하느님께서 이것들을 하늘 궁창에 두시어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 낮과 밤을 다스리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화답송★  시편 104(103),1-2ㄱ.5-6.10과 12.24와 35ㄷ(◎ 31ㄴ)
◎ 주님은 당신이 이루신 일을 기뻐하시리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 하느님,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시옵니다. 존엄과 영화를 입으시고, 광채를 겉옷처럼 두르셨나이다. ◎
○ 땅을 기초 위에 든든히 세우시니, 영영 세세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바다로 땅을 옷처럼 덮으시니, 산 위까지 물이 가득 찼나이다. ◎
○ 골짜기마다 샘물 터뜨리시니, 산과 산 굽이굽이 흘러내려, 하늘의 새들은 그 곁에 깃들이고,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나이다. ◎
○ 주님, 당신 업적 얼마나 많사옵니까! 그 모든 것 당신 슬기로 이루시니, 온 세상은 당신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하옵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복음 예수님께서 마을에 들어가시기만 하면 병자들은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한다. (마르 6,53-5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창세1,1~19)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1~2)


'한 처음에'로 번역된 '뻬레쉬트'(bereshith)천지 창조의 시점, 곧 하느님께서 우주 자체와 우주 만물의 구성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무(無)에서 유(有)로 동시에 섬광처럼 생겨나게 하신 원천적 창조 사건이 일어난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뻬레쉬트'(bereshith)'뻬'(be)'레쉬트'(reshith)의 합성어이다.

먼저 '뻬'(be)는 명사들과 결합하여 그 명사와 관련된 특정한 때를 가리키는 전치사로서 영어의 'in'에 해당한다.

그리고 '레쉬트'(reshith)'근원'(창세2,10), '머리'(창세3,15), '꼭대기'(1열왕18,42) 등의 의미를 가진 어근 '로쉬'(rosh)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시작'(창세10,10), '근본'(시편111,10), '으뜸', '우두머리'(욥기40,19) 등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뻬''레쉬트'의 합성어'뻬레쉬트'는 직역하면 매우 단순하게 '시초에', '한 처음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뻬레쉬트'가 말하는 '시초'(처음)는 시간이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원점, 시간(時間; the time)의 출발점을 의미한다.


결국 '뻬레쉬트''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바로 그때에'(In the beginning)라는 뜻이다.  

인간 역사(歷史)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이처럼 천지 창조는 다름아닌 모든 우주 만물의 존재와 그들 사이에 발생할 모든 사건의 기원을 이루는 원초적 사건이다.


이런 천지 창조의 시점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뻬레쉬트' 천지 창조 사건이 일어났던 '때'시간 자체도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기원', '시간의 원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실로 천지 창조는 시간 자체도 이제 막 시작한 때에 바로 그와 동시에 섬광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만유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계시는 그리고 만유를 뛰어넘어 계시는 유일한 절대 자존자(自存者)요, 초월자(超越者)이시다.

이러한 하느님께서는 공간 뿐 아니라 시간도 초월하여 계신다(시편90,4).


반면에, 우리 인생을 포함한 우주 만물오직 공간(空間; the space)안에서 시간(時間; the time)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은 시공에 얽매인 차원(dimension)에 존재하지만, 이 우주 만물 각각은 물론 이 모든 것들의 존재 양식인 시간과 공간까지 지으신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이곳으로부터 완전 초월하여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에 얽매여 있는 인생을 포함한 피조물과의 관계만 아니라면 하느님께 시간은 의미가 없다.

심지어 하느님 자신의 실존에만 국한해서 볼 때에는 천지 창조 이전과 이후의 구분도 의미가 없다.

한마디로 하느님께서는 시간으로부터 완전 초월하여 시간과는 무관하게 영원히 계시는 분인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천지 만물은 오직 시간의 시작과 함께, 곧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다. 또한 역으로 말해도, 시간도 오직 그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만 그 존재 양상이 전개되어 가는 만물들의 존재와 함께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무(無)로부터 유(有)로의 천지 창조(creatio  ex nihilo)는 시간의 시작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시간 또한 천지 만물이 창조되는 순간 필연적으로 함께 창조되었고, 또한 그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편, 우리는 '한 처음에'로 번역된 창세기 1장 1절'뻬레쉬트'새 성경에서 그 역시 '한 처음에'로 번역된 요한 복음 1장 1절'엔 아르케'(en arche)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뻬레쉬트'는 하느님의 천지 창조로 이제 막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던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키고, 반면에 '엔 아르케'시간이 아예 흐르기 이전의 영원한 때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뻬레쉬트'가 무로부터 유가 시작되어 시간이 출발했던 영원과 시간의 접촉점만을 가리킨다면, '엔 아르케'는 근본적으로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차원 전반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


이 구절은 앞서 '한 처음에' 창조 시점에 제시된 것에 이어서 이제 천지 창조의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앞서 천지가 '언제' 창조되었는지 밝힌 데 이어서 천지를 '누가' 창조하였는지를 밝힌다.


