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간 목요일]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마르 9,41-50)

2019. 2. 28. 오전 5:38:58

글자


 [연중 제7주간 목요일]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마르 9,41-50)


집회서의 저자는 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말고, 하루하루 늦추려 하지 말라고 한다. (집회  5,1-8)
1 재산을 믿지 말고 “넉넉하다.”고 말하지 마라.
2 너 자신과 네 힘을 붙좇지 말고 마음의 욕망을 따르지 마라.
3 “누가 나를 억누르리오?” 하고 말하지 마라. 주님께서 기필코 징벌하시리라.
4 “죄를 지었어도 내게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은가?” 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분노에 더디시기 때문이다.
5 속죄를 과신하지 마라. 죄에 죄를 쌓을 뿐이다.
6 “그분의 인자함이 크시니 수많은 내 죄악이 속죄받으리라.”고 말하지 마라. 정녕 자비도 분노도 다 그분께 있고 그분의 진노가 죄인들 위에 머무르리라.
7 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말고 하루하루 늦추려 하지 마라. 정녕 주님의 분노가 갑자기 들이닥쳐 너는 징벌의 날에 완전히 망하리라.
8 부정한 재산을 믿지 마라. 정녕 재난의 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낫다고 하신다. (마르 9,41-5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4)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6)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제1독서(집회5,1~8)


"재산을 믿지 말고,"넉넉하다."고 말하지 마라. 너 자신과 네 힘을 붙좇지 말고, 마음의 욕망을 따르지 마라."(1~2)

"부정한 재산을 믿지 마라. 정녕 재난의 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리라."(8)


오늘 독서 말씀 집회서 5장 1~8절 집회서 4장 20절에서 6장 17절 까지 '인생의 가치'라는 주제로 전개되는 말씀 중의 일부이다.

특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믿고,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죄를 짖는 자들이 하느님께서 자비하시고 분노에 더디시니~ 운운하면서 전혀 회개를 서두르지 않을 때,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의 의노로 징벌이 내림을 경고하고 있다.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 대전에 올바른 양심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따라 죄짓는 생활을 삼가할 것을 명하고 있다.


오늘 독서 말씀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복음이 루카 복음 12장 16~21절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말씀이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에게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루카12,20)는  청천벽력같은 말씀이 내린다.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이렇게 해야지.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루카 12,17.18.19참조)


이처럼 가진 자들은 한도 끝도 없는 자신의 마음의 욕망을 펼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 서간 4장 13~17절과 5장 1~6절에서 자만하지 말 것과 부자들에 대한 경고를 주고 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 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허세를 부리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야고4,14~16)


복음적 권고의 하나인 청빈(淸貧)은  '맑을 청(淸)' '가난할 빈(貧)'의 합성어로서 '맑은 가난' 말한다.

그런데 '빈(貧)'을 보면 '나눌 분(分)' '조개 패(貝)'의 합성어로 '가지고 있는 화폐를 나눈다' 뜻이다.

그러나 '탐욕(貪慾)'  '탐낼 탐(貪)'을 보면,  '이제 금(今)' '조개 패(貝)'의 합성어로서 '지금 화폐를 움켜잡는' 것을 의미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우리 인생 살이~~ 주님의 생명의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주님 대전에 주님이 주신이 주신 것을 잘 관리하고 보존할 뿐 아니라 주님의 영광과 교회와 이웃의 공동선을 위해서 주님 대신에 재화를 잘 쓸 줄 아는 착하고 충실한 관리인이 되어 하늘에 썩지 않는 보화를 차곡 차곡 쌓아 가라는 말씀으로 오늘의 집회서 말씀을 실천하면 좋겠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버려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듣기에 끔찍하다 못해 민망하기까지 할 정도로 강경한 표현을 쓰시면서 죄를 피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하고 사느니 차라리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뛰어드는 편이 더 낫다”고 하시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죄짓지 말게 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의 강경한 표현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손이 죄를 짓게 되거든 그 손을 찍어버려라.” “발이 죄를 짓게 되거든 그 발을 찍어버려라.”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버려라.”


위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실천하자면 저 같은 사람은 지금쯤 남아있는 사지(四肢)가 하나도 없겠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중복장애자가 되어도 몇 번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강경한 표현, 그 이면에는 죄를 피하기가 진정 어렵기에 늘 죄짓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라는 의미, 죄를 피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하라는 격려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나약한 본성상 수시로 죄에 떨어지는 존재이기에 언제나 겸손하게 주님의 자비와 도움을 청하면서 항상 조심하면서 살아갈 것을 요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바처럼 우리를 유혹하는 죄악의 뿌리는 얼마나 끈질긴지 모릅니다. 진정 지긋지긋합니다. 한번 악습을 고쳐보겠노라고 수천 번도 더 다짐하지만 어느새 우리의 몸은 자동으로 과거의 악습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죄로 물든 부끄러운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하며 다시 한 번 새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그렇게 눈물을 흘리지만 그 때뿐입니다.

환한 얼굴로 고백소를 나오지만, 사흘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 다시 똑같은 잘못으로 가슴을 칩니다. 철저한 비참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나약한 인간의 실체,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기를 머뭇거리는 우리,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죄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하는 우리 인간 조건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그토록 강경한 어조로 죄를 끊어버릴 것을 요청하십니다.

