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월요일]더러운 영 (마르 5,1-20)

2019. 2. 4. 오전 7: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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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4주간 월요일]더러운 영 (마르 5,1-20)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언자들은 약속된 것을 얻지 못하였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다고 한다. (히브 11,32-40)
형제 여러분,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해야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타, 다윗과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에 대하여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정의를 실천하였으며, 약속된 것을 얻었고 사자들의 입을 막았으며,
34 맹렬한 불을 껐고 칼날을 벗어났으며, 약하였지만 강해졌고 전쟁 때에 용맹한 전사가 되었으며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35 어떤 여인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식구들을 다시 맞아들이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더 나은 부활을 누리려고, 석방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고문을 받았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결박과 투옥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37 또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겪으며  양가죽이나 염소 가죽만 두른 채 돌아다녔습니다.
38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39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40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 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군대라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시자 사람들은 겁이 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한다. (마르 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히브11,32-40)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39-40)

 

본문은 히브리서 11장 4~38절까지 언급된 옛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혹은 믿음을 가지고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시한다.


본문에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으로 번역된 '마르튀레텐테스'(martyrethentes)'증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마르튀레오'(martyreo)의 수동태 과거분사이며, 그것은 어떤 사실의 진실된 모습이라는 인정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특히 11장에서 이 동사는 수동태로만 쓰였다.


여기서 이 표현은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여기에 거명된 사람들, 즉 아벨로부터 사무엘 및 여러 예언자들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증인이 하느님 자신임을 알게 한다.

그분께서는 언제든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길을 택하거나 적어도 순교를 각오한 모든 이들을 위해 기꺼이 증인이 되어 주시고 그들을 인정해 주신다. 그러나 믿음을 따라 살지 못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둘째는 믿음의 옛 사람들이 믿음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의 구원에 대해 증거를 받았다는 것이다. 비록 그 실현을 그들이 당대에 보지는 못했으나 그 사실에 관해서는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라는 히브리서 11장 1절의 선언을 상기시킨다.

 

'약속된 것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생전에 메시아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한 사실을 나타낸다. 이 사람들은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전, 곧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죽었던 것이다.

따라서 '얻지 못하였습니다'로 번역된 '우크 에코미산토'(uk ekomisanto)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갈바리아의 죽음을 통한 하느님과의 친교라는 충만한 축복을 얻지 못하였음을 증거한다.


믿음의 옛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의 성취를 얻지 못하였다는 본문의 내용과 관련하여 볼 때, 옛 사람들을 위해서는 종국적인 구원은 순전히 미래에 속하여 있고, 우리를 위해서는 그것은 이미 성취되었고,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은 것이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이 이미 성취되었고, 재림을 통한 종국적 구원은 구약의 옛 사람들이나 신약의 성도들에게 모두 미래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히브리서는 성도인 우리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영적인 특권들과 비교해 볼 때, 옛 계약 아래 있는 영적 특권들이 열등하다는 사상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같은 주장은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충분히 뒷받침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마태11,11)

이것은 현재 성도인 우리가 누리는 영적 특권이 구약 시대의 아무리 놀라운 믿음을 지닌 옛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옛 계약 아래 있는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음을 잘 알게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본절은 하느님께서 신약 성도들을 위해 구약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좋은 약속을 예비하셨다는 사실을 말한다.

여기서 '내다보셨기'로 번역된 '프로블렙사메누'(probllepsamenu)의 원형 '프로블레포'(probllepo)'전에', '앞에'를 뜻하는 전치사 '프로'(pro)와 '보다'를 뜻하는 동사 '블레포'(bllepo)의 합성어'미리보다', '앞서 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신약 성도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신 더 좋은 것은 무엇인가? '더 좋은 것'으로 번역된 '크레이톤 티'(kreitton ti)는 보다 정확히 번역하면 '더 좋은 어떤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과 그로 인한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친교를 가리킨다.


구약의 성도들은 신약의 성도들 곧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구원을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이것은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계획하신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구약의 성도들이 이 축복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옛 사람들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한 구원을 믿음을 가지고 미리 본 반면에, 우리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을 가지고 영접한 것만이 다를 뿐이다.