여기 '하느님'에 해당하는 원어 '엘로힘'(ellohim)제1위 성부 하느님지칭하는 용어로 쓰였을 경우에는 모두 다 '하느님'으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권세있다', '힘세다'라는 뜻을 가진 '울'(ul)에서 유래한 것 (2열왕24,13; 시편73,4)으로서 '권세있고 힘있는 뛰어난 분'이란 뜻을 가진 '엘로아흐'(elloah)복수형이다(탈출12,12; 신명32,15).


하느님의 이름이 복수형으로 되어있는 것은 그 가리키는 대상이 분명 단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복수형으로 표기함으로써, 그 대상의 권위와 중요성을 한층 더 강조하는 고대 근동 전반의 수사법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태초의 천지 창조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만물의 존재 자체, 그리고  그들이 서로 얽혀서 빚어내는 모든 역사의 유일한 원초적 기원이다. 

따라서 결국 천지 창조의 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만물과 역사의 궁극적 기원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존재의 기원이시다. 만물은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 (욥기1,21; 시편90,3; 코헬렛12,7; 로마11,36).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우리 인생의 궁극적 관심 수밖에 없다. 또한 천지 창조 기사 전체가 오직 하느님만이 온 천지를 모두 다 직접 창조하셨음을 거듭 강조하는 것 전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하느님께 대한 전 우주의, 특히 전 우주의 대리 통치자인 우리 인간들(창세1,26)의 하느님께 대한 복종과 경배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한 주체가 어떤 사물을 만들거나 사거나 이를 소유함에 있어서 그 주체 자신이 요구되는 의무를 다하는 것 그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갖게되는 완전하고도 정당한 법적 근거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천지 창조 기사는 거듭해서 전 우주가 스스로 생겨났거나 다른 그 무엇에 의해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엘로힘 하느님'에 의해서 지어진 것임을 그토록 강조한다.

즉 이것은 전 우주와 인생에 대한 하느님의 소유권과 통치권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소유권(탈출18,5; 신명10,14; 에제18,4)과 통치권 (탈출15,18; 시편72,8; 다니엘5,21) 사상성경 전체에서 나타난다.


'하늘과 땅을'


본문은 창조의 시점, 곧 언제 천지 창조가 있었는지를 밝힌 '한 처음에'창조의 주체, 곧 누가 천지를 창조하였는지를 밝힌 '하느님께서'에 이어서  이제 창조의 대상(對象), 무엇이 창조되었는지를 밝히는 구절이다.

원문은 '에트 핫샤마임 웨에트 하아레츠'(eth hashamaim weeth haarets; the heaven and the earth)이다.


우리말의 '~을'(를)에 해당하는 것으로 직접 목적어임을 표시하는 대격 전치사 '에트'(eth)'그 하늘을'이란 뜻의 '핫샤마임'(hashamaim), '그리고'(과)해당하는 접속사 '웨'(we)'에트'(eth)결합된 '웨에트'(weeth), 끝으로 '그 땅'이란 의미의 '하아레츠'(haarets)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하늘' 복수형으로 표기된 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하늘 개념반영된 것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현대 천문학이 말하는 지구의 대기권 및 그 너머에 무한히 팽창하는 공간으로서의 우주에 대해 과학적 개념이 없었다.


그 대신에 하늘에 새들이 날아다니는 눈에 보이는 공중인 첫째 하늘, 그리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서 해, 달, 별 등이 붙어 있는 거대한 금속판 소위 궁창(firmament)과 그 위에 보관된 엄청난 양의 물로 구성된 둘째 하늘, 그리고 그 너머의 순수한 영적 존재들인 천사들이 하느님의 영광의 현현을 매일 보며 머물고 있는 셋째 하늘모두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 420여회 나오는 하늘 모두 다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여기서 '땅'을 말하는 '아레츠'(arets)도 하늘과 대조된 의미에서의 '온 땅', 곧 우리들이 발붙이고 사는 이 '지구'를 가리킬 뿐 아니라, 넓게는 땅 아래의 '지하 세계'(the underworld)까지 가리킨다.

성경에는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시편113,3),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2사무17,11) 등과 같이 양극단을 함께 말함으로써, 그 안에 있는 것이 모두 다 포함됨을 강조하는 용례가 많다.


마찬가지로 여기에 '그 하늘들과 그리고 그 땅을'이라는 원어의 표현은 비단 하늘과 땅 뿐만 아니라 가없는 양자 사이의 공간 자체는 물론 그 안의 모든 물질들, 곧 하늘에서부터 땅 끝까지의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창조의 대상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하셨다'


'창조하셨다'의 원어는 '빠라'(bara)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불명확하다. 

