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금요일]예수님의 소문 (마르 6,14-29)
♠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지도자들의 믿음을 본받으라며,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시라고 한다. (히브 13,1-8)
형제 여러분, 1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2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
3 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고, 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
4 혼인은 모든 사람에게서 존중되어야 하고, 부부의 잠자리는 더럽혀지지 말아야 합니다. 불륜을 저지르는 자와 간음하는 자를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5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분께서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7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화답송♠ 시편 27(26),1.3.5.8ㄷ-9(◎ 1ㄱ)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
○ 나를 거슬러 군대가 진을 쳐도, 내 마음 두렵지 않으리라. 나를 거슬러 전쟁이 일어나도, 그래도 나는 안심하리라. ◎
○ 환난의 날, 그분은 나를 당신 초막에 숨기시고, 당신 천막 은밀한 곳에 감추시며, 바위 위로 나를 올려 세우시리라. ◎
○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나이다. 당신 얼굴 제게서 감추지 마시고, 분노하며 당신 종을 물리치지 마소서. 당신은 저를 돕는 분이시옵니다.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버리지 마소서. ◎
♠복음♠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로데는 자신이 목을 벤 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마르 6,14-29)
그때에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제1독서 (히브13,1-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8)
원문은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엑테스 카이 세메론 호 아우토스, 카이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Iesus christos ekthes kai semeron ho autos, kai eis tus aionas ;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과거에 믿음의 옛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모든 믿는 자에게 동일하게 위로와 힘이 되신다. 그분은 변치 않는 분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한편 원문에 동사가 없는 것을 들어서 어떤 이는 '이에수스'와 '크리스토스' 사이에 '에스틴'(estin)을 보충해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 성경이나 영역본들이 번역한 것처럼 '크리스토스'(christos) 다음에 동사가 생략된 것으로 보아서, '예수 그리스도는 ~ 이시다' 라고 읽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13장 8절은 그리스도의 불변성을 말하며, 이것은 우리의 희망이 헛되지 않음을 알게 한다. 이같은 사실은 히브리서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휴즈(P.E. Hughes)는 "과거에 조상들과 함께 계셨던 그 동일한 그리스도께서 지금 너희와 함께 계시고, 장차 우리 뒤의 세대와 함꼐 종말까지 계실 것이다. 어제 여호수아를 확실하게 도우셨던 그 주님께서 당신이 약속하신 대로 오늘도 신실한 당신 백성들을 도우시며 영원토록 도우실 것이다." 고 해설했다.
믿음의 옛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맡기신 역할을 마친 후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셔서 전에 믿음의 옛 사람들을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인도하신다.
따라서 신약의 성도들은 앞서 살다 간 믿음의 영웅들이 그리스도께 대해 가졌던 믿음과 신뢰를 본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연중 제4주간 금요일 복음 (마르6,14~29)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28~29)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 살로메는 드디어 참수당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가져다가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준다.
여기서 '그것을'로 번역된 '아우텐'(auten; it)은 3인칭 단수 대명사 여성 목적격이다.
이 대명사의 성(姓)이 여성인 것은 잘려나간 '머리'를 가리키는 명사 '케팔레'(kephale)가 여성 명사이기 때문이다.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헤로디아에게 갖다 줌으로써 그렇게도 세례자 요한에게 분노하며 죽이고자 했던 헤로디아의 소원은 마침내 성취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쟁반에 담겨져 있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보자마자 헤로디아는 그녀의 긴 머리핀(바늘)을 뽑아 세례자 요한의 혀를 수없이 찔러서 뽑아 버렸다고 한다.
사악한 여인은 자신의 비행을 고발하는 진리와 정의의 혀를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의(義)를 말하다가 비록 참수당했지만, 세례자 요한의 그 정신은 복음에 그대로 기록되어 대대로 칭송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자 요한의 시체를 거두어 무덤에 모셨지만, 제자들은 사랑하는 스승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 목이 잘려나가고 없는 몸뚱아리만 장사지내야 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의 선구자이며 최후의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루카7,28)은 30여년 남짓한 짧은 생애를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공적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세상을 떠나게 된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는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춤을 추어 손님들을 즐겁게 해 준 헤로디아의 딸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어머니 헤로디아의 부추김으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청함으로써, 세례자 요한은 허무하게 죽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였던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이러한 죽음이 허망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생애 내내 주님의 길을 닦고 준비한 예언자였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았지만,
온전히 자신의 사명과 위치를 깨닫고 스스로 낮추었습니다.
체면과 자만심에 빠진 헤로데의 결정으로 말미암은 그의 죽음은,
그리스도께서 결국 사람들의 음모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미리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주님을 증언하고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았던 분입니다.
요한이 베풀었던 죄를 씻기 위한 세례는,
주님에게서 죄의 용서와 성령을 받기 위한 세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보여 주었던 청빈과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세는,
사도들과 모든 신자에게 복음 전파의 모범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시대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 남아 있는 세례자 요한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주님을 세상에 선포하는 소리에 합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헛된 맹세를 하지마라
- 반영억 라파엘신부
여자는 기념일을 먹고 살고, 남자는 체면을 먹고 산답니다. 여자는 쉽게 감동하기에 그렇고 남자는 자존심을 세워주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그렇다고 자존심을 건 맹세를 함부로 할 것은 아닙니다.
헤로데 왕은 요한이라는 인물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습니다(마르6,20). 그런데 그에게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왕은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을 즐겁게 해 주었기에 그에게 원하는 선물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의 바람대로“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마르6,25).하고 요구하였습니다. 너무도 당혹스런 일입니다. 헤로디아는 요한이 자기의 결혼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앙심을 품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앙심을 품는 사람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욕심의 노예가 되어 그 앙갚음의 기회를 딸을 통해서 하게 된 것입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더니……,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약속한 것이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라 그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습니다(마르6,26). 그래서 결국은 요한의 목을 베게 되었습니다.
의인의 목숨과 자존심을 건 헛된 맹세에서 하나를 선택했거늘 그 놈의 자존심이 뭔지? 체면이 뭔지?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다만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 라고 만(야고5,12)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의로운 일에 자존심이 좀 상하면 어떻고 체면이 좀 손상되면 어떻습니까? 요한과 헤로데, 홀로 정의를 외치다가 죽어가는 한 예언자의 모습과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의롭고 정의롭게 사는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아가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왕의 모습이 극적으로 대조되고 있습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라는 말이 있듯이 헤로데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불안감을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내가 목을 벤 요한이 되살아났구나.”하고 말하였습니다. 혹 내 무의식 속에 감추어둔 무엇인가가 있어 불안하다면 고해성사를 통해 그 불안을 해소하기 바랍니다. 매듭은 풀어야 합니다. 풀지 않고 놔두면 세월이 흘러도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법입니다.
가정에서도 직장 안에서도 그리고 어떤 공동체 안에서든 더 큰 것을 위해서 자존심이 상하고, 체면에 손상을 입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안에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화가 함께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줄도 알며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필리4,12-13).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어떤 처지나 여건 안에서도 꿋꿋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요, 그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위신, 체면을 지켜야 할 때 지키십시오! 자존심을 내세워야 할 때 내세우십시오! 그리고 헛것인줄 알았으면 곧 버리십시오! 서둘러 버리십시오! 정말로 승리한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고 패배한 사람은 헤로데임을 잊지 마십시오.
헤로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권한을 남을 위해 사용하기보다 자신의 안일과 욕망을 위해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 왔고 스스로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항상 예수님의 삶을 미리 닦는 선구자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예수님을 닮기를 갈망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