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하느님의 어린양 (요한 1,29-34)

2019. 1. 3. 오전 7:27:26

글자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하느님의 어린양 (요한 1,29-34)


요한 사도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며,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한다. (1요한 2,29―3,6)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29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3,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고 말한다. (요한 1,29-34)
그때에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 공현 전 목요일 제1독서 (1요한 2,29-3,6)


"그분께서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29)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3,1~2ㄱ참조)


요한1서 2장 29절에서 3장 10절에서는 진리의 실천, 의로움의 실천을 기준으로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 분명하게 구분한다. 

'그분께서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29)


인류의 첫 사람의 범죄 때문에 사탄에게 빼앗긴 우리 영혼을, 죄없으신 천주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상 대속으로 다시 찾으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잃어버린 당신 자녀로서의 품위와 신분과 자격을 우리에게 도로 주셨다.

그만큼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가 안다면, 의로우신 하느님을 알게 될 것이고, 그분의 의로운 계명(말씀)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닮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3,1~2ㄱ참조)


장차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분께서 재림하시면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그리스도화, 신화(神化)될 것이다(3,2ㄴ~ㄷ).그리고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해야 한다(3,3).


그분을 뵙고, 알고, 일치하고 싶으면, 제일 먼저 전제되는 조건이 영혼의 순결함, 의로움, 흠 없음, 즉 죄가 없어야 한다.

그 분안에는 죄가 없고,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3,6참조).


마태오 복음 5장 48절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내적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고 (레위11,44~45; 레위19,2; 레위20,26; 1베드1,15~16), 외적으로는 자비로운 자 되는 것이다(루가6,36).


여기서 '거룩함'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코데쉬'(kodesh)인데, 동사 '카다쉬'(kadash; 깨끗하게 하다; 순결하게 하다; 분리하다)에서 나온 말이다.

축성(봉헌)이란 말이 유래되는 '성별'(聖別)이란 말도, 속된 것에서 끊임없이 분리하고, 구별하고, 벗겨내면, 그만큼 거룩해 진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 만큼 거룩하신 하느님께 가까워 진다 말이다. 다시말해서 거룩함은 의로움과 순결함(흠도 티도 없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늘 우리 영혼 안에 내주(內住)하시는 지극히 존엄하시고 거룩하신 성삼위(聖三位)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성삼위 앞에 우리 심성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항상 그 영혼의 순백 위에 티 없고 흠 없는 삶의 제사를 봉헌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 할 수 있다.

  

***************************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3,3)

여기서 '희망'으로 번역된 '엘피다'(elpida) 원형 '엘피스'(elpis)'바라는 것' 또는 현재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특히 성도들의 현재의 삶 속에서 경험되는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약속된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인내하는 문맥에서 많이 사용되었다(로마4,18 ; 2코린10,15 ; 필리1,20).


본절에서도 이 '희망'그리스도의 재림시 그를 대면할 때 그를 따라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변모될 것을 기대하는 희망을 가리킨다.

그러한 희망을 가진 자는 누구든지 주님의 순결하심과 같이 자신을 순결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순결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번역된 '하그니제이'(hagnizei)원형 '하그니죠'(hagnizo)'깨끗하게 하다', '정결케 하다', '정결례를 행하다'라는 뜻으로 거룩함과 정결함을 위해 정결례를 행하는 거룩한 행위 뜻한다.

종말에 영광스런 모습으로 주님을 대면할 것을 기대하는 성도자신들을 마치 구약의 성별된 자들이 정결례를 행하듯이 거룩함으로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도 요한은 여기서 하느님의 자녀가 가져야 할 중요한 삶의 자세 죄로부터 떠나 자신을 순결하게 하는 삶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의 자녀는 죄를 떠나 죄를 짓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순결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신앙을 소유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다.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에서 '순결'로 번역된 '하그노스'(hagnos)마치 남자를 알지 못하는 순결한 처녀와 같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서 '정결', '순전', '성결', '깨끗' 이라는 뜻을 가지나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무죄성(無罪性)을 나타낸다.


그리고 여기서 '처럼'(같이)로 번역된 '카토스'(kathos)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순결함의 모범이 됨을 잘 보여준다. 모든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정결함의 목표와 모델은 바로 무죄하여 한 점의 티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이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영이 이미 신적 지식과 경험을 통해 완전하게 되었다 주장하며 또한 육체를 악한 것으로 보아 경시하면서 윤리적 삶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오히려 방종 생활을 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그들의 비윤리적인 종말론적 구원관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 공현 전 목요일 복음(요한1,29~34)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29ㄴ)

 여기서 '없애시는'에 해당하는 '호 아이론'(ho airon; who takes away)에서 '아이론'(airon) '아이로'(airo)의 현재 분사이다.


