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증언(마태10,17-22)
스테파노는 사람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자,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한다. (사도 6,8-10; 7,54-59)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7,54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마태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사도6,8-10 : 7,54-59)
예수 성탄 대축일 12월 25일을 기점으로, 예수님으로 인해 초대교회에서 처음으로 순교한 스테파노 부제 축일(26일),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았고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 가슴에 기대었던 사도 요한 축일(27일),
예수님 탄생으로 말미암아 헤로데 대왕의 명령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28일)이 계속 이어진다.
오늘은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이다.
그는 사도들이 뽑은 부제였고, 부제가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는 일을 했으며, 예루살렘에 살던 유다인들을 위해 활동하였다.
유다인들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인은 지혜로운 언변으로 그들을 물리쳤는데, 결국 성인은 유다인들의 거짓 진술로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스테파노'는 그리스 말로 '왕관', '면류관' 이란 뜻인데, 주님 위해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최초의 순교의 면류관을 쓰게 된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도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6,8), '그의 말에서 드러난 지혜와 성령'(6,10) 이란 표현이 나오지만, 그가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 평소에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가 얼마나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며, 기도를 많이 봉헌하고, 믿음이 강했으면, 이런 성령의 은사들이 내려 왔을까? 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8) 고 나와있고, 성령이 충만하여 환시를 본다. (7,55-56)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며,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것이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 옥좌(보좌)옆에서 앉아 계시지 않고 "서 계신" 다는 말씀을 접한다. '앉아 있는 것'과 '서 있는 것'은 다른 것이다.
'앉아 있는 것'은 바라보고 관망 한다는 뜻이지만, '서 있다는 것'은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을 의미한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스테파노의 순교에 동참하시고, 그의 기도와 희생과 증언을 들어 주시며, 그안에서 함께 순교하고 계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예수님은 당신과 당신의 말씀을, 온 몸과 맘으로 증거하는 스테파노를 사랑하시며, 애가 타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요한 묵시록 14장 1절에도 나온다. "내가 또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런데 마찬가지로 질세라, 사탄도 만만치 않게 대항한다.
요한 묵시록 13장 4절에는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 현장에는, 그의 살인에 동조하고 뜻을 함께 하는 율법의 전사 사울이 등장한다.
스테파노를 죽이는 자들이 거짓 증언을 하며 돌을 던져 죽이는 과정에서, 땀이 나니까 겉옷을 벗어 사울 앞에 던져 주고 있다. 스테파노의 살인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의 겉옷을 사울이 맡고 있음으로, 사울도 스테파노의 죽음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훗날 이 순교의 현장은, 사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이방인의 사도가 된 후, 그가 복음을 열성으로 전하고 참수 치명하는데, 영적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는 불씨가 되어, 이를 계기로 예루살렘 모교회가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팔레스티나 곳곳에 복음을 전파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인간적으로 불행이나 실패가 나쁜 것만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잘 모르나, 하느님의 깊은 뜻과 섭리와 안배가 모든 일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시는 주님, 특히 주님 복음과 영생의 가치관 때문에, 주님의 뜻 때문에 고난을 겪는 현장을 '서서' 지켜 보시며, 동참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지 모르겠다.
특히 주님의 말씀 때문에,억울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위로와 평화가 충만하길 비는 마음이다.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을 견딜 수 있잖아요."
698번 '주님 손 잡고 일어 서세요' 라는 시련 극복의 주제를 가진 기초 공동체의 성가가 들려온다.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복음 (마태 10,17-22)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0)
마태오 복음 10장 20절은 영어에 있어서 '~아니고 ~이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not~but' 용법과 동일한 '우~알라'(u~alla) 용법이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권세자들에게 잡혀가 심문을 당하게 될 때 그들에게 적합한 대답을 하게 할 자는 너희가 아니라 바로 성령이라는 사실을 부정과 긍정의 비교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이 선택한 자에게 할 말을 가르치신다는 이와 같은 개념은 이미 구약에도 등장한다.
즉 탈출기 4장 12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언변의 어눌함을 이유로 소명을 거절하는 모세에게 당신이 함께하셔서 할 말을 가르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신약에서도 성령께서는 보호자, 즉 위로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하느님의 영이시다.
특히 요한 복음 14장 26절에서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는 분으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염려할 것이 아니라, 지혜의 영이신 적절한 대답을 주시기로 기도하며, 또한 평소에 내가 성령께 의지하며 사는 사람인지를 항상 돌아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끝까지 견디는 이
성 치뿌리아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 존재 자체는 희망과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과 믿음이 그 열매를 맺으려면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 그러나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인내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항상 참아주시는데 나는 다른 사람에게 쉽게 화를 내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라는 것은 그저 구호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공격을 공격으로, 모욕을 모욕으로 갚아야 속이 후련합니다. 내 자신이 용서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남을 쉽게 그리고 엄하게 판단하면서도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삶에 스테파노는 깨우침을 줍니다. 사람들은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는데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해 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고 마침내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사실 이를 갈고 돌을 던지는 이는 바로 나보다 잘난 꼴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입니다. 시기와 질투심이 가득한 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7,59-60).하고 외쳤습니다.
스테파노는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었기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의연할 수 있었고 오히려 자기를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주님을 증거 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회가 좋든 그렇지 않든 주님을 전할 뿐입니다. 스테파노는 그 몫을 해냈습니다. 참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증거 할 수 있고 자신을 처벌하는 자에게 용서를 베풀 수 있습니다.
성 에드워드는 “나는 비록 두 팔이 잘리고 두 눈을 빼앗기더라도 복수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자기를 못 박은 원수를 위해 기도하시고 용서하기를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십자가위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하고 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용서하고 인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은 양순함”(마태10,16)으로, 강한 것을 부드러움으로 이깁니다.
박해와 모욕을 끝까지 견디라고요? 불가능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미 주님께서 모범을 보여 주셨고 스테파노가 그 길을 따랐습니다. 많은 성인 성녀들의 삶이 그 가능성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인내심을 잃어버릴 때 기억하십시오! 죽음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을, 그리고 스테파노와 에드워드…성인성녀들을! 그리고 특별히 나의 결점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참아 주시는 하느님을 말입니다. 끝까지 견디십시오! 구원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어리석음과 부족함, 영적으로 메마른 이들과 심지어는 사악한 이들까지 참아 견뎌야 합니다”(함께야).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