이 단어는 용례상 대략 '자르다'(cut), '새기다'(carve), 그리고 '낳다' 또는 '출생하다'(bear or be born), 끝으로 '먹다'(eat), '양육하다' (bring up), '살이 오르다'(get weight) 등의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빠라'(bara) '만들다', '지어내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오직 하느님과만 관련되어 쓰였다.


그리하여 그 이전과는, 자르듯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시고, 또 있게 하시는 하느님만의 절대 주권적 행위를 나타낸다 (신명4,32; 시편89,12; 이사43,1; 예레31,22).

한마디로 '빠라'(bara)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을, 이전의 그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새롭게 있게 하는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이같은 절대적 창조 행위는 오직 만물을 초월(超越)하여 자존(自存)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인 우리 인간도 우리의 능력을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오직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하여, 즉 과거와의 연속 안에서만 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빠라'(bara)는 실제로 '만들다', '지어내다'의 뜻으로 구약에서 총 44회 쓰였는데, 이때에는 오직 '하느님'을 가리키는 단어와만 짝을 이루어 등장하며,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 창조 행위만을 가리키고 있다.

창세기 1장 1절'창조하셨다','빠라'(bara)는 무에서 유로 광대한 우주 공간은 물론, 그 안의 천하 만물을 구성할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동시에 섬광처럼 존재하게 하신 하느님의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연중 제5주간 월요일 복음(마르6,53~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시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56)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으로 번역된 '에이세포류에토'(eiweporeueto; he entered; he went)원형 '에이스포류오마이'(eisporeuomai) 동사의 직설법 미완료 과거 3인칭 단수로서, 예수님께서 여러 장소를 계속적으로 이동하여 들어가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표현이다.


마르코 복음 6장 56절에서 직설법 동사가 다섯 개 쓰였는데, 그 중에서 네 개가 미완료 과거 시제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여러 장소들을 계속해서 들어가고 계셨고, 사람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병자들을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끊임없이 데려다 놓았다는 것 드러낸다.


또한 병자들은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계속해서 청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들은 누구나 치유를 받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이렇게 예수님의 치유 행위계속적 동작을 가리키는 미완료 과거 시제표현한 이유는, 마르코 복음 6장 56절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역에서 행하신 모든 반복적인 치유 행위들을 요약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땅에 도착하시자

사람들이 그 지방의 모든 병자를 그분께 데려다 놓았고,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병자들을 고쳐 주시라고 청하였으며,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신 기적은,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지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서 오실 분,

 곧 그리스도이시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 말씀을 인용하시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루카 7,22).

따라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해 주신 것은,

하느님 아드님으로서 하신 구원 행위이면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었음을 보여 주는 계시였습니다.


병자들을 포함해서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은,

그분께서 치유 능력을 지니셨음을 알고 있었기에 병자들을 고쳐 주시라고 청하였고,

병자들도 그분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댄 병자들은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활을 요약하는 오늘의 이야기 어디에도

그들의 믿음이나 신앙 고백에 관한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

바로 주님을 찾고 도움을 청하면서도,

그 순간이 지나면 주님이 누구신지,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해 주셨는지 금방 잊어버리는 우리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일상에서 우리에게 풍부한 은총을 내리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감사드리며,

주님께서 바라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사람의 마음 (마르 7,14-23)19.02.13조회 79[연중 제5주간 화요일] 코르반 (마르 7,1-13)19.02.12조회 78[연중 제5주간 월요일]겐네사렛 병자치유 (마르 6,53-56)19.02.11조회 98[연중 제4주간 토요일]가엾은 마음 (마르 6,30-34)19.02.09조회 77[연중 제4주간 금요일]예수님의 소문 (마르 6,14-29)19.02.08조회 47[연중 제4주간 목요일]둘씩 짝지어 파견 (마르 6,7-13)19.02.07조회 68[연중 제4주간 수요일] 귀향 (마르 6,1-6)19.02.06조회 57[설]준비하고 있어라 (루카12,35-40)19.02.05조회 213[연중 제4주간 월요일]더러운 영 (마르 5,1-20)19.02.04조회 66[주님 봉헌 축일]정결례(루카 2,22-40)19.02.02조회 117[ 연중 제3주간 금요일] 겨자씨의 비유 (마르 4,26-34)19.02.01조회 70[연중 제3주간 목요일]주는 만큼 (마르 4,21-25)19.01.31조회 43[연중 제3주간 수요일]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마르 4,1-20)19.01.30조회 43[연중 제3주간 화요일]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마르 3,31-35)19.01.29조회 67[연중 제3주간 월요일]성령 모독죄 (마르 3,22-30)19.01.28조회 69[연중제2주간 토요일]소문(마르 3,20-21)19.01.26조회 85[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예수 이름으로 (마르 16,15-18)19.01.25조회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