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수요일]손을 뻗어라 (마르 3,1-6)

2019. 1. 23. 오전 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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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주간 수요일]손을 뻗어라 (마르 3,1-6)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다고 한다. (히브 7,1-3.15-17)
형제 여러분,
1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2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15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16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느냐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다. (마르 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히브7,1-3. 15-17)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 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1-3)

 

히브리서는 크게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고 완성시키신 예수님의 여러 가지 구약적 요소들에 대한 우월성을 논증하는 1장 1절에서 10장 18절까지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신앙과 생활을 다룬 10장 19절에서 13장 25절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전반부의 4장 14절에서 7장 28절까지는 레위 사제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의 대사제로서의 지위 대해 언급한다.


히브리서 7장은 이러한 맥락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구약의 성취로 이 땅에 오셔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구원을 이루신 분임을 논증하는 일관된 주제를 갖고 있는 히브리서 전체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께서 멜키체덱의 반열을 쫓아 완전한 대사제되심을 다룬다.

그 가운데 7장 1-10절멜키체덱이 레위 계통의 사제보다 우월한 영원한 사제임을 밝힌다. 즉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레위 사제들보다 우월함을 밝히기 위하여 먼저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멜키체덱의 우월함을 논증해 나가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7장 1-3절에서 우선 멜키체덱의 약력을 밝힌다. 멜키체덱은 살렘의 임금이다.

'정의의 임금'(the king of righteousness)이라는 이름 뜻을 지니고 있는 멜키체덱은 창세기 14장 17-20절에 등장한 인물로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그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살렘의 임금이다. 히브리서가 기록된 당시의 '살렘'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예루살렘'의 별명이라는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

멜키체덱은 임금일 뿐 아니라 주 하느님의 사제였다. 그는 제정일치(祭政一致)사회에서 임금 겸 사제였던 것이다.

그는 모세의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의 사제였고, 최초의 임명직 대사제 아론이 있기 이전의 사제였으며, 아브라함이 그를 알기 이전부터 사제였던 인물로서 이스라엘의 종교 제도 너머에 존재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임금이면서 사제였다는 사실이 레위 계통 사제들과의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레위 계통의 사제들은 임금의 직무를 맡을 수 없었다. 그러나 멜키체덱은 사제이면서 임금으로서의 직무도 수행하였던 것이다.


한편,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은 히브리어로 '엘 엘리온'(el ellion)이며, 하느님을 지칭하는 이름들 가운데 하나이다. '엘리온'은 '가장 높은'(most high)을 뜻하는데, 영어 성경들은 이러한 고유 이름으로 사용하여 대문자 'the Most High'로 표기했다.

'엘리온'은 구약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기본적인 개념 가운데 특히 하느님의 존귀하심과 압도적인 위엄을 드러내는 명칭이다. 이것은 특히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을 나타내는 신명(神名)이다.


멜키체덱은 유일신이신 주 하느님의 사제이며 평화를 뜻하는 살렘의 임금이다. 고대 제정일치의 세계에서 임금과 사제직을 겸하는 것이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존재는 많은 신비에 둘러싸여 있다.

고대 근동의 셈족들은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는데, 이 많은 신들 가운데 멜키체덱이 어떻게 주님을 섬기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하나의 의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갈대아 우르라는 이교적인 우상 숭배가 성행했던 환경에서 아브라함이 주님을 섬기게 된 결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것은 하느님의 선택과 예정이라는 보다 신학적인 측면에서 그 답을 찾는 것 적절하다. 어느 시대나 이 세상에 하느님의 백성이 없었던 때는 없었으며, 그리스도 이전과 모세 이전도 예외가 아니다(사도18,10; 에페1,4.5).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다'

 이것은 멜키체덱이라는 사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동기 관한 언급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엘람 임금 크도를라오메르와 연합한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네 임금에게 사로잡혔을 때, 아브라함이 훈련받은 장정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쳐부수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 임금 멜키체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그를 만났으며,그를 축복하였다(창세14,13-20).