낙태수술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공개적으로 선언한 의사 선생님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촌지를 절대로 받지 않겠노라고 학생들과 학부형 앞에서 명백히 밝힌 선생님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40년간의 공직 생활 동안 단 한 차례도 뒷돈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노라고 담담하게 밝히는 한 공무원의 명예로운 뒷모습, 진정 눈물겹습니다.

깨끗한 손을 간직하며 살려다보니 늘 손해보고,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났던 사람들, 지지리도 주변머리 없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살아온 분들, 이 세상에서 그분들이 삶이 비록 고달팠겠지만 그분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가 이미 예약되어 있는 분들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죄와 용감히 맞서기를 다짐합시다. 오늘 다시금 오랜 악습과 결별하기 위한 투쟁을 새로이 시작합시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매일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여겨지겠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가운데 하느님 자비의 손길이 우리도 모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분의 도우심으로 우리 내면 안에 우리가 사라지고 성령께서 자리하실 그날, 우리는 보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걸려 넘어지지 마라 

반영억라파엘신부


“행동을 통해서 수확하는 것은 습관이고, 습관을 심어 수확하는 것은 성격이며 성격을 심어 수확하는 것은 운명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듭니다.”그러니 좋은 습관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습관은 덕이 되고, 좋지 않은 습관은 그야말로 악습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악한 표양으로 남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마르9,4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작은 이들이란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제자들, 제자들과 제자들 사이에서 이간질하거나 추종의 길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그릇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이 약한 사람을 죄짓게 하여 신앙을 저버리게 한다면 그 책임이 막중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네 발이 너를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마르9,45-47). 이렇게 섬뜩한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의‘신앙에 걸림돌이 되는 악한 행동은 절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섬김의 자세로 살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행동으로 다른 이들을 신앙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되어서 버려질 뿐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절대로 죄의 유혹에 걸려 넘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신앙이 여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참된 신앙인의 삶보다는 무늬만 신앙인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환경은 좋아졌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정도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환경과 여건, 처지가 어려웠지만 믿음의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세상 안에서 나를 유혹하는 것이 너무도 많기에 마음이 흔들리고 심지어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늘어만 갑니다. 세상에 타협하면 주님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한 순간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4,18). 그러므로 영원한 것을 잡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9,41-50).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주님께서는“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소금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고와 땀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매 순간 단호한 결단이 요구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영원한 것을! 일상 안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시길”(에페5,10).빕니다. 사랑합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 마다 소금의 위력을 새삼 실감합니다. 벌써 일주일째 소금간이 제대로 되지 않은 밋밋한 음식을 먹으니 살맛이 안날 정도입니다. 먹는 재미가 사라져버리니 삶이 시들시들합니다. 머릿속은 온통 매콤짭짤한 골뱅이 무침이며, 고등어조림, 김치찌개 등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지당한 말씀을 하십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의 존재 이유는 짠맛을 내는 것입니다. 짠맛이 사라져버린 소금은 한 마디로 무용지물입니다. 그것을 대체 어디에 쓰겠습니까? 아무 쓸데없는 짠맛 잃은 소금을 어딘가 저장해두는 것도 웃깁니다. 어딘가 쌓아놓는 것도 이상합니다. 볼 때 마다 짜증이 날 것입니다. 트럭에 실어 황무지나 계곡에 갖다버릴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 묵상하고 있노라니 덜컥 겁이 납니다. 자주 우리는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무의미한 삶을 살아갑니다. 삶이 충만하고 신명나야 하는데, 그저 물에 물탄 듯 아무런 재미도 의미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짠맛을 잃은 소금 같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한 그리스도인 안에 반드시 들어있어야 할 알맹이요 핵심,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짠맛을 상실한 소금 같은 존재입니다.


한 교육자의 마음 안에는 제자들의 성장을 돕고자 하는 열정과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들의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사랑과 헌신의 마음으로 가득 차있어야 하는데, 그 대신 무기력과 냉랭함과 무관심으로 가득하다면 그는 짠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한 사목자의 삶 안에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할 복음전파를 향한 사목적 열정과 양떼를 향한 측은지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명예나 부, 권력, 안락한 생활에만 몰두한다면 그는 짠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우리 영혼을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비워내야겠습니다. 비워진 내면을 빛나는 보석으로 가득 채워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음식의 맛을 돋우는 소금 같은 인생, 누구나 환영하는 맛 갈진 양념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딱딱한 회의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시는 인도 신부님이 잠 깨우기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로마에 온 관광객이 운전기사에게 묻습니다. 저기 저 교회는 무슨 교회인가요? 최근에 들어온 교회인데 이름 '하나이신 하나님의 교회'의 교회입니다.

그 옆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저건요?" "저건 요즘 사람들이 많이 가는 오순절 교회입니다."

"그 옆은요?" "저 교회는 제 칠일 안식일 교회입니다."


"그 옆에 제일 큰 건물은요?" "육 일간 무신론자 교회입니다."

"뭐 그런 교회가 다 있나요?"  "그 교회는 바로 천주교회입니다."

일주일 가운데 엿새 동안은 무신론자로 지내다가 하루만 그리스도인으로 지내는 사람들을 빗댄 뼈있는 농담이네요.

소금 같은 그리스도인, 참 그리스도인은 육 일간 무신론자, 하루만 신자가 아니라 일주일 내내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겠지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