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복음 선포 (마태 4,12-17.23-25)

2019. 1. 7. 오전 6: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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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복음 선포 (마태 4,12-17.23-25)


요한 사도는 아무 영이나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라고 한다. (1요한 3,22―4,6)
사랑하는 여러분, 22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4,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4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거짓 예언자들을 이미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세상에 있는 그자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6.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을 알고 또 사람을 속이는 영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신다. (마태 4,12-17.23-25)
그때에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주님 공현 후 월요일 제1독서 (1요한 3,22-4,6)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1)


요한1서 4장 1-6절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신앙과 생활에 대하여 권면하는 요한1서 3장 1절 ~ 4장 6절 가운데 마지막 단락으로서, '그리스도의 적'(적그리스도)의영에 대한 분별과 경계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형제 사랑의 실천을 권면하는 3장 13-24절에 이어지며, 하느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랑의 계명 실천을 촉구하는 4장 7절 ~5장 3절에 앞서는 내용으로서, 참된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는 거짓 진리와 참된 진리를 분별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다.


요한은 이미 2장 18-29절에서도 그리스도의 적에 대하여 경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적에 대한 정체와 오류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본 단락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을 분별하는 기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형제 사랑의 계명 실천을 촉구하는 단락 사이에 유독 이 내용이 나오는 것은 사랑의 실천 역시 하느님의 참된 진리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초대 교회에는 거짓 영들에 의해 속는 성도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코린토 교회에는 신령한 언어나 예언을 하는 사람 중에 은사를 잘못 사용하여 덕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다(1코린12장, 14장).


그러나 지금 요한이 지적하는 경우는 은사를 잘못 사용하는 차원이 아닌 적그리스도의 영의 활동으로 인한 영적 혼란을 가리킨다. 이것은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라는 요한의 이어지는  언급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그들은 참 성도들과 외형적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요한은 영들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라고 권면한다.


'그 영'으로 번역된 '타 프뉴마타'(ta pneumata)'영들'로 번역해야 옳다. '영들'로 번역해야 하는 '프뉴마타'(pneumata)의 원형 '프뉴마'(pneuma)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하느님의 거룩한 영인 '성령'(Holy Spirit)하느님과 친교하는 인간의 영인 '인영'(Human Spirit), 그리고 성도를 속이는 악한 영인 '악령'(Devil Spirit)이 그것이다.


인간의 영(Human Spirit)은 경험에서 오는 것으로, 진리에 속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짓에 속할 수도 있다.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매우 달라진다.

본절에서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영'은 당시 교회를 크게 어지럽혔던 영지주의 이단이나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이러한 영은 하느님께 속해 있지 않다.


한편, '시험해 보십시오' 로 번역된 '도키마제테'(dokimazete)원형 '도키마조'(dokimazo)헤아려 '분별하다', 살펴 '확증하다' 라는 뜻으로서, 어떤 사실을 잘 검토하고 검증하여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당시에 통용되던 금화의 진위 여부를 시험해 볼 때도 사용되던 단어이다.


요한은 모든 영들을 다 믿지 말라는 명령 다음에 '영들을 시험해 보라'는 명령을 덧붙였는데, 시험의 내용은 바로 그들이 하느님께 속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의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지를 철저히 점검함으로써 그들의 교리가 위조 화폐와 같은 가짜가 아닌지를 잘 헤아려 살펴보라는 말이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이다'

이유 접속사 '호티'(hoti)로 시작하는 본문은 성도들이 왜 영들이 하느님께 속했는지의 여부를 시험해야만 하는가를 설명해 준다. 그것은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에 나와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짓 예언자'로 번역된 '프슈도프로페타이'(pseudoprophetai)의 원형 '프슈도프로페테스'(pseudoprophetes)'가짜', '거짓'이라는 뜻의 '프슈토'(pseudo)'예언자' 라는 뜻의 '프로페테스'(prophetes)합성어이다.

이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자들이다.


겉으로는 예언자의 모양을 갖추었지만, 실상은 양의 탈을 쓴 흉악한 이리이다. 특히 이들은 거짓의 영인 사탄의 도구 이용된다. 당시 초대 교회 공동체에 나타난 거짓 예언자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데 있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교회 공동체에 속했다가 분리되어 나간 자들로서(1요한2,19)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는 가현론자들(Docetists)이다. 요한은 이들을 '그리스도의 적'이라 불렀다(1요한2,22).


한편, '나갔기'로 번역된 '엑셀렐뤼타신'(ekselleythasin)원형 '엑세르코마이'(ekserchomai)'~로부터 밖으로'란 뜻의 전치사 '에크'(ek)와 '가다'라는 뜻의 동사 '에르코마이'(erchomai)합성어로서 '밖으로 나오다'라는 뜻이다.


즉 이것은 교회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세상으로 나갔다는 말이다(1요한2,19). 마치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가 사탄에게 사로잡혔을 때 그가 예수님을 팔기 위하여 마르코의 다락방을 떠났던 것처럼(요한13,27-30)  당시 거짓 예언자들은 사탄의 도구로서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서 분리되어 나온 것이다.