여기에서 '축복하였다'로 번역된 '율로게사스'(eullogesas)원형 '율로게오'(eullogeo) 동사는 '잘', '훌륭하게' 를 뜻하는 부사 '유'(eu)와 '말하다'를 뜻하는 어근 '로그'(log)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문자적으로는 '좋은 말을 하다', '좋게 말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구약의 희랍어 번역 성경 70인역(LXX)에서는 '축복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빠라크'(barak)역어로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이 히브리어 동사는 기본적으로 생산, 장수, 번영, 부귀와 같은 '유익한 능력을 부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세 가지 의미로 쓰였다.

첫째는 '칭찬하다', '찬양하다'라는 뜻이고(마태14,19; 루카1,64)

둘째는 '축복하다'라는 뜻이며(루카24,50.51; 요한12,13),

셋째는 하느님이나 그리스도께서 '복을 주신다'라는 뜻이다(마태25,34).

희랍어의 원래 의미로 보면 첫째 의미로도 볼 수 있으나 70인역(LXX)의 용례나 문맥에서 볼 때 둘째 의미로 사용되었음이 명백하다.


멜키체덱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아브람을 복을 받으리라.적들을 그때 손에 넘겨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창세14,19-20)라고 기도함으로써 아브라함을 축복했던 것이다.

이처럼 멜키체덱이 하느님께 기도함으로써 아브라함을 축복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그가 아브라함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는 것과 아브라함을 위한 중재자(중보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믿음의 조상이요 하느님의 약속을 가진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의 축복을 받았다면, 멜키체덱이 아브라함 보다 높은 위치에 있음을 단정할 수 있다(히브7,7).


히브리서 저자는 멜키체덱의 반열을 따른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 난 레위 계통의 사제직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이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성도들 사이의 중재자(중보자)로서 성도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심으로써 성도들을 축복하신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전리품으로 얻은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떼어 멜키체덱에게 준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창세기 14장 20절의 인용이며,이를 통해 우리는 멜키체덱이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이브라함의 품 속에 있었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레위 계통 사제들보다 더 큰 자임을 알 수 있다.

야곱이 하느님께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기도한 것처럼(창세28,22),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렸는데, 이것은 자신의 소유가 멜키체덱에게 속한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창세28,22; 레위27,30).


십일조는 '나의 모든 소유가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표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의 절대권과 주권을 인정하는 표시소산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나누어 주었습니다'로 번역된 '에메리센'(emerisen)의 원형 '메리조'(merizo)는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마아셰르'(maasher)의 역어이다.

아브라함의 이 행위가 당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던 관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멜키체덱을 하느님의 사제로 알고 이렇게 한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것을 십일조의 기원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히브리서 저자가 특별히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멜키체덱의 사제직이 레위 계통의 그것보다 뛰어남을 증명하기 위함이다.유대의 사제들은 자기 동족들로부터 십분의 일을 받았다. 또한 이것은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제의 법적 권한이었다(민수18,21; 신명14,22).

하지만 멜키체덱은 혈통적으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십분의 일을 받았으며 더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율법에 따라 주어진 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권위 혹은 하느님에 의해서 주어진 권위에 의해서라는 점이다. 이 사실만 가지고도 그가 레위 계통 사제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사제 직분과 레위 계통의 옛 사제 직분을 비교하는 말이다.

'아버지도 없고'로 번역된 '아파토르'(apator)는 고전 희랍어 문헌에서 고아, 주운 아이, 사생아, 부랑자, 불량배 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들의 경우 '아버지 없다'라고 묘사될 때는 그들의 초자연적인 출생을 의미하는 말이된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 단어는 '어머니도 없고'에 해당하는 '아메토르'(ametor)와 함께 쓰여 신의 속성, 즉 신성과 영원성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 신약에서 '아파토르'(apator)는 여기에만 나온다.

히브리서 저자는 '토라(율법; 모세오경)에 언급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랍비주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이 논의를 전개시켜 놀라운 결론 이른다.

