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요한 20,2-8)

2018. 12. 27. 오전 5: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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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요한 20,2-8)

                          

요한 사도는, 우리가 보고 들은 생명의 말씀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한다고 한다. (1요한 1,1-4)
사랑하는 여러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막달레나의 말을 듣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는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 보고 믿는다. (요한 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1요한1,1-4)


오늘은 어부 출신으로 제배대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의 동생인 요한 사도 복음사가의 축일이다. 그는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함께 최초의 제자단에 속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함께 했으며 예수님의 당부로 성모님을 모셨다.


교회의 전승은 요한 복음과 요한 1,2,3서, 요한 묵시록을 사도 요한이 저자라고 가르쳐왔다. 그러기에 오늘 축일의 독서도 요한 1서의 내용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서학계에서는 요한 1,2,3서의 저자가 요한 복음 저자도, 예수님의 애제자도 아니라고 밝힌다.


세 편지에서 저자는 자신을 '원로'라고 밝힌다. 원로라는 칭호는 아시아 속주의 여러 교회에서 흔히 주님의 직제자 요한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을 가리켰다.


한편 저자는 자신을 나자렛 예수님을 직접 본 목격 증인으로 내세운다. 따라서, 그는 요한계 공동체에 속하면서 사도 전통을 직접 이어받은 요한 사도 바로 다음 세대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세 편지의 저자는 동일 인물이다. 세 문헌의 메시지, 문체, 어휘등이 서로 매우 비슷하게 때문이다.


세 서간의 집필 연대는 성 폴리카르푸스와 유스티누스가 요한 1서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적어도 A.D.150년 이전에 쓰인 것이 확실하다. 아마도 요한 복음이 쓰인 뒤인 A.D.100년경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오늘 독서는 요한1서의 머리말(1,1-4)에 해당하며, 요한 복음의 로고스 찬가(요한1,1-18)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자주 언급되는 '우리'는 애제자의 목격 증언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온 요한의 직계 제자들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지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생명의 말씀이시다(1,1-2).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부터 있어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1,1)


요한 1서의 서문인격화된 말씀의 육화를 강조한 요한 복음의 서문과는 달리 우리가 보고 듣고 만져본 생명의 말씀, 곧 나자렛 예수님의 공생활을 강조한다.


이 글을 쓰는 목적 우리 모두(저자와 수신자들)가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기쁨이 넘치는 친교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1,3-4).

이 친교는 두 주체가 어울리면서 좋은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하는데, 요한 복음에는 이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 20,2-8인데, 빈 무덤을 본 마리아 막달레나가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요한 20,3-4에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무덤으로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고 전한다.


그만큼 사도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란 걸 드러낸다.

그리고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모든 관심을 두었으면, 베드로 사도보다 먼저 달려가 빈 무덤에 다다랐다고 표현을 한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중의 하나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운명할 때 성모님을 맡겨 주셨다.

그리고 12사도 중의 유일한 동정이며 가장 오래 장수하여 천상의 신비와 계시로 가득찬 요한 복음을 저술했다.


주님께서 12사도 중에 특별히 요한 사도를 간택하여 사랑을 쏟아 주시고 큰 사명을 맡기신 것은 분명히 사람의 겉이 아니라 속을 보시는 주님 마음에 드는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요한 20,2~8)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4~5)


여기서 '빨리'에 해당하는 '타키온'(tachion)은 비교급이다. 또한 '달려'에 해당하는 '프로에드라멘'(proedramen; outran)의 원형 '프로트레코'(protrecho)'앞으로 달려가다'라는 뜻이다(루카19,4).


한글 새 성경의 번역은 베드로와 요한이 마치 무슨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원문에 충실하여 다시 번역하면,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를 앞질러 갔다' 옳다.


요한이 베드로보다 앞질러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던 무덤에 먼저 도착한 이유베드로가 제자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고, 반대로 요한은 제자들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려지는 모든 과정을 실제로 목격한 요한이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의 위치를 가장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요한19,25~27).


이러한 세부적인 사항까지 여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다른 제자'는 요한 사도가 분명하며, 이러한 내용이 결코 꾸민 이야기가 아니고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몸을 굽혀'라는 뜻의 '파라큅사스'(parakypsas; he bent over; he stooped down)가 여기서는 부정 과거 분사형으로 기록되었고, '보기는 하였지만'에 해당하는 '블레페이'(blepei)현재형인 점으로 보아 요한이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했지만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로 계속 들여다 보고만 있는 모습이 강조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요한의 평소 성격이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이 큰 돌로 박혀 있었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시신이 홀연히 사라진 사실로 말미암아,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장에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베드로가 오기까지 기다렸다고 본다.


또한 다르게는 요한이 수제자, 으뜸 사도로서의 베드로의 권위를 존중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고픈 급한 마음에 베드로의 느린 달음질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먼저 달려와 무덤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예수님의 수제자의 위치에 있는 베드로의 권위를 존중해서 그가 와서 먼저 확인하기 전에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사도이며 복음사가인 요한은 세상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두 번째로 증언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이며, 베드로와 형 야고보와 함께 거룩한 산에서 변모하신 예수님의 영광과 겟세마니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고통을 증언한 분입니다.
최후 만찬 때 그는 유다의 배반을 자신에게 드러내 보여 주신 예수님의 품에 머리를 기대었습니다.

그는 골고타 언덕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 밑에 있었고, 그분께서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라는 말씀을 듣고 돌아가실 때까지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에 맨 먼저 다다랐고 주님의 부활을 맨 먼저 믿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발에 날개를 달아 신앙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주님 부활에 대한 사도의 증언은 신앙의 토대이며, 학습된 이론이 아니라 증인들을 통하여 밝혀진 역사인 복음 전통의 기초입니다.

요한은 이런 증언을 상기합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 ……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오늘 복음은 죽음이 그리스도를 부활의 영광으로 이끌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을 둘러싼 포대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에 필요하지 않아 무덤에 고스란히 남겨 놓으신 아마포를 상기시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입은 인류는 그분과 더불어 우리 부활의 보증이 됩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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