지속과 반복의 의미를 갖는 현재 시제무죄하신 그리스도의 대신 속죄가 십자가 위에서 단 한번에 성취된 것이기는 하지만,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 효력이 영원토록 유효함을 드러낸다.


희랍어의 '아이로'(airo)'지고 간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없이하거나 제거한다'는 의미가 더 적합하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속죄의 제물로서의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죄를 완전히 없게 할 수 없어서 성전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드려지던 동물의 희생 제사와는 확실히 구별된다.

구약의 제사들은 아자젤 염소에게 죄를 지어서 광야로  가게 하거나 (레위16,8.21~22), 제물을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는데, 이것은 죄를 없애지 못하고 죄를 기억하게 할 뿐 이었다(히브10,3.4).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을 단 한 번 바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거룩함을 얻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10,10)라는 감격적인 말씀은 그분의 속죄가 완전한 것이었음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세례자 요한에 의해 예수님께 붙여진 이 위대한 칭호요한 복음사가의 기록들에서만 발견되며, 다른 세 복음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도행전 8장 32절베드로 1서 1장 19절각각 한번씩오는 것을 제외하고, 요한 복음사가의 기록들에 집중되어 있다.


'어린양'을 뜻하는 '암노스'(amnos; lamb)신약 성경에서 네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요한1,29.36; 사도8,32; 1베드1,19).

요한 복음사가의 기록들에서도 같은 뜻을 가진 '아르니온'(arnion)더 많이 발견된다.


요한 복음사가가 예수님께 이 칭호를 사용할 때에는 유대인들의 의식 속에 들어 있는 어린양에 대한 독특한 관념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암노스'(amnos)히브리어 상응어는 '케베쉬'(kebesh)이다.

이 용어는 '어린양' 뿐만 아니라 '양'(sheep)을 가리켜서 쓰이기는 하는데, 대부분 희생 제물의 문맥에 나타난다(탈출29,38; 레위4,32; 민수15,5).


요한 복음사가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부를 때에 과월절(유월절; 해방절) 어린양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탈출12,3).

시기적으로 과월절이 멀지 않았고(요한2,13), 이스라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나오던 바로 그 밤에, 이스라엘의 집을 보호해 준 것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피(탈출12,11.13)였음을, 유대인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증거는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할 분이시며, 과월절 어린양처럼 자기 희생을 통해 이것을 성취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 것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호 암노스 투 테우'(ho amnos tu theu; the lamb of god)라는 세례자 요한의 선언은 구원의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람이 잡아서 제단에 드리던 양은 그 수가 무수히 많아도 인간의 죄를 완전히 씻어 주지 못했다.

흠없고 티없는 어린양, 곧 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가 있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나를 따라라(요한 1,43-51)19.01.05조회 110[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와서 보아라 (요한 1,35-42)19.01.04조회 79[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하느님의 어린양 (요한 1,29-34)19.01.03조회 114[성 대 바실리오 기념일]“당신은 누구요?” (요한 1,19-28)19.01.02조회 49[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구유에 누운 아기 (루카 2,16-21)19.01.01조회 106[성탄 팔일 축제 제7일]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요한 1,1-18)18.12.31조회 61[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정결례 (루카 2,22-35)18.12.29조회 62[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학살당한아기들 (마태 2,13-18)18.12.28조회 99[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요한 20,2-8)18.12.27조회 100[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증언(마태10,17-22)18.12.26조회 55[주님 성탄 대축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요한 1,1-18)18.12.25조회 87[대림 제4주간 월요일]별 (루카 1,67-79)18.12.24조회 97[대림 제3주간 토요일]마니피캇 (루카 1,46-56)18.12.22조회 107[대림 제3주간 금요일] 복(福) (루카 1,39-45)18.12.21조회 96[대림 제3주간 목요일]잉태예고 (루카 1,26-38)18.12.20조회 42[대림 제3주간 수요일]요한을 잉태(루카 1,5-25)18.12.19조회 44[대림 제3주간 화요일] 임마누엘 (마태 1,18-24)18.12.18조회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