구약 어디에도 멜키체덱의 혈통이나 부모, 출생, 죽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점을 들어

그는 임금이자 사제인 멜키체덱의 사제 직분이 하늘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영원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하늘의 존재로서 멜키체덱은 사제직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사제의 혈통을 가져야 한다는 절대적인 전제 조건을 가진 레위 계통의 사제들보다 우월하며(느헤7,64), 아울러 그는 레위 계통에 속하지 않고 선재하는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표상인 것이다.




연중 제2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3,1-6)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5)


여기서 '노기'에 해당하는 '오르게스'(orges; anger)의 원형 '오르게'(orge)사람에게 적용되면 일반적으로 감정적 분노를 나타내며, 성경은 이런 종류의 감정 표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있다(야고1,20).

그러나 이 단어가 마르코 복음 3장 5절처럼 악(惡)에 대한 신적(神的) 반응으로서 언급되면, 이것은 하느님의 공의의 심판과 형벌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 분노는 마지막 심판의 때에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쌓아 놓았다가 부어지는 하느님의 공의로운 진노(indignation)를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로마2,5; 묵시6,17).


마르코 복음 3장 5절에서 예수님의 분노 역시 공의의 분노이다.

이것은 바리사이들이 헤로데 당과 결탁하여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려는 사실 때문이 아니고,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몹시 슬퍼하시면서'로 번역된 '쉴뤼푸메노스'(syllypumenous; being grieved; deeply distressed) 원형 '쉴뤼페오'(syllypeo)'함께'라는 뜻의 '쉰'(syn)'슬퍼하다','괴로워하다'라는 뜻의 '뤼페오'(lypeo)가 결합되어, 어떤 사람으로 말미암아 또는 그와 함께 '깊이 슬퍼하다' 또는 '고뇌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러 온, 하느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당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율법에 대한 편협한 해석에 연연하여 당신을 감히 판단하고 단죄하려는 바리사이 무리들에 대해서 공의로운 분노를 품으시면서도, 그들의 어리석음을 깊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심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한편, 예수님께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은 간단하다.

'손을 뻗어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자신의 손을 '뻗어' 순종하자 '다시 성하여졌다'는 즉각적인 결과가 나왔다.

특히 '다시 성하여졌다'라고 번역된 '아페카테스타테'(apekatestathe; was restored)의 원형 '아포카티스테미'(apokathistemi)'이전 상태로 완전히 돌아가다'(히브13,19)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하느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사도1,6).

따라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치유를 통해서도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느님의 첫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더군다나 이 회복은 첫 창조보다 더 나은 상태로 이루어질 것이고, 궁극적인 상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처럼 주님 앞에 나아오는 이들이 모두 온전하게 회복되어 주님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영광스럽게 살게 될 것이다.

 

오늘 마르코 복음 3장 2절에 나오는 데로, 바리사이들은 이전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관하여 자신들이 따르는 규정들보다 당신 자신의 해석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단죄하기 위한 구체적인 증거를 잡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행동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의 시제가 행동의 반복이나 계속을 보여주는 미완료의 시제로 기록된 점을 볼 때, 마르코 복음 2장 23~28절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며 당신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곡식을 자른 행위를 정당화시킨 사실을, 바리사이들이 공개적인 석상에서 드러내어 율법을 어긴 자로 고발하기 위해 파놓은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1월 19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법의 ‘정신’을 모르면 법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을 만드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법의 정신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분의 법에 충실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회당에 온 유다인들입니다.
회당이나 성전은 하늘 나라의 상징인데,

실제로는 하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오늘 유다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을 어기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율법은 껍데기만 남는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그들에게 단순한 질문을 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들은 이 단순한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이미 율법의 정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정의의 임금”이십니다.

법의 근간이 ‘정의’입니다.

그런데 이 정의의 임금을 버렸기에 법의 정신도 잃게 된 것입니다.

정의를 버리고 법만을 지키려 했던 유다인들이 결국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정의의 임금은 또한 “평화의 임금”(히브 7,2)입니다.

율법은 모든 인간이 하늘 나라에서와 같이 평화롭게 살도록 하시려고 주님께서 주신 규칙입니다.

같이 살려면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율법의 진정한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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