결국 믿음에 따르는 상급이라는 면에서는 그들이나 우리가 다를 것이 없다.

 

'우리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본절을 정확히 번역하면,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가 된다. '히나'(hina)가정법 구문'인 본문은 하느님께서 신약 성도들을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목적 혹은 예비하심으로써 빚어진 결과적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 사이에 긴밀한 관계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가 구약의 성도들을 완전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옛 계약 아래 있던 믿음의 옛 사람들은 스스로는 완전하게 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이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구속 사업을 이루심으로써 믿음의 사람들이 완전함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함께 완전해지는 것이다.

'다 이루어졌다'(요한19,30)라는 십자가상 예수님의 외침과 부활이 있기 전에는 아직 완전함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공로와 그 효력이 신약 뿐 아니라  구약의 믿음의 옛 사람들에게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히브12,23). 그리스도의 구원에 그들도 초대된 것이다.





2012년 1월 30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주님을 만나 행복하십시오

반영억라파엘신부


그 날의 기분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음에 둔 사람을 만나면 기쁨이 크고,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아픕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 훌륭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못된 사람 만나서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운명이 바뀔 수도 합니다. 만남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변합니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시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마주 나왔습니다. 그것은 큰 은총입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무덤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무덤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는데 사랑이 없는 미움과 시기, 질투, 분노, 적개심, 무관심 등으로 지옥같이 사는 상태를 말합니다.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이 족쇄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는 것은 무질서와 혼란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치곤하였다는 것은 분노와 자학으로 괴로워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그 어둠에서 나왔으니 복이 있습니다. 그는 결국 제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마르5,15).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새 삶을 시작하였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로마12,2)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고 예수님 곁에 같이 있고 싶어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 고향에서 떠나주기를 바랬습니다. 심지어 벼랑까지 끌고 가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루카4,28). 더러운 영이 들렸던 사람도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저를 괴롭히지 말아주십시오”(마르5,6).하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악령의 속성을 볼 수 있습니다. 악령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알고 인정하였지만, 그분과 소통하고 친교를 나누는 일은 거부합니다. 이렇게 악의 세력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잘 알면서도 그릇된 삶에 고집스레 집착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기를 극도로 싫어합니다(손희송). 그런데 제정신이 들자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시오”(마르5,18) 하고 청하였습니다. 이 청은 제정신이 들기 전과는 전혀 다른 청원입니다. “이제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난 것”(2코린 5,17)입니다.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는 청은 곧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정신이 들어 청원한 기도이니 만큼 우리도 기도를 할 때 제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턱대고 청하지 않고 효과적인 기도, 꼭 이루어지는 기도를 할 수 있으며 주님의 뜻에 의합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는 기도가 아니라 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때로는 기도가 들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해서 거절하신 것으로 믿고 주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렸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 새 생활을 시작하였듯이 우리도 주님을 만나 ‘새로 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상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 것에 마음을 두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누군가 나를 만나서 기쁨을 간직할 수 있는 날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지역인 게라사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는 마귀 들린 이의 증상, 마귀 들린 이와 구마자의 만남, 마귀 들린 이의 방어 행위, 구마자의 악령 추방 명령, 악령 추방과 그 결과로 나타난 마귀 들린 이의 상태, 주변 사람들의 반응 등이 묘사된 전형적인 구마 기적의 양식을 보여 줍니다.

물론 악령이 여럿이라 군대라고 불리는 것과 추방된 악령이 돼지 떼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부탁하는 특이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느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실현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지로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 줍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가운데 치유 기적과 구마 기적이 많은 것은,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어 사람이 영적 육체적 모든 억압에서 해방되어 구원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지입니다.
우리는 악령의 실체와 본성을 잘 알지 못합니다.

고대 사람들도 영적으로 사람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어떤 힘이나 세력이 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마 기적의 핵심은 악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며,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정신적인 면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히 치유해 주십니다.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우리가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과 또 이웃과 함께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죄와 약점을 주님 앞에 겸손히 내어 놓고 치유해 주시도록 청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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