 

 주님 공현 후 월요일 복음 (마태 4,12-17.23-2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5~16)


마태오 복음 4장 15절의 '즈불룬 땅'에 해당하는 '게 자불론'(ge Zaboulin; land of Zebulun)갈릴래아 호수 남서쪽의 지역으로서 즈불룬 지파가 거주하던 땅이며, '납탈리 땅'에 해당하는 '게 네프탈림'(ge Nephthalim; land of Naphtalim)은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의 지역으로서 납탈리 지파가 거주하던 땅이다.


그리고 '바다로 가는 길''즈불룬과 납탈리 지역에서 해변으로 펼쳐진 곳'이거나 '갈릴래아 해변'을 뜻하며, '요르단 건너편'은 갈릴래아 해안 동쪽 지역을 말한다.

또한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팔레스티나 가운데서도 이방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모든 지역들은 당시 정치, 경제, 사회, 종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서, 한마디로 전통적으로 유대 사람들에게 소외되고 배척되었던 갈릴래아 주변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마태오 복음 4장 16절의 '어둠'으로 번역된 '스코테이'(skotei; darkness)의 원형 '스코토스'(skotos)'어두움','흑암'으로도 번역되는데, 신적(神的)인 것에 관계된 인간의 의무에 관한 무지, 그리고 거기에 따라오는 불신앙과 불경건, 부도덕, 비참한 결과 등의 의미를 갖는다.


또한 '앉아있는'으로번역된 '호 카테메노스'(ho kathemenos; living; which sat)에서 '카테메노스'(kathemenos)'앉다'는 뜻의 동사 '카테마이'(kathemai)현재분사형으로서, 현재 계속적으로 그런 상태에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율법도 모르고, 불신앙과 불경건으로 하느님의 생명에서 떠나 계속적으로 비참한 운명에 처해 살고 있는 갈릴래아 지역의 주민의 영적 상태를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백성들만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니지만, 당시 그 지역은 보다 짙은 영적 어두움으로 덮여 있던 곳이기에, 주로 이곳에서 활동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큰 빛'으로 번역된 '포스~메가'(phos~mega; great light)에는 관사가 붙어 있지 않아 어떤 한정된 구체적인 빛을 의미하지 않고, 진리로서 온 세상을 비추는 메시야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마태오 복음 4장 16절(ㄴ)의 '고장'으로 번역된 '코라'(chora; the land; the reign)'땅','지역' 또는 '지방'을 의미하는 명사이다.

그러니까 본문은 '고장과 그림자가 모두 죽음에 속해 있다'는 뜻이다.


'고장'에 해당하는 '코라'(chora)'그림자'에 해당하는 '스키아'(skia; shadow)등위 접속사 '카이'(kai; and)로 연결되어 있고, 이 명사구 뒤에 '죽음'을 의미하는 명사 '타나토스'(thanatos; death)의 소유격 '타나투'(thanatou)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글 새 성경은 칠십인역(LXX)을 참고한 것 같은데, 이것은 '죽음의 그늘로 뒤덮여 있는 땅'이라는 의미로서, 앞의 '어둠 속에'라는 표현과 좋은 대구를 이룬다.


본문도 역시 하느님의 율법과 은혜도 모르며, 오직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심판만이 있는 죽음의 땅인 갈릴래아 지역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빛이 떠올랐다'로 번역된 '아네테일렌'(aneteilen; has dawned; is sprung up)의 원형 '아나텔로'(anatello)는 해나 별 따위가 '떠오르다', '일어나다'는 뜻의 동사이다.


여기서는 부정 과거 능동형으로 쓰여서 갈릴래아 지역에 찬란한 빛으로 오신 메시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역 위에 떠올라 그들에게 구원과 생명의 빛을 비추었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실 때의 상황을 잘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신 곳은,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입니다.

이 갈릴래아 지역은 구역상으로는 이스라엘 땅에 속하지만,

거의 사마리아인들처럼 반 이방인으로 취급되던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밝은 곳이 아니라 어두운 곳,

의인들이 아니라 죄인들,

건강한 이들이 아니라 병자들 가운데 머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마태 9,13; 마르 2,17 참조).

 예수님께서는 과연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에게 큰 빛”이셨습니다.

 지금 회개할 것이 없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는

그분이 매력이 없어 보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혼자 기도하는 것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신앙입니다.

 단순히 죄인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거룩한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인들과 섞일 줄 알아야 거룩한 것입니다.
자신도 죄인들과 다를 바가 없음을 아는 게 거룩함입니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거룩하지 않은 육체 안으로 들어오신 강생의 신비는,

거룩하지 않은 것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사랑임을 알려 줍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오늘 독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적”이라 부릅니다.


혼자 기도하고 혼자 더 거룩하다고 여겨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그들 가운데 섞이려 하지 않는

잘못된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체는 곧 사랑이며,

죄인인 우리 가운데 들어와 우리를 회개시키고 거룩하게 합니다.

이처럼 거룩한 사람도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

자신을 녹여 그들을 거룩하게 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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